망나니 천재 기사단장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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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11 00:05
최근연재일 :
2024.09.1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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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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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와 검기 (完)

DUMMY

마법이란 설익은 꽃을 피워내는 것과도 같다.


봉긋하게 부푼 꽃봉오리와 새파란 줄기는 곧이라도 넘쳐흐를 생명력을 담뿍 품고 있지만, 결국 아직은 피어나지 못한 생명체.


단 한 방울의 이슬을 머금고서야, 그때야 비로소 꽃은 피어나는 법이다.


마법사라는 것은 바로 그 이슬이다.


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 꽃이 축 늘어져 시들어 버릴테니까. 너무 적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는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가장 완벽한 순간에, 가장 완벽하게 정제된 이슬 한 방울만이 닿아야만.


그래야만 꽃은 피어나는 것이다.


“으음···.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아닐 것 같고······.”


와일스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 부분에서 막힌지만도 벌써 열흘째.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진즉 넌더리를 내며 책상을 뒤집어 엎었겠지만, 마법사라는 족속에겐 비일비재한 일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의 서식 뿐이다.’


마력의 운용 방향. 출발점과 끝점. 사용하는 마력의 양과 성질까지.


모든 것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해야만 마법이라는 기적은 일어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맨땅에서부터 해내야 하니, 마법 하나를 만드는 데 몇 년에서 몇십년이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물론 그 점을 감안해도······.’


와일스는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아무리 마법을 만드는 게 오래 걸리는 일이라곤 하나, 와일스는 유독 그 속도가 더딘 편이었다.


실전형 마법사가 되기엔 마력량과 운용 능력이 미흡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에도 창의성과 지혜가 모자라다.


모든 면에서 덜떨어지는 마법사.


그것이 8급 마법사 와일스였다.



“굉장히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 자네?”


“······.”


그리고, 그 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한 남자의 목소리.


그 여유롭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와일스는 고개를 돌렸다.


“하긴. 마법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와일스의 뒤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느긋한 표정으로 이 모든 일을 관찰하고 있는 남자.


베르 켈버트.


웃음기 어린 그의 목소리에, 와일스는 저도 모르게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단장님은 여기서 이러고 계실 시간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단 일도 만만치는 않으실텐데요.”


“흐흐, 나를 걱정하는건가? 자네에겐 미안하네만, 내게는 꽤 유능한 부관이 있어서 말일세.”


아이샤 트릴리스. 그녀에 대해서라면 와일스도 잘 알긴 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것은 물론, 늘 성실하고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현 마탑주의 여동생이기도 하고.


그와 함께, 와일스는 얼마 전 마탑주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자네. 앞으로 보름이야. 보름이 지날때까지도 연구에 이렇다할 진척이 없으면, 마탑은 앞으로 자네를 지원해줄 수 없어.’


와일스는 이를 꽉 깨물었다. 베르 켈버트고 뭐고 이런 남자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마탑에서 쫓겨날 수는 없다. 보름 안에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했다.


와일스는 숨을 한 차례 들이키고는, 재차 책상에 머리를 파묻었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소리와 사각거리는 펜소리만이 재차 연구실을 채워간다.


“······.”


그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한 남자의 무심한 표정조차 모르는 채로.














그 뒤로도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베르는 매일 아침 와일스를 찾아왔고, 저녁까지 그를 지켜보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그를 부담스러워 했던 와일스였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자 마냥 그러지도 않게 되었고.


“커피는 마법사에게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어째서지? 밤을 새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는데. 자네 거의 두시간씩 자면서 일하지 않나.”


“커피의 성분이 올바른 마력 형성을 방해하니까요. 연구에 차질이 갑니다.”


이제는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는 백작님도, 생각보다 서민 음식을 잘 드시는군요. 귀족분들은 이런거 안 좋아한다던데.”


베르가 먹고 있는 것은, 와일스가 근처의 빵집에서 간단히 사오는 점심거리였다.


딱딱한 빵과 차가운 햄. 빈약한 야채 몇 장이 끼어있는 싸구려 샌드위치.


그러나, 베르는 와일스의 예상과 달리 별 탈 없이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어댔다.


“이 정도면 진수성찬인 셈이지. 자네는 내가 한동안 어떤 음식들을 먹었는지 알면 놀라 까무러칠걸.”


“어떤 음식을 드셨길래 그러십니까.”


“풀뿌리나 작은 들짐승들. 여름에는 열매라도 맺히지만, 겨울에는 아무래도 나무 껍질을 뜯어 먹어야하지. 벌레를 씹어 삼켰던 일도 다반사고.”


와일스는 베르의 말을 들으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켈버트 백작가는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음식에는 과하게 아끼는 편이었나?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자면, 어느샌가 샌드위치를 깔끔하게 먹어치운 베르가 손을 탁탁 털며 말해온다.


“자. 이제 다시 일해보자고.”


“······저보다 더 열정적이시군요.”


와일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와일스 자신보다도 연구를 재촉하는 그였다.


.

.

.

.


“···그래서, 이렇게 확실한 이미지를 상상하며 마력을 쓰는 게 중요한 겁니다.”


“으음, 그렇군.”


계속해서 자신의 연구를 지켜보았던 탓일까.


어느새 베르는 마법적 지식을 하나둘 익혀가기 시작했다.


그 본인도 흥미가 있어보이기도 했고.


와일스는 턱을 괸 채 고민에 잠긴 베르를 보며, 어딘지 뿌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어떻습니까. 굉장히 흥미롭지 않습니까, 마법의 세계는.”


“으음, 그렇긴하군.”


“이렇게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깊게 고찰할 수 있는 건 마법밖에 없습니다. 마법은 단순히 전투나 효용을 위한 도구가 아니지요. 학문에 가깝다는 겁니다. 흐흐, 기사단에 있어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지요.”


“···흠. 글쎄.”


그러나 와일스의 그러한 말에, 베르는 묘한 웃음을 지어보일 따름이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걸세.”


매일, 와일스를 볼 때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말과 함께 말이다.


“기사단에 들어오게 와일스. 그럼 알게 될거야.”


그럴때면 와일스 역시 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대답을 한다.


“···싫습니다.”




.

.

.

.


그렇게 다음날.


“와일스. 기사단에 들어오게.”


“싫습니다.”


.

.

.

.


또 다음날.


“와일스. 기사단에 들어오게.”


“싫습니다.”


.

.

.

.


다음날.


“와일스. 기사단에···”


“싫습니다.”



.

.

.

.


그렇게. 시간은 봄의 하늘을 부드럽게 유영하며 지나가고.


.

.

.

.



“흐음. 이 정도 진척도면 나쁘지는 않군, 와일스. 일단은 계속 지원해주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마탑주님!”



어느덧 보름이 흘렀다.







“그래서. 연구비는 계속 지원받을 수 있게 된건가?”


“그렇습니다. 참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지요.”


그날 저녁.


정말 오랜만에 연구의 압박에서 벗어난 와일스는, 정말 오랜만에 술을 한 잔 들어올리기로 했다.


다름 아닌, 이 보름을 함께 해준 한 남자와 함께.


“아, 백작님께는 애석한 일이겠습니다. 제가 떨어지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셨을텐데.”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만큼 자네를 열심히 도와준 사람이 어디있다고. 그런 식으로 나오면 굉장히 섭하지.”


와일스는 흐흐 웃으며 베르와 잔을 부딪쳤다. 물론 그 역시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지난 며칠동안 베르가 자신을 얼마나 도와주었는지 기억하니까.


온갖 연구 자료를 정리해주고, 그와 함께 이런저런 마도서들을 뒤적거려 주기도 하고. 자신이 피곤해할 때면 옆에서 시덥잖은 농담을 쳐주기도 했었다.


어느샌가, 그가 자신을 설득하려 온 사람이란 것마저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래서 어떠셨습니까.”


“···음?”


“저와 함께 계시면서 말입니다. 마법이란게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 고찰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깨달으셨습니까.”


“아. 그것 말이지.”


흐뭇하게 물어오는 와일스의 질문.


베르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한 모금 들이켰다.


“확실히 무엇인지는 알겠더군. 자네가 어떠한 것들을 추구하고, 어떠한 것들을 사랑하는지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와일스는 잔을 쥔, 핏줄이 돋아난 제 커다란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이 투박한 오른손은, 그저 무언가를 부수고 파괴하는 데에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전혀 아름답지도 깊이 있지도 않지요. 어쩌면 이 오른손에 훌륭한 기사의 자질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제가 원하는 아름다움은 영영 없을 겁니다. 기사에게는 말입니다.”


“······.”


“그게, 제가 기사가 되고 싶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며, 와일스는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베르를 마주 보았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가 세간이 말하던 망나니도, 생각 없이 사는 부자 귀족도 아니란 걸 알았다. 그는 늘 당당하고 여유로웠지만, 그는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알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라면 이런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만 포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이윽고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와일스는 전혀 취하지 않았고, 그것은 베르도 마찬가지였다.


찰나 같기도, 영겁 같기도 한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베르가, 옅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자네. 나와 같이 어딜 좀 가지 않겠는가.”



















베르가 와일스를 데려간 곳은, 기사단 부지에 딸린 작은 훈련장이었다.


블루 홀의 옆에 딸린 그 훈련장은 십 년 전쯤에 만들어 졌지만, 그간 기사단원들이 원체 사용하지 않은 탓일까. 그곳의 내부는 새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깔끔한 상태였다.


와일스는 앞서 걷는 베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백작님? 여긴 무슨 일로···”


“아, 응. 자네는 그쯤에 서 있게. 그래, 그 쪽에. 더 안으로 들어오지는 말고.”


그러나, 베르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리를 가늠하며 와일스를 훈련장 구석에 세워둘 뿐이었다.


“백작님?”


“가만히 있게. 내가 자네에게 무언가를 보여줄 생각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베르는 웃으며,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달빛을 머금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새하얀 검신.


밤이 쏟아지는 훈련장의 한가운데로, 베르는 저벅저벅 걸어갔다.


“이번 생에서 남이 이걸 보는 건 자네가 처음이야. 나도 어제쯤 드디어 깨달은거거든. 그러니──”


──영광인줄 알라고.


베르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만, 검을 한 차례 횡으로 빙글 휘두를 뿐이었다. 좌에서 우로.


어제 무엇을 깨달았단 것일까. 와일스가 그런 의문을 품는 것도 잠시.


곧이어 와일스는 보게 되었다.


그 두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을.



사아아악──



그건 검이 허공을 휘둘러 나는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어떠한 표면이, 세상의 결을 타고 미끄러지는 소리.


그리고. 베르의 새하얀 검 끝에.


사아아아아아──



기적이 피어난다.



“······.”


별 무늬는 없지만 날카로운 검신에 검은 물방울이 몽글몽글 맺혀간다.


곧이어, 물방울은 완전히 검날을 뒤덮어 한 자루 검의 형상으로 변한다.


매끈하지는 않다.


그것은 바람처럼 검을 휘감았다기 보다는, 그렇지. 화염에 가까웠다.


화염처럼 검을 촉매로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연기를 내뿜는 것처럼. 그 틈새마다 보랏빛을 내뿜으며.


사악


베르의 검이 이제는 위로 향한다. 그 시꺼먼 빛도, 이제는 검을 따라 달로 향한다. 와일스는 그 빛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시 검이 오른쪽으로. 한 바퀴를 빙글 돌아 제자리로. 검이 궤적을 그릴 때마다, 허공에는 흑색의 염로가 새겨진다.


그건 뭐랄까.


검정색의 꽃과 같았다.


대단히 웅장하지는 않았다. 그리 경외심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저 밤 위에 한 획 한 획 새겨지는 빛은.


그토록 처연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래.


지독한 슬픔과 후회 끝에서 피어난 꽃.


저건, 그러한 꽃과도 같다.


“아아······.”


와일스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추구해오던 모든 것이 저기 있었다.


한 방울.


꽃을 피우기 위한,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이슬 한 방울.


그 수많은 감정과 고민을 깎아내어 만들어내는 기적이, 마법사도 아닌, 자신이 그토록 의심하던 기사의 손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저리 처참할 정도로 아름답게.


검기.


그것의 이름은 와일스도 알았지만, 더 이상 이름 따위는 와일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와일스는 단지. 저 지독한 순간에 완전히 매료되어, 생각을 빼앗긴 채 영원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지나고.



“······후우.”


한 송이의 꽃을 완벽하게 피워낸 베르는, 제 검은빛을 흐트러뜨리기 시작했다.


한숨처럼. 밤바람에 날려, 조곤히 사라지는 흑색 검기.


베르는 검을 수납하며 저만치에 멀거니 서 있는 와일스를 돌아 보았다.


“괜찮은 감상이었나? 나도 오랜만에 해보려니 살짝 지치더라고.”


“어, 어떻게······.”


그리고.


와일스의 표정을 확인한 베르는, 마침내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자네가 원하던 게 이런 것이었겠지?”


“어, 어떤···. 제가 지금 무엇을 본 것입니까.”


와일스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란, 한두단어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감격일까, 비탄일까. 환희 같기도, 공포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와일스는, 눈앞에서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저 남자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사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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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탑 폭발 (1) 24.09.18 17 0 12쪽
» 마법사와 검기 (完) 24.09.16 30 0 14쪽
9 마법사와 검기 (1) 24.09.15 34 1 12쪽
8 기사단 죽이기 (完) 24.09.14 41 1 17쪽
7 기사단 죽이기 (2) 24.09.13 45 0 14쪽
6 기사단 죽이기 (1) 24.09.12 58 0 17쪽
5 회귀하다 (完) 24.09.11 59 1 13쪽
4 회귀하다 (4) 24.09.11 54 0 18쪽
3 회귀하다 (3) 24.09.11 65 0 15쪽
2 회귀하다 (2) 24.09.11 69 0 15쪽
1 회귀하다 (1) 24.09.11 8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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