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램프턴에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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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eu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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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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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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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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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의 왕세자 봉작식

DUMMY

“대체 어딜 다녀온 거야, 에드워드?”


블랙우드저에서 돌아온 후 다이닝룸으로 향하는 길 내내 윌리엄은 에드워드의 행방에 대해 집요히 캐물었다.


“토끼사냥 다녀왔다니까?”


“아주 흉포한 토끼라도 만난 거야? 활과 화살집도 빼앗길 만큼?”


“오빠 겁쟁이!”


재미있다는 듯 낄낄 웃어대는 형 윌리엄과 동생 시에나를 번갈아 노려본 에드워드는 다시 제 앞에 놓인 치킨파이에 집중했다.


어제 먹지 못한 아쉬움을 풀기 위한 것인지, 오늘 신나게 들판을 뛰어다닌 탓인지 치킨파이가 목구멍으로 술술 미끄럽게 넘어갔다.


“동생아. 이 형님이 이제 동궁으로 가시느라 여기서 함께하는 식사는 오늘로 끝이로구나. 사랑하는 형님을 위해 한마디 해주지 않으련?”


윌리엄은 홍차가 든 고블렛잔을 높이 들며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마치 왕인 아버지를 흉내 내는 듯한 말투였다.


두 오빠의 대화에 깔깔거리며 웃던 시에나도 첫째 오빠를 거들며 우유가 담긴 작은 크리스탈 잔을 잽싸게 들어 올렸다.


“어차피 궁 안에서 또 볼 건데, 뭐. 우리가 보고 싶어서 울지나 말든가요, 왕세자 저하.”


에드워드는 마지못해 오렌지 주스가 든 자신의 잔을 들어 올리며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윌리엄과 시에나는 또다시 서로를 쳐다보며 킥킥 웃어대기 시작했다.


세 남매의 귀여운 모습에 주변을 지키던 하녀들조차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들썩였다.


칫, 웃든가 말든가.


에드워드에겐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어떤 소녀의 말간 얼굴과 간지러운 목소리로 충분히 어지러웠기 때문에.


특히 흰토끼 같았던 귀여운 표정을 생각하면 배가 꿀렁거리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낮에 그 애를 만났던 일이 마치 꿈 같았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좋아. 또 놀자, 에드윈]


언제쯤 또 만날 수 있을까?


난생처음 느껴보는, 사냥 수업을 기다리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설렘이었다.


“이번엔 활과 화살집을 빼앗겼지만.”


에드워드는 시끌벅적한 주변을 전혀 개의치 않고,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치킨파이를 음미하며 말했다.


“언젠가는 그 토끼를 잡아 올 거야.”


이 다짐이 그를 움직이는 평생의 나침반이 되리라는 것도 모른 채.



***



“누님, 루퍼트 도련님도 윌리엄 왕자님의 봉작식에 참석하라시네요. 저녁엔 주저에서 무도회를 연다는데 소식은 들으셨겠죠? 채비하셔서 메인 홀로 오세요. 마부를 불러드릴게요.”


블랙우드가의 젊은 집사 토마스 애쉬포드는 둘째 도련님의 전담 유모인 마가렛을 왠지 제 친누나처럼 여겼다.


“그놈의 망측한 누님 소리. 제가 열아홉에 자식을 봤다면 집사님만 한 아들이 있었을겝니다.”


“엄마라고 하면 싫어하시잖아요. 그럼 뭐 어떡해? 누님이라도 해야지. 시집 안 갔으면 누님 아닌가요? 누님?”


마가렛은 제게 팔짱을 끼며 애교부리는 토마스를 가자미 눈으로 흘긴 뒤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애쉬포드 집사님. 용무가 끝났으면 이만 주저로 돌아가시지요?”


“아이, 누님 보고 싶어서 이 동생이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그냥 가라고요? 매정하셔라.”


하여튼 미워할 수 없는 녀석.


오랫동안 블랙우드저의 집사였던 애쉬포드 씨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아들 토마스 애쉬포드가 새로운 집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애쉬포드 씨와 오랜 시간 함께 일했던 블랙우드저의 사용인들은 글래드스톤 가방을 양손에 하나씩 쥔 채 메인 홀로 들어서는 그를 보곤 아연실색했다.


‘아니 토마스가 왜 여길······.’


‘변호사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게요. 윈체스터 씨네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당시 그는 졸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브램프턴 대학교에서 법률뿐만 아니라 민법과 교회법까지 공부하며 수석으로 졸업한 후, 벨더스에서 제일 유명한 변호사 사무소인 ‘카일&윈체스터 법률 사무소’에서 실습생으로 근무 중이었다.


애쉬포드 씨는 살아생전 ‘변호사’인 외아들 토마스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기에 블랙우드저의 모두가 놀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토마스 애쉬포드. 바른 판단을 해. 네가 집사라니?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처음 토마스가 블랙우드저의 새 집사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가렛은 토마스를 호되게 나무랐다. 아버지의 유언 따위. 힘들게 변호사가 되었으면 끝까지 그 길을 가야지, 라며 토마스를 영지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토마스의 결심이 매우 확고했기에 마가렛은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이후로 마가렛은 단단히 화가나 토마스에게 매정히 굴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꼭 굽는 라즈베리 브라우니 정도는 그에게도 잊지 않고 나누어주었다.


아침부터 투닥거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루퍼트는 마가렛이 내어 준 그린티를 한 모금 마신 뒤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딸기향이 나는 그린티였다.


어디선가 자꾸 신기한 걸 가져오는 마가렛이 ‘분명 도련님의 취향’일 것이라며 신나게 우린 차였지만 루퍼트의 입맛엔 영 맞지 않는 듯했다.


“하······.”


찻잔이 테이블 위에 닿자 조그만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늘이 그 엘로이즈 브라운과 약속한 날인데.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 끝에 드디어 엘로이즈와 다시 만나기로 한 삼 일째가 되었다. 그 아이가 언제 올지 몰라 루퍼트는 점심 식사 후 바로 레이크 블랙우드로 향할 계획이었다.


“도련님 들으셨지요? 왕궁으로 갈 채비를 하셔야 합니다.”


예상치도 못하게 그 계획은 무산되어 버렸지만.


루퍼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마가렛이 자연스레 뒤따라와 그에게 어떤 옷을 입힐지 고민하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토마스가 잽싸게 달려와 말했다.


“누님, 루이스 도련님 보니까 테일 코트까지 제대로 갖춰 입었던데요? 아무래도 왕실 행사라 그런가 봐요. 루퍼트 도련님께서도 그 정도는 입어야 할 것 같아요.”


토마스의 조언을 귀담아듣던 마가렛은 옷장에서 검은색 테일 코트와 하얀 크라바트를 꺼냈다. 그녀가 만일에 대비해 자신의 주급으로 구매한 옷이었다.


루퍼트가 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매년 새해에 전통처럼 준비했던 옷이 이리 쓰일 줄이야.


마가렛은 설레는 마음으로 숯과 다리미를 꺼내왔다.


루퍼트의 첫 왕실 행사라는 생각에 단단한 각오를 한 모양인지, 숯에 불을 붙이는 그녀의 주름진 손등에 얇은 핏줄이 섰다.


그 모습을 뒤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루퍼트도 마가렛 못지않은 각오를 해야만 했다.


[하찮고 열등한 것.]


[얘, 너만 보면 심사가 뒤틀려 어쩔 수 없구나.]


[좀 멀리 떨어져서 걷지? 천한 피 옮을라.]


프레드릭 블랙우드 공작과 그의 첫째 아들 루이스 블랙우드. 그리고 자신을 못 치워버려 안달인 공작부인의 멸시 어린 시선을 견딜 각오였다.


하지만 루퍼트는 이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그런 멸시를 받는다 해도, 그는 블랙우드라는 것을.


[블랙우드가에서 나는 건 네 것이니 당연히 허락을 구해야지. 꽃 한 송이더라도 말이야.]


[내 것······?]


[응. 넌 블랙우드잖아.]


나를 많이 기다릴까?


기다리다 그냥 가버리면 어떡하지?


루퍼트는 하필 오늘 같은 날 봉작식을 하는 이름 모를 왕세자와, 또 하필 이런 때에 자신을 왕궁에 데리고 가겠다는 블랙우드 공작을 원망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봉작식이 속히 끝나길, 레이크 블랙우드에 한시라도 빨리 갈 수 있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



“권위와 힘을 상징하는 이 검으로 너는 이 나라 ‘벨더스’와 그 백성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신의 율법 안에서 정의와 공의를 추구할 것을 맹세해라.”


왕궁 교회 내 예배당에서 윌리엄의 왕세자 봉작식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시에나와 맨 꼭대기 층에서 봉작식을 지켜보던 에드워드는 길게 하품했다. 오전부터 시작한 봉작식은 당최 끝이 날 줄 몰랐다.


벨더스 왕가의 하나뿐인 공주 시에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예배당 한가운데 서 있는 윌리엄과 그를 둘러싼 성직자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지만, 에드워드는 제 형이 성검을 받는 모습을 따분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유모는 에드워드의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를 걱정스럽게 쳐다보곤 말했다.


“왕자 전하. 왕가의 일원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벌써 잊으셨는지요? 지루해도 인내심을 가지십시오. 언젠가는 전하께서도 이런 자리를 주관하실 테니 잘 보고 배워두시는 게 좋습니다.”


“에이. 나는 이런 거 안 할 거야. 왜냐면 형은 똑똑하고 착하니까 벨더스를 잘 다스릴 거고, 나는 그런 형의 나라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며 즐겁게 살 거니까.”


하고 싶은 사냥을 마음껏 하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며 사는 왕자 공작의 삶. 재미있는 책들로 나의 저택을 가득 채워야지. 아니면 영지 안에 나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


에드워드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바뀌지 않을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난간에 기대어 웃었다.


누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진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던 유모는, 맨 꼭대기 층엔 자신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긴장을 풀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폐쇄적인 벨더스 왕가의 왕법에 감사했다.


벨더스의 왕법에 의해서 왕세자를 제외한 왕실의 자녀들은 성인이 되는 나이인 열아홉 살까지 사생활을 철저히 보호받을 수 있었다. 과거 전쟁이 빈번했을 때, 왕실 후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선대 왕들이 제정한 법이었다.


원한다면 고급 귀족의 성을 위장하여 학교에도 갈 수 있었는데, 과거에 이와 같은 일들이 빈번히 일어났다는 것을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덕분에 벨더스의 왕세자를 제외한 나머지 왕실 자녀들은 다른 나라의 왕가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드워드 벨더스처럼 기본적인 규율과 예법을 어기면 안 될 일이었지만.


그래서 유모는 왕가의 자녀들이 선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교계 행사에 될 수 있으면 에드워드가 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녀는 속으로 신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신이시여, 진정으로 간구하옵니다. 에드워드 왕자님께서 왕세자 봉작 축하 무도회에 참석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왕자 전하. 공주 전하. 봉작식 후에 블랙우드저에서 축하 무도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참석하시겠습니까?”


“난 안 갈래.”


유모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시에나가 먼저 대답했다. 왕궁 전체가 새벽 동이 틀 때부터 시끌벅적했던 터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가봤자 왕실 자녀들에게만 허락된 방에서 간식거리를 먹으며 메인 홀에서 들려오는 오케스트라 연주나 감상할 텐데.


시에나는 그런 것들이 지겨웠다. 차라리 안 가고 말지.


한편 에드워드는 ‘블랙우드저’라는 말에 눈을 번뜩였다.


“블랙우드저라구?”


에드워드가 묻자 유모가 다급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무도회가 열리기 때문에 영지에서 사냥은 못 하십니다.”


블랙우드저엔 흥밋거리가 없으니 가지 말자는 소리였다.


“괜찮아. 상관없어.”


일찍 퇴근하고 싶은 유모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에드워드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블랙우드저’라는 유모의 말이 에드워드에겐 ‘엘로이즈 브라운의 옆집’인 ‘블랙우드저’로 해석되었기 때문이었다.


“난 갈래, 무도회.”


단호하고 명랑한 에드워드의 말에 유모는 가슴 깊이 절망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고뭉치 둘째 왕자님을 무도회 내내 감시할 생각에 벌써 지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디 오늘만은 에드워드가 얌전히 무도회를 즐겨 주길 바라며 다시 한번 신을 찾았다.


어떻게 그녀를 따돌릴지 이미 모든 계획을 세운 에드워드의 조그만 머릿속을 헤아리지 못한 채로.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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