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하다 에어전시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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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령
작품등록일 :
2024.09.1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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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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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DUMMY

다시 말하지만 난 스포츠에 대해 문외한이다.

스포츠를 텍스트로 배웠을 뿐이다.

‘나는 성장한다!!’를 읽으면 스포츠에 관심이 생기다가도 직접 관람하거나 시청하면 전혀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혜지의 대회 이후 그런 생각이 좀 달라졌다.

여전히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지만, 내 새끼들이 뛸 때는 도파민이 싹 돈다고나 할까.

제임스가 링 위에 있었다.

상대는 제임스보다 3살 많은 고등학생 백인 복서.

복싱 경력만 5년이 넘고, 이미 텍사스 주 대회 4강에 오른 실력파다.

그런데 그런 상대를 제임스가 압도하고 있다.

퍽!

제임스의 레프트 바디 샷이 직격한다.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정타.

충격이 컸는지 상대의 머리가 순간적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이어진 오른손 어퍼컷.

그 일격에 상대는 순간 기절했는지 로프에 기대어 스르륵 쓰러지고 만다.

뎅뎅뎅뎅!

“그만, 그만!”

종이 울리고 링 위가 소란스러워진다.

급히 상대 선수를 챙기는 체육관 사람들.

정작 이번 스파링을 승낙한 어빙 체육관의 관장은 놀란 눈으로 제임스를 바라보기 바빴다.

그 모습에 난 흐뭇하게 웃으며 헤드기어를 벗고 있는 제임스에게 다가갔다.

“잘했어.”

“아니에요. 상대 잽이 생각보다 더 예리해서 애 좀 먹었어요.”

“근데 스파링은 처음 아니었어?”

“케일럽하고 자주 했어요. 그때마다 뒤지게 얻어맞았지만.”

지금은 알코올 중독 아동 학대범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케일럽은 한때 전미 챔피언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살이 붙어 헤비급 체구가 된 상태.

제임스는 그런 무자비한 성격의 케일럽을 상대해왔으니, 처음 하는 정식 스파링에도 전혀 떨지 않고 임할 수 있었다.

“이야기 좀 나눕시다.”

“네, 제임스 너는 여기서 좀 쉬고 있어.”

제임스를 두고 난 관장과 따로 시간을 가졌다.

“그러니까 저 꼬맹이를 그 망나니 케일럽이 키웠다는 겁니까?”

케일럽 하트는 댈러스 복싱 계에선 유명인사였다.

전미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그만큼 무게감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훈련을 빙자한 폭력과 학대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키운 게 아니라 학대한 거죠. 전신에 가득한 상처 좀 보세요.”

“크흠.”

“그래서 제 조카 실력은 어느 정도죠?”

“좀 더 검증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최소한 주 대회는 너끈히 우승할 실력으로 보이요.”

주 대회라니, 이 양반아.

최소 전미 대회 우승권 실력인데.

실제 작중에서 제임스는 지금으로부터 1년 뒤에 주 대회에서 우승하고, 그해에 전미 대회까지 석권하며 떠오르는 복싱 유망주가 되었다.

아마 케일럽 하트가 알코올 중독에 의한 급성 간경화로 목숨을 잃지만 않았어도, 미국에서 추방되지도 않고 더 이른 시일에 올림픽에 출전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케일럽 밑에서는 그 위로는 올라가기 힘들 거요. 그 망나니의 복싱은 엘리트 복싱과는 거리가 머니까. 그런 날 것의 복싱으로는 절대 엘리트 복서를 이길 수 없지.”

“근데 방금은 이겼잖아요.”

“크흠. 그거야 저 친구는 아직 엘리트 복서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니 그런 것일 뿐이고.”

이론상 어빙 관장의 말이 옳긴 하다.

바야흐로 복싱 계는 엘리트 복싱의 시대.

엘리트 복싱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이 프로 무대에서도 성적을 내며 각광받고 있는 중이다.

실제 수많은 복싱 프로모터들이 선호하는 이들이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이었고.

그에 반해, 제임스의 복싱은 득점을 위한 경기 운영이 주를 이루는 엘리트 복싱과 거리가 멀다.

KO를 따내기 위한 호쾌하고 파워풀한 복싱.

분명 시대의 흐름에 반하는 스타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제임스를 우리 체육관에서 받아주겠소. 내 손을 타면 올림픽 무대에서도 제대로 된 성적을 낼 수 있을 거요.”

어빙 관장의 눈에 탐욕이 깃든다.

왜 아니겠어.

우리 제임스만한 천재가 어디 있다고.

어이구, 내 새끼.

어쩜 이렇게 잘 컸을까.

사랑을 듬뿍 담은 내 손이 제임스 엉덩이를 찾아간다.

탁탁탁탁.

“악, 왜 이래요!”

“귀여워서 그런다, 귀여워서!”

“그만해요, 쫌!”

내 손을 피해 도망치는 제임스.

이 녀석아, 이 삼촌만 믿어라.

앞으로 꽃길만 걷게 해줄 테니까!


***


케일럽이 저지른 아동 학대와 폭력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쳤다.

제임스가 인스타에 올린 사진과 영상.

그리고 간혹 폭력에 의한 심한 부상을 입었을 당시 진찰한 의사들의 소견서까지.

“피고인은 구속 수사로 전환될 겁니다. 더불어 입양 무효 소송도 동시에 진행될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로써 제임스는 케일럽의 마수로부터 합법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 절차가 꽤 많이 남았지만, 이를 단축시키기 위해 텍사스 최고 로펌을 고용했으니 남은 건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문제였다.

“이모는 언제 와요?”

“내일. 그전에 우리도 어디 잠시 다녀오자.”

“어디요?”

“케이시. 케이시도 우리와 같이 한국으로 가야지.”

“정말이에요?”

펄쩍 뛸 정도로 좋아하던 제임스.

하지만 녀석의 낯빛은 이내 어두워졌다.

“케이시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 양부모들이 얼마나 잘해주는데요.”

좋은 환경과 따뜻한 집, 그리고 넘치는 사랑.

확실히 누가 봐도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가정이다.

그러나 케이시의 양부모는 한 가지가 부족했다.

다름 아닌 시간.

부부 모두가 사업을 하는 탓에, 집에서 케이시를 면밀히 관찰하고 관심을 쏟는 시간이 부족했다.

주말만이라도 케이시와 함께 보내려고 하는 등 양부모는 나름의 노력을 다 했지만,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영안실로 들어서는 제임스는 차마 발을 뗄 수 없었다.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더라. 따돌림으로 인한 투신자살이었다더군. 동양인 계집애를 그런 상류층 학교에 입학시키다니. 네 동생의 양부모는 분명 뇌가 텅텅 빈 머저리들이다.”

제임스는 옆에서 이죽거리는 케일럽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 그저 묵묵히 흰 천을 바라볼 뿐이었다.」


작중에서 케이시는 투신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학생 대부분이 백인 상류층인 학교에서 받은 따돌림과 멸시, 그리고 인종차별은 선천적으로 심약한 케이시를 궁지로 몰아넣은 원흉이었다.

제임스가 5명의 주인공 중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여동생을 데려오겠다고 그 끔찍한 인고의 시간을 견뎠는데, 그토록 허망하게 희망을 잃어버렸으니.

하지만 현실에선 다를 거다.

내가 결코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었으니까.


***


케이시의 집은 댈러스가 아닌 휴스턴에 위치했다.

휴스턴은 댈러스에서 차로 4시간 거리.

남매가 헤어지고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못 만났던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제임스는 어두운 얼굴로 침묵하고 있었다.

“걱정 돼?”

“정말 괜찮을까요? 괜히 내 욕심에 잘 살고 있는 케이시를······.”

“지레짐작하지 마. 네가 강요만 하지 않으면 돼. 선택은 케이시가 하겠지.”

“하아······.”

비행기에서 케이시의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서도 제임스의 근심 걱정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는 간다.

제임스 입장에서 케이시는 암울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화려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근데 그런 거 아니야, 제임스.

지금 케이시한테는 네 손길이 절실히 필요해.

“도착했수.”

택시가 어느 주택 앞에 멈춰 선다.

전형적인 형태의 2층 주택.

앞마당엔 잔디가 깔려 있고, 큼지막한 차고는 굳게 닫혀 있다. 다만, 화이트 톤의 주택 외벽은 어딘가 모르게 을씨년스럽다.

‘뭐, 내가 사정을 다 아니까 그런 거겠지.’

“내리자.”

우리는 택시에서 하차했다.

미리 케이시의 양부모에는 허락을 구했다.


-어머, 케이시가 너무 좋아하겠어요. 안 그래도 요새 케이시가 우울한 눈치였는데.


이 인간들아, 부모라면 애가 왜 우울한지 들여다봐야 할 거 아냐.

잘 먹이고, 잘 입힌다고 부모의 도리가 끝나냐고.

울화가 치밀지만, 그렇다고 케이시 양부모를 욕할 수도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케이시가 다니는 학교의 양아치들에게 있는 거니까.

“가자.”

“잠깐만요.”

제임스가 긴장되는지 여러 차례 크게 심호흡한다.

자기보다 훨씬 커다란 고등학생을 상대로도 전혀 긴장하지 않던 녀석이.

그래도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잠자코 진정되기를 기다린다.

“후우, 됐어요.”

내가 먼저 앞장선다.

주말인데도 케이시의 부모는 골프 모임 때문에 집에 없었다.

작중에서도 늘 이런 식이었던 것으로 서술된다.

케이시를 사랑하긴 했지만, 케이시보다 자신들의 삶이 더 우선이었던 사람들.

그래서 케이시는 늘 외로이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딩동.

현관의 벨이 울린다.

투다다닥 안에서 뜀박질 소리가 들리고, 마침내 예쁘장하고 조그마한 소녀가 현관문을 열며 모습을 드러냈다.

제임스를 발견한 소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연하다.

“오빠!”

“케이시!”

남매가 서로를 와락 끌어안는다.

작중에서 제임스가 이 순간을 얼마나 그렸던가.

나 역시 너무나도 바라던 순간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렇게 서로를 껴안고 울기를 한참.

뒤늦게 생각났는지 제임스가 드디어 날 소개했다.

“아, 참. 케이시, 이쪽은 날 여기로 데려와 주신 분이셔.”

“안녕, 케이시. 내 이름은 대니얼이란다.”

“······.”

케이시는 수줍은 얼굴로 제임스의 뒤로 숨는다.

애석하게도 케이시는 작중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에 대한 건 많은 것이 미지수.

하지만 내 새끼 제임스의 하나뿐인 여동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케이시는 나에게 있어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나가서 점심 먹을까? 너희 부모님께 허락은 받았어.”

“그래, 케이시. 네가 좋아하는 떡볶이 먹으러 가자! 너 떡볶이 좋아하잖아.”

“떡볶이? 그래도 돼?”

케이시의 경계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쩐지 제임스가 여동생 기일 때마다 어떻게든 떡볶이를 먹더라니. 케이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그런 거였어.

한식당에 도착한 우리.

케이시는 한껏 신나는 얼굴로 떡볶이를 주문했고, 이윽고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자 가장 먼저 떡볶이에 포크를 가져갔다.

“오빠 얼른 먹자!”

“응, 알았어. 삼촌도 드세요.”

“난 됐어. 난 커피나 마실게.”

내 시선은 온통 케이시에게 향해 있었다.

11월 둘째 주, 오늘 휴스턴의 낮 기온은 25도.

따뜻하다 못해 살짝 더운 날씨다.

그 때문에 식당의 손님들 대부분이 가벼운 반팔 차림.

그런데 케이시는 온몸을 꽁꽁 싸맸다.

목에는 손수건을 둘러 가렸고, 셔츠는 소매가 길어 손등 위까지 덮여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의심스러운데, 가장 눈이 가는 곳은 다름 아닌 이마였다.

“맛있지? 많이 먹어.”

“헤헤. 오빠두!”

웃으며 떡볶이를 먹는 케이시.

그런데 점점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다.

실내가 덥다거나 떡볶이 매운 탓은 절대 아니다.

떡볶이는 덜 맵게 해달라고 미리 부탁드렸고, 실내 온도는 높은 기온에 맞게 에어컨까지 틀어진 상태.

‘어디가 아픈 거야.’

그러고 보니 처음 현관문을 열고 나타난 케이시의 신색이 좋지 못했다.

어두운 낯빛이야 그렇다 쳐도, 오른손으로 자기 배를 받치며 등장한 건 분명 이상했다.

‘주말까지 통증이 심할 만큼 복부를 심하게 맞은 거야.’

이 개자식들이 진짜!

저 귀엽고 깜찍한 애를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후우, 참아야 하느니라.

남매가 2년 만에 만나 정답게 식사하는 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들 수야 없지.

그렇게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갈 때쯤 제임스가 내게 눈치를 보낸다.

‘이제 슬슬 이야기해도 될까요?’

‘네가 해라.’

제임스가 포크를 내려놓고 물을 들이킨다.

그리곤 케이시를 빤히 쳐다본다.

“케이시, 할 말 있어.”

“정말? 뭔데?”

“너 소윤 이모 기억하지?”

“소윤 이모? 당연하지. 한국 이모잖아. 이모가 왜?”

제임스는 지난 며칠간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꼼꼼히 설명했다.

중간 중간 나에 대한 호의적인 칭찬도 아끼지 않으면서.

“어······.”

“네게 부담인 건 알아. 지금도 즐겁고 행복하겠지. 그러니 내 생각 말고 너 자신만······.”

“아냐! 난 오빠랑 살고 싶어!”

“저, 정말이야?”

“진짜야! 난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오빠밖에 없어! 나 오빠랑 살 거야! 여기 싫어! 오빠가 좋아! 으아아앙!”

케이시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제임스가 당황하며 그녀를 달래는 사이, 대충 상황을 알고 있는 나는 주변에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어쩌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살을 생각할 만큼 학교생활이 힘들었던 아이.

대피처가 되지 못한 집과 가족들.

케이시에게 제임스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든든한 울타리일 테니.

‘얘 왜 이래요?’

‘나도 모르지.’

여기 오면서도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난 결국 케이시에게 일어난 일을 제임스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만나 너무나 끔찍했을 서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단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으니까.

남은 건 케이시 부모를 설득하는 일인데.

그것도 그리 어려울 것 같진 않다.

장례식에서 케이시의 죽음을 자신들 탓이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두 사람이라면, 케이시의 행복을 위해 얼마든지 그녀를 보내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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