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코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새글

알백서
그림/삽화
NOVA
작품등록일 :
2024.09.16 19:35
최근연재일 :
2024.09.23 00:1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534
추천수 :
16
글자수 :
78,895

작성
24.09.19 13:00
조회
214
추천
3
글자
13쪽

1. 살인자의 아들

DUMMY

1. 살인자의 아들


먹을 게 없다...돈도 없다. 쌀 한 톨 사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할까 싶겠지만 깅코는 그 범주 안에 들어버렸다.

돈이 없다면 일을 하면 되지 않는가?

일반적으로 도달할 첫 번째 해결책이지만 예외적인 상황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먼저 열 여덟 살 미만의 아이들은 법적으로 노동이 금지되어 있다.

깅코는 아직 열 여섯으로 일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의 낙인. 신문 1면을 장식한 살인자의 정체가 그의 아버지로 밝혀지자 업보는 자연스레 자식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상상해보라. 온 세상이 자신을 배척하는 기분을. 그건 큰 행동이 아니더라도 쉽게 느낄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눈빛과 수군거림만 있으면 지옥은 시작되는 것이다.

정의구현의 명목이 생긴 몇몇 사람들은 대담해지고 온갖 방법으로 표적에게 불이익을 주며 사회 구성원이 되지 못하도록 한다. 그게 지금 깅코가 처한 상황이었다.


깅코가 아버지와 함께 에추카 마을로 이사 온 건 약 4개월 전.


에추카 마을은 슈란 왕국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로 땅콩이 맛있기로 유명했다. 마을 밖에는 대부분 땅콩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주민들 대부분이 땅콩을 수확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부자는 밭을 지나면 있는 마을로부터 십분 정도 걸리는 작은 집에 정착했다. 집은 뒤로 자라 있는 우거진 나무들과 풀숲때문에 눈에 잘 띄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고, 집 앞 나무 계단에 앉아 밭일하는 사람들을 구경 할 수 있다는 걸 장점으로 들 수 있었다.


에추카 마을에서 깅코의 생활은 단순했다. 일주일에 두 번 아버지와 함께 마을에 가서 장을 봐오거나 필요한 생필품을 사며 지내는 게 전부였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시장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술집과 상점들이 마을 입구에 몰려 있어 언제나 시끌벅적한 편이었다.


시장 근처에 가면 볶은 땅콩 냄새가 거리를 메웠는데 노점 주인들은 아버지가 물건을 살 때마다 깅코에게 볶은 땅콩을 한 움큼 쥐어 주기도 했다. 그러면 받은 땅콩을 먹으며 나머지 가게들을 구경하는 루틴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마을 아이들과 친해지고 그와 아버지의 존재가 마을에 받아들여지고 있을 즈음.


왕국에서 세명의 일가족이 살해당한 소식과 함께 용의자의 몽타주가 실린 신문이 에추카 마을에 도착했다.

반년 전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범인을 잡지 못해 왕국에서 수배를 내린 것이었다.


살해 당한 가족은 깅코가 전에 살던 마을 사람들이었다. 피해 가족 세명 모두 날카로운 흉기로 추정되는 것에 심장이 꿰뚫어져 있었고 죽은 한 명이 아홉 살배기 아이라는 사실, 살인 수법이 잔혹해 주의를 요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글 옆에 위치한 용의자의 몽타주에는 중년 남성이 그려져 있었다. 머리칼이 검고 수염이 없는 낯선 남자의 얼굴이었다.

머리색을 제외하고 깅코의 아버지와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지만 에추카 마을 사람 누군가가 그의 아버지를 왕국에 고발했다. 살인이 일어난 마을에서 온 검은 머리 중년 남성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물론 고발 당한 건 왕국에서 아버지를 잡으러 오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왕국 경비대 여섯 명은 대낮에 깅코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왔다. 경비대는 살인자로 고발 되어 법을 집행한다는 말만 하고는 아버지를 체포했다.


항의하려 했지만 자세한 조사는 왕국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며 항의는 조사 받을 때 하라며 군말 없이 협조하라고 했다. 심지어 경비대가 모두 무장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경비대는 깅코는 내버려둔 채 아버지를 끌고 갔다.


아버지가 살인자로 지목되어 끌려간 뒤 에추카 마을은 난리가 났다. 삽시간에 그들의 마을에서 살인자가 잡혔다는 소문이 퍼졌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 든 노인들은 마을의 안전을 위해 깅코를 그냥 두면 안 된다고 했다. 허나 마을 이장과 다른 주민들은 끌려간 것이 깅코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애꿎은 사람을 쫓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깅코를 불러 앉혀놓고 그의 처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의논하는 자리마저 생겼다. 그러나 다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사람들이라 쉽사리 결정이 나지 않았다. 결정이 지연 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깅코가 아직 아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만약 깅코가 성인이었다면 사람들은 마을에 얼마 살지도 않은 그를 진작 내쫓았을 것이다. 하지만 깅코는 이제 막 열 여섯 살이 된 꼬마 아이. 그렇기에 주민들은 자처해서 악역을 맡으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깅코 역시 이 혼돈 속 그나마 있는 보금자리를 떠날 용기는 없었다. 당장 마을에서 쫓겨나면 혼자 살아 갈 자신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깅코는 마음 한 편으로 그의 아버지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조사가 끝나면 곧 집으로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조사가 얼마나 길어질 지 몰라도 누명은 곧 벗겨질 터였다.


그는 결정을 주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빌었다. 그의 가족은 살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아버지는 누명을 쓴 거라며 마을에서 살도록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감정적 하소연으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기엔 부족했다.

결국 그는 열 여덟이 되면 마을을 떠날 테니 당장은 내쫓지 말아달라 했다. 마을 사람들은 탐탁치 않아 했지만 그가 자진해서 떠난다는 말에, 열 여덟이 아닌 일년 후 마을에서 나가는 것으로 약속을 지었다.


* * *


깅코를 일 년간 마을에 두기로 한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 며칠은 어른들이 그의 집까지 찾아왔다.

다행히 직접적으로 손찌검을 하진 않았지만 마을에서 수상한 짓을 하거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보이면 곧바로 쫓아낼 거라 으름장을 놓았다.

깅코가 군말 없이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게 확인 되자 서서히 나타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종종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깅코의 집을 감시하듯 보는 일은 있었지만 말이다.


순식간에 깅코는 혼자가 되었다. 누군가 돌봐 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아버지 외에 다른 가족은 없었다. 어머니는 기억 속에 존재한 적이 없고 친척들의 유무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이상한 가족배경이었지만 깅코는 그 동안 스스로 가족에 대해 궁금해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아 차렸다.

그가 자신의 가족에 궁금해하지 않은 이유가 자신에게 고통이 될만한 사실들을 앞서 거부한 거라,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묻지 않은 것도 원하지 않는 답을 들었을 때의 고통을 거부하기 위해 질문하지 않은 거라 생각했다.


어른들이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먹을 게 떨어졌다. 집에 있는 감자와 땅콩으로 버티는 건 보름이 한계였다.

부엌 선반에 땅콩 껍질 부스러기만 남자 그는 볶은 땅콩이라도 조금 얻어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장에 갔다.

그러나 노점 주인들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들은 손을 휙휙 내저으며 돈이 없으면 오지 말라고 냉대했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한 깅코는 집에 돌아와 물로 배를 채울 수 밖에 없었다.

.

.

.

며칠을 더 굶자 정말 아사할 것 같았다.


빈혈기가 생겨, 자리에서 일어나면 어지럼증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땅콩 밭에서 서리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없는 죄를 만들기 싫어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다.

결국 돈이 될만한 뭐라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헤집었는데, 이게 웬걸! 옷장 속 아버지의 외투 주머니에서 지폐 뭉치를 발견했다. 어림잡아 반년 정도는 빠듯하게 버틸 정도의 액수였다.

또 다른 외투에서는 반으로 갈라진 조약돌 같은 것을 발견했다. 검은 테두리에 중앙으로 갈수록 투명하고 은은한 빛을 내는 돌 조각이었다. 평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보석처럼 보이지도 않아 값어치는 크게 없을 것 같았다.


돈을 찾은 깅코는 욕 먹을 걸 각오하고 식재료를 사러 마을로 내려갔다. 역시나 그를 알아본 몇몇 사람들이 경멸의 시선을 던졌지만 더러운 걸 본 것 마냥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깅코는 평소 볶은 땅콩을 덤으로 주던 채소 가게 앞에 도착했다. 가게 안에 있던 앉아 있던 주인은 손님이 깅코라는 걸 확인하자 돌연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리고는 저번에 왔을 때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적의를 비췄다.


“돈이 없으면 썩 가거라. 줄 거 없다.”

“여기 돈 가지고 왔어요.”


깅코는 주눅든 얼굴로 바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보였다.


“저번에는 돈이 없다고 구걸하러 와놓고. 어디서 난 돈이냐? 도둑질 한 거 아냐?”

“아녜요! 집에서 발견한 거예요······.”

“참나! 그걸 어떻게 믿어? 그럼 전에는 왜 없다고 구걸하러 온 거냐?”

“그땐 돈이 있는지 몰랐어요. 집에 음식이 없어서 뒤지다 보니 나온 거란 말예요!”

“네 아비가 사람들 죽이면서 훔친 걸지도 모르지.”


단어 하나 하나에 가시가 박혀 그를 찌르는 것 같았다. 아니,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근처 가게 주인들이 곁눈질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느껴졌다.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데 아무도 멈춰주지 않는 거지? 며칠 전까지 만 해도 웃으면서 맞이해줬으면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는 거냐고······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 깅코를 보고 가게 주인은 헛기침을 했다. 자신이 선을 넘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냉큼 살 거나 챙겨서 집으로 썩 돌아가!”

“······.”

“귀 먹은 거냐? 안 살 거냐고.”

“아버지는 사람 죽이지 않았어요···. 누명을 쓴 거라고요. 사과해요!”

“뭘 사과해! 살인으로 끌려간 거 맞잖아?”

“사과하라고요!”

“이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나한테 그런 말 한 거 사과하라고요!”


언성이 높아지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게주인은 땅콩을 한 주먹 쥐어 깅코의 얼굴에 던졌다.


투두둑.


깅코의 얼굴과 몸을 정통으로 맞춘 땅콩이 땅에 떨어졌다. 생 땅콩이 꽤나 딱딱했기 때문에 맞은 얼굴이 따가웠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소란통이 계속되자 곧이어 마을 이장까지 등장했다.


“너, 저번에 마을에서 눈에 띄는 짓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저는 먹을 걸 사러 왔을 뿐이에요···.”

“그러면 먹을 것만 사면 되지 이 소란은 대체 뭐냐?”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가게 아저씨가 저랑 아버지를 도둑 취급하잖아요!”

“···술락, 이 말이 사실인가?”


이장이 가게 주인을 보며 물었다. 가게 주인 이름이 술락인 모양이다.


“저 꼬마놈이 먼저 오해할 만한 짓을 했어. 저번에는 돈 없다고 동냥하러 오더니 만 오늘은 돈을 가지고 왔다고? 성인도 안 된 녀석이 어디서 돈이 낫겠나. 도둑질밖에 더 있어?”

“말했잖아요! 집에서 발견했다고요. 며칠간 굶어서 집안을 뒤져보니 나온 거라고요. 그런데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가 사람들 죽여서 뺏은 돈이라고 막말을 했잖아요!”

깅코가 발끈해서 끼어들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자꾸 큰 소리야!”


“다들 조용히 하게. 술락, 이번엔 자네가 심했네.”

“아니 내가 무ㅅ···”

“자네가 고의로 물건을 팔지 않아 깅코가 굶어 죽으면 방조죄로 잡혀갈 수도 있네. 그리고 전에 모여 일 년 동안은 마을에 머물게 하기로 하지 않았나.”


가게 주인 술락은 잡혀갈 수도 있다는 말에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깅코 역시 그런 죄가 적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리고 깅코. 너는 마을에서 눈에 띄는 짓 하지 말라는 것을 귓등으로 들은 거냐. 네 아버지가 죄를 지었던, 짓지 않았던 간에, 마을 전체가 그 사실로 인해 불편함을 겪고 있는 걸 알아 둬라.

이번은 처음이니 그냥 넘어가겠지만, 한 번 더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때는··· 그 날로 마을을 떠나야 할 거다.”


마을 이장은 구경을 위해 모인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이장은 깅코에게 재차 주의를 주고 깅코가 식재료를 사는 것까지 확인한 뒤 자리를 떴다.

다음 번 시장에 갔을 때, 술락은 이장이 한 말 때문이지 별 말없이 먹을 걸 팔아줬다. 덕분에 이후로도 시장에 올 때마다 며칠간 먹을 수 있을 양을 사서 집에 올 수 있었다.


당장 끼니 걱정이 해결 되니 기력도 생기고 빈혈기가 좀 나아졌다. 그러나 몸이 나아지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시간.

시간이 남아돌았다.




작가의말

천천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깅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잘 부탁드립니다. 24.09.19 62 0 -
15 15. 날지 못하는 요정 5 NEW 4시간 전 4 0 12쪽
14 14. 날지 못하는 요정 4 NEW 9시간 전 6 0 12쪽
13 13. 날지 못하는 요정 3 NEW 9시간 전 6 0 12쪽
12 12. 날지 못하는 요정 2 24.09.21 5 0 11쪽
11 11. 날지 못하는 요정 24.09.21 4 0 11쪽
10 10. 머큐어의 숲 6 24.09.19 27 1 13쪽
9 9. 머큐어의 숲 5 24.09.19 15 0 11쪽
8 8. 머큐어의 숲 4 24.09.19 18 0 12쪽
7 7. 머큐어의 숲 3 24.09.19 17 0 12쪽
6 6. 머큐어의 숲 2 24.09.19 25 1 11쪽
5 5. 머큐어의 숲 24.09.19 32 1 11쪽
4 4.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 24.09.19 32 3 11쪽
3 3.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4.09.19 41 3 11쪽
2 2. 살인자의 아들 2 24.09.19 52 4 11쪽
» 1. 살인자의 아들 24.09.19 215 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