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님이 지도하는 서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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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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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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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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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되다.

DUMMY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누구든 올 때에도, 갈 때에도 똑같이 빈 손이다.

갈 때에는 생전의 그 어떤 금은보화도, 그 어떠한 명예도,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왕도, 재벌도, 대통령도, 거지도, 범죄자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는 삶의 마지막 문턱과, 곧 망자가 될 사람의 가쁜 마지막 숨소리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숨소리가 끊어지면, 망자에게는 영원한 안식이 함께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는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가는 데 부귀영화와 명예는 없다고.


맞는 말이다. 평생 호화롭게 살던 왕족이 갈 때에도, 평생 길바닥을 굴러다니던 노숙자가 갈 때에도,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재수 없게 태어나자마자 죽은 영아가 갈 때에도, 정말 오래 살아 온갖 영욕을 누린 노인이 갈 때에도,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하고, 누구나 부유하게 살고 싶어 하며,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세가지가 말처럼 쉬웠다면, 과연 모두가 바라는 워너비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이 셋 중 한두가지라도 결여된 사람은 모래사장의 모래알 개수만큼 많으며, 단 한가지만 결여된 사람도

지구촌 모든 인구 머릿수만큼 많다. 심지어 세가지를 모두 가지지 못한 자들도 그린란드 만년설 두께만큼 많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자신의 삶의 끄트머리를 겪고 있는 이 사람은 정말로 운이 좋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이 건.


현재 나이 112세.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고, 이후 독립운동가로서 귀국하여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

이후 한국의 국립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며, 역사학과 정치학, 심리학을 전공하여 많은 저서를 내고, 본의는 아니지만

정치에 입문하여 국회의원까지 해 본 대단한 인물이다. 1세대 원로 학자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저술 활동과

정치 활동을 하면서 많은 명예를 거머쥐었으며, 성실하게 일하고 출판을 하고, 자신의 이름을 드높여 많은 부를 얻었으며,

아내와 백년해로 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려 6남 4녀를 슬하에 두었으며 그 자손들은 증손까지 보았다.


그리고 많은 정부 기관과 기업들의 자문을 맡은 원로로서, 한국 학계의 원로로서, 자신이 평생 즐겼던 대한검도회의

9단 원로로서 어딜 가도 대접받고 대우받으면서 만족하며 살았다. 112세라는 매우 긴 생을 살면서,

100세 이후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와 강의를 하며 가족과 행복하게 산,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산 그도 이제 갈 때가 된 모양이다.


사람은 자신이 죽을 때를 대충 안다던 옛 말이 있다.


몸이 약해진 것을 느낀 지 1주일도 되지 않았을 때, 그는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연구실에서 스르륵 잠들듯이 눈을 감았다.

다행히 110년을 넘게 길게 살아온 인생이라, 인생에 아쉬움과 죽기 싫다는 몸부림은 없었다. 오히려 편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조국을 위해 죽는 순간까지 이 한 몸 바치리라 다짐한 그의 다짐은 흔들림 없이 최후의 순간까지 지켜냈다.

만약을 대비해 옆 방에 대기하고 있는 제자를 부르기 위해 노교수는 자신의 책상 오른쪽에 있는 비상벨을 울리려고 손을 뻗었지만,

생명의 불꽃이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는 그의 노쇠한 팔은 그 정도의 힘조차 낼 수 없었다. 늙은 이후 몸에 힘이 많이 떨어지긴 했으나,

이렇게 급격하게 신체에 완력이 사라지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마치 몸의 생명력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


노교수는 자신의 팔을 뻗는 것을 포기하고, 가까스로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사시나무 떨듯이 근육을 덜덜 떨면서 고개를 겨우 들었다.

살 만큼 살아온 인생이다. 가는 데 전혀 두려움은 없다. 오히려 남들보다, 평균수명보다 훨씬 오래 살게 해준 신께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갈 땐 가더라도 추하게 가기는 싫었다. 그가 느끼는 두려움은, 한순간에 찾아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이 추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그것 뿐이었다.





-크윽....주...죽더라....도...꼬...꼴사납게....죽을...수는 없다....자...자세를....





항상 제자들에게도, 부인과 아들들에게도 꼿꼿한 자세, 위엄있는 자세를 보여 왔던 그였다. 100세가 넘은 이후에도 꼿꼿하게 허리를

들고 목을 펴고 대쪽같은 자세로 항상 모두에게 멋진 노교수의 모습을 보여준 그에게 있어서, 추하게 죽는다는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최후의 순간이 되자, 어렸을 때 읽었던 삼국지 책에서 나오는 제갈공명의 최후라도

머릿속에 아련하게 떠올렸던 것이었을까. 노교수는 자신의 안락하고 푹신한 의자의 팔걸이에 양 팔을 가까스로 내려놓고, 안간힘을 다해

자신의 등을 의자의 등에 붙이고 자세를 똑바로 만들었다. 사륜거에서 앉은 체로 자신의 별이 떨어지기 전까지 위엄있는 모습을 보인

제갈공명을 동경한 것이었을까. 노교수는 마치 제갈공명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조용히 입술을 다물며 눈을 감았다.


온 몸에서 기운과 생명력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든다. 감각은 아직 살아 있지만, 무언가 나른해지고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것이 죽음으로의 길일까. 노교수는 삶에 이제 더 이상 미련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조용히 꾸욱 눈을 감으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직 활동을 정지하지 않은 뇌를 통해, 그는 112년간의 기나긴 인생을 후회없이 산 자신을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면서 죽음을 품위있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 그의 몸에서 생명력이 거의 다 빠져나갔는지, 그의 머릿속은 공허하고 텅 빈 기분이 났으며, 나른해진 몸은 이제

감각이 들지 않았다. 노교수는 이제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후우...후우...하고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여보...어머..후우...니....그리고 아버...지....후우...후우..스승...님....저...후우...후우...저도 여러분을...ㄸ...따라...후우...



그리고 다가온 죽음이 그의 숨을 거두어 가려 할 때, 마지막으로 노교수의 눈 앞에 보인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휘황찬란한 빛이었다.



「화아아아아악!!!!!!」



자신의 그리 크지 않은 연구실에서 갑자기 마치 천국에라도 온 듯, 혹은 무대용 조명이라도 눈앞에 갖다대고 켠 듯,

일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새하얀 빛이 인생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려 하는 노교수를, 날벼락이 바로 눈 앞에 떨어진 것처럼 집어삼켜 버렸다.

죽어가던 자신의 눈 앞이 순간, 온갖 빛으로 가득하게 되자, 노교수는 만족하면서 눈을 감았다. 기나긴 112년간의 생애가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고 노교수는 생각을 했는데......





-폐..폐하? 회의 중에 주무시는 것은....



???



폐하?




-폐하...지금 급박한 때이옵니다...적군이 이곳 라벤나를 향해 진군하고 있사옵니다...오레스테스 섭정께서는 맞서 싸웠으나 전사하셨고,

반군은 지금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이게 뭔 소리인가? 노교수는 잠시 감았던 눈을 떠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아니? 뭐야 이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 드러나 있었다. 자신의 연구실에서 임종의 때를 기다리고 있던 노교수의 눈 앞에,

궁전의 커다란 홀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뭐야 이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연구실에서 임종을 맞이하던 자신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니, 마치 고대의 로마에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대리석 기둥은 예전에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보았던 양식과 비슷하다. 그리고 자신의 눈 앞에

오른쪽에 서 있는 사내를 보아하니, 책에서 쉽게 보던 로마식의 투구를 쓰고 있었다. 왼쪽 구석에 서 있는 사내는 십자가가 그려진 하얀

옷을 입고 있다. 저 십자가 문양은 분명히 본 기억이 난다. 성당이라던지, 중세시대 유럽을 공부할 때 자주 나왔던 십자가 문양인,

'라바룸'이다. 카이 로라고도 부르는, p자에 십자가가 합쳐져 있는 그 문양이다.


자신은 주변보다 약간 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붉은 색의 천이 덮여 있고, 마찬가지로 라바룸 문양이 있는 꽤나 고급스러운

의자이다. 설마 이것은 옥좌인가. 하고 노교수는 생각했다. 자신은 십자가가 박혀 있는 황금색의 화려한 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으며,

황금색의 망토를 몸에 두르고 깔끔하고 길다란 상의,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는 통이 그리 넓지 않은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로마 시대에 볼 법한,

현대 여성들이 '글래디에이터 슈즈'라고 부르던 신발 비슷한 샌들을 신고 있었다. 나이는 약 16~17세 정도 되었을까? 갈색의 곱슬머리가 제관 아래로

푸욱 눌려 있었으며, 이 시대 사람 치고는 꽤 커 보이는 키. 그리고 영양상태가 좋아 보이는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예전에 본 영화인 '벤허'라던지, '마지막 군단'이라던지, 고대 로마 제국을 다룬 영화의 인물들과 흡사한 사람들이

자신의 앞에 여럿 있었다. 방금 입을 열어 자신에게, 지금 자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로마식의 투구를 쓰고 값비싸 보이는

사슬갑옷을 입은 사내에게 노교수는 시선을 돌렸다.



그는 후우..하고 한숨을 한번 몰아 쉬더니, 아까 하던 말을 이어 나가려는 듯이 노교수를 다시 한 번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폐하.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도아케르 사령관이 반란을 일으켜 이곳 라벤나로 쳐들어오고 있으며, 그를 저지하러 출격한 오레스테스

섭정은 반군에게 패배하여 참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군은 이곳을 목표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지금 대응해야 합니다!

섭정이 죽은 지금, 저희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져 있사옵니다!



오도아케르? 오레스테스? 뭔가 귀에 낯익은 이름들이다. 노교수는 머리를 굴리면서 턱을 괴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골치아픈 일이 터졌을 때,

턱을 괴고 고민하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관 중 하나였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노교수에게 나온 결론은 하나 뿐이었다.



'그래....오도아케르...오레스테스... 그리고 오도라케르가 반란을 일으켜 이곳 라벤나로 쳐들어오고 있다?....오도아케르는 분명히 서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인물이다. 오레스테스는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권력자였고... 이 휘황찬한한 곳은 황궁 같다. 설마 그렇다면 지금은...서기 476년이고,

이곳은 서로마 제국, 그렇다면.....제관을 쓰고 있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나는......?






그렇다.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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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라벤나 전투 - 2 24.09.13 52 0 21쪽
2 라벤나 전투 - 1 24.09.13 64 0 18쪽
» 교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되다. 24.09.13 6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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