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가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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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mmanbo39
작품등록일 :
2024.09.13 12:11
최근연재일 :
2024.09.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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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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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가을

DUMMY

*


이른 아침 7시 반, 유정은 핸드폰 시계를 보며 회사 건물로 들어섰다.


해가 짧아진 탓에 어둡고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가을 아침이다.


10월은 한경기획에서 각종 이벤트, 행사 준비로 한창 바쁠 시기다.


유정처럼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유정이 미처 말리지 못하고 나온 차갑고 축축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털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1층에 멈춰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유정은 지하주차장에서부터 올라온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무경을 보고 흠칫했다.


20층 이상의 고층전용 엘리베이터는 따로 있어, 별거 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경영지원 총괄이사인 무경이 이 엘리베이터를 탈 일은 거의 없었다.


유정과 연애할 때, 유정과의 결혼생활 때 종종 함께 탔던 엘리베이터였다.


이미 몸을 돌려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기에는 무경도,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다른 직원들도

불편한 공기를 알아차린 뒤였다.


유정이 홍보팀이 있는 13층 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층수가 적힌 전광판을 확인했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왜 이렇게 느리게 가.


엘리베이터에 있는 직원들이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만 바라보는 숨 막히고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13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뭐 어쩌겠어. 앞으로 안 볼 것도 아니고. 내가 적응해야지.


유정이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마음을 다잡아도 상사이면서 이제는 곧 전남편이 될 무경을 마주치는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무경과 비슷한 실루엣을 볼 때마다 티는 안냈지만 흠칫 놀랐다.


흔하진 않았지만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남자만 보면 무경일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3개월 결혼생활이 뭐 흠이겠냐 싶지만 이 좁은 조직에서, 유정과 무경의 사이는 직원들이 이야깃거리 삼기에 좋았다.


연애 때와 마찬가지로 그 둘은 사내 메신저에서 가장 핫한 토픽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정은 무경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줄어들었다.


당신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한 순간 꿈이었던 것 같아.


내가 다시 누군갈 사랑할 수 있을까.


유정은 웃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다.


*


무경이 차에서 내리며, 그의 비서 민협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경은 입사 시 한경기획 회장 아들임을 숨기기 위해 홍보팀 사원으로 들어왔다.


민협은 입사 시 친하게 지낸 동기이다.


무경은 자신을 제일 잘 아는 편한 민협을 옆에 두고 싶어 했다.


무경은 비서실 직원으로 민협과 선미 등을 두고, 운전기사도 따로 받지 않은 채 민협과 둘이 다니곤 했다.


무경에게 민협은 동기이자, 친구이자, 비서이자, 운전기사였다.


출근 길. 무경은 고층 엘리베이터가 운영을 안 하는 것을 발견하고 민협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근했어? 엘리베이터 운영을 안 하고 있네. 고장난건지.”


- 그래? 지금 시설팀에 연락해볼게.


둘은 다른 사람이 없을 때에는 예전처럼 편하게 대화했다.


무경은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뒤로 한 채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6개월 연애 때도, 3개월 결혼생활 때도 유정과 함께 출근할 때 탔던 엘리베이터였다.


유정과 별거 아닌 별거를 하게 된 후 처음 타는 3호기 엘리베이터였다.


무경은 유정과의 추억이 담긴 엘리베이터를 탄 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연애와 결혼 도합 1년이 안되지만, 둘은 뜨거운 사랑을 했다.


세상에 둘만 남아있듯 사랑했고, 두 사람은 그 사랑이 영원할 것 같았다.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1층을 알리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무경이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 당황한 기색의 유정이 엘리베이터를 타야할지 말아야할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유정과 눈이 마주쳤지만, 유정은 바로 무경의 눈을 피했다.


무경은 엘리베이터에 탄 유정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늘따라 유정의 뒷모습이 더 작고 힘없어 보여 무경은 심장이 저릿했다.


예전처럼 다가가 널 안아주고 싶어.


밥은 잘 먹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 물어보고 싶어.


너무 그리워 미치겠고,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어.


무경은 자신의 품에 안겨 밝게 웃는 예전의 유정이 너무 그리웠다.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도착할 때까지, 유정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랜 만에 마주친 둘이었다.


유정을 마주쳤던 무경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


8개월 전 홍보팀 신입으로 입사한 한 달차 유정은 야근하는 날이 대다수였다.


어느 새 오후 6시.


유정은 여느 때와 같이 남은 업무를 처리하려고 야근을 준비했다.


“벌써 6시네.. 막내 유정씨 한 달 기념으로 우리 팀 오늘 삼겹살이나 먹을까~?”


유정의 근무 한달차를 기념하겠다는 핑계로 홍보팀 이팀장이 직원들에게 삼겹살 회식을 권유했다.


업무도 사회생활도 의욕충만인 신입 유정은 팀원들의 모든 부탁에 무조건 예스였다.


“좋아요, 팀장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유정씨 벌써 한 달됐구나. 저녁 먹어야겠네.”


다들 팀장의 제안에 응하는 분위기 속,


“저는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혼자 사무실을 나가는 입사 3년차 무경이다.


대단하다, 대단해. 아무리 요즘 워라밸이니 MZ니 한다지만, 저 정도면 사회부적응자인지 의심되네.


한 달차 유정이 보기에 무경은 별종의 사회부적응자 같았다.


가끔은 소시오패스 같았다. 어떻게 저 성격으로 한경기획 홍보팀에 들어왔는지 의문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직원들은 한경기획 함회장과 성이 같은 무경을 보며, 동성동본전형이라는 게 있을 거라 떠들어댔다.


벌써 회식을 네다섯번 참여했지만 그 동안 회식자리에 무경이 참석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 무경씨는 가야지. 내일 보자고”


애초에 무경은 기대도 안했다는 팀장의 반응이었다.


*


혹여나 실수할까 하루종일 긴장하며 있던 한 달 차 유정이었다.


기가 빨린 탓에 목이 말랐는지 소주를 술술 들이켰다.


오늘따라 술이 더 달다.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요. 요즘 애들은 몰라도 질문을 안해요. 함무경 봐봐. 지 잘난 맛에 입 꾹닫고 있다니깐”


김경석 대리의 격려가 아무것도 모르는 한 달차 유정은 감사하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배워서 팀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두 세시간이 흐르고 안줏거리 없이 소주병과 맥주병만 속절없이 쌓이고 있었다.


“무경씨는 한 번을 참석 안하네.”


“처음 들어왔을 땐 밝았대요. 임혜주씨랑 스캔들 나고 나서 회사에 이런 저런 얘기 많았잖아요.. 그 때 이후로 사람들이랑 거리를 두는 것 같긴 해요.”


유정은 거침없이 터져나오는 무경에 대한 갑작스러운 정보들을 못 듣는 척 하느라 괜히 앞접시에 놓인 탄 삼겹살만 젓가락으로 휘적거리고 있었다.


사내연애를 했구나..


유정은 선배들이 주는 술을 다 받아먹은 탓에 진작에 취기가 올라 있었다.


그 와중에 임혜주라는 이름은 뭔가 뇌리에 박혀서 유정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누가 내 머리에서 미끄럼틀 타나봐.. 빙빙 도네..


유정은 내일 출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술에 취해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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