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성우가 연기력으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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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깡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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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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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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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에라 모르겠다

DUMMY

PC방에 도착해 매번 가는 자리로 향했다.

그러자 나를 반기는 익숙한 얼굴이 한 명.


“하이.”

“하이.”


군대 때문에 거의 2년 만에 보는 건데도 어색함은 없었다.

우리 둘이 거의 비슷하게 입대했는데, 휴가를 맞추는 것도 쉽지가 않았거든.


“으.”


나는 녀석의 옆자리에 앉으며 흘끗거렸다.

그러자 녀석의 키보드 앞에 수북이 놓인 음식들이 눈에 보였다.


“넌 뭘 그렇게 먹고 있냐? PC방이 아니라 음식점에 왔냐?”

“요즘 PC방에 음식 먹으러 오지 왜 오냐?”


핫도그를 쩝쩝거리며 눈을 흘기는, 커다란 뿔테안경을 쓴 이 녀석.

내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우덕수다.


“PC방에서 음식 시키면서 애니보기. 크, 이보다 큰 행복이 없지. 군대에서 얼마나 그리웠는데.”


음식이란 음식은 잔뜩 시켜놓고, 헤드셋도 안 끼고 PC방에서 애니를 보는 남자.

그 누구라도 ‘으, 이상해’라며 지나갈 법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주위 자리는 모조리 비어있다.

마치 결계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애니 좀 그만 봐, 이 오타쿠야.”

“너 기다리느라 보고 있던 거 아니야. 늦게 온 놈이 큰 소리는.”


툴툴대면서도 보고 있던 애니를 끄는 덕수 녀석.


“아무튼 전역 축하한다.”

“너도. 우리 둘이 비슷하게 들어가서 비슷하게 전역했네.”

“뭐래, 짬찌야. 같은 급으로 엮지 마라. 아니면 존칭을 붙이던가.”

“미친놈. 우리 2주 차이다.”

“훈련소에서 2주 차이면 하늘과 땅 차이인거 모르냐? 우리가 사격할 때 너희는 제식했는데. 우리는 갈게, 너희는 각개!”

“2주 차이가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자대 가서 뼈저리게 느꼈을 텐데? 허. 너 특급전사는 달아봤냐?”

“넌 분대장 견장은 달아봤고?”


그렇게 덕수 녀석과 한참 군대 이야기로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이야기를 나누었다.

갓 전역한 놈들이 나누는 대화라 그런지 역시 군대 얘기가 제일 재밌긴 했다.


“에휴. 분명 몇 년 전만 해도 군대 얘기하는 형들 보면서 진짜 촌스럽고 아저씨 같아 보였는데.”

“그러게나 말이다.”


시간이 참 빠르긴 하다.

군대에 있을 땐 왜이리 느리게 가나 했는데.

막상 전역하고 보니 참 순식간이었던 것 같은 느낌.


“됐고, 빨리 게임이나 켜.”


내가 덕수 녀석과 가끔 하는 게임은 바로 <오버 더 워치>.

하이퍼 FPS 게임으로, 특색있는 영웅을 골라 상대 팀을 죽이면 되는 간단한 게임이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만발 사격실력 제대로 보여준다.”

“뭐래. 이 분대장의 놀라운 에임을 보고 놀라지나 마라.”


서서 쏴, 앉아서 쏴, 엎드려 쏴 모두 다 완벽히 소화해낸 나고.

게임에서의 에임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내가 이 라는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보이스 채팅 할 거지?”

“당연.”


나와 덕수 녀석은 PC방에 세팅된 헤드셋을 꼈다.

그리고 게임에 접속, 큐를 돌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접속해 팀을 꾸렸다.


<오버 더 워치>라는 게임은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캐릭터가 대사를 한다.

특히 가장 강력한 스킬인 궁극기를 쓸 때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들릴 정도고.


즉.

캐릭터의 특정 대사가 들린다는 건.

그 캐릭터가 궁극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신호이고, 이에 플레이어들은 제법 사운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

이를 테면 지금 내가 플레이 하고 있는 화라라는 캐릭터는 궁극기를 쓰면 미사일 폭격을 가하면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정의를 맛봐라!”


이런 대사를 한다.

당연히 이 대사가 들리면 적들은 궁극기가 날아오는구나, 하고 허둥댈 수밖에 없는데.


[????

뭐임???

방금 궁대사 들렸는데???

화라 궁쓴거 아님??]


막상 해당 대사가 들렸음에도.

궁극기로 인한 피해도 없고, 화라의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적 플레이어들은 큰 혼란에 빠질 수 없다.

그러다 이내 곧.


[아 화라 뻘궁 쓴듯ㅋㅋㅋ

수듄ㅋㅋㅋㅋㅋ

어휴 화라충들 ㅋㅋㅋ

꽁승 감사요 ㅎㅎ]


내가 실수했다고 여기며 비아냥과 조롱을 쏟아낸다.

그렇게 안심하며 방심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정의를 맛봐라!]


갑자기 또 다시 화라의 궁극기 대사가 들리고.

이번엔 진짜 미사일 세례를 맞으며 폭격을 당해 팀이 전멸하게 되는 것.


[화라가 궁 두 번 씀???

궁이 이렇게 빨리 찰리가 없잖아 ㅅㅂ

대체 뭐임??]


이에 상대방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화라의 궁극기는 쿨타임이 정말 길기로 유명하거든.


“크크크! 이야, 이게 몇 년만이야? 이건 진짜 몇 년째 해도 모두 감쪽같이 속네. 바로 옆에서 듣는 나도 속을 것 같아.”


옆자리의 덕수 녀석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근데 너 군대에 있었는데도 폼 안 죽었네? 오히려 더 갈고 닦아온 거 아니냐? 아니, 대사 톤이며 호흡, 처리하는 방식까지. 더 퀄리티가 올라버렸잖아?”

“당연하지. 근무 설 때마다 선임들이 성대모사 해보라고 시켰거든.”

“······그건 좀 슬픈 이야기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이 게임은 어째서인지 보이스 채팅을 켜면 적 플레이어들과도 소통을 할 수 있다.

대체 왜 이런 시스템인지는 모르겠는데, 덕분에 보이스채팅을 하며 서로 도발도 하고 쌍욕도 날리다가.

실제 현피로도 이어지고, 고소로도 이어진다고 하지.

대체 왜 적들과도 보이스 채팅을 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내가 그 점을 이용해, 화라의 대사를 성대모사해서 적들을 속인 것.

아마 적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근데 너는 어떻게 여자 목소리도 잘 내냐? 평소 목소리는 그냥저냥 평범한 놈이.”


PC방에서 웬 군필 아저씨가 여자 목소리를 내며, 화라 성대모사를 감쪽같이 하고 있다는 걸.


“몰라. 그냥 계속 하다보니 익힌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그러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얼굴 칭찬은 제법 들었던 편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스스로도 별 특색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그렇게 덕수 녀석과 게임을 몇 시간 동안 즐긴 다음.


“아으, 재밌었다. 오랜만에 옵더치하니 꿀잼이네. 근데 예전처럼 밤새고 그러진 못하겠다. 으으, 나이를 먹었나.”

“이제 막 전역한 놈이 무슨 나이 타령이야.”

“내 말은, 체력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많을 시기라는 거지.”

“네가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놈이었구나.”

“진짜 주둥이 한 대만 때리고 싶다. 그나저나 군대도 전역했는데, 이제 너 뭐할 거냐?”


기지개를 켜며 묻는 덕수 녀석.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손목을 몇 바퀴 돌리곤 대답했다.


“글쎄. 편의점 알바?”

“아니, 그런 거 말고. 좀 더 근본적인 거. 꿈, 직업, 미래! 이런 거 말이야. 군대도 전역했는데, 슬슬 미래 계획 좀 세워야지.”

“네가 그런 소리하니까 진짜 어색하다.”

“군대에 있으니까 할 게 생각밖에 없더라고.”

“그래서, 그 생각의 결과는? 넌 뭐할 건데?”

“흐흐. 듣고 놀라지나 마라. 이몸은 최고의 애니메이터가 될 몸이다.”


덕수답다면 덕수답다고 해야하나.

워낙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놈이라.


“좋아하는 거랑 그걸로 먹고 살아야하는 건 다르다.”

“그럼 그럼.”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니, 정말 힘든 길일 거고.”

“남자가 가는 길에 어찌 평지만 있을 소냐?”

“진짜 오타쿠 같네.”

“낭만 넘친다고 해라.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학원도 끊었어. 알바 다니면서 좀 배워보려고.”


아무튼, 좀 놀랍긴 하다.

애니 보는 것과 게임하는 것 외엔 도무지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어보이던 놈인데.

그래도 목표가 생겨 착실히 도전해보려 한다는 게.


“야, 성우현. 그럼 너는 배우 다시 해볼 생각은 없냐?”


곧 내 눈치를 보던 덕수 녀석이 조심스레 물었다.


“없어.”


대한민국 남성은 총 2번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첫 번째는 수능 끝난 고3.

그리고 군대를 전역한 청년 시기다.


그러나 나는 그 수능 끝난 고3 시절.

인생에 다신 없을 가장 씁쓸한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 군대를 전역했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나 두근거림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도 안 갔고, 딱히 잘하는 것도 없으니까.”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짓는 덕수 녀석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카메라 공포증 있는 등신이, 배우를 어떻게 해?”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연기를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걸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걸 포기해버렸을 뿐이다.


더블제이 엔터에서 쫓겨난 이후.

나는 대중들에게 발연기 신인으로 완전히 찍혔고.

카메라 공포증에 대한 소문도 업계에 쫙 퍼진 터라, 날 데려가려는 곳도 없었다.

그 이후 계속 방구석에 틀어박혀 허송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연기하는 순간.

그 때만큼은 난 부모없고, 돈없고, 소심한 성우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겨우 마음을 추슬렀을 때.

처음엔 내 연기를 카메라로 찍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놈의 카메라 공포증이 발목을 붙잡았다.


연극판에 진출하는 것도 무리였다.

이미 대중들에게 나는 등신같은 배우로 단단히 낙인 찍혔고.

덕분에 날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카메라 뿐만 아니라 누가 내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덜덜 떨렸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연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비참한 상황에서 연기에 대한 갈증은 더욱 강해졌다.

이 개같은 현실을 벗어나, 잠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더빙이다.

처음엔 그냥 영화를 보고, 배우들이 하는 대사를 따라했던 게 시작이다.

특히 영화의 경우 외국 영화들을 다운받았다.

자막이 있으니까.

마치 과거 TV에서 틀면 해주던 처럼.

나는 온갖 캐릭터들의 대사를 따라했다.


처음에는 그저 성대모사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짓을 계속 하다보니, 어느 새 내 방식대로 대사를 해석해 목소리로 표현해보기 시작했다.

마치 목소리로만 연기를 하듯이.


카메라도,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 이 방구석에서.

나는 목소리를 통해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남자, 여자, 어린아이, 다 죽어가는 노인, 로봇, 외계인, 괴물, 초능력자, 정의로운 히어로, 악독한 빌런, 정신병자, 천사, 악마.


그 이후엔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드라마, 애니메이션, 꽁트, 연극 녹화본.

다만 내가 속이 좁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국내영화는 잘 안보게 되더라.

배우로서 영화에 출연해 이모와 함께 보러가는 게 꿈이었는데, 결국 좌절했으니까.


카메라 앞이 아니라.

누군가의 앞에 서있는 게 아니라.

방구석에서 혼자 연기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내가 혼자 더빙을 하고 있는 이유다.

이 방구석에서 만큼은 이곳이 영화 세트장이었고, 드라마 촬영장이었으며, 애니메이션 속 세상이었다.


제3자가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스스로는 행복했다.

그렇게 녹음해온 게 벌써 5년 째다.

사실 군대에서도 휴가를 나오거나 외출을 나와서도 꼬박꼬박 목소리로 연기를 했다.


“벌써 3천 개가 넘었네.”


덕분에 집 안 컴퓨터 용량이 거의 꽉 찼다.

내가 녹음한 음성파일 때문이다.


“그래봤자 뭐하냐. 쓸모도 없는 데이터 쪼가리들.”


혼자선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슬슬 비워야하는데, 막상 지우려고 하면 그렇게 아쉽다.

내가 연기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아무도 봐주지 않는 연기.

그런데도 그만둘 수가 없다.


‘우현아, 성우현. 너는 진짜 배우를 해야할 상이야!’


이모가 내게 어렸을 때 해주었던 말.

그래, 난 연기를 할 때 제일 행복한 놈이다.


“방구석 연기자라니, 진짜 등신같네.”


자조하면서도.

결국 또 나도 모르게 마이크를 톡톡 건드리게 되니까.


*


성우현의 친구 우덕수.

평소 테이크아웃이 아닌 이상 카페도 잘 들르지 않는 그가.

몇 년만에 카페로 향했다.

물론 혼자 커피나 마시려고 그런 건 아니고, 갑자기 약속이 잡혀서.


“덕수야, 여기!”


카페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안녕하세요, 이모.”


다름 아닌 성우현의 이모인 이정미.


“얘는. 밖에선 이모, 하지 말고 누나라고 해야지.”

“이모를 이모라고 하지 뭐라고 해요.”

“진짜 너는 몇 년이 지나도 유도리가 없구나.”

“냉철하다고 해주세요.”

“참, 우현이랑 네가 친구인 게 가끔 신기하단 말이야.”

“저도 가끔 신기해요. 언제부터, 어느 계기로 친해졌는지도 기억이 안 나거든요.”

“거의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지. 그런 너희가 벌써 군대도 다녀오고, 다 큰 어른이 되었구나.”


제법 뿌듯한 표정을 짓는 이정미.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우덕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데 이모는 여전히 혼자시네요.”

“이 녀석이! 골드미스라고 불러.”

“골드미스라니, 으으. 언젯적 단어예요. 그리고 뭐 제가 뭐라고 했어요? 그냥 혼자라고 했을 뿐이지. 요즘 뭐 결혼 안 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내 말이! 요즘엔 결혼하는 게 손해야. 집 구하랴, 양가 부모님 챙기랴, 애 키우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우덕수가 보기에.

이정미는 매우 결혼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짝을 찾고 싶다는 느낌?


“그래서 무슨 일이세요? 저 얼른 신작 애니 보러 가야하는데. 이번 분기에 대박작들이 많아서 빨리 봐야해요.”

“넌 어쩜 그런 면도 변한 게 없니······실은 너한테 들려주고 싶은 게 있어.”


그리 말하며 블루투스 이어폰 한 쪽을 건네는 이정미.

우덕수는 눈을 끔뻑이며 그걸 받아들고, 이어폰을 귀에 꼈다.


“자. 잘 들어봐.”


이정미의 채근에 집중해보는 우덕수.

그리고 이어폰 너머로 무언가 들려오는 순간.


“이건, 작년에 나온 2분기 애니메이션 <최고의 아이> 3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BGM인데?”


<최고의 아이>.

주인공은 유명 여배우의 아들인데, 어느 날 엄마가 스토커에 의해 죽는다.

그런데 그 스토커마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상태.

주인공은 연예계 업계에 뛰어들어, 과연 제 엄마를 죽도록 사주한 인물이 누구인지 추적해가는 스릴러물이다.

작년, 애니메이션에 관심없는 일반인에게조차 큰 화제가 되었던 웰메이드 작품.


“······너 좀 무섭다. 이걸 2초만에 파악해?”

“그런데 이걸 왜 들려주시는 거죠? 설마 누나도 드디어 애니의 세계에······.”

“잠자코 더 들어봐.”


이어 들려야할 것은.

애니메이션 주인공 캐릭터의 대사.


[······찾아낼 거야.]


그런데.

일본 애니메이션인만큼, 응당 일본어가 들려야할 타이밍에.


[찾아내서, 우리 엄마를 죽인 새끼를······내가 반드시 족쳐버릴 거라고.]


한국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매우 좋아하는 우덕수로선 당연히 위화감을 느낄 법도 한데.


“······미친.”


듣자마자 단숨에 납득해버렸다.

오히려 한국어를 통해, 번역이 필요없이 다이렉트하게 꽂히는 대사에.

캐릭터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음색, 거기에 위화감을 없애는 미친 연기력이 더해졌다.

정말 짧은 대사 몇 개를 들었을 뿐인데도.


“이, 이거 누가 녹음한 거예요? 혹시 우리나라 더빙판이 새로 나와요?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정식 더빙판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퀄리티.


“이거, 애니메이션 화면이랑 제대로 믹싱해서 틀면 진짜 대박일 거 같은데요? 와, 저 진짜 방금 소름돋았어요. 미친. 이미 자막판으로 몇 번이나 본 작품인데······”


그런 우덕수의 반응을 보고선.


“아냐.”


이정미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가기 시작했다.


“흠흠. 연기력 미쳤지? 이거 사실 우현이가 녹음한 거야.”


그 이야기를 듣고.


“우현이라면······이모 지금, 성우현 그 녀석 얘기하는 거. 맞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의 우덕수.

그에 반해, 이정미가 눈을 빛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우현이는 아직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거야!”


*


이정미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

우덕수는 아까 이정미의 부탁을 떠올렸다.


‘그래서 말인데, 덕수야. 혹시 이 파일을 가지고 우현이를 좀 알리거나, 아니면 다시 연기를 할 수 있게 설득해볼 수는 없을까?’


다른 사람의 부탁이었다면 그냥 무시했을 테지만.


‘이모한텐 여러모로 신세진 게 많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불쑥 집에 처들어가 과자며 식사를 얻어먹었던 우덕수다.

그럼에도 이정미는 싫은 기색 없이 우덕수를 맞이해주었고.

다 커서야 그런 이정미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중.


‘게다가 나도 녀석의 연기를 더 듣고 싶네.’


우현이 연기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그건 이모인 이정미,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우현과 친구였던 우덕수다.

자신과는 스스럼없이 장난도 치고, 서로 비난도 하지만.

남들 앞에선 제법 소심한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성우현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바로 연기를 할 때뿐.


‘뭐. 솔직히 배우한다고 할 때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더빙 쪽은 얘기가 다르지.’


우덕수는 오타쿠다.

그만큼 수많은 애니메이션을 봐왔고, 성우들의 연기를 들어왔다.

이에 더빙에 대해선 제법 깐깐한 주관을 갖고 있는 편.


그런데 성우현의 목소리를 통해 표현된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마치 차원을 넘어, 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처럼 실감나고 생생했다.


‘게임 캐릭터 성대모사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설마 더빙 연기까지 하고 있을 줄은.’


아까 이정미가 들려준 그 음성파일.

그 속에서 우현은 단순히 일본 성우의 목소리를 따라하고, 흉내내는 게 아니었다.


‘자기만의 독자적 연기를 하고 있었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덕수는 원판 성우보다 우현의 연기가 훨씬 인상깊었다.

정말 짧게 들은 음성 연기임에도, 그 몰입감이 엄청났거든.


‘다른 사람들한테도 들려주면 분명 엄청 경악할 텐데.’


그러기 위해 가장 편한 방법은.

대충 편집해서 넙튜브에 한 번 올려보는 것.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우현이 그 녀석이 이 사실을 알면 화낼 것 같은데.’


바로 본인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

이정미도 아까 그 음성파일을 우현 몰래 들고온 거라고 했으니.


‘이모는 부탁하는데, 정작 우현이 녀석 본인은 화를 낼 것 같고······.’


배우의 길은 완전히 포기한 것 같은 우현이었으니.

남들에게 자기 연기를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으음, 음······.”


그렇게 홀로 고심하던 우덕수는.


“에라, 모르겠다!”


욕 좀 먹고, 치킨이나 몇 번 사주면 되겠지.

그리고 우현이네 이모 부탁인데 어찌 거절하겠나?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해서.


“남들한테 안 보여주는 연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우덕수도 보고 싶다.

우현의 연기를 세상 사람들이 느낀 뒤.

어떤 감상을 내놓을 지.


그렇게 우덕수가 편집으로 하루 꼬박 밤을 지샌 뒤.


-딸깍!


성우현의 연기가 담긴 목소리가.

넙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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