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성우가 연기력으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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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깡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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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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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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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공포증

DUMMY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연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어린애가 연기라고 해봤자, 남들 따라하면서 짐짓 멋있는 척 폼이나 잡고.

몸짓이랍시고 엉덩이나 흔드는 정도였겠지만.


‘아냐, 아니라고. 넌 진짜 애기 때부터 연기를 했어!’


그럴 때마다 격하게 반응하는 건 바로 우리 이모였다.


‘우현아, 성우현. 너는 진짜 배우를 해야할 상이야!’


네?

제가요?

배우는 잘 생기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 아니에요?


‘그야 넌 연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되니까. 너 원래 되게 소심하고 쭈구리 같잖아. 어릴 때도 넌 잘 울지도 않았어. 꼭 엄마 아빠 눈치를 보는 것 같더라니까.’


한 마디로 찐따 같다는 소리인데.

찐따가 배우해도 되는 거예요?


‘아무튼! 그 소심하고 쭈구리 같던 애가 갑자기 연기만 시작하면 완전 눈빛이 달라져서는. 내가 너 유치원 재롱잔치 때 얼마나 놀랐는지.’


난 기억도 안 나는데요.


‘이 이모는 똑똑히 기억해. 연극에서 넌 괴물을 무찌르는 용사 역할이었지. 주인공! 우렁차게 종이칼을 들고 돌진하는 그 모습을! 그때의 발성과 눈빛, 그리고 몸짓. 다 정말 감탄스러웠지. 그때 딱 느꼈어. 아, 얘는 배우를 시켜야겠구나!’


그랬나? 나로선 정말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유치원생들이 하는 연극에 용사와 괴물이 등장한다고?

대체 애기들을 데리고 얼마나 과격한 연극을 한 거야?


‘그래서 이모는 그게 한이다. 이모가 돈만 많았어도 일찍이 학원도 보내고, 아역배우 에이전시에도 데려가고 했을 텐데.’


그럴 때면 나는 ‘몇 번을 말해요. 미안해하지 마요, 이모.’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누군가는 궁금해할 것이다.

왜 엄마나 아빠가 아닌 이모가 이런 말을 하는지.

아쉬워해도 부모가 아쉬워해야지, 이모가 왜 이렇게까지 호들갑인지.


‘빌어먹을 새끼들. 부모란 작자들이 양육비는 대주지 못할 망정 도망이나 치고 말이야. 대체 그런 정신머리로 애는 왜 낳은 거야?’


뭐, 별 것 아닌 이야기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혼했는데, 어느 쪽도 나를 맡고 싶지 않아했고.

그를 보다 못한 노처녀 이모가 ‘이런 미친 새끼들, 너희들 손엔 우리 우현이 못 맡겨!’라며 자기가 맡았거든.

나한텐 친부모보다 훨씬 부모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크흠! 그래도 정말 다행이지. 네가 중학생 때 길거리 캐스팅을 받을 줄이야! 대박. 진짜 난 그거 인터넷에나 등장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어.’


나도 놀랐다.

갑자기 길을 걷다가 어느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더니, 배우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는 것이다.

당연히 도를 아십니까, 혹은 그와 비슷한 사이비 종교의 포교활동인줄 알았는데.

남자는 자신의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게다가 무려 더블제이 엔터라니! 하긴, 우리 우현이가 좀 잘생기긴 했지!’


더블제이 엔터.

연예계에 별 관심없는 사람들조차 이름을 들어본, 배우 전문 유명 기획사.

배우를 지망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그 명함을 받아들었을 때.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느라 애써야만 했다.


물론 반쯤 허풍이고.

그냥 그만큼 기뻤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나보다 기뻐한 건 우리 이모였다.


‘그 날의 기쁨은 정말 생생해. 우리 같이 정말 오랜만에 치킨 시켜먹었지. 그것도 세 마리나!’


뭐, 이제 넌 배우가 될 몸이니 닭가슴살을 많이 먹어야한다면서.

날개와 다리를 거의 독식하다시피한 이모였지만.

그때는 그 퍽퍽한 살들이 어찌나 부드럽게 느껴지던지.


‘그렇게 3년. 우리 이제 우현이 데뷔작이 방영되는 날이 오다니! 이모 미리 곽티슈 3개 사놨다. 눈물 나오면 닦으려고.’


그렇게 나는 고3이 되었고.

배우가 될 몸이기에 수능 따윈 쿨하게 포기했으며.

이제 정식으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더블제이가 준비하는 유망주 신인 배우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아, 맞다. 너 어릴 때 얘기를 하니까 생각난건데. 근데 지금 생각하면 참 기묘한 점이 있었지.’


음, 그게 뭔데요?


‘우현이 너, 정말 연기를 참 잘하는데. 막상 그걸 찍으려고 하면 갑자기 네가 몸이 아파져서······. 학예회에서도 이모가 카메라로 찍고 있는 거 보자마자 갑자기 현기증으로 쓰러졌었잖아. 그때 정말 얼마나 놀랐던지.’


아아.

그랬었죠, 참.


‘그래도 몸 건강히 자라줘서 고마워. 우리 배우님!’


그래.

난 건강하다.

비록 이모가 학예회에서 연기하고 있는 나를 찍으려 했을 때 현기증으로 쓰러졌고.

고등학교 연극제에선 학교 측에서 준비한 대포만한 카메라를 보자마자 대사를 통째로 까먹긴 했지만.

난 빈혈도 아니고, 청년 치매도 아니다.


다만.

병까지는 아니지만, 큰 문제를 겪고 있긴 했는데.


‘뭐? 카메라 공포증?’


네.

제가 카메라만 보면 덜덜 떨려서.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괜찮아, 괜찮아! 카메라가 안 익숙해서 그럴 거야. 소속사에서 연습 좀 하면 금방 사라질걸?’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이모의 바람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내 카메라 공포증은 전혀 고쳐지지 않았으니.

3년간 더블제이 엔터 소속으로 트레이닝을 받고.

진짜 배우가 되어서도 말이다.


*


수능이 끝난 다음날, 즉 11월 15일.

모든 고3들이 전에 없던 자유를 느끼는 그 순간.

물론 나는 수능에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범한 고3들처럼 엄청난 자유로움은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뭔가 영향을 받긴 하는 것 같다.

뭔가 나도 무엇이라도 될 수 있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던 것.


게다가 마침 내 첫 데뷔작 미니시리즈가 엊그제 방송되었다.

이제 진짜 배우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 것.

본격적인 커리어가 시작되고, 대중들에게 나의 연기를 보여주기 시작했으니.

나의 성공 시대도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저 왔습니다, 팀장님.”


그리고 이런 특별한 날을 축하해주려는 듯.

나는 오늘 팀장실로 불려갔다.

김환중 팀장님은 3년 전 나를 길거리에서 캐스팅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런데 벌써 팀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

한낱 중학생이었던 나와, 길캐를 직접 뛰어야할 정도로 말단이었던 팀장님.

즉 팀장님은 나와 함께 성장했다고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전우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다.


“성준아, 아니. 성우현.”


‘성준’.

내 배우 예명이다.

본명인 성우현에서 성을 따고, 깔끔하게 외자인 준을 붙여 멋스럽게 브랜딩해보자는 계획이었으니.

그런데.


“그만 하자.”

“······네?”


잠깐만.

지금 나의 하나뿐인 전우가 지금 나보고 뭐라고 한 거야?


“팀장님, 방금 뭐라고······.”

“미안하다. 회사에서 너랑 계약 해지를 선택했어.”


마치 전장에서 뒤통수에 총알을 맞았는데, 그게 아군이 쏜 총알이라는 걸 알아차린 기분이다.

배우 연습생으로만 3년.

마침내 데뷔해 미니 시리즈에 들어가, 지금 총 3작품에 조단역으로 출연했거늘.

그리고 그 3개의 작품 중 첫 작품, 즉 데뷔작이 어제 방영되었는데 나가라니?


“그게 대체 무슨······.”

“너 요즘 인터넷 안 했어? 네 연기에 대한 대중들 반응 모니터링.”

“그게, 좀 긴장돼서요.”

“이거 좀 봐라.”


한숨을 내쉬며 내게 휴대폰을 내미는 팀장님.

그곳에 보이는 것은 바로 어제 방영된 미니시리즈에 대한 반응이었는데.


[ㄴ 아니 중간에 등장하는 저 어린 남자 뭐임?

ㄴ 일반인 섭외함? 대체 왜 저래

ㄴ 얼굴은 괜찮은데 진짜 존나 깬다 ㅋㅋㅋ

ㄴ 쟤 나오는 순간 흐름 팍 끊기더라 ㅅㅂ 대체 누구냐?

ㄴ 아니 단역이 뭘 했길래 그렇게 욕함? 진짜 악플 수준 ㅉㅉ

ㄴㄴ (클립 링크) 이거나 보고 말해라

ㄴㄴㄴ 악플 수준이라고 욕해서 미안하다 ㅅㅂ 이건 좀 심한데?

ㄴ ㅋㅋㅋㅋㅋㅋ 그치? 이건 로봇연기 수준도 안됨]


그야말로 악플 세례.


“비중도, 임팩트도 없는 놈이 순전히 연기 더럽게 못한다고 지금 화제가 되고 있어. 심지어 기사까지 뜨고 있다고.”


착잡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 팀장님.

솔직히 예상은 했다.

내 연기 때문에 촬영장에서도 난리가 아니었으니까.

별 비중도, 분량도 없는 내가 자꾸 NG를 내며 흐름을 끊어먹었으니.

덕분에 내가 날려먹은 시간만 해도 족히 몇 시간은 될 거다.


“데뷔부터 이러면 나머지는······하아. 안 봐도 뻔하지.”

“그치만, 팀장님. 이렇게 갑자기 나가라니요.”

“진짜 솔직히 말할게. 그래도 정식으로 전속계약도 했고, 너 마스크는 반반하고 비율도 좋아서 모델 쪽으로라도 돌려보려 했는데. 너 며칠 전에 화보 촬영 갔을 때 어땠냐?”


팀장님이 쏘아붙였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합죽이가 되어 고개를 푹 숙이는 것밖엔.


“솔직히 말해서 돌아버리겠어. 너 그놈의 카메라 공포증 좀 어떻게 못하냐?”

“······죄송합니다.”

“길거리에서 너 데려온 직후에, 카메라 테스트 때 좀 긴장하는 걸 보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 하다보면 익숙해질 거라 믿었는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팀장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아프게 가슴에 꽂힌다.

나 역시 절절히 느끼고 있던 바였기에 더더욱.


“아니, 연기를 아예 못하면 말이라도 안 해. 카메라만 없으면 말 그대로 날라다니고, 씹어먹는 놈이 대체 왜 카메라 앞에만 서면 등신이 되는 건데?”


나로서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사실 팀장님에게 캐스팅되고, 처음 연기를 선보였을 때만 해도 핑크빛 미래가 기다리는 줄 알았다.

소속사 자체 평가에서도 매번 최상위권.

그 덕분에 족히 5년은 걸릴 거라던 내 데뷔는 2년이나 당겨졌다.

심지어 천재 소리까지 들었으니 말 다했지.


단.

카메라 테스트라는 것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첫 작품 찍을 때 거기 PD님이 얼마나 빡쳤는지 알아? 너 때문에 말이야. 그래도 그건 첫 작품이니까, 경험치 쌓이면 잘하겠지 하고 생각했어. 그렇게 두 번을 더 넣어줬는데. 하아······.”


3년이면 나도 고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것도 아니면 실전에 가면 전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평소 소속사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것처럼, 온전히 내 역량을 다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죄송합니다. 도무지 고쳐지질 않아요. 마치 불치병인 것처럼······.”


사실 더블제이 엔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이상하게 카메라가 있을 때만 컨디션이 안 좋아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상하게 그 네모나면서도 둥그런 것을 보면 심장이 쿵쾅대고, 머릿속이 새하얘졌으며.

내 목을 조이며 압박해오는 것처럼 두려웠다.


“어쩌겠냐. 타고난 성품이 그런 걸. 네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야. 그냥 넌 실전에 약한 타입일 뿐.”


한 마디로 절대로 연예인은 못해먹을 타입이라고 돌려 말한 거다.

쯧, 하고 혀를 차는 팀장님.

그리 말하며 가슴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3년 간 봐오면서 알 수 있다.

팀장님이 담배를 찾을 때는 정말 어지간히 답답하거나, 윗선에서 오지게 까였거나, 아무튼 매우 기분이 더러울 때라는 것을.


“미안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며 나지막이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솔직히 너 진짜 대성할 놈이라고 생각했어. 넌 내가 직접 데려오기도 했고. 진짜 제대로 판 한 번 깔아주고 싶었는데······이렇게 돼버렸네.”


팀장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이게 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등신이 되어버리는 내 연기력 때문인데.


“이제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자. 너도, 나도. 넌 아직 젊어. 다른 길은 얼마든지 있어.”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치고 더블제이 엔터 사옥 밖으로 나왔을 때는 날이 좋았다.

어제 수능날만 해도 칼바람이 불었는데, 오늘은 유독 따뜻한 것 같다.

미래를 꿈꾸는 고3들에게 격려라도 해주는 것처럼.


“하아.”


하지만.

나는 그런 평범한 고3들과는 달리.

미래를 잃었다.


“나 이제 뭐하고 사냐?”


정말, 더럽게 날씨가 좋은 날.

나는 배우 성준에서 백수 성우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5년 뒤.


“우현아. 이모 왔다.”


성우현의 이모인 이정미.

일을 끝내고 밤늦게 들어온 그녀는 지친 목소리로 방문을 열었다.


“우현아?”


그러나.

집안은 깜깜했고, 아무도 없었다.


“아. 맞다. 오늘 덕수랑 PC방 간댔지.”


그제야 제 조카가 했던 말을 떠올린 이정미.

그녀는 우현의 방문을 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콜록, 콜록! 어휴, 제발 환기 좀 하라니까.”


우현의 방은 마치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처럼 너저분했다.

정리되지 않고 이곳저곳에 난잡하게 놓인 물건들, 옷장을 탈출해 취객마냥 널브러진 옷가지들.

심지어 숨기지도 않은 속옷까지.


“어휴, 그래도 막 전역한 군인이라 봐준다.”


툴툴대면서도 결국 방정리를 시작하는 이정미.

자신이 낳은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우현은 그녀에게 있어 아들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우현이는 이제 뭐하려나. 배우는······안 하겠지.”


우현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으니.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던 아이.

그런 애가 TV에 나오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보며 따라서 연기를 할 때면.

다른 사람이 되어선 얼마나 영특하고 멋지던지.


“그런데 카메라 공포증이라니.”


이정미로선 상상도 못했다.

연기를 그렇게 좋아하고, 심지어 더블제이 엔터로부터 길거리 캐스팅까지 받았던 제 조카가.

실은 심각할 정도의 카메라 공포증일 줄은.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선 어이가 없기도 하고, 고작 그 정도로 배우를 그만 둔다고 해서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정미는 그저 우현이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우현이 카메라 공포증에 걸린 이유가 짐작이 가니까.


“설마 그 인간들 때문인가.”


우현의 부모들은 SNS 중독자였다.

돈도 없고, 서로 사이도 안 좋으면서.

자신들은 행복하다는 걸 세상 사람들 앞에 전시하고 싶어하는 부류.


‘우현이는 그 작자들에게 이용당했지.’


마치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부모인양.

SNS에 어린 우현의 사진을 매번 찍어올리며, 오그라드는 문구들을 적어올렸다.

평생 지켜주겠다느니, 우산이 되어주겠다느니, 누구도 건들지 못하게 하겠다느니.


‘심지어는 어디 명품 애기 옷 쇼핑백만 어디서 가져와서, 마치 진짜 입혀준 것처럼 컨셉샷을 찍기도 했지.’


자신들의 허영심을 채우고.

좋아요와 댓글을 받기 위해, 우현이 울건 말건 계속 휴대폰 카메라만 들이밀었다.


‘우현이에겐 그게 무의식적인 트라우마가 되었을 지도 모르지. 진짜 후우······ 그 인간들, 특히 언니는······진짜 내 핏줄이지만 거지같은 인간이었어.’


우현이 더블제이 엔터와 상호합의하에 전속계약을 해지한지 5년.

우현은 대학도 가지 않고, 다른 무엇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이정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선 우현이 찍은 작품이 공개될 때마다 무슨 연기를 저따위로 하냐고 욕을 퍼부어댔고.

우현이 느낄 상실감을 짐작하기도 어려웠으니.


‘군대에 다녀오면 좀 달라질까 했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었지.’


그래도 이정미는 우현을 믿었다.

언제고 다시 마음을 잡고, 자신의 길을 찾을 거라고.

그렇게 한창 우현의 방을 청소하던 중.

툭, 하고 마우스를 건드린 이정미.

그러자 모니터가 밝아지며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흐음? 컴퓨터 안 끄고 갔네.”


전기세 많이 나가게.

그리 툴툴거리며 컴퓨터를 끄려던 이정미였지만.


“잠깐만. 흐음, 이 녀석이 컴퓨터로 대체 뭘 하는지 좀 볼까?”


보호자로서의 호기심이라고 해야할까, 걱정이라고 해야할까.

방구석에 틀어박혀 대체 뭘 그리 하는지 궁금해진 이정미였다.


“매번 자기 방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무조건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니.”


설마 그렇고 그런 동영상이 잔뜩 나오는 건 아니겠지?

짓궂은 상상에 므흣한 미소를 짓는 이정미.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최근 파일 폴더를 클릭하니, 동영상 파일이 나왔다.


“뭐, 뭐가 이렇게 많아?”


그것도 엄청난 숫자가.

다만 이정미의 생각과는 달리 그렇고 그런(?) 동영상은 전혀 없었다.

대신.


“용돈을 대체 어디 쓰나 했는데, 다 여기다 쓴 거야?”


정식으로 돈을 주고 다운받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파일들이었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었다.


“······얘가 이렇게 영상 보는 걸 좋아했나?”


평소 밥먹으며 이야기를 나눠도.

영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던 우현이었으니.

그런 이정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새로운 파일들이었다.


“엥? 뭐야, 이건?”


이번엔 동영상 파일이 아니라 음성 파일이었다.

동영상 파일만큼, 아니.

동영상 파일보다 훨씬 많은 숫자를 자랑하고 있었다.


“대체 몇 개가 있는 거야?”


게다가 매일 갱신되고 있는 듯.

음성 파일들은 ‘수정한 날짜’ 목록이 모두 달랐는데.


“이게 대체 뭐지?”


아, 이거 들키면 우현이가 불같이 화낼텐데.

그리 생각하는 이정미였지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고는.

조심스레 음성파일 중 하나를 더블 클릭했다.


그러자 스피커로 들려오는 건.


“이건······?”


다름 아닌 성우현의 목소리.

처음에는 노래를 녹음한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를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각잡힌 발성, 그리고 뚜렷한 음색이 담겨있었다.


“잠깐만.”


그제야 음성파일의 저장명을 살펴보는 이정미.

그 과정에서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해냈다.


“영화랑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목소리로 연기한 파일들인 건가?”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소수깡입니다.

신작으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며,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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