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님이 지도하는 서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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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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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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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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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나 전투 - 3

DUMMY

-그대가 고트의 왕자 테오도릭이오?


-네. 맞습니다. '서부'로마제국 황제폐하.




이곳은 라벤나 궁정 안에 있는 귀빈접견실이다. 서로마제국의 국가 상황과는 전혀 딴판으로,

이 귀빈접견실은 호노리우스 황제(395~423) 당시 지어진 호화로운 접견실로, 방의 기둥을 비롯한

바닥들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며, 방 이곳저곳에 보석으로 장식한 기둥과 마감재들이 많이 박혀있는,

2020년대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사치스럽게 느껴질 여지가 매우 큰 호화로운 방이다.

역사상에는 한심한 군주로 이름을 거나하게 남긴 호노리우스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사치로운 방을

만들었는지는 기록이 따로 없어서 나도 알 수 없지만, 이 방만큼은 귀빈이나 국빈을 모실 때에 쓰기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 현재 귀빈인 동고트 왕자 테오도릭을 이곳으로 모셔온 것이다.



지금 접견실 안에 있는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는, 동고트의 왕자이자, 훗날 동로마제국 황제인

제노의 사주로 인해 동고트족을 이끌고 서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오도아케르를 공격하여

쓰러뜨리고, 이탈리아 땅에 동고트 왕국(493~553)을 세운 테오도릭 대왕(454~526)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역사서와 사료들에서는, 테오도릭이 476년 9월 초인 지금, 서로마 제국의 수도인

라벤나를 방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전혀 쓰여져 있지 않았다. 아마도 역사의 기록에서 누락된 것일 터.

이렇게 새로운 사실을 알아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직사각형 모양의 방 중간에 내가 앉아 있고, 앞에 길다란 테이블이 있으며, 나의 기준으로

왼쪽에 동고트 왕자 테오도릭이 있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음식을 나르는 시종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로마 시대의 만찬이나 접견은, 노예들이나 시종들이 음식을 나르고 주연들은

옆으로, 혹은 정면으로 누워서 만끽을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언제부터인가 없었고,

이 시대가 우리 현대인들이 알던 그 로마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닌, 그 이후의 시대라는

것은 확실히 실감이 났다.



동고트 왕자 테오도릭은 이곳 라벤나에, 휴가를 받아 이탈리아 지역으로 여행을 가려고 하던 차에,

동로마 측의 서신을 하나 전달하러 이곳 라벤나에 들렀었다고 한다.(이 편지는, 동로마의 황제인 제노가

잠시 궁정 암투 때문에 제위를 빼앗겼다가 다시 복위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는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인질로 있으면서 로마식 교육을 받았고, 동로마군에서 복무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훗날 동로마 황제 제노의 눈에 들어 동로마군의 사령관직(마기스테르 밀리툼)까지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훗날 동고트의 대왕이 되는 그가 476년 9월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매우 신기했었기 때문에, 나는 마치, 유명인을 접견하는 심정이 조금이나마 들고 있었다.

그래. 요새 유행하던 거...아이도루? 뭐시기...뉴진서인가...루 세라빔인가..그런거 말이다.



시종이 따라준 베네티아산 와인을 잔에 공손하게 받아 들며, 테오도릭은 나를 쳐다보았다.

22세의 젊은 동고트족 왕자는(참고로 그의 부친인 동고트의 테오더미르 왕은 475년에 사망했으며,

테오도릭은 아직 동고트 땅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왕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동로마에 머물고 있는 상태라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왕은 아니었다.)





-왕자와 고트인들의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바입니다. 그대들 고트인들은 우리 로마의

오랜 우방으로서 우리와 오랜 세월을 함께하고, 공동의 적에게도 맞섰던 적이 있지요. 오늘 이렇게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데도 왕자께서 우리를 마침 도와준다 하시니

참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로마인을 대표해서 테오도릭 왕자께 감사를 드립니다.



테오도릭은 내 말을 귀담아 듣더니, 잠시 멍한 무표정이 되었다.

뭔가 이런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한 것 같다는 기분일까?

아니면 로마 황제들은 모두 거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이런 말을 한 것이

황당하고 고맙기 그지없는 것이었을까. 혹은 그냥 벙쪄 있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테오도릭이 두 번째 감정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들고 있었다.

테오도릭이 우리를 돕겠다고 나서 준 것도 감사할 따름이니 말이다. 그와 그의 병력은

300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 상태에서 우리를 돕는 세력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것은

좋으면 좋았지, 싫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폐하.


-?



테오도릭은 갑자기 손에 든 와인잔 위에 눈을 갖다 대더니, 이내 금으로 만든 와인잔을

유심히 쳐다본다. 그리고 잠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나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의 푸른 눈은 마치, 범죄 현장에서 범인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으려는 마음에,

현장을 마치 바코드 인식 기계처럼 낱낱이 훑는 탐정의 눈 같은 느낌이 들고 있었다.

나는 순간, 이 20대 초반 젊은이의 눈 속에서 알 수 없는 회한과 의심, 놀라움을 복합적으로

한꺼번에 느끼고 있었다. 20대 초반 젊은이에게서 도저히 나오기 힘든 세가지의 감정이

마치, 마라탕 속에 섞인 재료들이 뒤섞여 특이한 향을 내듯이, 하나의 소용돌이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의외로군요.


-무엇이 말입니까?



테오도릭은 잠시 와인잔에서 눈을 떼고, 침을 꿀꺽 삼키면서 흐흐흐...하고 나지막하게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나지막하고 기계적인 웃음소리에서 자조적인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고 있었다.





-같은 로마지만, 동쪽의 로마와 서쪽의 로마의 대접이 달라서 말입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저는 고트의 인질로서 동쪽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마식 교육을 받고, 로마식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 출신은 고트이지만, 제 정체성은 로마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태어나기만 한 곳과, 이후 오랜 세월을 자란 곳이니 말이죠.



-하지만...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오랫동안 대우를 받고 자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질감이 드는 생활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저는 좋은 대우를 받을지라도,

로마에 있어서는 이민족인 고트의 왕자입니다. 그래서 만약 고트와 로마 사이가

악화되면 저는 어찌될 지 모르는 운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미묘하게 저에게 대하는

대접 역시 로마인들과 차이가 조금 있더군요.


-예로 들면.. 어떤 것 말씀입니까?


-아주 많습니다.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킨 테오도릭은 후우-하는 소리를 내면서 눈을 감고 와인을

음미한다. 그리고 와인잔을 내려놓더니 이번에는 악의 없어 보이는 순수한 웃음을

파란 눈동자 사이에 지었다. 그 웃음은 나를 향해 있었다.



-이런 사소한 와인도 말이지요. 동쪽 로마의 황제인 제노 폐하께서는, 저를 마음에

꽤 들어 하십니다. 연회에 초대도 자주 해 주시고, 신경도 써 주시고, 작위도 내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느낍니다. 그 속에 있는 위화감, 그리고 진실을 말이지요.


-진실이라 함은?


-저에게 내리는 연회에서의 와인은, 항상 로마인 고관들에 비해 낮은 품질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내리는 감미로운 향이 은은하게 맴도는 그 카파도키아산 와인은 저에게는 항상

불허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노 황제 본인이 쓰는 황금 잔 역시 저에게 허용된 적이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항상 느꼈으며, 그 의도를 알고는 있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로마의 수도에 있는 인질이고, 그들은 저를 언제든지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숙청할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지금 서부 로마의 황제폐하께서는

다른 모습을 기꺼이 보이셨습니다. 우선 저를 대할 때, 아랫 사람을 대하듯이 대하는 것이 아니고,

동료나 중요한 사람을 대하듯이 대해 주시는 그 태도부터 제가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제노 황제가 항상 저에게 관례적으로, 상징적으로 주는 그 신맛이 나는 구역질나는 와인.

지배층의 연회이면서도, 의도적으로 모두에게 보란듯이, 저에게만 형편없는 질그릇에 주는

형편없는 그 신맛나는 개같은 포도주....저는 그것이 싫었습니다.


분명, 로마에게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족속의 왕자인 저를, 문명국의 수도로 데려와서

양질의 교육과 군사훈련, 경험을 제공해 주었으며, 안전과 앞날을 보장해 줬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군데군데 조그만 데에서 보이는 속보이는 의식들. 마치 너는 나보다 아래임을 잊지 말아라.

하는듯한 그 말하지는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의식 말입니다.



분명 일리있는 말이었다. 동로마 황제 제노(474~491)는 역사가들도, 연구서에서도 역대 동로마

황제 중에서는 제일 권모술수에 뛰어난 축이었으며, 그로 인한 음험한 면도 많이 보인 황제였다.

그리고 제노의 출신은 소아시아의 이사우리아인 출신으로, 로마 시대에서는 게르만 족 못지 않게

야만인 취급을 받는 족속이었다. 그러한 족속 출신으로 태어나서 로마의 황제까지 된 인물이었으니,

그 자부심 못지 않게 자격지심 역시 상당히 큰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이었을까.


같은 '야만인'출신의 왕자인 테오도릭을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를 깔아 뭉개고, 자신보다

확실히 아래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것이다. 그럼으로서 로마의 우위, 나아가 자신 개인의

우위를 테오도릭에게 새기려 한 것으로 느껴진다. 나는 제노의 심리가 이해 감과 동시에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깨달았다. 제노에겐 아쉽게도, 테오도릭은 결코 그런 수준낮은 가스라이팅으로

굴복하고 승복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를 그렇게 대한 동쪽 로마의 황제폐하와 달리, 폐하께서는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으며, 저에게 선심껏 사심없이 폐하 자신이 마시는 와인과 같은 고급 와인을 따라 주셨으며,

폐하가 마시는 것과 같은 황금 잔을 내 주셨습니다. 로마의 황제라는 존재가 이러한 대접을 한다는

것을, 동쪽 로마 황제 폐하에게서 항상 그런 대접을 받아 온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아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와인과 잔을 유심히 쳐다보던 이유는 다 그 때문이었습니다.

무례를 저질러서 죄송합니다. 폐하.



지금 테오도릭이 한 말은, 역사서에는 적혀있지 않은 내용이었다. 이 시대의 기록들 중 다수가

소실되어 현대에 전하지 않은 것이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테오도릭의 입에서 직접 나온

이 말은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전(前) 직업병인 모양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역시 동로마 황제 제노는 음험하고 간사한 인물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으며, 테오도릭에게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닙니다. 제노 황제폐하께서 그러하신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요.

제 짧은 마음으로 그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하지만 여기는 동쪽 로마가 아니라, 서쪽 로마입니다.

그리고 서쪽 로마의 황제는 나입니다. 내가 통치하는 곳에서는 나의 생각, 나의 법도대로 대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고작 '야만족' 출신이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트 출신이지만 로마를 위해 일하고 로마를 위해 헌신하는 그대의 모습은

언젠가 정당하고 합당한 대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까 폐하께서 중앙 홀에서 관료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폐하 나름의 능력으로 치켜 올리고, 그들에게 선대의 유물을 보여

주심으로서 사기를 올리어 하나로 만드신 그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폐하께서 권신, 권력가인 아버지의 손에 오른 황제라고 해서 폐하가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처럼 별 거 없는 쭉정이같은 인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폐하의 그러한 용감한 모습을 보니, 아. 내가 잘못 알았구나. 역시 사람은 만나봐서

직접 이야기를 해 봐야 아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까의 모습 진심으로 멋지셨습니다. 정말로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후손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한 멋지신 모습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응, 그거 사실 뻥이고 사기극이야.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미소를 지으며 테오도릭에게 건배를 권하였다. 테오도릭은 고개를 숙이고

나에게 잔을 받아 마신 후,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사실 그래서, 이 라벤나 성에서 전투준비를 한다고, 외국인들이나 손님들에게도

협조요청을 할 때, 부하들과 그냥 달아나 버릴까도 생각했었습니다. 지휘하는 자가

별로면 질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하지만 폐하의 위풍당당한,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후손다운 모습을 보자 저 역시 폐하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폐하께서는

이곳 라벤나로 쳐들어오는 오도아케르를 맞아 싸우신다고 하셨으니,

저와 제 부하들역시 폐하를 위해 힘껏 싸우겠습니다. 오도아케르는 사실 저희 고트에게도

원수같은 이입니다. 그런 자와 폐하께서 싸운다고 하시니, 도우지 않을 수가 없지요.




역사에 따르면, 동고트족과 오도아케르의 종족인 스퀴리족은 상당한 악연으로 얽혀 있었다.

오도아케르의 아버지 에데코는 고트족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테오도릭의 큰아버지

발라미르 역시 이어진 오도아케르와의 전쟁에서 패사한다. 그리고 그 직후, 뒤를 이어 왕이 된

테오도릭의 아버지 테오데미르에게 크게 패한 이후 오도아케르는 부족과 함께 서로마로 달아나

서로마 군대에 종군했으며, 서로마 내에서 많은 공을 세웠으며 사령관직에까지 오른 것이었다.

이처럼 동고트와 오도아케르의 악연이 상당히 얽혀 있었기에, 동고트 왕자 테오도릭이 오도아케르에

맞서 싸운다고 하는 지금,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다음 날.



-폐하! 보고드립니다! 오도아케르의 군이 라벤나에서 도보로 하루 거리까지 진군해 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이른 아침부터 황급하게 달려온 전령.

전령은 다급한 소리로 오도아케르의 군이 도보로 이곳에서 하루 거리까지 왔음을 밝혔다.

궁의 회의실 역할도 겸하는 라벤나 궁전 중앙홀에 있던 모두가 꿀꺽 하고 긴장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무력하게 성문을 열었던 라벤나와 다르다.

황제인 내가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으며, 성 안의 7천명의 병력들에게 모두 전투준비를

철저하게 지시하였으며, 갑옷과 전투 물자, 성벽의 보강을 철저하게 지시했기 때문이다.




-놀랄 것 없다. 예상하던 바이지 않는가?



나 역시 드디어 겪어 보는 전투의 전조현상에, 오랜만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긴장감을 느꼈다.

한국전쟁 이후 내가 직접 겪고, 참전한 최초의 전투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긴장한 기색을

완벽히 감추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대범하게,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돌려, 기병대장 파울루스와 근위군단장 콘스탄티누스, 보병대장 킬데리크를 쳐다보았다.

로마식의 투구에 중갑을 차려입은 세명이 나약함 따위는 보이지 않는 자신있는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옥좌에 앉은 나 역시 전혀 겁먹은 기색 없이. '응 왔어?' 하는 듯 자신있는 태도를 보인 결과이리라.



-백부님. 말씀드린 준비는 모두 되었습니까?


-예. 황제폐하. 모든 기병이 준비되었으며, 백성들과 상인들에게서 징발한 말을 합쳐서 기병대는 총 793명

준비되었습니다. 카타프락트는 준비된 마갑을 최대한 동원하여 500명 선까지 갖추어 놓았습니다.

훈족 기병 200기, 그리고 100기정도는 고트 왕자 테오도릭이 지원한 고트 기병대입니다.


-좋습니다. 해당 마갑들이 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카타프락트를 만들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분명 적군측에는 기병이 적을테니, 기병들의 활약 역시 기대하겠습니다.


-최선 다하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내 시선이 그 옆에 있는 근위군단장 콘스탄티누스에게 향하자, 콘스탄티누스는 한 팔을 앞에 하고

한 무릎을 꿇는 로마식 예법을 취한 다음 한 쪽 무릎을 꿇은 그 상태로 나에게 보고하였다.



-전 근위군단 준비완료 되었습니다. 전원 로리카, 세그먼타타에 갑옷을 지급하였으며, 전원 스파타,

헤비 스파타 도검을 지급하였습니다. 근위군단은 이 라벤나와 황제폐하를 지키는 군단으로서, 전원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사자처럼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황제폐하.


-전투는 아마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 아침이 지나면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폐하. 놈들은 먼 길을 걸어 행군한 까닭에 아마 그리할 것입니다.


-근위군단들은 내일 새벽까지는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내일 동틀 무렵에 모두 성벽 위로 올라와서 성벽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폐하!




근위대장 콘스탄티누스 옆에서 로마식의 검은 투구,갑옷과 검은 바지를 입고, 한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리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외눈박이 전사 킬데리크가 그 다음 나에게 보고하였다. 그는 프랑크족 출신으로,

클로비스 1세와 후계를 두고 경쟁하다가 계승싸움에서 패배하여 서로마로 귀순한 장군이다. 서로마군에서 복무한 시간은

엄청나게 길지 않지만, 서로마군을 거느리고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하여 모두가 신뢰하는 장군이었다.

나 역시도 그를 신뢰한다.



-근위군단을 제외한 나머지 보병들을 모두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시키신대로 3일동안

사력을 다하여 라벤나 시내의 모든 대장간과 상점들, 석궁 장인들을 동원하여 석궁 화살을 최대한 만들었습니다.

아. 지금도 만들고 있을 겁니다. 내일 아침까지 최대한 만들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시키신 대로,

방패를 석궁병들에게 지급하여 몸을 보호함과 동시에 엄폐물로 삼도록 지시했습니다. 처음 듣는 전술이지만,

석궁병들에게 지시하니 모두가 놀라워했습니다. 저희들 모두 이번 전투를 자신있어 합니다.



사실 이 석궁병들에게 지시한 전략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유명했던 제노바 석궁병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단순한 전략으로도, 석궁병들은 장전이 오래 걸린다는 석궁의 약점을 어느정도 상쇄할 수 있으며,

엄폐물을 스스로 만듬으로서 생존률이 더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근접전을 대비하여 석궁병들에게는

그동안 보병의 제식무기가 스파타(길고 넓은 검)로 바뀌었던 때에 퇴역했던 검들인 글라디우스(과거

로마제국 보병의 주무기. 스파타에 비하면 짧은 검이다.)를 지급하도록 하였다. 능력이 되는 자들에게는

손도끼나 스파타를 개인이 사용하는 것도 허가하였다.



나는 말을 남기고 잠시 방으로 들어가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갑옷을 입고 나왔다.


대제가 직접 입었던 백은 갑옷과 아퀼라(로마의 상징인 독수리)가 그려진 붉은 망토.

이 몸의 주인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어렸을 때부터 지배층이어서 그랬는지,

잘 먹고 잘 자라서 이 시대 인물치고는 키와 체구가 커서(약 170cm정도.) 다행히 대제의 갑옷이 잘 맞았다.

대제의 갑옷을 입고 나온 나를 보자, 중앙홀에 있던 모두가 오오! 하고 경외심 섞인 탄성을 지른다.

나는 그들의 앞에 서서 내 허리에 걸려 있는 대제가 과거 사용했던 길다란 스파타를 머리 위에 뽑아들고

모두에게 외쳤다.




-들으시오! 전투는 이제 곧 시작합니다!


흉적 오도아케르의 마수가 이 성스러운 로마의 수도 라벤나에 몰아닥칠 것이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모든 계획과 작전을 세워 놓았으며,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이 로마를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우리의 신의를 저버리고 우리에게

칼을 거꾸로 든 자들을, 단죄하기 위해,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직계후손인 내가 이곳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놈들은 우리를 우습게 보고, 난공불락의 요새인 이 라벤나로 겁없이 기어들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고, 대제의 후손인 내가 직접 지휘하는 이곳은 반역자 따위에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충분한 준비를 갖추었고, 충분한 대의를 갖추었습니다!

우리의 사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하늘을 찌르고, 우리는 이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싸우시오! 여러분! 황제(임페라토르)인 내가 여러분을 이끌겠습니다! 나를 따르시오!

내가 여러분의 선두에서, 숨지 않고 싸우겠습니다! 나를 도와주시오!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흉적에게서 이 로마의 수도를 지킵시다!



나는 약속하겠습니다! 절대로 이 수도를 지키기 위해 꼴사납게 뒷걸음질치지 않을 것을!

그리고 이 전투의 제일 위험한 부분에서도 제일 위험한 지점에서 용감히 사자처럼 싸울 것을!

여러분에게 싸우라고 명령해 놓고 나는 뒤에서 편하게 승전보만 기다리지 않을 것을!

그리고!......테오도시우스 대제 이후 임페라토르의 의미를 실천하는, 전투에 직접 나서는

황제가 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나를 모두 믿어 주시고! 함께 합시다! 함께 이깁시다!

함께 이기고 모두 함께 어우러져 축배를 듭시다!!!



주먹을 꽉 쥐고 한 손으로는 검을 치켜든 나를 향해, 관료, 군인, 사제, 용병, 시종들, 노예들

할 것 없이 모두가 일어서서 오른손을 위로 높게 쳐든 로마식 경례를 행한다.

그리고 그 경례한 손들이 모인 손 끝에, 모두의 손으로 이루어진 토대 위에 서 있듯이 내가

서 있었다. 마치 진짜 과거의 테오도시우스 대제를 보듯이, 그들은 모두 굳건한 표정을 지으며,

결의에 가득 찬 얼굴을 하면서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로마 인빅타!(ROMA INVICTA : '패배하지 않는 로마'라는 뜻. 로마군의 구호 중 하나.)







내가 높게 소리쳐서 유서깊은 로마군의 과거 구호를 외치자, 모두가 나와 함께 한 덩어리가

되어 어우러져 함께 힘껏 외친다.




[로마 인빅타!!!! 가자!! 싸우자!!!! 이길수 있다!!! 와아!!!!]




어느새 홀 내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과거 잘 나가던 시절의 로마 제국이

적에게 호기롭게 선전포고를 하는 그 시절의 장면처럼 말이다.

로마 제국의 서쪽 반쪽의 종말이 이루어진 476년 9월. 마치 로마 제국이 과거로

돌아간 듯이 느껴지는 이 용기와 패기, 그리고 감투정신이 갑자기 되돌아왔다.


모두에게 전설로 남은, 로마를 구해냈던 테오도시우스 대제 이후로 처음 느끼는 감정이리라.




서글프게도, 로마의 정신은 대제 이후 역사 속에 자취를 감추고 고요하고 끝없는 봉인 속에

스스로를 내던졌었지만.


놀랍게도, 여기 등장한 17세의 젊은 황제에 의해 다시 스스로의 봉인을

풀고 역사 위로 다시 등장하여 자신을 알리기 위해 그 열정적인 옷깃을 여미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여기의 모두는 젊은 황제에 의해 다시 그 시절의 정신을 모두가 신의 전율을

느끼고 신을 찬미하듯이, 온몸으로 다시 받아들여 느끼게 되었다.



역사상 서로마의 위대했던 사령관인 스틸리코, 콘스탄티우스 3세, 아에티우스, 마요리아누스가.

모두 그렇게나 녹슬어 있던 로마에 다시 되돌리고 싶어 했던, 로마인이라면 누구나 애타게,

신을 부르듯이 그리워했던 그 감정이,





드디어.





경험 하나 없는 새파란 애송이에 불과한, 혜성처럼 갑자기 등장한 황제에 의해 부활했다.




4세기의 위기 이후 녹슬어만 가던 로마 제국의 시계바늘이 드디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녹슬어 잠들어 있던 거신의 눈에, 갑자기 생명력을 상징하는 빛이 도는 것처럼,


서로마 제국은 갑자기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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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수님이 지도하는 서로마 제국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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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라벤나 전투 - 9 24.09.15 20 0 14쪽
9 라벤나 전투 - 8 24.09.14 40 1 24쪽
8 라벤나 전투 - 7 24.09.14 33 0 16쪽
7 라벤나 전투 - 6 24.09.13 46 0 19쪽
6 라벤나 전투 - 5 24.09.13 33 0 28쪽
5 라벤나 전투 - 4 24.09.13 36 0 26쪽
» 라벤나 전투 - 3 +2 24.09.13 49 0 24쪽
3 라벤나 전투 - 2 24.09.13 52 0 21쪽
2 라벤나 전투 - 1 24.09.13 64 0 18쪽
1 교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되다. 24.09.13 6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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