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성우가 연기력으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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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깡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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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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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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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그걸 전부 혼자 했다고요?

DUMMY


“게임 더빙 의뢰?”


나는 입을 벌렸고.


“이런 미친!”


이모는 순간 욕까지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야, 야. 이거 짭 아니지?”

“잠만. 이 댓글 단 계정 채널로 들어가볼게. 어어? 야, 이거 찐인데?”


확인까지 끝마치고 난 뒤.

우리 세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곤, 다시 맥주캔을 들어올렸고.


“부어라, 마셔라!”


이번에 들이키는 맥주 맛은 달디 달았다.

정말 오랜만에.

뿌듯함과 행복함이라는 감정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어쩌면 더블제이 엔터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블루 보이스’라는 이름의 성우 학원.

그곳은 제법 많은 숫자의 성우를 배출해낸 학원이다.

현직 성우들이 족집게처럼 과외해주고, 공채 시험의 패턴과 성향을 분석.

지망생들을 합격의 길로 이끄는 역할로 한다.


보통 성우 학원은 취미반, 기초반, 심화반으로 나눈다.

취미반은 말 그대로 취미삼아 다니는 사람들.

기초반의 경우 성우가 되고 싶은데, 아직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초보 지망생들을 위한 클래스이며.

심화반은 본격적으로 실전 연기에 들어가며, 공채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다.


그리고 또 하나.

성우 공채 시험이 닥쳤을 때 새로 생기는 클래스가 있는데.

바로 벼락치기반.


‘말 그대로 급하게 성우 공채 시험을 벼락치기 해야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업.’


연극 배우, 혹은 뮤지컬 배우였다가 급하게 성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혹은 오랫동안 지망생 생활을 하다 잠깐 쉬고, 다시 시험을 준비하려는데 시험이 코앞까지 다가온 사람.

여러 사정으로 급하게 성우 공채 준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열리는 특별 클래스다.

급한 만큼 강사가 1대 1로 밀착 지도해주는 시스템.


그리고 그 클래스는 SBC 37기 성우이자.

블루보이스에서 강사로 활동 중인 이유림이 담당하게 되는데.


‘이번 SBC 공채는 벼락치기반 신청자가 아무도 없네.’


엊그제 데스크로부터 전달받은 소식.

이번 벼락치기반은 신청자가 없어서 운영이 안 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하긴, SBC 공채가 코앞이긴 하니까. 후우.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론 클래스를 운영 안 한다는 건, 강사인 이유림이 벌어들일 돈이 줄어든다는 뜻이지만.

사실 이 클래스는 강사 입장에서도 부담감이 상당했다.

성우 공채는 경쟁률도 엄청나고, 또 준비해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번 SBC 공채 시험만 해도 3차에 걸쳐서 보니까.’


공채 시험은 방송사마다 다르지만, SBC의 경우 다음과 같다.

1차는 방송사가 지정한 대본의 단문 연기를 녹음하여 온라인으로 보내는 것이고.

그 이후 2차는 실제 방송사에 방문, 단문 연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3차는 실시간 더빙, 그리고 최종 면접이 한 세트로 묶여있다.


‘단문 연기 분석, 발성과 발음 체크, 더빙 때문에 입길이 잘 맞추는지도 봐야하고, 면접 대비까지.’


수강생도 수강생이지만.

강사 입장에서도 벼락치기를 같이 해야하니까.


‘게다가 정말 어지간히 실력 있는 지망생 아니고서야, 벼락치기로 합격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적고.’


여러모로 이유림 입장에서도 진이 빠지는 클래스라.

개설되면 개설되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아쉬웠다.

그런데 오늘.


“어? 하연이가요?!”


데스크로부터 전해들은 뜻밖의 소식.

그건 바로 벼락치기반 수강을 희망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이유림은 그 사람을 바로 강의실에 불러왔다.

왜냐?


“하연아!”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학생이었으니.

어찌나 반가운지, 이유림은 학생을 보자마자 꼭 안아버렸다.


“유, 유림쌤.”


그건 바로 8년차 성우지망생, 박하연이었다.


“뭐야. 진짜 하연이야? 학원 그만둔 이후로 너 포기한 줄 알았어!”


실은 박하연은 7년 동안 이 ‘블루 보이스’에 다녔다.

그 과정에서 이유림도 몇 번 박하연을 담당한 적이 있고.

하지만 작년에 박하연이 학원을 그만둔 이후, 이유림으로선 그녀가 지망생 생활을 그만 뒀다고 여겼다.


“무슨 사정이 있던 거야? 응?”


이유림의 반가움 섞인 물음에, 박하연이 머쓱한 표정과 함께 대답했다.


“그래도 이번 SBC 공채까지는 보려고요.”

“그래, 잘 생각했어. 너 진짜 이제 다 왔다! 문고리 잡고 있는 거지.”


박하연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이유림.


‘그래, 하연이 정도면,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공채에 붙을 수 있어.’


이유림이 보기에 박하연의 기본기는 지망생들 중에서도 톱급이었다.

발성, 발음, 변성.

지망생이 갖춰야할 기초 체력은 월등히 높은 편.


‘다만, 감정 표현이 좀 미숙했지.’


박하연은 공채 성우의 벽을 뛰어넘기엔 감정 연기가 다소 평이했다.

목소리 연기엔 기술적 부분이 많이 필요하지만, 감정적 표현도 매우 중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박하연은 분명 기본기도 괜찮고 여러모로 탄탄한데, 연기에 몰입감이 생기진 않는 느낌.


‘마치 기계가 연기하는 느낌. 그래, 긴 지망생 생활로 여러모로 무뎌졌겠지.’


매너리즘.

이유림이 진단하는 박하연의 문제점이었다.


‘목소리 연기의 테크니컬적인 부분이야 그나마 가르치기 쉽지만, 감정 연기는 본인이 느끼는 게 있지 않는 한...'


그래서 배우들, 성우들이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최대한 인생을 다양하게 경험해보라고.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전시회 등 여러 간접 경험 뿐만 아니라.

여행도 다니고 사랑도 해보고, 다른 직업을 가져보기도 하는 등.

연기자, 라는 틀에만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체험을 해보라고.


‘그 경험 속에서 스스로 감정적 경험을 해보고, 그걸 연기로 표현해냈을 때 진정성과 몰입감이 극도로 높아지니까.’


그래서 단기간 내에 성우 공채에 합격하는 사람 중에선.

연기랑 전혀 관련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하연이는 지망생만 7년이었으니까.’


집, 학원, 알바.

이 세 사이클을 7년 동안 유지해왔을 박하연이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은 상황.


‘공채에 붙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은 안 서고, 시간은 흘러만 가고.’


그래서 박하연이 학원을 그만둘 때도, 이유림으로선 차마 크게 만류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렇게 돌아와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시간이 얼마 없지만, 열심히 해보려고요.”


불과 몇 달 만에, 박하연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얼굴이었다.


“공채에 붙어서, 꼭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대표적으로 눈빛.

전에는 오랜 지망생 생활 때문인지 눈빛에 생기가 없었는데.

지금은 마치 별이라도 담은 것처럼 반짝반짝거렸다.


‘갑자기 눈에 열정이 넘치네?’


이유림은 저런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연기하는 사람들이 저런 눈빛을 가지는 순간은 딱 한 가지.


‘무언가를 보고, 강한 자극을 받았을 때.’


과연 무엇이 매너리즘에 빠진 박하연을 저토록 자극한 것일까?

이유림으로서도 매우 궁금했지만.


“그래서, 그간 어떻게 지냈어?”

“저야 뭐, 별 거 없었죠. 아. 다니던 알바 그만뒀어요.”

“진짜? 하긴, 거기 진상들 엄청 많이 왔다며.”


우선 근황 토크가 우선이었다.

그렇게 서로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눠가다가.


“그러고 보니 이번에 외화 더빙 대회 소식 들었어?”


이유림이 그 화제를 꺼냈다.


“남국민 선배님이 심사위원이라니. 나도 참여하고 싶었을 정도라니까? 선배님한테 연기 피드백을 들을 수 있잖아!”


이유림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남국민은 프로 성우들 사이에서도 스타 중의 스타.

이유림 역시 남국민을 매우 동경하고 있었다.


“네. 거기 참가도 했어요.”


박하연의 대답에 이유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진짜?”

“하하, 수상은 못 했지만요. 남국민 성우님께서 기본기는 좋은데, 뭔가 연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랬구나.”


그 애기를 들은 뒤.


‘어쩌면 하연이가 자극을 받은 건, 남국민 선배님의 피드백 때문일지도?’


해당 심사평이 박하연으로선 7년간 매번 듣는 얘기였겠지만.

스타 성우 남국민에게 듣는 건 또 아예 다른 느낌이었을 테니.


‘지금 이 얘기를 이어가는 건, 괜히 분위기만 망칠 수 있지.’


그리 판단한 이유림이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나 심사평 보다가 깜짝 놀랐어. 대상 받은 사람 말이야? <파놉티콘> 속 토마스를 더빙했다며? 아니, 남국민 선배님 앞에서 토마스를 더빙한다니. 진짜 보통 깡이 아니야. 그런데 대상까지 받았다니, 대체 연기를 얼마나 잘 했으면······.”


그래서 대상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는데.


“진짜 개쩔었어요!”


그때.

박하연이 답지 않게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

“네! 제가 현장에서 그 사람 연기 봤거든요? 성우현이요!”

“그, 그래?”

“네! 그 <파놉티콘> 명장면 있잖아요. 토마스가 탈출하는 장면! 그 대사 하나 없이 호흡만으로 표현해야하는 씬이요. 와, 그런데 진짜 얼마나 잘 하는지. 숨소리 하나하나에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이 실려있어서, 화면 안 보고 눈 감아도 그 장면이 그려질 것 같은 느낌?”


마치 입에 모터라도 단 듯.

쉴새 없이 대상 수상자의 연기에 대한 극찬을 쏟아내는 박하연.


‘얘가 왜 이러지? 이렇게 말 많은 애가 아닌데. 다른 사람 연기 보고 이렇게 좋아한 적도 없고.’


박하연을 제법 오랫동안 봐온 이유림조차 당황할 정도였다.

심지어는.


“그리고 이거, 시상식 사진 보셨어요?”


휴대폰을 들이밀며 사진 하나를 보여줬는데.


“여기! 여기 이 잘생긴 남자애가 바로 대상 성우현이거든요. 얼굴 보면 카리스마 장난 아니죠?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요! 근데 또 연기하기 전에는 완전 긴장한 티 팍팍 내더라고요. 온오프가 확실한 느낌? 순간적으로 상황에 몰입하는 능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주저리주저리, 혼자 말을 쏟아내고 있는 박하연.

그 모습은 마치.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덕후 그 자체.’


하지만, 그와 별개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흥 없이 죽어가고 있던 박하연의 눈빛이.

지금은 반짝반짝, 여러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저도 이렇게 연기해보고 싶어요!”


*



며칠 뒤.

성남 판교에 위치한 일루닉게임즈.

수집형 모바일 게임 <히어로즈 저니>의 총괄 디렉터 김재민은 제법 기대되는 마음으로 회사 건물 출입구에 서 있었다.

다만.

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는데.


‘이런 미친.’


그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씹어대는 중이었다.


‘돌겠네, 진짜. 대표 새끼 진짜 어떻게 한 대만 합법적으로 못 때리나?’


그 이유는 바로 일루닉 게임즈의 대표가 게임 출시를 최대한 빠르게 하라며 엄포를 놓았기 때문.

들리는 말로는 대표도 투자사 때문이라곤 하던데.


‘그거야 내가 알 바야?’


그 덕분에 지금 일루닉 게임즈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

지금 매일이 크런치 모드였다.

그러다보니 차일피일 미뤄왔던 게임 더빙도 빠르게 해내야하는 상황.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녹음 맡기려던 언더 성우들은 죄다 일정이 안 맞아서 캔슬나고!’


공모를 통해 미리 섭외해두었던 언더 성우들이 녹음 일정을 듣고는 모두 난색을 표한 것.

다른 스케줄과 겹치거나, 일정이 너무 촉박하거나, 그럴 거면 돈을 좀 더 올려줄 수 없겠냐는 등.

여러 이유를 들먹였고, 결과적으론 모두 취소되었다.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언제 다시 언더 성우들 공모받아서 샘플 고르냐고!’


안 그래도 예산 부족해서 언더 성우 쓰는 것도 아까워 죽겠는데!

그 덕분에 김재민은 지금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나마 ‘성우 현의 소리’ 채널 쪽과 연락이 닿은 게 기적적인 일이었지.’


무작정 영상에 댓글을 달았는데, 답변이 돌아올 줄은 김재민조차 장담하지 못했다.

성공 확률은 많아야 30%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 채널이 어둠 속의 한줄기 빛, 그 자체야.’


다만.

이것도 ‘성우 현의 소리’ 측과 협상이 잘 풀렸을 때의 이야기.


‘그나저나 그 채널, 과연 몇 명이서 연기하는 걸까?’


지금까지 ‘성우 현의 소리’ 채널에 올라온 더빙 영상은 7개.

그중 남자 캐릭터가 5명, 여자 캐릭터 2명이었다.


‘음색을 생각했을 때 남자쪽은 최소 3명, 여자는 1명.’


다만, 오늘 미팅은 어디까지나 살인마 잭 더빙을 위한 것.

그래서 일루닉 게임즈 측은 <최고의 아이> 더빙을 연기한 성우만 와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연기자들이 올 일은 없는 것.


‘그런데 대체 뭐하는 팀이길래 그렇게 다들 연기를 잘 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 채널한테 더빙을 다 맡겨볼 걸.’


그때.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2명의 남자.

누가 봐도 판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생긴 청년들이었다.

일이 있어 오늘 하루 갑자기 방문한 느낌을 팍팍 풍긴다.


“죄송합니다만. 일루닉게임즈 사무실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제법 갸름하고 잘생긴 남자 한 명과.

그와 대비되는 두툼한 몸집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

두 남자 중 갸름하고 잘생긴 청년이 경비원에게 그리 물었다.


‘비주얼로만 보면 거의 연예인과 담당 매니저, 아니면 경호원 같은데.’


아무튼.

김재민으로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실례합니다.”


곧장 두 남자에게 접근하는 김재민.

그러자 두 남자는 흠칫 놀라 김재민을 바라보았다.


“‘성우 현의 소리’ 채널 분들, 맞으신가요?”


그러자 그에 대답한 것은.


“아, 안녕하세요! 혹시 일루닉게임즈 분이신가요?”


바로 뿔테 안경을 쓴, 두툼한 체구의 남자.

드디어 확신을 얻은 김재민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네. 이메일로 연락드렸던 일루닉게임즈 소속 디렉터, 김재민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덕수라고 합니다.”


제법 적극적으로 대답해오는 우덕수라는 남자와는 달리.

옆에 있는 잘생긴 남자는 마치 낯이라도 가리는 것처럼 긴장한 얼굴이었다.


“아. 저, 저는 성우현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성우현?’


김재민은 순간 흠칫했다.

이들의 채널 이름이 ‘성우 현의 소리’였으니까.


‘채널을 이 사람 이름에서 따온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하지만 굳이 입밖으로 내는 대신, 고개를 숙이며 상대방들과 악수를 나눴다.


“이렇게 먼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판교 쪽은 처음 와봐서 신기하네요. 건물들이 다 멋지더라고요.”

“하하. 아, 채널에 올리신 연기 정말 감명깊게 잘 보고 있습니다. 엄청난 연기력이더군요.”

“가, 감사합니다.”


주로 대화를 주도하는 건 우덕수 쪽이었다.

다만, 연기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성우현 쪽이 작게 대답하는 편.

마치 확실하게 역할 분담이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하하. 특히 <최고의 아이> 더빙은 최고였습니다. 그 연기를 본 순간 꼭 더빙을 맡기고 싶다고 생각해서.”


김재민이 그리 말하자.

성우현 쪽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칭찬, 감사드립니다.”


예상대로 <최고의 아이> 더빙은 성우현 쪽에서 한 모양.

김재민은 이를 예측하고 있었다.


‘하긴. 그 영상 속 목소리는 제법 미성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저 덩치 큰 남자, 우덕수 쪽은.


“<장병기의 거인> 속 거인 더빙 영상도 정말 위압감 넘치고 멋있었습니다. 어떻게 사람 목에서 그런 괴물같은 소리가 나오는지, 하하.”


당연히 괴물같고 위엄 넘치는 목소리를 연기했으리라.

그런데.


“네?”


그 말을 듣고선, 우덕수가 대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김재민을 바라보았다.


“네? 아, 그 영상 더빙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덩달아 당황한 김재민이 확인차 묻자.

우덕수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네요. 전 연기자가 아닙니다.”

“네?”

“저는 그, 음. 채널 운영 매니저? 그런 역할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우덕수가 더빙한 게 아니다?

비주얼만 보면 딱 괴물 소리를 낼 것처럼 생겼는데?


“크흠.”


그때.

성우현이 민망하다는 듯, 혹은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 연기는 제가 했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김재민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우덕수와 성우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잘생긴 미소년 같은 남자가 그런 괴물 같은 소리를 냈단 말인가?


‘게다가 <최고의 아이> 더빙 속 주인공의 미성과는 완전 상극인데?’


그러자.

김재민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하나의 가능성.


‘그럼 설마?’


꿀꺽, 김재민은 침을 삼키고선 물었다.


“그럼 채널에 올라온 영화 <캡틴 쉴드>의 정의로운 히어로, 쉴드 역할을 더빙하신 것도.”

“네, 접니다.”

“미드 <황제의 게임> 속 거친 용병 군터를 연기하신 것도.”

“네, 접니다.”

“애니메이션 <리얼리티> 속, 중학생의 감정적 사춘기 연기를 보여주신 것도.”

“네, 접니다.”


그래.

남자 역할은 전부 성우현이 도맡아한 것이다.


원본과 명백히 다른 결로 연기하면서도.

그에 대한 위화감을 최소화하는 더빙을 보여준 사람.

그러면서도 마치 모두 다른 사람이 연기한 것 같은 퀄리티로 말이다.


“그럼 <오버 더 워치>의 화라 성대모사 영상도······하하, 농담입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말해놓고 스스로 웃어버리는 김재민.

아무리 그래도, 여성 캐릭터인 화라를 남자인 성우현이 연기했을 리는······.


“그것도······저, 접니다.”


그런데.

성우현은 또다시 슬쩍 손을 들었다.


“크흠! 해당 채널의 연기는 모두 제가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자그마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모두?”


잠시 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과 입을 크게 벌리는 김재민.


“아니, 그럼 그 채널에 올라온 캐릭터 전부······성우현 씨 혼자서 다 했다는 말씀입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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