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점원에서 CEO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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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흡입기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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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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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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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 1

DUMMY

한참을 웃어 젖히던 마크가 갑자기 오른손을 내민다.

얼결에 나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이안 브라이트요”

“이안 브라이트. 반갑군. 난 마크 월드네.”

“아. 네. 네?”


마크 월드.

성이 월드면 월드가(家) 사람?

나이를 보면 대충 창업주에서부터 4대 회장.


혹자는 어떻게 자기 회사 사장 얼굴을 모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모르는 사람 천지다.

아니.

애초부터 알려고 하질 않는다.


일단 일개 마트 점원이 회장을 만날 일이 1도 없는 데다 대부분은 1년 안에 일을 그만두기 때문에 저기 위쪽에는 관심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월드마트.

1899년에 세워진 소매 유통 체인으로 처음엔 그저 그런 작은 마트였다.


창업주의 손자가 투자 감각이 있었다.

모아 놓은 돈으로 1962년에 월드마트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첫 번째 대형 할인점을 열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고, 1990년대에는 미국 전역에 2,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했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 후 시대를 읽지 못한 경영진의 안일한 운영으로 점점 쪼그라들었지.


결국 재작년이었던 2002년에 1차 파산 신청을 했고, 지금도 계속 쪼그라들고 있으며, 내년 5월에는 같은 리테일 회사지만 조금 더 규모가 큰 테라스에 합병되면서 테라홀딩스(Terra Holdings Corporation)로 바뀐다.

월드마트나 테라나 망해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나름 “둘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보자.” 같은 의도였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했지.

내가 회귀하기 전엔 테라홀딩스 자체도 90% 이상 쪼그라들어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였으니까.


잠시 샛길로 새자면 회사에서 재정 악화나 여러 이유를 들어 직원 감축을 할 때는 최근에 입사한 직원들이 우선 해고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한 해의 말 12월에 사람을 잘라 내야 할 때 3월에 들어온 사람과 10월에 들어온 사람이 있으면 10월에 들어온 사람부터 잘라 내는 거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교육이나 일의 효율성 등을 따져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


아무튼 2005년 당시, 월드마트가 테라와 합병되면서 대량 해고가 있었다.

나와 잭은 살아남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있는 이 지점이 문을 닫지 않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본능적으로 살길을 찾아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을 한 것이고.


그런데 그 월드마트를 말아먹은 주인공이 내 앞에 똬악― 나타난 것이다.


갑자기 찝찝해진다.


“아. 반갑습니다. 회장님.”

“내가 일부러 이틀 전이라고 했는데 3일 전의 자료까지 찾아볼 줄은 몰랐군. 역시 인재를 발굴하려면 발품을 뛰어야 한다니까.”

“네?”


그 순간, 저쪽에서 배불뚝이 매니저가 땀을 흘리며 뛰어온다.

뒷짐 지고 있다가 회장이 왔다는 소식에 후다닥 달려온 것이겠지.


간혹 미국인들은 회장이나 일반 사무직 직원이나 점원이나 다 평등한 관계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 직장인들이 직속 보스에게 딸랑거리는 걸 옆에서 본다면 아마 턱이 빠질 거다.


물론 승진에 관심 없는 사람들 중엔 꼿꼿한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자기 밥줄이 걸려 있는데 목이 뻣뻣해선 살아남지 못하지.


매니저가 바쁘게 달려와 회장에게 굽신거린다.


“회. 회장님. 어떻게 말도 없이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


가만히 매니저를 바라보던 회장이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나를 쳐다본다.


“이안 브라이트. 티셔츠 색을 보니 정직원이로군.”

“네.”

“입사한 지 얼마나 됐지?”

“이제 일주일 좀 넘었습니다.”

“오. 완전 신삥! 이 지점은 시작이 그냥 풀타임인가, 아니면 팀 리더인가?”

“팀 리더로 시작합니다. 지난주엔 가전제품 섹션에 있었고, 이번 주엔 커스터머 서비스를 맡았습니다. 다음 주엔 식품 섹션으로 옮길 것이고요.”

“좋군. 허면 외부인의 눈으로 봤을 때 우리 마트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그거야 특별한 구석이 없다는 거죠.”

“이안!”


앗.

월드마트에 대해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던 말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게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 가지고는.


매니저가 놀라 내 이름을 외쳐 부르고, 어느새 옆에 다가온 잭과 부매니저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반면 마크 월드의 눈은 침잠해졌다.


“자세히. 자세히 말해 보게.”

“아······ 그게······.”

“어떤 소리를 해도 걱정할 거 없네. 아니. 대답 여하에 따라 수직 승진이 될 수도 있겠지. 말해 줄 수 있겠나?”


그래 뭐.

월드마트도 정신 차리긴 해야지.

그래도 내 생애 첫 직장이었는데 망해 나가니까 속이 편하진 않더라.

입바른 소리 좀 했다고 잘라 낸다면······ 할 수 없는 거고.


저기 단전에서부터 없는 용기까지 끌어올렸다.


“그. 보통 우리 마트랑 비슷한 급으로 달마트나 토깃을 들잖습니까? 뭐. 지금은 우리는 거의 죽어 가는 곳으로 조롱받으면서 쪼그라들고 있고, 달마트나 토깃은 공격적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죠.”

“불편한 진실이지.”

“달마트가 공급망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즌마다 매장 진열 방식을 눈에 띄게 바꿔서 기대감을 심어 주고, 매장엔 없는 물건이 없고, 가격이 저렴하죠. 그렇다고 달러트로같이 1불 근처의 저렴한 버전만 있는 것도 아니면서 품질은 어느 정도 보장되고요.”

“······토깃은?”

“토깃은 트렌디하죠. 가격은 월드마트나 달마트보다 조금 비싸지만,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으로 트렌디한 제품들을 앞줄에 진열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이삭과의 협업이 인상 깊었죠. 젊은 여성층에 ‘토깃의 여성 의류와 액세서리들은 트렌디하다.’는 인식이 퍼진 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고급 매장보다 많이 저렴하고요.”

“자네 말은 어폐가 있군. 우리도 철마다 매장 진열을 바꾸고, 유명인들과 협업도 하네. 소피아나 마샤가 대표적이고.”

“네. 그래서 1990년대엔 크게 흥했죠. 하지만 그게 전부잖아요. 그때의 성공을 바탕으로 꾸준히 새로운 이들과 협업도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죠. 매장 진열을 바꾸는 것도 이제는 전문가를 불러 확실하게 제대로 꾸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백화점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이미 고객들이 떠나고 있으니까요. 떠나는 이들을 다시 끌어오려면 그만한 메리트가 있어야 하고, 가장 쉬운 것이 매장 디스플레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돈이 많이 들겠군.”

“성공을 위한 투자죠.”


이쯤 되자 잭과 부매니저들, 매니저가 경이로운 눈길로 나를 쳐다본다.


어우.

심장 떨려.

나 방금 좀 멋있었나?


내가 원래 이렇게 말 잘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방금 뱉어 낸 말들도 다 주워들은 말이다.


2015년도쯤인가.

테크 회사 중 하나를 다닐 때 회사 연말 파티에 참석을 했었다.

보통 엔트리 레벨들은 이런 파티에 초대받지 못하지만, 그때쯤에는 나도 연차가 제법 쌓여서 초대를 받았었지.

소심한 성격 탓에 파티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초대를 받아도 잘 가지 않는데, 그때는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덜컥 참석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 어쩌다 ‘리테일 시장 분석’을 연구하는 너튜버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 너튜버는 밥을 먹는 2시간 내내 리테일 회사들의 현실에 대해 열변을 토해 냈고, 굳이 일어나 자리를 옮기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계속 듣고 있었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과 앉아 억지웃음을 지어 가며 영양가 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던 점도 있었고.

나중에 너튜버가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나 경청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좋았다며 악수를 청할 정도였지.


어차피 한 번 보고 만 사람이라 그 후 다 잊고 있었는데, 의외로 귀를 열고 있었나 보다.

그 많은 말들을 다 기억하고, 이렇게 써먹기까지 할 거란 건 상상도 못 했지만.


나 진짜 거듭난 건가?


잠시간 고요하게 나를 쳐다보는 마크 월드와의 눈싸움이 이어졌다.


“이안 브라이트라고?”

“네.”

“대학은 어디 나왔나? 전공은?”

“대학 안 갔는데요.”

“······그럼 이렇게 하지. 내가 자네 학비를 대지. 대학을 가게.”


― 헉.

― 흡.

― 우와······.


3인방 턱 떨어지겠네.


“어느 대학을 가든 졸업 후 내 밑에서 최소 5년을 일하게. 그게 내 조건일세.”

“대학 다니는 동안 월드마트에서 계속 근무해도 됩니까?”

“나야 그래 주면 좋지만, 학교 다니기만도 바쁠 텐데 괜찮겠는가?”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그런가.

1980년대와 90년대 본인 아버지와 함께 회사를 부흥시킨 것을 보면 제법 강단이 있는 성격일 텐데 결정적인 데서 안일하네.

당장 내년에 테라스와의 합병 이야기가 돌고 있다면서 4년 후를 기약하다니.


아!

갑자기 탁― 머리를 치는 깨달음.

1990년대 후반부터 월드마트는 창업주 가족이 아닌 전문 경영인들이 운영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망한 거였다고!


그때 그 너튜버가 전문 경영인을 들여 망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월드마트였다고 했었지.


그럼 이 사람은 갑자기 여긴 왜 와서 이러고 있는 거지?

회사가 진짜 위기에 빠지게 되니 구원 투수로 나서는 건가?


이번 생엔 내가 전문 경영인이 되어 몰락해 가는 월드마트를 한번 부흥시켜 봐?


아무리 내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해도 이래저래 보고 들은 것만 적용해도 완전히 망하는 것까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갑자기 꿈이 생기기 시작한다.


근데 전문 경영인이 되려면 MBA를 해야 하지 않나?

적어도 6년은 더 공부해야 한다는 소린데.


그전에 회사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질 것이고.


그럴 순 없지.


“대학은 일하면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습니다. 시대를 읽는 눈이 있으면 학위 따위 중요한 것이 아니죠.”

“본인은 시대를 읽는 눈이 있고?”

“웬만한 사람들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하하하. 사람이 허세가 좀 있군.”


아닌데.

진짠데.

이래 봬도 20년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내가.

가뜩이나 자석처럼 손에 붙이고 살던 스마트폰이 없어서 얼마나 힘든데.


아.

사과네나 쓰리스타네 주식을 좀 사 둬야 하려나?

오늘 아침엔 잭이 요즘 한창 인기라는 iPood Mini를 살 거라며 돈 모은다고 했는데.


내가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중에 마크 월드 역시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매니저!”

“네.”

“앞으로 3개월. 이안 브라이트에게 부매니저의 일을 알려 주게. 제대로 가르쳐야 할 거야. 그리고 그 다음 3개월 동안엔 섹션 하나를 온전히 맡기게. 아. 이벤트 섹션이 좋겠군. 담당자의 센스에 따라 성과가 확실하게 보여질 테니까. 제대로 일을 안 가르치면 자네에게도 불이익이 갈 걸세. 6개월 후 내가 직접 체크할 거거든.”

“네? 네. 그,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이안.”

“네.”

“전년도 대비 10%, 아니 5%, 아니지 단 1%의 매출 증가만 있더라도 본사로 발령을 내 주지. 자네가 원하는 부서면 어느 곳이든 보내 주겠네. 포지션은 신입 직원이 되겠지만. 전문 지식이 필요한 프로그래밍이나 보안, 해외 담당 쪽은 힘들어도 마케팅이나 기획, 디스플레이, 고객 지원 등등 쪽은 자네의 안목이라면 충분히 일할 만할 걸세. 그러니 앞으로 6개월 내에 자네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게. 물론 대학도 가야 하고.”


― 허억.

― 와아······.


“네. 해 보겠습니다.”

“기대하지.”


하라면 못 할 거 같나?

나란 남자, 하남자 중의 하남자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진 않는다.


하남자가 바보와 동일한 단어는 아니잖아.

매장 마트 직원과 본사 직원은 월급부터 차이가 나고, 승진의 기회도 다르다.

같은 회사 속 다른 회사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

연차가 쌓일수록 본사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아무튼 지금은 7월 초.


하반기는 전반적으로 상반기보다 매출이 올라간다.


8월부턴 백투스쿨(Back to School) 행사를 열어 개학 전 학용품들을 진열하고, 9월엔 여름 재고 상품 처리 세일과 슬슬 할로윈 데이 커스튬들로 장식을 하고, 10월 중순부턴 땡스기빙 데이 행사, 11월부턴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해 온갖 장난감들을 가져다 둔다.


미국 땅에 있는 모든 리테일 마트란 마트는 다 하는 행사에 고만고만한 물건들.


마트의 뒤쪽 창고엔 작년에 팔다 남은 재고들이 꽉 차 있다.

특색 하나 없는 물건들과 역시 특별하지 않은 진열대.


잘됐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크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방긋 웃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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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 1 +2 24.09.12 183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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