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님이 지도하는 서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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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미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4.09.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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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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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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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라벤나 전투 - 8

DUMMY

보인다.



테오도릭의 좌익이.



보인다.



슈리의 우익이.





내가 지시한 두 날개들은 오도아케르군의 진영 양쪽으로 향하여, 불을 지르고

최대한 놈들의 진영에서 난리를 치고 오라고 한 명령을 철저하게 수행하였다.

좌익은 좌익대로, 우익은 우익대로 모두 성공한 모양이다.



솔직히 걱정하고 있었다. 테오도릭도, 슈리도.

하지만 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외로 역전의 용사였던 모양이다.

동고트의 왕이 장차 될 테오도릭은 실제 내가 아는 역사에서도 야전지휘에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슈리 역시 훈족의 용병대장인만큼 나름의 실력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뿔나팔을 불 때, 이 둘이 이끄는 군세가 적에게 당하면 어떡하는가?

혹은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지 못한다면 어떡하는가? 하는 걱정을. 나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뿔나팔을 첫 번째 울릴 때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터지고 곧 적진에 찬란한

불꽃이 폭발하듯 터져 나올 때, 그리고 두 번째 뿔나팔이 울릴 때 혼란에 가득 빠진

적진을 뚫고 이들이 놀라운 기세를 보여주면서 적진에서 달려 나오는 것이 내 눈 앞에

보였다. 땀에 젖어 엉킨 머리카락, 피가 튀어 여기저기에 데칼코마니를 만든 것 처럼

무질서하게 찍혀 있는 핏방울, 불의 열기로 인한 그을음과, 더러 보이는 여러 자상들.

모두들 지쳐 보였으나 신속하게 움직였으며, 작전을 빈틈없이 잘 수행해서 적진에서

빠져 나와주자,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현재 내가 포함된 아군은 적의 진지 정면을 바라보고 낮은 자세를 취하며 숲과 나무들

사이에 매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오도아케르의 진지에 붙은 불을 등지고 있는 곳이라,

비교적으로 밝은 불빛의 뒤쪽. 불빛의 이면이 만들어 낸 그림자 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계산에 의하면, 테오도릭의 군세가 이제 아군의 오른쪽으로, 슈리의 군세가

아군의 왼쪽으로 각자, 처음 시작한 곳에서 정반대의 위치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테오도릭과 슈리를 따라오는 적들은, 양쪽으로 재빨리 빠져버리는 테오도릭과 슈리의

군세를 쫒다가, 적의 진지 정면 앞에서 서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폐하. 테오도릭 왕자와 슈리 대장의 병력들이 모두 돌아왔습니다.




근위대장 콘스탄티누스가 상당히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리 본대의 좌익에는 슈리의

군세가, 본대의 우익에는 테오도릭의 군세가 위치해 있었다. 나는 전령을 불러, 양익의 병력들은

적들이 작전대로 서로 싸우게 될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으라고 지시하였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적진 동쪽과 서쪽에서 나와서 적진 중앙까지 이끌려나온 적들이 야음을 틈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서로 적으로 알아보고 팀킬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짠 전략의 분수령이었다.


적들을 양쪽 방향에서 끌어내서, 어두움 속에서 양쪽에서 서로 우리 군세를 따라오게 만든 다음,

우리 군세를 재빨리 사라지게 한다면, 적은 서로 양쪽 반대방향에서 몰려온 군세를 적으로 착각하고

팀킬을 벌일 것이다. 내가 이런 전략을 짠 이유는, 공교롭게도 놈들 역시 로마군이었으며,

로마의 갑옷와 로마의 군복, 로마의 깃발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란을 일으킨 오도아케르와

스퀴리족 및 오도아케르의 군사들 역시 원래는 로마군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군복,갑옷, 무기는

우리랑 똑같은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놈들과 우리의 피아식별은 힘들테고, 대낮같이

밝은 때에도 그것은 힘들텐데, 이렇게 야음이 커튼처럼 달빛을 부분부분 가리고 있는 새벽에는 오죽할까.

적도 아군도 모두 로마 복장. 나는 이것을 노린 것이다.



그렇다면, 정면에서 놈들을 공격하기 위해 대기중인 우리 근위군단 역시 헷갈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근위군단은 잘 손질된, 번쩎번쩍 빛나는 철제 갑옷을 모든

병사가 갖춰입고 있다. 그리고 검은 망토를 전원이 갖추어 입었기 때문에, 근위군단끼리

서로 엉키거나 피아식별을 못 할 이유는 없었다. 남은 2천명 역시 테오도릭과 슈리의 지휘하에

특수한 깃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덜 헷갈릴 것이다.



하지만 로마군의 장비와 깃발을 선택지 없이 그냥 그대로 갖다 쓸 수밖에 없는 오도아케르의

군은 이 면에서 우리에게 이미 한 수 지고 들어간 것이다. 어찌 보면, 로마의 한 군. 자신

휘하의 로마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오도아케르에게 있어서 약점일 수 밖에 없는 점이다.




나는 조용히, 내 옆에 있는 킬데리크와 콘스탄티누스, 파울루스를 불렀다.

세명의 표정은 모두 동일했다.



마치, 큰 전투를 앞두고 있는, 비장한 각오를 다진 마지막 전사처럼.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라도 나가는 국가대표 선수와도 같은, 편한 분위기 없이

잔뜩 긴장되어 있으며 결의가 잔뜩 느껴지는 표정들이다.


세명의 굳은 표정과 꽉다문 입술은 그들의 결의를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들의 얼굴에 흐른 식은땀과 진지해 보이는 표정은 그들의 비장함을

나타대고 있었으며, 그들의 표정은 나의 얼굴을 보자 조금씩 풀어진다.



그 이유는, 작전이 완벽하게 잘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몰랐으리라. 풋내기에 불과한 내가 낸 작전이 이렇게 잘 통하리라고는.


그들도 몰랐으리라. 슈리와 테오도릭에게 지시한 작전이 이렇게 성공하리라고는.


그들은 이제 알게 되리라.나로 인한 승리의 기쁨과 승리의 열매를 말이다.




나의 부름에, 세명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동시에 네. 하고 짧고 굵게 대답한다.

그들의 눈빛에서, 내가 내릴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한껏 느껴진다.

그들의 눈빛에서 우리의 대적을 어서 도륙하라는 지시를 내려달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자. 아까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논의한 대로 갑시다.


우선 보병대장. 석궁병들에게 화살통을 모두 풀라고 지시하시오. 그리고 석궁병을

전부 선두에 세우고, 그리고 곧 놈들이 자기네들끼리 어둠 속에서 싸우기 시작하면,

내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발사할 수 있는 모든 석궁 화살을 놈들에게 퍼부어 버리시오.

자비도, 용서도, 관용도 필요 없소. 반란군인 놈들에게 내가 내릴 수 있는 것은,

심판의 화살 뿐이오.



-예! 그리 하겠습니다! 황제폐하!



-그리고 기병대장.



-예. 폐하. 말씀하십시오!





아까까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리고 편하지 않은 속을 어린 조카에게

내보였던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파울루스는 진지하고 투지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까의 설움과 슬픔, 회한은 다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내가 잠시 말을 않고 파울루스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자, 파울루스는 오히려 나에게

한번 더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폐하. 모두 떨쳐버렸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제 동생이자 폐하의

아버지의 복수를 할 때 아닙니까? 제가 용맹한 사자처럼 날뛰어, 놈들의 진영을

모조리 부숴 버리겠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그 대답을 들은 나는 왜인지 한결 안심이 되었다. 예감이 좋다.





-기병대장. 카타프락트 300기를 인솔하여 선봉에 서십시오. 그리고, 우리 석궁병들이

화살을 다 쏘고 나면 내가 돌격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그 때 놈들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어서,

놈들을 모두,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쳐 밟아 주십시오.



-오오! 폐하!! 기다리던 말씀이옵니다!! 제가 반드시 놈들을 찢어버리겠습니다!

그리고 쳐 밟아 버리겠습니다!!!







황제의 입에서 찢어버리다, 쳐 밟아 버린다. 라는 비속어에 가까운 말이 나오자,

좌중의 장교들과 병사들 모두가 잠시 멍하니 나를 쳐다본다.

그 모두의 시선에 잠시 멋쩍어진 나는, 헛기침을 한 번 으흠. 하고 하면서 말했다.





-황제도 인간입니다. 나도 한 성깔 하는 사람입니다. 숨기고 있었을 뿐이죠.



......





아. 그리고 보병대장. 근위대장. 두 분은 화살을 쏘고, 우리의 기병대가 놈들에게

돌격을 하여 아수라장을 만들어 놓으면, 그 즉시 모든 중보병들, 군단병들에게

돌격명령을 내리시오. 아군이 아닌 놈은 모두 도륙내도 좋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보병대장과 근위대장으로 화두를 옮겼지만, 이미 장교들과 병사들은 내가 비속어를

난무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이상하게 비춰질지, 아니면 오히려 친근한

인간다운 황제의 이미지로 보일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무렴 뭐 어떤가? 큰일나는 것도 아니고, 될 대로 되라지 뭐.

인간적인 모습, 허물없는 모습을 보이는 황제 역시 나쁜 모습은 아니지 않는가?

꼬우면 뭐, 테오도시우스 대제께서도 욕 잘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물론 진위여부는 내 알바 아니지만 말이다.





금방이었다.


적군 진지 앞은 어느 새 적들의 전투로 피비린내나는 팀킬이 화려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슈리와 테오도릭의 뒤를 열심히 따라온 적들은, 불이 붙어 있는 적진 지점에서 점점 멀어지자

이제는 어둠 속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분노에 가득 차서, 자신들과 자신들의 동료들을

공격하고 살육한 우리 병력들을 열심히 쫓아온 결과였다.





[와아!!!!]



[죽여라!!!]



[이 비겁한 놈들!!!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와아....황제폐하...작전이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보병대장 킬데리크가 넋을 놓은 듯이 진영 앞에서 팀킬을 열심히 하는 적들을

바라보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둠을 이용하여, 진영 좌우로 빠져나와 우리 군을

쫓은 적들을 서로 적으로 오인하게 만든 다음 서로 죽이게 하는 전술은 너무나도 잘 먹혔다.

다만 마음아픈 게 하나 있다면, 저들 역시 얼마 전까지 로마군이었던 자들이다.

로마군의 스퀼라 깃발 아래에서, SPQR 깃발 아래에서, 카이로 깃발 아래에서 십자가를 걸고

로마의 적들과 싸우던 자들이었다.





비록 그 수장을 따라 정부에 칼을 겨누었을지라도, 저들이 입고 있는 로마의 갑옷과

로마의 의복, 저들이 들고 있는 로마의 깃발이 서로에게 향하여 서로를 죽이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내가 로마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차마 지켜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냉정해져야 할 때이다. 저들은 우리 로마를 위해 일했던 이들은 맞지만,

동시에 우리 로마에 자신들의 사령관을 따라 칼을 겨눈 반역자들이다.





내가 있던 현대에는 모를까, 고대와 중세에는 반역자에 대한 처벌은 극형이었다.

왜냐하면 왕정이 주로 유지되던 정치사회에서, 정부에 칼을 들이민다는 것은 결국

통치체제를 바꾸겠다는 엄포나 다름없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차원에서 어쩔 수 없더라고 반역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 역시 이 시대에 녹아들게 된 이상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나의 재량을 어디까지

발휘할 것인가. 그 차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병사들 역시 작전이 기막히게 잘 맞아 떨어져 저 앞에서 적군들이 서로 죽어라 싸우는

것을 보자 말을 잃었는지, 침묵을 유지하는지 단 한사람도 입을 열거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좌익에 위치한 슈리도, 우익에 위치한 테오도릭도 마찬가지였다. 콘스탄티누스도, 파울루스도.

모두가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든 아수라장, 아비규환을 보고 잠시 숙연해진 듯이 말을 잃고

저 살육의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자신들과 같은 로마군이었던 이들이, 이초록 처참하게 계략에 말려,

자기네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살육극을 펼치는 것. 그것을 바라보아서 그랬으리라.

내 눈앞 저 멀리에, 처량한 몸짓으로 피바람을 받아 위태롭게 흔들리는, 적들이 들고 있는

로마의 군기, 독수리 모양의 아퀼라와 용 모양의 드라코가 마치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기분마저 들어 이들의 눈물이 내 마음 속 깊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왜 우리를...



왜 우리를...



왜 우리를 이렇게 슬프게 만든 겁니까.....



왜 로마군들이 서로 이렇게.... 우리를 들고 살육을 하는 겁니까....



우리는 자랑스러운 로마의 깃발인데....왜...



왜....



왜....



왜........





왜!!!!!!!







이러한 로마군끼리의 잔인한 살육극에 우리가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이들의 동료살해를 독려해야 하는 겁니까아!!!!!!!!!!



황제폐하!!! 폐하께서 이리 만든 거 아닙니까!


폐하께서 힘이 없어서, 나라의 분열을 막지 못해서!!!


폐하께서 멍청하고 우둔한 아비를 두어서 그런거 아닙니까!!!





하는 절규와 한탄, 그에 따른 토로를 마치, 황제인 나에게 쏟아내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에 있는 아퀼라 깃발의 독수리 눈동자를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로마인이 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얼굴이

새빨개져 울음이 나올 것 같은지 내 자신을 알 수가 없었다.



화염과 함성, 고함, 피비린내 속에서, 로마의 군인들에 의해 광이 나고,

로마의 군인들에 의해 애지중지되고 사랑받으며 로마의 군기로서 자랑스럽게

휘날렸던 저 스퀼라와 드라코는 왜 저렇게 울고 있을까.


화려하게 타서 이제는 장작에서 숯이 되고 있는 목책들.

그리고 그 인근에서 로마의 갑옷을 입고.


로마의 군복을 입고.


로마의 깃발을 들고.


로마의 무기를 들고 동족끼리 벌이는 살육전.



쳐다보기 힘든 슬픈 모습이었지만 저들은 반역자이다.

저들 역시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친족이 있다.



누구는 한 가정의 아버지일테고,


누구는 한 가정의 아들일테고,


모두가 귀한 자식 혹은 귀한 부모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귀중함과 인간의 정이.



반.


역.


자.




이 무정하고 잔혹한,


암흑의 자비를 베푸는 만능의 세 글자에 의해 부정된다.


이들의 운명도, 인생도, 미래도 모두가 부정된다.



하지만 나는 행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명백한 반역자이며, 나는 유감스럽게도 이들을 제압해야 하는

황제이다. 내 병사들, 내 장군들, 내 신료들 역시 귀중한 아들이자 아버지이다.



어쩔 수 없지만...나는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전쟁과 동족상잔. 그리고 의미없는 살육극은 전생에서도 봐 왔다.


일본의 멍청한 전쟁. 그리고 우리 민족끼리의 슬픈 전쟁에서 신물이 나도록 봤다.

나는 그 두 번 모두 당사자에 속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곳으로 넘어와서도 나는 또 당사자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나는 황제이고, 나에게는 책임감이 존재한다.



나는 나의 제국을 살려야 하고, 나의 신료,장군,병사,백성들을 살려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격파된다면 라벤나 성은 함락되고 유린당할 것이다.

그러면 역시 수많은 인명피해가 나고, 날카로운 비명과 통곡의 오라토리오가 하늘의 배꼽을 찌를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 꼬라지는 보기 싫다.




나는 곁에 있던 킬데리크에게 손을 들어 지시하였다.



-보병대장.


-예 폐하!




잠시 감상에 빠져있던 킬데리크.


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프랑크 왕국에서 왕위계승분쟁을 겪고,

친척들이 모두 멸족되고 자신 혼자만 살아서 이 로마로 피신하여 장군이 된 그이다.

그 역시 동족상잔을 겪은 몸.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닐까? 이번 전투가 끝나면

킬데리크에게 많은 상을 내려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라벤나에 있는 보병들을

밤낮없이 열심히 훈련시킨 이도 바로 킬데리크이니 말이다.




-모든 석궁병......


화살을 장전하고,.... 3단사격을.... 준비하라.



나지막하게 조용히, 천천히 . 시를 읊는 듯이 말하는 나의 심정을 알았을까.

킬데리크는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나의 눈치를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있는 힘껏 씩씩하게 소리쳐 응답하였다.



-네 알겠습니다! 전 석궁병 3단사격 준비!



킬데리크가 손을 높이 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꿇고 대기하고 있던

석궁병들이 전부 석궁을 장전한 상태로 우리의 맨 앞줄로 몸을 일으켜 일제히 나온다.

항상 그래왔다는 듯이, 노련한 몸짓과 노련한 손짓으로 빠르게 화살을 석궁에 장전시킨

그들은, 다시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을 의지한다.


그리고 또 한 줄이 그 뒤에서 일어서서 다가와서 상체를 수그려 몸을 ㄱ자로 만들고,

마지막 줄은 몸을 굽히지 않고 일어선 채 석궁을 겨눈다.



-조준 완료 되었습니다 대장님!!!



석궁병 부대의 백인장, 천인장들이 킬데리크에게 준비 완료 보고를 하자,

킬데리크는 나에게 고개를 돌려 말한다.



-폐하. 준비 되었습니다.




나는 킬데리크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후우...하고 기나긴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 한숨으로서 죄책감, 미안함, 배덕감, 자비, 불쌍함을 모두 내려놓고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이제 망설임은 단 1나노그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나와 내 나라를 위해 제압해야 할 적들이 있을 뿐이다.



-킬데리크.


-넵!


-전 석궁병.전방의 적들을 향해 화살 발사.


-알겠습니다 폐하!!! 자! 전 석궁병!!! 전방 조준!

그리고 전방의 적들을 향해 1열부터 화살 사격 후 재장전!!!



발사하라!!!!




킬데리크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맨 앞줄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쏴 자세를 취하던 석궁병들부터 석궁의 시위를 놓았다.

동시에 바람과 대기를 거세게 인위적으로 가르고 나아가는 석궁의 소리가,

마치 소형 미사일처럼 선명하게 내 귀에 들린다.



[쇄애애애애애액------------------]


[솨아아아아아아아아-------------]


[슈우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내가 시선을 적들에게 돌리자.


서로 싸우는 데 바쁘던 적들은 어디에서 날아온 지 모르는 석궁 화살들을 맞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 한 체, 추풍낙엽을 보는 듯이 우수수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빠른 재장전을 하고! 1열부터 다시 쏴라!!!! 화살을 아끼지 마라!!!



[끼리리릭......]



[슈와아아아아아아앙!!!!-------]




석궁 화살들이 새벽 공기를 타고 날아간다.


바다 속 수많은 날치들이 비행하듯이, 석궁 화살 끝의 쇠촉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일제히 은색의 장대비가 되어 날아간다.



한 때는 우리과 같은 로마군이었고,


한 때는 우리의 동료였고,


한 때는 우리와 같은 자존심을 가졌으며,


한 때는 우리와 같은 꿈을 꾸던 이들의 목숨을 거두러,



은빛의 저승사자가 되어 날아간다.







[누구의 목숨을 거두러 가는 것이냐? 은빛의 저승사자여??



그 은빛의 찬란한 탈을 쓰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목표는 누구냐?]



[누구긴 누구인가. 한 때 그대의 든든한 동료였던 저.



배신자들이지......하하하하하하....!!!]









킬데리크가 지휘하는 석궁병들의 화살세례는 장장 5분동안이나 쏟아졌다.



은빛 화살의 장대비를 맞은 적들은 인정사정없이 끈 떨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쓰러졌다.그들이 쓰러지자 그들이 들고 있던 아퀼라, 드라코 깃발들 역시 함께 힘없이

옆으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살아남은 이들은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제서야 깨닫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쳐다본 후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본다. 당연히 이 방향에는 우리가 있다.

나는 이들이 우리에게 돌격할 시간을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파울루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폐하!!



나는 파울루스를 불렀다. 파울루스는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써 깃발을 들게

명하고, 자신의 말 위에 올라타 있었다. 그의 뒤에는 마갑을 입히고 갑옷을 견고하게

차려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카타프락트들이 길다란 창과 견고한 검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지체할 필요 없다! 지금 바로 기병을 이끌고 돌격하라!! 저 싸가지없는 반역자들을

모두 저승으로 보내버려라!!


-그 말만을 기다렸습니다 폐하!!! 자! 나를 따르라!!!! 반역자들을 처단하러 가자!!!



[와아아아아!!!!]




선두에 선 파울루스가 장창을 들고 달려나가자, 지축을 일제히 울리는 말발굽소리가

두두두두두....하고 귀를 시끄럽게 울린다. 이 든든한 소음이 들리자, 빠른 속도로

로마군 카타프락트들이 적들을 향해 돌격한다. 그리고 적들이 지르는 비명소리는 여기서까지

들릴 정도였다.



[으아아악!!!]


[카...카타프락트다!!!]


[황제군이다!!! 전부 정신차려라!!!]


[아악!!!]


[크어억.....]



석궁 화살을 비오듯 쏟아부은 이후의 기병돌격은 매우 적절했다.

그 수는 300기로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 로마군이 아끼고 아껴놨던 전력이다.

이 300명만은 동로마의 기병과 페르시아의 기병과 비교해도 좋을 정도로 잘 훈련된

엘리트 기병들이었다.



선두에서 마치 용맹한 사자를 보는 듯 창을 들고 적을 도륙내는 파울루스를 필두로,

우리 카타프락트들은 적들을 사정없이 조각내기 시작했다.


우리와 꽤 많은 차이가 났던 적들은 상당히 많은 수가 죽어 있었다.


석궁병의 사격에, 그리고 싸우는 귀신과도 같이 돌격한 카타프락트에 의해서.



나는 이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이미 우리를 따라나온 적군 진영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좌익과 우익에 깃발을 들어라! 놈들을 양옆에서 포위하여 조져버려라!!!



깃발이 올라간다. 신호를 알리는 깃발이 올라가자, 우익의 테오도릭, 좌익의 슈리가

병력을 이끌고 다시 달려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나 역시 말에 올라타고 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은빛 갑옷을 입은 채로 말에 오르자, 순간 오오...하고 감격스러워 하는

병사와 장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투에 직접 나서는 임페라토르의 모습을

처음 본 이들일테니 더욱더 그러하리라. 마요리아누스 황제 이후로 전투에 직접 나서는

황제는 오랜만이었을 것이다. 나는 선두에 서서 외쳤다.



-우리의 깃발을 들어라!!!



내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눕혀놓았던 깃발들을 병사들이 다시 위로 곧추세워 들었다.



근위군단을 뜻하는 검은색 아퀼라 깃발. 그 아래 SPQR이 써져 있는 근위군단 전용

깃발이다. 그리고 황제의 출정을 뜻하는 붉은 색 바탕에 황금색 글씨로 표시되어 있는

가톨릭의 문양 깃발인 카이 로 깃발도 함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양옆에 있는 보병대장 킬데리크와 근위군단장 콘스탄티누스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둘도 각자 말에 올라타 나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군 돌격하라! 황제가 너희와 함께하고 있다!!!



황제.


황제라는 단어가 모두를 흥분하게 한 것일까. 자신들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이자

제국의 황제가 자신들과 함께한다는 말에 병사들의 사기가 모두 치솟은 것 같았다.

3천의 중앙병력들은 모두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적들을 향해 스파타를 빼 들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군단병, 중보병, 경보병, 석궁병 할 것 없이 자신의 검과 창을 빼 들고 달려가기 시작한다.

나 역시 백마를 타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검을 들고, 콘스탄티누스, 킬데리크와 함께

일제히 말을 달려 나갔다.



[와아아아아!!!!!!!]



3천명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이 엄청난 함성 소리에, 나는 승리를 직감하였다.

아까까지 싸우다가 화살 세례를 맞고, 카타프락트에게 유린당하고 있던 적군들은,

근위군단 보병들이 일제히 돌격하자 겁에 질려 달아나고, 죽어나가고 있었다.



이 모든 작전의 성공. 이들의 드높은 사기.



그 중심에 서부 로마의 임페라토르인 내가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서로마는 라벤나 전투에서 패배하여 오도아케르의 입성 이후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되는 수순을 밟아 나라의 문을 닫고 만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역사를 비틀고 있었다. 그 폐위되어 무력하게 물러난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직접 군단을 이끌고 오도아케르를 공격하여 승기를

잡은 것이다.



이 이후로 역사는 내가 아는 역사에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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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수님이 지도하는 서로마 제국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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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라벤나 전투 - 9 24.09.15 21 0 14쪽
» 라벤나 전투 - 8 24.09.14 41 1 24쪽
8 라벤나 전투 - 7 24.09.14 34 0 16쪽
7 라벤나 전투 - 6 24.09.13 46 0 19쪽
6 라벤나 전투 - 5 24.09.13 33 0 28쪽
5 라벤나 전투 - 4 24.09.13 36 0 26쪽
4 라벤나 전투 - 3 +2 24.09.13 49 0 24쪽
3 라벤나 전투 - 2 24.09.13 52 0 21쪽
2 라벤나 전투 - 1 24.09.13 64 0 18쪽
1 교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되다. 24.09.13 6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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