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성우가 연기력으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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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깡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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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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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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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예상치 못한 연락

DUMMY


“야, 너 괜찮겠냐?”


시상식 직전.

덕수 녀석이 내 어깨를 붙잡고는 물었다.


“뭐가?”

“뭐긴, 기념촬영 말이야! 너 카메라만 보면 벌벌 떨잖아.”


내 카메라 공포증을 잘 알고 있는 덕수다.

그래서 먼저 걱정해주고 있는 모양.


“내가 대리로 수상할까? 너는 아파서 병원갔다고 하면 될 거 아니야.”

“대상받는 놈이 대리수상하면 대회 모양새가 어떻게 되겠어.”


물론 수상을 염두에 두고 대회에 나온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영상은 아니더라도, 사진 정도는 찍힐 수 있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대회 측에서 내게 대상을 주는데, 사진 못 찍겠다고 도망가는 것도 이상하고.


“허세 부리지 마.”

“괜찮아. 그냥 사진 찍는 건데 뭐.”


나는 호기롭게 대답했다.


“더블제이 엔터 있을 때도 몇 번 화보 촬영했었고.”

“그거 잡지에도 못 나오고 결국 다 폐기됐다며?”


음.

그래서 당시 팀장님이 엄청 머리 아파하긴 했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영상을 찍는 게 아니라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어.”


다른 것도 아니고, 내가 연기해서 상을 받고.

그걸 기념하는 촬영을 하는 시간이다.

카메라가 무섭긴 해도, 그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난 책임 안 진다.”


덕수 녀석은 그리 말하면서도, 내 어깨를 툭 치며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럼 잘 다녀와. 대상 받았으니까 멋지게 사진 한 번 찍자고.”


*


“······.”


박하연.

더빙 대회에 참여했던 그녀는 멍하니 시상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보면 꼭 ‘넋이 나갔다’라고 표현할 법한 모습.

그런데 그때.


“하연 언니!”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렸을 땐, 박하연보다 어려보이는 여성 한 명과 그 근처 무리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어? 하연 누나!”

“진짜 하연 누나였네? 진짜 오랜만이다!”


모두 그녀를 아는 눈치.

당연하다.

바로 같은 성우 학원에서 공부하던 동생들이었으니까.

아마 작년부터 성우 공부를 시작했다지.

8년 동안 지망생 생활을 한 박하연은 그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나 마음가짐을 많이 알려주곤 했다.

경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한참 동생들이었으니.


그런데 매우 반가워하는 그들과 달리.


“아, 얘들아. 오랜만이네.”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하는 박하연.


“아까 언니가 연기하는 거 봤어! 역시 언니는 연기 잘 한다니까?”

“그래? 고마워.”

“우리 연기하는 거 봤어?”

“응? 으응, 봤지.”

“히히, 그래도 우리 괜찮게 했나봐. 다들 장려상 탔어!”

“그래? 추, 축하해.”

“근데 언니. 시상식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럼 언니도 이번에 상 탄 거야?”


그 질문에 박하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이번에 수상 연락 없었어.”


그 대답이 돌아오자.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


“아. 그, 그래?”

“진짜? 아깝다. 언니 외화 더빙 진짜 잘 하는데.”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그들은 대충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벗어났다.

그게 박하연을 위한 길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그래.

박하연은 이번에 수상하지 못했다.

앞선 참가자들의 수준을 보고선 ‘상은 받아갈 수 있겠지’라고 확신하던 것이 민망하게 말이다.


반면 자신보다 성우 공부를 짧게 한 어린 친구들은 수상을 했다.

이에 부끄러움이나 민망함, 열등감이나 좌절감 등 여러 감정을 느낄 법도 한데.


“······.”


사실 지금 박하연은 아무 생각이 없다.

자신이 수상하지 못한 충격 때문이 아니라.


‘성우현, 그 사람 연기는 대체 뭐였지?’


성우현의 <파놉티콘> 더빙 연기를 본 이후.

박하연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말 그대로 신들렸어. 미쳤다고.’


다른 사람들의 연기?

그건 거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그런 연기를 보고 나니, 어떻게 해야하는지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지.’


그 여운이 너무도 오래 간 나머지.

스스로 연기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수상하지 못한 이유도, 그 연기의 여파 때문에 자신의 차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


‘이런 감정을 느껴보는 게 얼마만이지? SBC에 더빙 참관을 갔을 때?’​


성우 학원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다보면.

실제로 방송사에서 어떻게 제작을 하는지, 그리고 성우들은 어떻게 더빙을 하는지 참관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성우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현직 성우이기에 가능한 일.

아무튼, 현장에서 직접 연기하는 성우들의 모습을 보며 큰 감명과 함께 커다란 벽을 느꼈던 박하연인데.


‘설마 이런 지망생들이 참여하는 대회에서 그걸 또 느껴볼 줄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강한 인상이 남은 것 같다.

성우들은 라이브로 연기하는 일이 거의 없다.

마치 드라마, 영화 배우들이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재촬영하듯.

성우들 역시 같은 장면을 여러 느낌으로 다시 가보곤 하니까.

거기서 최적의 연기를 뽑아내어 작품에 붙이는 것이 바로 더빙이라는 작업이다.


‘그런데 방금 성우현이라는 사람은 라이브로 그런 연기를 보여준 거야.’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심지어 배우와의 입길이까지 완벽히 맞춰서 말이다.

아까 성우현이 연기하던 모습을 다시 떠올리자니.


“······어후.”


박하연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고.

제 팔뚝을 쓰다듬으며 작게 한기를 느꼈다.


‘말 그대로 신들린 듯한 연기.’


그래서 더더욱 의아했다.


‘지망생 생활 8년을 하면서 성우현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어.’


지망생으로만 8년이다.

성우 학원에 다니며 지망생들도, 그리고 현직 성우들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온 박하연.

그런데 성우현이라는 이름, 그리고 저만한 실력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누군지 궁금해.’


그래.

박하연이 수상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상식까지 남아있던 이유.

그건 바로 성우현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그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대체 어떻게 연기를 시작했고, 어디서 배웠으며, 여태 뭐하다가 이제 나타난 건지.

그리고 대체 그런 연기는 어떻게 해낼 수 있는 거지.

만약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다면.


‘내 앞에 닫혀있는 문, 그 문고리를 잡을 열쇠가 될 지도 몰라.’


번번히 공채 시험에서 떨어지고.

기나긴 지망생 생활에 회의감만 늘어가던 박하연이다.

그런 그녀에게 성우현의 연기는 오랜만에 엄청난 자극이 되었다.

덕분에 수상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큰 동기부여를 얻은 느낌.


‘한 번 더 보고 싶다, 그 사람.’


그리고.

그런 박하연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듯.


“제19회 한국예술진흥대학 주최 외화더빙대회 대상!”


임진석이 호명한 대상의 이름은.


“축하합니다. <파놉티콘> 더빙을 보여주신 성우현!”


역시 그 사람이었다.


짝짝짝-


아까 성우현이 연기를 끝마쳤을 때 정도는 아니지만.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만큼 우현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이름이 호명되자.

성우현이 걸어나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연기할 때랑 안 할 때의 갭차이가 엄청나네. ’


생긴 것도 꽤 잘생겼는데.

연기하기 전엔 그렇게 긴장하며 벌벌 떨더니.

막상 연기에 들어가자 눈빛이 확 바뀌어서는, 그런 무지막지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게다가 꽤 잘생겼고.’


얼굴이 갸름하면서 미소년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데다.

키도 제법 키고, 비율도 좋다.

그러면서 마냥 수려하게 예쁜 것도 아니고, 적당히 중성적인 느낌.


‘흔히 말하는 배우상?’


저도 모르게 우현의 얼굴이며 몸짓, 걸음걸이까지.

마치 연예인 바라보듯 집중력을 끌어올려 관찰하고 있는 박하연이었다.

그러는 사이.


“축하합니다.”


시상자로 나선 남국민이 성우현에게 꽃다발과 상장을 건넸고.


“가, 감사합니다.”


성우현이 토끼처럼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남국민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말 훌륭한 연기였어요. 나도 많이 배웠습니다.”


남국민이 그리 말하자.

우현은 눈이 동그래지고, 입은 떡 벌려서는.


“네? 아, 으, 네? 나, 남국민 성우님께서요?”


바보같은 소리를 내며 어쩔 줄 몰라했다.

남국민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좋은 연기였습니다.”


물론 그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없는 박하연으로선.


‘뭐야. 갑자기 왜 저래?’


그저 우현이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생긴 것만 보면 차가워보이는데, 뭔가 귀여운 매력도 있어보이고.’


그런 와중.


“그럼 수상자들과 함께하는 기념촬영이 있겠습니다! 수상하신 분들은 모두 단상 앞쪽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곧 성우현을 비롯한 수상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대상은 단연 임진석 학과장, 그리고 남국민 성우 사이에 낀 중앙 자리였다.


‘그나저나 사진이 공개되면, 지망생들 사이에선 꽤 화제가 되겠는데?’


성우현이라고,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재야의 고수가 있다.

그가 남국민 성우 앞에서 <파놉티콘> 토마스 더빙을 선보였고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심지어 얼굴까지 잘생겼다니!


‘아마 화제가 되는 건 순식간일 거야.’


“자, 그럼 찍겠습니다! 이쪽 봐주세요! 자자, 다들 웃으시고. 하나, 둘, 셋!”


커다란 카메라를 든 직원이 외쳤고.

단상 위에 선 사람들이 저마다 미소를 지었다.


‘어? 뭐야, 저 눈빛.’


단 한 사람.

성우현만 제외하고.

마치 아까 연기를 할 때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서는.

눈빛으로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뭐야. 연기하거나 중요한 자리에선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타입?’


연기하기 전, 허둥대며 긴장하던 모습.

그러나 연기하거나 사진을 찍을 때는 매우 진지해지는 모습이 엄청난 갭차이를 불러왔고.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박하연은 점점 더 성우현이 궁금해졌다.


*


···..죽는 줄 알았다.


“어휴, 등신아.”


화장실에서 한껏 게워낸 뒤 밖으로 나오자.

덕수 녀석이 쯧쯧 혀를 찼다.


“사진 찍을 때는 잘 버티나 했더니, 끝나자마자 바로 이 모양이냐?”

“끝나자마자 이래서 다행이지.”


나는 덕수가 건넨 생수를 꿀꺽꿀꺽 삼켰다.

냉수가 들어오니 좀 살 것 같긴 하네.


“그러게 내 말 듣고 그냥 쉬지 그랬냐.”

“어떻게 그러냐. 대상 수상자가 시상식 때 안 오면 얼마나 이상하겠어.”


내가 연기로 따낸 첫 번째 상장이다.

그 순간만큼은 꼭 기념해두고 싶었다.

아무리 카메라가 무섭고,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고 해도 말이다.


“미련한 건지 멋있는 건지.”

“됐고, 사진 찍힌 거나 보자.”


주최 측에서 끝나자마자 사진을 톡으로 쏴줬다고 했다.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대체 사진을 찍은 게 얼마만이지.

더블제이 엔터 시절, 화보마저 대차게 말아먹은 이후 폰카로도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는데.

아무튼, 이번에 나는 무려 남국민 성우님 옆자리에서 찍었고.

여러모로 기념할만한 사진이니, 잘 찍혔으면 좋겠는데.


“······.어디 전쟁 나가냐?”


사진을 본 뒤 덕수 녀석이 내놓은 감상평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웃으며 촬영을 즐기고 있는데.

나 혼자 눈이며 얼굴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엄격, 근엄, 진지 그 자체.


“눈에서 레이저 나가는 줄. 와, 근데 사진으로만 보면 카리스마 장난 아니네. 요, 불꽃 카리스마 우현!”

“조용히 해.”


그나마 우습고, 엽기적인 표정 안 지은 게 다행이려나.

그랬으면 역대급 흑역사를 만들었을 테니.


“근데 이렇게만 찍었으면 화보 대박났을 거 같은데. 왜 다 말아먹었냐?”

“모든 사진에서 저 표정이었거든.”


화사한 컨셉의 화보에서도 엄근진.

청량한 컨셉의 화보에서도 엄근진.

사랑스런 컨셉의 화보에서도 엄근진하니, 당연히 현장 스탭들의 속이 문드러질 수밖에.


“크크, 아무튼 너 모르는 사람이 보면 포스 넘친다고 착각할 듯.”

“에이, 누가 착각하겠어. 다들 관심도 없을 텐데.”


아까 대회때 보니, ‘배우 성준’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대회 한 번 했다고, 누가 나한테 관심이나 갖겠어.


아무튼.

그렇게 모든 대회 일정이 끝나고.

꽃다발, 그리고 대상 상장과 함께 집으로 금의환향했다.

하지만 내겐 그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


“실화냐? 남국민 성우님께서 널 칭찬해주셨다고?”


덕수의 물음에 난 가슴을 펴고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상하러 올라갔는데, 나한테 그렇게 말씀해주셨다니까?”


물론 의례적인 칭찬, 립서비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모, 그리고 덕수 이외의 사람에게 육성으로 연기 칭찬을 들은 건 처음이었는데.

그 대상이 무려 남국민 성우님이라니!

심지어 내게 ‘배울 점이 있다’고까지 말씀해주시니, 말 그대로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시상식에 참여한 보람이 느껴질 정도.


사실 기념촬영 끝난 이후에도 뭐라고 더 말씀해주신 것 같은데.

카메라 극도의 울렁증이 도졌고, 때문에 반쯤 정신을 놓고 있어서 제대로 듣진 못했다.


“아, 맞다. 난 학과장님한테 얘기 들었어.”

“엥? 네가?”


학과장이라면, 주최 측의 임진석 성우학과장님을 말하는 걸텐데.

그분께서 왜 덕수에게?


“내가 네 친구라는 거 알고 오셨더라고. 혹시 너 대학은 다니냐, 자기네 학교에 관심 있어서 더빙 대회 나온 거냐, 혹시 말 좀 좋게 해달라, 뭐 그런 얘기들 하시던데?”


아무래도 내가 카메라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사이.

덕수에게 대신 말을 전하신 모양이다.


“네가 입학하면 전액장학금에 기숙사에, 필요한 건 다 지원해준다던데.”

“오. 그렇게 파격적인 조건을?”

“왜, 솔깃하냐?”

“아니.”


대학이라.

군대까지 다녀온 마당에, 복학도 아니고 새로 입학을 하기엔 좀 부담스럽다.

다가올 성우 공채 시험을 준비하는 게 맞지.


“자자, 다들 뭘 그리 말들이 많아?”


그리 말하며 덩실덩실 신난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건 바로 우리 이모.

이모는 쟁반에 맥주캔이며 안주거리를 잔뜩 들고 왔다.


“일단 오늘은 적셔!”


우리 세 사람은 맥주캔을 저마다 하나씩 들고 건배했다.


“아으, 써.”


내가 5년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있긴 했지만 술을 즐겨마신 건 아니라서.

도무지 술맛을 모르겠다.


“아직 네가 세상의 쓴맛을 안 봐서 그래.”


그런 나를 비웃듯 단숨에 원샷을 때린 덕수 녀석.


“이미 쓴맛은 많이 봤는데?”

“······.미안하다.”

“크으. 그래, 우리 조카가 갈 길은 배우가 아니라 성우였던 거야! 왜 이 재능을 이제 알아봤을까!”


술이 들어가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기분이 매우 좋은 건지.

이모가 근래 들어 가장 호탕하게 웃으며 내 등을 퍽퍽 때렸다.


“김칫국 마시지 마요. 그리고 아파요. 그만 때려요.”

“왜? 처음 나간 더빙 대회에서 1등도 하고, 거기 학과장님인지 누구신지가 널 데려오지 못해서 안달이라며!”

“요행일 수도 있잖아요.”


물론, 나도 성우가 되고 싶다.

이번에 대회에 참여하면서 확실히 알았다.

카메라 앞에서가 아닌, 마이크 앞에서 대중들에게 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나라는 존재가 아닌, 화면에 집중하는 사람들.

목소리로 연기하는 동안 만큼은 난 ‘성우현’이 아닌 작품 속 캐릭터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우현아. 너 이번에 상금 받았지?”

“네. 덕수 말대로라면, 곧 입금해준대요. 세금 떼고.”

“그래. 얼마 전에 이모가 뭐랬지?”

“음, 양말 좀 뒤집어서 벗지 마라?”

“그거 말고, 이 녀석아.”


2번째 캔을 넘어, 벌써 3캔째를 시작한 이모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연기로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고. 근데, 지금 너 벌어왔잖아? 그것도 50만원이나.”


그래.

이모가 그랬었지.

돈이야말로 세상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인정이라고.


“넌 할 수 있어. 그래서 이렇게 이모한테 맥주도 사주잖아?”


이모가 그리 말해주니 없던 자신감도 생긴다.

그렇게 한창 훈훈하고 감동적인 분위기가 고조되는 와중.


“근데 성우 되는 거 빡세긴 해요.”


그리 말하며 갑자기 휴대폰 화면을 들이미는 덕수 녀석.

그 화면 안에는 지난 SBC 성우 공채 시험 경쟁률이 표기되어 있었는데.


“히익. 경쟁률이 400대 1?”


방송사에서 성우를 뽑는 인원이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험을 보는 사람은 수백, 혹은 수천에 이른다고.


“갑자기 자신 없어지는데?”

“대기업 입사보다 빡센 것 같은데.”


그 숫자를 보자마자 나와 이모의 마음이 같이 꺾여버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400대 1은 좀.


“어?”


그런데 또 휴대폰을 보고선 고개를 갸웃거리는 덕수 녀석.


“이번엔 또 뭔데? 사실 경쟁률이 600대 1이래?”

“아니, 그거 말고. 야. 야. 채널에 댓글 알림 떴어.”


채널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성우 현의 소리’ 채널이겠지.


“그래?”

“네 채널인데 모르냐?”

“네가 만든 채널이잖아, 우덕수 이 멍청아. 그리고 댓글이야 자주 달리는데 왜? 악플이라도 달렸어?”

“이것 좀 봐.”


그리 말하며 재차 휴대폰을 내미는 덕수.

그러자 보이는 댓글은.


[안녕하십니까, 일루닉게임즈입니다.

더빙 섭외 관련 문의를 드리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아래 표기한 메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소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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