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서장
“어이, 김 변.”
“······왜.”
“술자리에서 그렇게 축 늘어져 있을 거면 그냥 집에 가지?”
“어, 알았어.”
난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어릴 때부터 친구이자, 로스쿨 동기이며, 이제는 같은 로펌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송 변이 내 팔을 잡아끈다.
“농담이야, 농담!”
“난 농담 아닌데.”
“이 미친 자야. 그냥 좀 앉으라고, 얼른!”
난 헬스로 단련한 송 변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강제 자리 착석.
나는 이후 아예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엎드렸다.
“하여간 또라이 쉑. 우리 저 미친 또라이는 무시하고 술이나 더 마실까요?”
“좋아요!”
테이블 위로 오가는 남녀 간의 대화들.
관심은 없었지만, 가만히 엎드려 멍 때리고 있으니 이런 저런 대화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특히, 전직 테니스 선수 출신이었다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지금은 그냥 평범한 직장 다녀요.”
“아쉽겠네요.”
“아뇨. 전혀 아쉽지 않아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부상도 심했고, 무엇보다 제 재능의 한계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거든요.”
어딘가 씁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분위기가 다운되려 하자, 내 친구 송 변이 화제를 전환한다.
“그럼 요새 취미는 어떻게 되세요?”
“취미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최근에 테니스 심판 자격증을 땄어요. 얼마 전엔 주니어 대회에서 처음 심판으로 서기도 했구요.”
“아.”
또 그놈의 테니스.
하지만 여자는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어갔다.
“요새 친구들은 정말 테니스를 잘 치더라구요. 전보다 인프라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특히, 한 친구는 이제 14살인데 국내 주니어 대회에서 전부 우승할 만큼 실력이 대단해요. 더 놀라운 건 뭔지 아세요? 그 친구가 테니스를 시작한지 이제 겨우 1년 밖에 안 됐다는 거예요.”
여자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송 변이 곧장 날 붙든다.
“집에 갈 생각 마라, 김 변아.”
“안 가. 그보다 방금 이야기 좀 더해 보시겠습니까?”
“네?”
당황하는 여자.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겠다.
그녀가 언급한 예의 어린 테니스 선수에게서 강한 기시감을 느낀 까닭이었다.
“테니스 시작하고 1년 만에 국내 대회 평정했다는 그 친구 말입니다.”
“뭐야, 김 변 너 테니스에 관심 있어? 아닌데. 너 스포츠에 일절 관심 없잖아.”
송 변 말이 맞다.
난 스포츠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전부.
하지만 그게 어느 ‘웹소설’에 관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씁, 수상한데.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됐고. 아까 그 선수 이야기나 마저 하죠.”
“아, 네.”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송 변.
나중에 뭔가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지만, 지금은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선수, 이름이 뭡니까?”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아요. 남궁혜지. 성이 남궁, 이름은 혜지라고 하더라구요.”
“······.”
데에에엥!
이름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장엄한 종소리가 울린다.
충격과 환희.
그리고 어쩌면 흥분과 기대.
옆에서 송 변이 자꾸 뭐라 뭐라 지껄이는데,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나는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친구 혼혈 아닙니까?”
“어? 어떻게 아셨어요? 건너 듣기로는 분명 아버지가 유럽 출신이라고 했어요. 정확한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독일 출신일 겁니다, 아마.”
“네? 그걸 그쪽이 어떻게······.”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
하지만 난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남궁혜지 그 아이가 내가 중2 때부터 읽은 웹소설 속 주인공 중 한 명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후우, 대체 뭐가 뭔지.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은 온갖 망상이 폭발하고 있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