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님이 지도하는 서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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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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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작품등록일 :
2024.09.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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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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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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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나 전투 - 2

DUMMY



오도아케르의 군세가 서로마 제국의 수도에 다다르기까지 4일 정도.

나는 이 4일의 시간을 이용하여 최대한 준비를 성실하게 하였다.

이 4일동안, 라벤나 성 안의 당장 가용 가능한 병력을 조사하고,

전투에 쓸 수 있는 병기들과 도구들을 모으고, 그 외 전투에 나설 수 있는 시민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전투에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은, 라벤나에 주둔한 황제의 친위군단 5천명과,

라벤나 시민 중 자원한 성인 이상 남성 1천500명, 용병조약을 갱신하러 온 프랑크족 200명,

왕자의 지휘하에 라벤나를 마침 방문하러 온 동고트족 300명이었다.




도합 7천명. 이 병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노리쿰(현재의 오스트리아 부분)에 주둔한 2군단에 파발을 보냈지만,

위치상 이들은 빠르게 도착할 가능성이 없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인 오도아케르는,

현재 라벤나에서 겨우 며칠 내의 거리이기 때문에 사실상 2군단은 이번 싸움에서

도움이 되기 힘들다고 판단된다. 결국 근위군단을 포함한 7천명이 우리의 전력인 셈이다.

다행히 프랑크 용병들은 협조를 하겠다고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총 7천명. 그리고 오도아케르의 군세를 정탐하고 온 첩자의 보고로는,

오도아케르가 이끈 스퀴리족 부대와 그 외 로마군의 혼성군은 총 3만 2천명이라고 한다.

첩자의 정탐이 보고되자마자, 궁전 홀에서 나와 함께 보고를 받던 이들의 얼굴에 낭패감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말 할 수 없는 정적이 궁중 안을 마치,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휘감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7천 vs 3만2천이라 우리가 힘들어 보이지만,

우리는 수성자라는 이점이 존재한다. 공성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공성은 수성측이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게다가 우리는 적들이 진격해 올 동안

성에서 편하게 쉬면서 대비를 할 수 있다. 반면 적들은 이곳으로 진군하면서 그만큼 체력을

소모하기 마련이다.








물론 아군측에도 약점과 불안요소는 존재한다.




첫째로, 공격측보다 수가 훨씬 적다는 점이다.

아무리 수성측이 유리하다고 해도, 수가 많이 차이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 우리가 그 정도로 압도적으로 밀리지는 않지만, 확실히 열세라는 것은 사실이기에 방심할 수는 없다.




둘째로, 적군은 지금까지 서로마제국군의 주력 중 하나를 맡아오던 집단 중 하나라는 것이다.

반면 이들에게 맞서는 주력인 우리의 근위군단은, 저들에 비교하면 그 경력과 실전경험이 비교적 적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약점들을 이쪽은 중앙군인만큼 장비의 질도 좋고,

방어군이기 때문에 수일을 진군해올 적에 비해서 편안하게 체력을 아끼고 있다가 대응하는것 역시 가능하다.





-거, 왜 다 겁먹은 얼굴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싸우기도 전에 분위기가 왜 이럽니까?





내가 보다 못해 자리에서 일어나서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내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군인들, 그리고 사제들, 신료들, 원로원 의원들이

모두 나에게 주목한다.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섭정이었던 아버지의 등쌀에 이리저리 휘말리고, 별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었던 새파랗게 젊은 17세의 황제가, 갑자기 정신이 나갔는지 이렇게

패기좋게 자신들 위에 군림하고 갑자기 황제다운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들은 지금 나에게 아무도 뭐라고 대들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것이 나를 오롯이 이해하고, 온전히 인정한다는 뜻이 아닌 것쯤은 나도 안다.

이들은 지금 만약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자신들은 살아남기

위해 설정해야 할 희생양을 찾고 있었으며, 때마침 갑자기 자신들을 지휘하기 시작한

나를 그 희생양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 이 라벤나 성이 함락되고

오도아케르가 입성하면 나를 잡아 바칠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가 이기면 이들은 내 말을

군말없이 따를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전투로 인해 나 역시 총대를 멘 이상,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이거다.

이 전투를 어떻게 끝내느냐에 따라, 내가 모두에게 인정받는 황제가 되느냐,

혹은 원래 역사대로 서로마의 제위에서 끌어내려져 시골에서 쥐죽은듯이 눈치보면서

살게 되는가가 결정된다. 그리고 이왕에 본의는 아니지만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나는

당연히 후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잘 해보고 싶다. 그리고 역사 속에 불행한 마지막

황제로 알려진 이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에 대한 평가를 내가 노력해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명심은 아니다. 그렇다고 값싼 십원짜리 싸구려 동정심도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이 로물루스

황제에게 공감을 하고 내가 역사를 바꾸려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사람은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내 자신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생이 찌질한 실패인생으로

변하는 것은 사절이다.







-지금 쥐구멍이라도 찾는 겁니까? 하나 파 줄까요?







내가 소리치자, 궁의 홀 내는 적막감과 긴장감이 고요하게 감돌았다.

마치 침 삼키는 소리마저 꿀꺽 하고 들릴 것 같은 살벌한 긴장감이, 위화감 전혀 없이

자연스레 흘러가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수많은 눈들은 지금, 홀의 중앙에서 일어나

모두를 주목시킨 17세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즉 나에게 쏠려 있었다.





누군가는 오오..하고 감동한 눈길로,

누군가는 쟤 뭐야? 왜 나대? 하고 아니꼬운 눈길로,

누군가는 그래..어디 해봐라. 하고 체념한 눈길로,

누군가는 어디 한번 해 볼까? 하고 재미를 느끼는 눈길로.





수많은 빛깔의 눈들이 나를 쳐다본다. 제각각 수많은 생각을 가지고.

이들에게 나는 황제일까? 아니면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나대는 새파란

애송이일까? 아니면 젊은 날의 혈기에 미쳐서 생각없이 불 속으로 돌진하는

불나방 같은 멍청이일까? 어느 누군가는 돈키호테처럼 나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지금 할 일이 뭡니까? 우리들의 적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분명 적들은 얼마 전까지 우리 제국을 위해 노력하던 이들이었으며, 이들은

우리 제국군의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지금 우리의 적이며 우리를 위협하며, 우리를 없애려는 자들입니다.

가만히 있으시겠습니까?...





나는 말을 잠시 끊고, 맨 오른쪽, 군인들이 선 줄의 맨 앞에 서 있는 파울루스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아까 일갈을 좀 당해서 기가 죽어 있는 이 양반을 보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병대장님.



-.....아닙니다. 결코 용납 못합니다!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겠습니다!





파울루스는 목청이 찢어져라 할 정도로 큰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소리친다.

그 목청에 이 넓은 홀이 울릴 정도였다. 좋아. 내가 원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강의시간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할 때, 교수나 강사 입장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집중을 시킬 때 쓰던 방법이다. 이 파울루스처럼 열혈적이로 목청 큰 사람이

있다면 그 효과는 더 증폭된다.



파울루스의 대답을 들은 나는, 그 옆줄의 신료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맨 앞줄에 있던, 대머리에 짧은 튜닉, 붉은 색 바지를 입은,

인상 좋은 남자에게 나는 같은 질문을 하였다. 이자의 이름은 파비우스 레비테스 아엘리우스.

분명히 제국 행정부에서 일하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파비우스는 뜬금없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 눈을 살짝 피하려 시도하였다. 나는 이러는 인간일수록 더 지목하고 싶어한다.





-행정장관님.





나에게 지목당하자, 파비우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가를 잔뜩 찡그린 표정을 하면서

외쳤다. 애송이같은 황제가 짜증나게 하필 자신을 지목해서 기분이 나빴을까.

그는 표정 관리 따위는 하지 않은 체 눈가와 미간에 잡혀 있는 주름을 치우지 않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관상대로 기가 좀 쌔 보이긴 하다.





-저 역시 가문의 이름을 걸고 최선 다하겠습니다!





라고 그는 대답했다.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기기 싫어서인지, 조국을 위해서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나쁜 반응은 아니었다.



그 다음 성직자들이 위치한 줄로 고개를 돌린 나는, 적막이 지배하는 이 분위기

가운데, 다음 사람을 지목했다.





-거기 주교님.





적당히 성직자들 줄 중간 정도에 서 있다가 나에게 지목당한 이 사람은,

마침 이 라벤나의 주교 중 높은 위치에 있는 마테우스 주교였다. 키가 크고 길게 내려오는

사제복이 잘 어울리는 그는 파울루스, 파비우스와는 다르게, 자신이 지목되자 잠깐

당황하는 모습은 보였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폐하. 저 역시 로마인, 폐하 역시 로마인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로마인이 아닌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지극히 중의적인 대답의 의도를 나는 알 것 같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마테우스 주교의

말처럼 전부가 '로마 민족'출신은 아니다. 게르만 출신도 있으며, 이집트 출신, 카르타고 출신,

히스파니아(스페인) 출신, 갈리아 출신 등 다양한 출신을 가지고 있다. 주교가 가리킨 '로마인'은,

로마의 땅 안에서 로마 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폐하께서 저희 모두를 이끌어 주실지니, 저희 모두 폐하께 충성하여 우리에게 몰아닥친

시련과 악한 권세를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폐하의 모습에서

두려움 하나 없는 강인하고 영명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확실히 전의 모습과

다르신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폐하와 함께하시고 계시며, 축복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들은 폐하께 무조건적으로 협조하고, 따르겠나이다.





나의 당당하고 자신있는 태도가 좋은 인상을 주어서 그런 것일까, 마테우스 주교가

나에게 매우 긍정적인 대답을 하자, 마지막 줄에 있던 예전 로마 원로원의 장이었던

마리우스가 손을 들어 나에게 발언권을 요청하였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임으로

그의 발언권 요청을 허가하였다. 그는 즉시 모두의 앞으로 걸어나와 나와 신하들의

사이에서 모두를 바라보았다. 나이든 과거 원로원의 장이, 지금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과연 무슨 말을 하러 발언권까지 요청하여 앞으로 나선 것일까? 나를 비롯하여 모든 신하들의

눈은 마리우스에게 즉각 순차적으로 향하였다.





-여러분. 우리의 적들이 우리를 몰락시키러 음흉한 발톱을 세우고,

음흉한 속내를 드러낸 체, 작은 야생동물을 사냥이라도 하듯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적들은 우리 제국의 수도인 라벤나에 가까이 왔습니다. 적들의 진군은 빠르지 않지만,

우리의 불안감이 그보다 더 큰 모양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쥐구멍을 찾느냐고까지 이야기할

정도라면, 여러분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한 데 모여 이 궁전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을 정도가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두려우십니까? 물론 아군은 적군에 비해 열세입니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는 스스로 제일 먼저

우리를 격려하고, 우리에게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주려 하십니다. 그리고 적들에게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 계신 중신분들은 다 뭐 하는 겁니까? 젊은 황제폐하께서 최선을 다하고 계신데,

여러분은 그저 굳어서 뭐하는 거냐? 이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로마는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위기를 극복해 나가면서 살아 남은 나라입니다.

과거 위대했던 누마와 세르비우스의 시절, 그리고 카밀루스의 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보다 더 위급하고 더 급박한 시기가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이겨냈습니다. 강대했던 적인 한니발을 모두 기억하지 않습니까? 사자처럼 싸우던 그는 우리

로마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겼고, 그로 인해 우리 로마는 한때는 나라 멸망까지 걱정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이겨냈습니다. 불과 100년도 전에 수많은 적들이 우리를 노렸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내전까지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우리를 지휘하여

우리에게 승리의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수십년 전. 세계를 휩쓸던 대재앙이었던 아틸라와

훈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국 동부를 휩쓸고, 많은 게르만족을 채찍질했으며,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역병보다 더 무서운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그 무서운 역병을 우리 로마가 물리치지 않았습니까?





지체높은 전 원로원 대표의 연설에, 모든 신하들은 순간 침묵하며 그의 말에 빠져들었다.

그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로마가 겪은 모든 시련들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이겨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의 연설에 잠시 빠져서 정신이 멍할 정도였다.

역시 원로원 대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표정이 비장하게 변해가는 것도. 마리우스는 이것을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모두의 표정을 싸악 돌아보고 나서, 목소리 톤을 높였다.





-자. 그리고 지금도 시련이 도래했습니다. 오도아케르가 강병들을 거느리고, 이 라벤나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벌거숭이입니다. 주님 앞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나아간

모습과도 같이 말입니다. 우리와 오도아케르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사이를 가로막는 병력과 도움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걸 누가 해결해야 하느냐!

바로 여러분과 황제폐하. 즉 우리 모두입니다. 다행히도 황제폐하의 말씀처럼, 우리에게는

7천의 병력이 있고, 강력한 라벤나의 성벽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적들은 여기까지

이동해 오느라 지쳐 있습니다. 황제폐하께서 말씀하고 싶어하신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놈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틸라가 날뛰던 그 시절! 그리고 그 위대했던 한니발이 우리를 몰아세웠던 그 시절이 더

절망적입니까? 지금이 더 절망적입니까? 지금입니다! 여러분! 오도아케르가 아무리 무서워도

아틸라나 한니발만 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 서 계신 우리의 황제께서 마치, 아틸라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한 아에티우스 사령관이나,

한니발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였던 그 위대한 아프리카누스와 같은 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 용기를 우리에게 직접 불어넣어 주실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 황제폐하의 나이는 이제 17세입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 황제폐하보다 젊은 사람은 이 자리에 없습니다.





궁전 중앙 홀은 조용히 침묵만이 계속되었다. 열변을 토하고 있는 마리우스를 제외하고 말이다.

개미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침묵. 그리고 콩알이 굴러가는 소리와 귓밥이 귀에서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까 싶은 정도의 침묵. 그 가운데서 마리우스는 마치 헤르메스라도 빙의된 듯이 열변을 토했다.





-이런 황제폐하께서,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고, 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 앉아있는 여러분들은 뭐가 두려워서 지금 입다물고 남의 눈치들만 보는 겁니까?!

그래서 황제폐하께서 여러분에게 쥐구멍이라도 파 줄까 하고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다들 부끄러운 줄을

아십시오 제발! 조국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직무를 다하려는 이 청년에게, 다들 지금 무엇 하는 겁니까!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모두 일어나시오! 그리고 신분과 직책의 상하에 관계없이 무기를 잡으시오!

그리고 우리의 황제폐하를 따르시오! 흉적 오도아케르에게 함께 맞서시오! 나부터 제일 먼저 집에 가서

창과 검을 가지고 오겠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우리는 이길 수 있을 것이오! 폐하를 따르시오!







마리우스는 주먹을 꽉 쥐고 부르짖으며 열변을 토했다. 그 분위기에 모두가 압도당하고 있었다.

마리우스의 목소리는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지어야 하는 진중한 곳에서 말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컸고, 흥분과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야 할 때였다. 우리는 싸워야 했고,

우리는 이겨야 했다.





과거에 항쟁을 포기하고 힘없이 오도아케르에게 항복한 나약한 로물루스 황제는 없었다.

직접 자신이 신하들과 군을 지휘하고 오도아케르에게 맞서려고 준비 중인 '임페라토르'가

있을 뿐이었다. 마찬가지였다. 과거 476년에 과연 로물루스 황제가 항전을 결의했다면,

그 때도 마리우스가 그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런 연설을 하여 모두의 사기를 끌어올렸을 것이다.

과거의 476년과 지금의 476년의 차이는 오직 황제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그 황제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모두에게 용기를 주고 모두를 휘어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궁중 홀 안에 있던 신하들은 어느 새 아까처럼 굳어 있지 않았다. 모두들 오른손을 가슴 위로

올리고 결의를 다지면서 항쟁을 외치고 있었다. 과거 476년의 서로마 역시 이렇게 황제가 먼저

용기있는 모습을 보였다면, 오도아케르에게 무력하게 항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그것을 해냈다. 지금부터 역사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리우스의 열변을 듣고 결의를 다지는 신하들 앞에 다시 의연하게 걸어 나갔다.

마리우스는 나에게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고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금 모두의 앞으로 나온 나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리고, 모두가 긴장하면서 나의 말을 기다린다.

마치 중요한 결과를 기다리는 관중들처럼.





-우리는 오도아케르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항복은 없습니다. 싸워서 이길 것입니다.

나는 허언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뒤에 있던 시종에게 눈치를 주었다. 내 사인을 받은 시종은

고개를 숙이더니 잠시 후, 몇명의 다른 시종들과 함께 구 로마식 갑옷 한 벌과 망토 한 벌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들이 갑옷과 망토를 걸어서 내 옆에 세워 두자, 모두가 이 갑옷을 보고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순식간에 홀이 다시 시장통처럼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설마...저것은..?



-서..설마?



-말도 안돼...저게 아직 있었다고?



-지...진짜인가?





이쯤되면 신하들은 이 갑옷과 망토가 무엇인지 알아본 것 같았다. 사실 이 갑옷과 망토는 이 로물루스의

아버지인 오레스테스가 훗날 자신을 포장하여 사기를 치기 위해 구해 놓은 갑옷과 망토였다.

교활하기로는 남부러울 것 하나 없던 오레스테스가 비싼 돈을 주고 이 갑옷을 구해놓은 것은 어떻게 보면

진짜로 신의 한 수였는지도 모른다. 이 갑옷의 중요함만큼은 진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숨겨오고 있었지만, 나는...테오도시우스 대제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숨겨진 아들이자, 호노리우스 황제의 비서를 했던 갈리우스의

후손입니다! 가문에서 전해져오는 이 갑옷과 망토가 증거입니다!





그렇다. 로물루스의 아버지인 오레스테스가 거금을 들여서 구해놓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모셔놨던 이 갑옷은, 아니나다를까, 과거의 테오도시우스 대제(379~395)가 반역자 아르보가스트를

공격하고 처단하였을 때 직접 착용하였던 백은갑옷과 붉은색 독수리 문양 망토였다. 오레스테스가

이것을 어찌 구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지만, 이 갑옷과 망토는 감사하게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이제 말이 더 필요하지 않았다.



진위를 떠나서 기록에 나와 있는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갑옷이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이었다.

프로코피우스의 기록에 나와 있듯이 상당부분이 백은으로 되어 있어 번쩍번쩍 빛나는,

로마인이라면 누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그 갑옷이었다. 그리고 이 갑옷은,

나에게 곧바로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후손이라고 모두가 믿게 해 주었다.

이 시대에 과거의 향수를 불러올 유명인의 핏줄이라라는 것은 매우 큰 강점이자 무기이다.

이 사기극은 사실 오레스테스가 벌이려 했겠지만, 그러려고 갑옷을 준비했겠지만, 정작

이 갑옷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지출을 거나하게 한 오레스테스가 아니라 아무 관계도 없던

나였다. 하지만 이 갑옷 덕분에 나는 신하들에게 다시 한번 지지를 받을 수 있었으며,

모두의 의견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었다.





-황제폐하 만세!





로마 제국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축소되어 불안정하게 이어나가고 있는 이 때,

로마 제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재통합시킨 영웅의 핏줄이 나타났다는 것으로만도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위안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을 것이다.



물론 이게 질 나쁜 3류 사기극이라는 것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 결과만 나쁘지 않으면 돼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내가 살려야 하는 국가인 이 서로마제국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서슴없이 이러한 갑옷사기극을 꾸며낸 것이었다.



그리고, 아까 내 대신 열변을 토하여 모두를 감명깊게 만들어서 감동을 빌드업한

원로원 전 대표인 마리우스는, 사실 그저께 나에게 거액의 연금과 종신 원로원 의원

자리를 보장받은 바였다. 한마디로 지금의 이 감동의 도가니는,

마리우스를 시켜서 내가 짜고친 연극이었다 이 말이다.

하지만 양심은 찔리지 않는다. 이게 최선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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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되다. 24.09.13 6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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