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점원에서 CEO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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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흡입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1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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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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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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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DUMMY

“조이 앰슨. 해고됐습니다. 짐 싸십시오.”


조용한 사무실, 옆구리에 총을 찬 시큐리티 두 명이 다가와 조이에게 해고 통보를 한다.


― 털썩.


“조이!”

“앰뷸런스! 앰뷸런스 불러요!”


조이는 심장이 약하다.

혹시 몰라 늘 심장약을 갖고 다닐 정도.

대량 해고가 예견된 상황에서 본인에게 해고 통보가 내려지자 쓰러져 버린 것이다.


오늘은 조이였지만 어제는 브라이언이었고, 그제는 에밀리였고, 지난주 월요일에는 마케팅 2부 전체가 날아갔다.


브라이언은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짐을 싸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에밀리는 막달 임산부였다.

마케팅 2부는 그날 아침 주간 팀 미팅을 하다가 전체 해고를 당했다.


― 위용위용위용.


조이가 들것에 실려 나가고, 구급차가 위에엥 소리를 내면서 회사 건물을 떠났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려 온다.

애꿎은 커피 잔을 들고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일은 버틸 수 있을까?


― 씨발.


누군가의 낮은 욕지거리.

여기저기서 동의의 끄덕거림이 있었지만 그뿐이다.


화가 난다고 해도 내가 먼저 사직서를 제출할 순 없다.

해고(Lay―off, 레이오프)가 되어야 실업 수당을 받을 수 있으니까.

자진해서 그만두거나 잘림(Fired, 파이어드)을 당하면 실업 수당조차 없다.


미국 직장인들은 평생 동안 평균 7번의 레이오프를 당한다고 한다.


레이오프는 회사의 어려움 때문에 잘리는 거라 내 잘못이 아니다.

가끔은 일단 레이오프는 시켰으나 그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임시 고용 형태로 다시 고용을 하기도 한다.


지난주 전체 해고 통보를 받았던 마케팅 2부의 수잔이 어제 그렇게 돌아왔다.

어색할 필요도, 멋쩍은 웃음을 지을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다들 그러려니 한다.


어쨌든 오늘 하루를 더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달 월세를 밀리지 않고 내려면 이번 주까진 버텨야 하는데.


미국의 회사가 얼마나 잔인한지 허리에 총을 찬 시큐리티 가드가 내 자리에 찾아와 “너 방금 해고됐으니 짐 싸라.”라는 말을 듣기 전까진 내가 해고된 것을 모른다.


통보를 받은 직원은 시큐리티들과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싼다.

컴퓨터에는 손도 못 댄다.

어차피 통보를 받는 순간 내 아이디로는 접속도 안 되지만, 손대는 순간 회사 기밀 유출 의심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해고된 직원들은 시큐리티들의 친절한 에스코트를 받으며 정문까지 나선다.

중간에 난리를 치지 못하게 함이다.

그 어떠한 소란이나 소음도 없이 조용히 치러지는 의식.


간혹 실려 나간 조이처럼 짐을 싸지 못하는 경우 시큐리티들이 짐을 챙겨 집으로 배달시켜 준다.

그야말로 회사의 부속품이었음을 철저하게 알려 주는 거다.


회사가 뒤숭숭하다.


오후 4시.

일찍 출근한 사람들의 퇴근 시간이다.

나도 8시에 출근했기에 가방을 쌌다.

내일이면 없어질지도 모르는 내 자리를 손으로 한번 쓰윽 훑고는 사무실을 나왔다.


차는 회사 빌딩 옆 주차 전용 건물에 있다.

어떤 곳은 회사 건물 지하에 주차를 하기도 한다지만 내가 다닌 회사 중에 그런 곳은 없었다.


― 끼익.


회사 정문의 회전문을 나서는 순간, 빌딩 건너편에 차가 한 대 선다.

브레이크를 세게 밟으며 비장하게 서기에 눈길이 저절로 갔다.


차에서 내리는 이는 어제 울면서 짐을 쌌던 브라이언.

커다란 눈에 핏발이 잔뜩 선 눈으로 어깨에 기관총을 둘러메고 있다.


“내가! 내가 왜 짤려야 하는데? 15년을 충성했어! 근데 날 잘라?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약을 먹고 충동적으로 온 것이 분명하다.


― 꺄아아아아!


주변에서 브라이언을 인식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초.

비명 소리가 거리를 메움과 동시에,


― 두두두두두. 퍽. 퍽. 퍽.


염병.


수십 발의 총알이 빗나가고 단 세 발만 적중한 것 같은데 그중 하나가 내 심장을 저격했다.


이렇게 죽는다고?

평생을 조신하게 무사안일만을 바라며 살았는데?


이래서 미친놈들과는 상종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세상이 허물어졌다.


***


― ······안. 이······이안! 이안 브라이트! 숙여! 숙이라고!


누군가 내 머리를 잡아채 바닥으로 내리꽂는다.

어디선가 많이 보던 얼굴.


콧구멍과 귓구멍까지 털로 덮여 있어 ‘털보 잭’이라 불리던 잭 스니거다.


어?

근데 잭은 지난 코로나 때 죽었는데.

자기는 코로나 따위 믿지 않는다며, 모든 건 정부의 음모설이라 주장하던 잭.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다가 코로나에 걸려 죽었었다.


― 미쳤어? 대가리에 총 맞고 싶은 거야? 그렇게 서 있으면 어떻게? 이쪽으로 와.


― 질질질.


굵직한 팔뚝으로 내 허리춤을 잡아 자기 옆으로 질질 끌어다 놓는 잭.


뭐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찬 그때,


― 탕. 타탕. 움직이지 말라고! 씨발. 머큐리. 아직 안 끝났어?

― 개새끼 아담 존슨! 내 이름 부르지 마!

― 씨발.


음. 이것도 어디선가 본 장면인데?


아!

20년 전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던 그때다.

월드마트에서 처음으로 풀타임(Full Time) 직장을 잡아 일을 시작할 때였지.

풀타임이긴 하지만 그냥 일반 마트 점원이다.

물건 정리부터 캐셔 보조, 손님 응대 등을 하는 직업으로 4시간 교육 후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었지.

나름 경력직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파트타임으로 여러 곳을 전전했으니까.


이 일은 그러니까······.

첫 출근을 하고 일주일 되던 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꿈인 거지?

빌어먹을 브라이언이 쏜 총에 맞았지만 극적으로 죽지 않고 살아 지금 사경을 헤매는 중?

아니면 죽기 전에 본다는 그 인생의 파노라마?


뭐가 됐든 참 생생하네.


이때만 해도 공권력이 강해서 총 들고 마트에서 저 지랄하면 바로 뒤지는데.

5인 1조로 움직이며 편의점이나 털던 놈들이 갑자기 무리해서 월드마트를 쳤었지.

뉴스에 꽤 크게 나왔었는데.

다행히 애꿎은 희생자는 나오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 퍽. 타탕. 탕! 꺄아아악! 쿠당탕탕.


뭔가를 하기도 전에 저렇게 총 맞아 뒤졌었거든.


저 바로 뒤쪽 코너에서 사복 경찰들이 동료 경찰의 출산 선물을 고르고 있었기에 바로 대응을 할 수 있었지.

참 재수가 없었던 강도 놈들이라 할 수 있겠다.


― 타타탁. 퍽. 퍽. 퍼퍽.


셋이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고, 두 놈이 뒷걸음질 치며 도망가다가 용감한 시민에 의해 얻어맞았었다.

저렇게.

용감한 시민은 전직 복싱 선수였다나.

소문으로는 이 일을 계기로 경찰이 됐다고 했었다.


곧 경찰들이 대거 쏟아져 들어왔고, 사람들은 한 명씩 조사를 받고 돌아갔다.

밖에선 배불뚝이 매니저가 지역 방송국에서 나온 리포터와 인터뷰 중이다.


잭이 내 어깨를 친다.


“말라깽이 이안. 많이 놀랐냐? 아주 정신을 놨네. 넌 내 덕분에 산 줄 알아라.”

“어? 어. 그래. 고맙다.”


― 오늘 마트 문은 닫겠습니다. 많이 놀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기력이 되는 사람은 남아서 물건 정리를 좀 도와주세요. 새벽조가 오면 정리하겠지만 지금 남아 주시는 분들은 시간당 11불로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매니저의 말에 잭이 묻는다.


“어쩔 거야?”

“11불이면 남아야지.”

“내 말이.”


우리는 손을 들어 남는 걸 택했다.

최저 임금이 시간당 5.25달러 시대다.

정규직이긴 하지만 수당이 그만큼 붙는다는 소리.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어차피 월급에선 크게 차이도 없다.

오히려 파트타임은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라도 있지.

그럼에도 정규직을 선택하는 이유는 좀 더 안정적인 느낌이 있다는 것과 의료 보험 같은 것이 적용되며, 후에 다른 직장을 알아볼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급여는 2주(bi―weekly)에 한 번씩 체크(Check, 자기앞 수표)로 받는다.

통장으로 바로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크로 받는 걸 선호하던 시기다.


아무튼 현재 상황이 좀 어리둥절하긴 하지만 돈은 벌고 봐야 한다는 게 뼛속까지 배어 있었기에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잭과 나는 같은 구역에 배정되어 흐트러진 물건들을 정리했다.

도둑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혼잡스러운 순간에도 물건을 훔쳐 간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십팔. 월드마트 오는 놈들이 다 이렇지 뭐.”

“잭. 그 말은 너무 서글프다. 정신 제대로 박힌 소시민들이 훨씬 많다고.”

“이안. 이거 봐라. 이거. 진짜 CCTV 뒤져서 하나하나 다 조지고 싶다.”

“······.”


우리 담당은 잡다한 전자 제품 코너.

강도들이 들이닥치기 직전 가지런히 배열해 놓았던 CD 플레이어나 DVD 플레이어, CD―R/CD―RW 드라이브, 이런저런 케이블, 리모컨, 배터리 등등 아주 야무지게도 쓸어 갔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텔레비전이나 모니터 같은 건 가져가고 싶어도 못 가져간 거고.


없어진 물품 목록과 망가져서 버려야 하는 것들을 체크하고, 비틀어진 선반도 제대로 세웠다.


작업을 하다 보니 현타가 온다.

아무리 봐도 이거 레알 현실이다.


“내일 보자.”

“그래.”


내 차가······.

아. 저깄다.


“아하하하. 미치겠네. 진짜.”


그러니까 지금이 2004년이란 말이지?


2000년대 초반, 키아에서 ‘하나 사면, 하나 공짜(Buy One Get One Free)’ 세일을 했었다.


아무리 미국에 갓 진출한 신생 업체가 이름을 알리기 위한 행사였다고 해도 옷이나 신발 같은 리테일 업체도 아닌 자동차 회사에서 이런 행사를 해서 많은 사람이 비웃었었지.

얼마나 허접하면 자동차를 하나 사면 하나를 공짜로 준단 말인가.


하지만 그 후 미국에서 ‘키아자동차’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긴 했으니 결과론적으로 보면 괜찮은 이벤트였을지도.


나 같은 소시민은 크게 덕을 봤다.


잭과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학교 다닐 땐 그리 친하진 않았는데 어쩌다 월드마트 직원으로 만나서 친해지게 된 케이스.


취직을 한 첫날,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차 이야기가 나왔고, 곧바로 의기투합해 키아 딜러 숍으로 향했었다.


키아 세피오.


잭의 사촌 형이 키아 딜러라 우리는 가격부터 옵션까지 이런저런 혜택을 받았다.

대당 12,000불인 걸 2,000불을 깎아 만 불에 새 차 두 대를 샀으니까.

중고 시장의 웬만한 차들보다 싸게 샀었지.


차의 후면 유리에 붙은 종이 쪼가리 임시 번호판이 이 차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려 준다.


“설마 진짜로 돌아온 거야? 2004년으로?”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내 차에 꽂았다.

딱 맞네.


그렇다면 이 시기의 집은······.

제길.

계모 집 베이스먼트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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