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하다 에어전시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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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령
작품등록일 :
2024.09.12 12:16
최근연재일 :
2024.09.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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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29

작성
24.09.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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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화

DUMMY

제1장






중2 때였다.


-야, 김선. 이거 읽어볼래?

-그게 뭔데.

-웹소설. 이거 무지 재미있어.


당시 짝꿍이던 친구는 온종일 웹소설만 읽던 괴짜였다.

그렇게 난 녀석 덕분에 웹소설에 입문했고, 오래지 않아 꽤 심취하게 됐다.

하지만 흥미가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뭔가 하나에 진득하게 빠져들지 못하는 내 천성 탓이었다.

점점 웹소설에 흥미를 잃어가던 그때, 난 우연히 이제 막 연재를 시작한 한 글을 알게 됐다.


-처음 보는 제목인데?

-나도 몰라. 엊그제 연재 시작했던데.

-제목 되게 구리다. 작가도 신인인 것 같고. ‘나는 성장한다!!’? 백퍼 망하겠는데.


친구의 냉정한 평가와 상관없이 나 역시 별 대수롭지 않게 읽기 시작한 글이었다.

하지만 나조차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난 ‘나는 성장한다!!’에 금세 빠져들었다.


-너 아직도 그거 읽어? 그거 순위에도 없던데?

-몰라, 난 재미있어.

-게다가 그거 축구 소설 아냐? 너 축구 하나도 모르잖아.

-몰라도 술술 잘 읽히던데?


내 또래 친구들은 다 축구를 좋아했지만, 난 천성적으로 몸 쓰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 내가 축구 소설이라니.

친구도 어이없어 했고, 나 역시도 의아했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성장한다!!’가 마치 첫 사랑처럼 내 심장에 각인됐는데.

이후 내 인생은 ‘나는 성장한다!!’와 늘 함께였다.

공식 편수, 4천 22편.

연재 기간만 장장 15년.

까까머리 중학생이 어느새 31살 변호사가 될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얼마 전 5부 주인공인 남궁혜지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끝으로 완결이 났다.

그것이 최근 내가 매사에 무기력했던 이유였고.

그런데 오늘 생각지도 못한 변곡점이 발생했다.

“······사라졌어.”

‘나는 성장한다!!’가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는다.

원래 독점 연재하던 플랫폼은 물론이고, 혹여나 완결 이후 다른 플랫폼에도 풀렸나 싶어 기웃거려 봐도 ‘나는 성장한다!!’는 역시나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럴 리가 없어.”

난 굳은 얼굴로 전화번호를 뒤져, 한동안 잊고 지냈던 오래된 친구의 이름을 찾아냈다.

-여어, 이게 누구야. 김 변 아냐?

“민수야, 내가 지금 급하거든. 뭐 하나 좀 물어보자.”

-자식이 거의 3년 만에 연락해서 인사도 건너뛰고 보채기는. 뭔데?

“너, ‘나는 성장한다!!’ 기억하지?”

녀석은 날 웹소설에 입문하게 만든 친구.

실제로 나 때문에 ‘나는 성장한다!!’를 같이 읽기도 했었으니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게 뭔데?

“······뭐?”

-설마 또 웹소설이냐? 야, 나 요새 육아 하느라 바빠서 웹소설 못 읽어.

“진짜 ‘나는 성장한다!!’ 몰라? 내가 중딩 때부터 좋아했던 소설이잖아!”

-그런 게 있었나? 아닌데. 너 금세 흥미 잃고 웹소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잖아.

“······.”

이쯤 되면 솔직히 좀 두렵다.

세상에 나 혼자 동떨어진 기분.

그러나 웹소설에 익숙한 나로서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일종의 소설 빙의인 건가. 아니면, 소설이 현실이 됐을 수도. 그것도 아니면 ‘나는 성장한다!!’가 예언서였을지도 모르고.’

셋 중 어느 쪽이든 나한테 인생을 뒤바꿀 만한 일이 벌어지기 직전인 것만은 틀림없다.

물론 확실히 입증하기 전까진 한낱 추정에 불과했지만.

그러자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남궁혜지.”

그녀를 만나봐야겠다.


***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 코트.

곳곳이 사람으로 제법 북적인다.

어린 학생들도 많고, 학부모로 보이는 어른들도 다수 모여 있는 현장.

일종의 불청객이나 다름없는 나는 테니스 가방을 맨 어린 여학생들이 지나칠 때마다 유심히 관찰하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이윽고 나타난 한 여자.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닙니다. 제가 먼저 세희 씨께 무리한 부탁을 드렸는데요.”

“알긴 하시네요.”

그녀는 내게 남궁혜지의 존재를 알려준 예의 그 여자였다. 송 변을 통해 연락처를 알아내, 오늘 이 대회를 소개받았다.

배삼영배 전국 여자 주니어 테니스 대회.

오늘 이곳 테니스 코트에서 결승이 열리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결승 한 자리는 남궁혜지의 차지였다.

“바로 가실까요?”

“원래 그렇게 급하세요.”

아뇨. 하지만 오늘은 좀 급합니다.

며칠째 밤잠을 설칠 만큼 도무지 진정이 안 돼 미쳐버리겠습니다.

“제가 근사한 데서 저녁 대접할게요.”

“그건 당연하죠. 황금 같은 주말을 저당 잡혔으니, 최소한 소 곱창은 먹어야겠어요.”

“소 곱창뿐이겠습니까. 한우도 사드리죠.”

“헤헤.”

그제야 얼굴이 밝아진 세희 씨.

나는 그녀와 걸음을 맞추며 질문을 던졌다.

“남궁혜지 선수에 대해 잘 아십니까?”

“그렇잖아도 김 변호사님 때문에 주변에 좀 물어봤어요. 근데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더라구요.”

그녀의 말에 내가 눈을 빛냈다.

“어떤 소문이죠?”

“인성 논란이 좀 있던데요. 같은 선수들을 무시한다거나, 코치 쌤한테 들이받는다거나.”

“맘카페에서 난리겠네요.”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안 그래도 맘카페에서 민심이 흉흉하데요. 그 탓에 협회도 골치 아프대요. 오랜만에 나타난 유망주가 하필 인성 논란이라서.”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아는 그 ‘남궁혜지’의 초반 스토리와 닮았다.

점점 깊어지는 확신.

생각이 많아질 때쯤 테니스 코트에서 몸을 풀고 있는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있네요, 남궁 선수.”

“······.”

뒤로 묶은 갈색의 포니테일 머리를 휘날리며 코트를 누비는 소녀가 있었다.

또래보다 10㎝ 이상 큰 키와 경쾌한 발놀림.

그리고 강력한 포핸드 스트로크가 눈에 띈다.

난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바로 내가 아는 ‘얼음여제’ 남궁혜지의 현신이라는 것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반평생에 걸쳐 가장 사랑한 소설 속 주인공 중 한 명이 눈앞에 나타난 심정이라니.

내 비루한 어휘력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감격적이다.

“상대는······.”

상대가 뭔 상관이야.

어차피 남궁혜지가 이길 텐데.

얼음여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주니어 대회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시선은 다른 쪽으로 향했다.

남궁혜지에게 수건을 건네는 단발머리 여성.

‘엄마인가.’

선수 생활 내내 온갖 음해와 날조, 그리고 선동에 시달리는 남궁혜지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조력자는 그녀의 엄마였다.

작중에서 그녀는 본업마저 포기하고 남궁혜지를 위해 오롯이 헌신했다.

여러모로 호감인 모녀.

하지만 현재 그녀들을 향한 시선은 절대 곱지 못했다.

“흥! 저런 실력을 가지고 왜 거짓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게 어딜 봐서 1년 배운 실력이야.”

“그러게요. 어려서부터 배운 게 당연한데, 왜 그런 저급한 어그로를 끄는 건지.”

“뻔하죠. 천재라고 광고해서 떨어지는 콩고물이 그만큼 달달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옷 입는 꼬라지 좀 보세요. 테니스에 집중해야지, 지가 무슨 연예인이야? 학생이면 학생답게 단정하게 입을 것이지.”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노골적인 악의.

저 악담들만 들어도 알겠다.

그들이 바로 남궁혜지의 커리어 초기부터 졸졸 따라다녔던 극성 맘들이라는 것을.

자기 자식들 실력이 부족해서 지는 걸 왜 남궁혜지를 탓하는 건지.

글로 읽을 때도 답답해 미칠 것 같더니, 그 실체를 실제로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차마 참지 못할 정도로.

“다 큰 어른들이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내 입에서 낮고 거친 말이 새어 나왔다.

“뭐요? 방금 그 말, 우리 들으라고 한 소리에요?”

가장 가까이에 앉아있던 삐쩍 마른 몰골의 애 엄마가 눈을 표독스럽게 뜬 채 되묻는다.

집중되는 시선과 관심.

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럼 여기 뚫린 입이라고 애한테 질 나쁜 악담이나 퍼붓는 인간들이 댁들 말고 더 있습니까?”

“뭐라구요? 질 나쁜 악담?”

“당신 뭐 돼? 재수가 없으려니까, 진짜!”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딴 소리야!”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애 엄마들이 즉각 화를 토해낸다.

그럴수록 더더욱 관심이 모여든다.

그러자 옆에 앉은 세희 씨가 당황한 얼굴로 날 말린다.

“왜 그러세요, 갑자기.”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혹시 불의한 일을 못 참는 타입이셨어요?”

설마 그럴 리가.

그런 성격이었으면 변호사 못 하지.

오히려 그 반대다.

불의한 일을 누구보다 잘 참으니까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런 사실 관계는 별개로 이 자리에서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진 선입견이 분위기를 휘어잡는데 도움을 줬다.

변호사라는 말에, 움찔하는 극성 맘들.

그러니까 감히 내가 사랑하는 남궁혜지를 뒤에서 헐뜯으래?

에라, 모르겠다.

이참에 그냥 풀악셀 밟아 버리자.

“법무법인 아레스 소속 변호사 김선입니다.”

“벼, 변호사님이 여긴 왜······.”

“모르셨습니까? 남궁혜지 선수에 대한 무분별한 악플이 너무 심해서, 사이버 모욕죄로 곧 고소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고, 고소요?”

“사이버 모욕죄라니.”

극성 맘들의 얼굴이 대번에 붉게 달아오른다.

주변에서도 쑥덕대기 시작한 그때, 난 그녀들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께도 고소장이 날아갈 것 같으니, 추후 법정에서 만나면 되겠군요.”

“헙!”

“그, 그건!”

극성 맘들이 벌벌 떨든 말든 나는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옆에서 세희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당장은 보는 눈이 많아 그녀에게 이렇다 할 해명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입을 닫는 편이 나을 테니까.

그 순간, 내가 일으킨 소란이 제법 컸는지 멀리 코트에서 삐뚜름하게 서서 날 쳐다보는 한 소녀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

“······.”

남궁혜지, 내가 사랑했던 테니스 소녀.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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