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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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A
작품등록일 :
2024.09.16 19:35
최근연재일 :
2024.09.2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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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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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날지 못하는 요정 5

DUMMY

15. 날지 못하는 요정 5


쿠구구-궁.


“또 무너지는 거 아냐···!” 깅코는 뒷걸음질 쳐 등을 벽면에 붙였다. 다행히 진동은 오래 가지 않았다. 흙먼지가 가라 앉자 보인 것은 깅코의 키 정도 높이의 세 번째 갈림길이었다.

이로써 가보지 않은 길이 하나 늘었다. 세가지 중 골라야 한다면···.


‘오팔이 흡수된 벽에서 길이 나타났다면 당연히 첫 두 길은 꽝이라는 거겠지.’


깅코는 주저 없이 새로 생긴 길로 들어섰다.


쿠구궁-!


깅코가 들어서자 입구가 다시 돌덩이에 닫혔다. 그는 방금까지 입구였던 돌 벽을 손으로 두들겼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려친 손아귀가 얼얼하게 아파왔다. 입구가 벌써 두 번이나 막혔다.

그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긴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제 꼼짝 없이 갇힌 셈이었다. 이 길이 함정이라 해도 나아가야 했다.


둔차르가 말한 것처럼 이미 한 번 죽음을, 혹은 죽음에 가까운 사건을 겪어 그런지 생각보다 정신적인 데미지가 크지 않았다. 깡이 세졌다고 해야 할까. 겁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래······. 될 대로 되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닫혀버린 출구를 뒤로하고, 깅코는 갈림길을 걸었다. 깅코의 키만한 길이라 그런지 걸을 마다 머리가 벽 천장에 닿을듯 말듯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깅코는 무릎을 구부려 걸어야 했고, 지금은 제대로 서서 걷지 못할 정도로 작아졌다. 거의 앞으로 누운 상태로 기어 가야 할 정도였고 배낭을 메면 통과할 수 조차 없었다.


‘어떡하지···. 물건들을 다 버리고 가야 하는 건가?’


상체가 반쯤 끼인 상태로 고민하던 그는 결국 배낭을 두고 가기로 했다. 이대로는 움직이기 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깅코는 다시 뒤로 빠져 앉아 있을 수 있는 지점까지 나왔다.

그는 앉아서 배낭을 정리했다. 먼저 버리기 아까운 주먹밥 두 개와 물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나무 뿌리를 새로 꺼내 물고, 여분의 뿌리를 하나 바지 주머니에 우겨 넣었다. 마지막으로 뒷주머니에 칼을 찼다.


“좋았어···.” 준비를 끝낸 깅코는 다시 좁아진 굴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좀 더 편해졌지만 흙 바닥을 기어 가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포복을 할 때마다 아래팔과 무릎이 쓸렸다.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기엔 힘이 너무 약했다. 심지어 나무 뿌리를 문 상태로 전진하려니 흙이 잔뜩 입 속으로 들어와 기침이 났다. 앞으로 누워 기침을 하자, 아까 먹은 주먹밥이 위장에서 역류 할 것만 같았다.


‘아···아깝다고, 괜히 먹었나. 그나저나 이 요정, 왜 이렇게 깊게 들어간 거야!!!’ 힘들어서 슬슬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괜히 소리 질렀다가 목소리의 근원에게 해코지 당할까 속으로 삭힐 뿐이었다.

물론 자신을 구해달라는 걸로 봐서 요정이 귀신일 것 같진 않았다. 다만 만에 하나, 걱정대로 증오가 극한으로 치닫아 귀신이 됐다면, 깅코가 부정적인 감정을 내뱉은 순간 감지 당하지 않을까 했다.


프으..프으.. 깅코는 진정하기 위해 숨을 가다듬었다. 나무뿌리에 가쁜 숨소리가 부딪혀 이상한 소리가 났다. 통로가 구불거리지 않아 다행이지, 만약 그랬다면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됐을지도 몰랐다. 이러다 머큐어 웜 같은 괴수라도 만난다면 그대로 즉사. 대처 방안은 없다. 누운 상태로 물어 뜯기고 삼켜진다.


너무 꽉 끼는 곳에 있어서 그런지 심장이 몸 전체에서 뛰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도는 것 같다. 깅코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여 가며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법을 찾았냈다.


우여곡절 끝에 고글 너머로 출구로 보이는 구멍이 보였다. 깅코는 속으로 안도의 쾌재를 부르며 출구 쪽으로 기어갔다.


‘와···이게 다 뭐야···.’


깅코가 구멍에 얼굴을 내밀자 나타난 건 거대한 동굴이었다. 머큐어 성이 있는 동공과는 규모가 다를 정도로 넓고 거대했다. 동굴 천장에는 종유석이 고드름처럼 내려와 있고, 바닥에는 각종 보석들이 깔려 있어 오색의 바다 같았다. 야광석이 함께 깔려 있는지, 동굴 내부는 고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밝았다.


동굴 속, 보석 바다는 마주한 것만으로도 경이로웠다. 처음 머큐어 성을 보았을 때의 기분. 마치 아름답다는 개념을 그대로 재현해낸 것만 같은 경관이었다. 깅코는 고글을 벗고, 마침내 구멍에서 기어 나와 제대로 설 수 있었다.


“아앗···생각보다 너무 아픈데.”


몇 시간이나 기어오며 짓눌린 팔과 다리가 쓸리고 까져 욱신거렸다. 입을 벌린 상태로 나무 뿌리를 너무 세게 물고 있었는지 양쪽 입꼬리가 갈라져 따가웠다. 치유 물약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 정신이 없어 나무뿌리만 챙겨 버렸다.

그나마 보석 바다 위를 걸으며 느끼는 일종의 황홀감이 통증을 경감시켜줬다.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나온 깅코는 몸에 묻는 흙을 털어내고, 동굴 내부를 돌아다녔다. 목소리의 정체를 찾는 일만 남았다.


“요정님?? 어디 계신가요? 도착했는데요···.”


<벨휴어? 어서 와! 나 여기에 있어.>


저 멀리, 동굴 깊은 부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석을 잘그락 밟으며 목소리가 울려 퍼진 쪽으로 가자 그는 만개한 작은 머큐어 나무를 발견했다. 일반 머큐어 나무보다 작다 뿐이지 깅코의 세계의 나무와 비슷한 사이즈였다. 나무 주변에는 익숙한 황금빛의 원형의 장막이 쳐져 있었다.


‘저건···결계?’


회색 로브가 그의 집 앞에 결계를 치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결계 앞에서 손가락을 내밀었다.


치지직. 치칙.


검지 손가락이 결계에 닿자 반발로 인해 튕겨 나갔다. 아마 결계 안에 들어가려면 마찬가지로 특수한 조건을 충족 시켜야 하는 모양이었다.


“요정님? 구하러 왔어요. 혹시 이 결계 좀 어떻게 해주시겠어요? 들어 갈 수가 없는데···.”


<그이가 아니잖아. 넌···인간이군.>


나무 속에서 소리가 나왔다. 뻑뻑한 눈을 지긋이 누른 뒤, 자세히 보니 나무 중간에 자그마한 생명체가 앉아 있었다.

귀신이 아니었다.

날개 한 쪽이 꺾여 있는, 손바닥만한 생명체.

바로 <머큐어의 요정>속 날지 못하는 요정이라는 걸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요정은 외관상 그리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붉은 머리카락, 성별을 알 수 없는 중성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몸체가 아주 작은 걸 제외하면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졌고 어깨 뒤로 잠자리 날개 같은 한 쌍의 날개가 달려있었다. 멀쩡한 날개는 흰색이었고, 꺾인 한 쪽은 회색이었다.


“어···인간은 맞는데요, 당신을 구하러 왔어요···.”


깅코는 답하기 위해 물고 있던 나무 뿌리를 입가에서 살짝 떼어내며 말했다. 이스바 랑나가 걸어준 마법의 효과가 풀린 모양이었다. 뿌리를 멀리 두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또한 압력 때문에 몸이 무거워지고 귀가 먹먹해졌다.


<내가 그렇게나 울부짖었는데, 인간이 구하러 올 줄이야···. 나의 종족은···벨휴어는 나를 잊은 거야···?>


깅코의 심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압력 때문인지, 요정의 슬픔이 전해진 건지 찌르 듯한 통증에 가슴을 부여잡고 휘청였다.


“아녜요···당신의 후손인 로랑족과 같이 오다가 중간에 괴수를 만나는 바람에 길이 막혀 갈라지게 됐어요.”

<나의 후손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텐데, 어째서 다른 종족 마냥 불리는 거지? 아직도 종족내 차별이 존재하는 거야? ···요정족은···요정족 중에 함께 온 이가 없어? 이 오팔을 가지고 있던 요정 말이야.>


벽으로 흡수 되었던 오팔이 결계 속에서 나왔다. 벽으로 흡수 된 뒤 저 요정에게 이끌려 갔던 모양이었다. 깅코는 허공에 멈춘 오팔을 붙잡았다.


“그게···요정족은 전쟁으로 멸종했다고 들었어요···.”

<···그럴리가 없어! 멸종이라니?>


요정은 나무를 타고 내려와 깅코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나올 수 없는지 결계의 경계선에 멈춰섰다.


“저도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돼서 자세히는 몰라요. 400년전 마계 대전이 발생하고 숲 에 괴물들이 나타나자 머큐어 숲을 떠났다고 들었어요. 이 숲에는 당신의 후손인 로랑족밖에 살지 않고요.”


깅코는 짧게 이스바 랑나에게 들었던 로랑족과 요정족의 역사에 대해 말해주었다. 몇 천년이 지나 요정의 이야기가 전설이 되었다는 사실과, 깅코만이 요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까지.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야···? ···그럴리 없어. 그가 한 약속과 달라.>


요정은 결계 안에서 부들부들 떨더니 결국 깊은 탄식과 함께,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며 일곱 번 날갯짓 했다.


<나의 기다림은 대체 무엇을 위했던 거야?>


깅코는 요정의 탄식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요정님, 제가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지금은 저와 함께 지상, 아니 지하?로 올라가야 해요. 저도 부탁을 받아 온 거라···”

<······.>

“요정님 듣고 계세요? 저랑 같이 나가요.”

<···늦었어. 나갈 수 없어.>

“나갈 수 없다뇨···?”

<이 결계는 동굴에서 발견한 레릭으로 만들어진 거야. 오팔을 가진 벨휴어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걸 조건으로 레릭을 발동시켰다고.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요정족은 이미 멸종했으니 결계를 해제 시킬 수 있는 건 방법은 없어. 오팔이 있어도 그 누구도 벨휴어가 아니니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그러면 벨휴어를 데리고 와야만···.”

<그는 이미 죽었을 거야. 난 결계 안에서 벨휴어를 기다린지 7,400일 밖에 되지 않았어. 하지만 밖이 요정족의 수명을 훨씬 뛰어 넘은 몇 천년이 흘러 있는 거라면······.결계 안에서 시간이 느리게 흘러 가는 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질 않아.>

“나가는 방법은 없어요? 다른 길이라거나.”

<동굴에는 다른 길이 없어. 만약 내가 레릭의 결계에서 나온다면 동굴을 나가는 또다른 길이 나타나. 하지만 벨휴어는 죽었으니, 내가 이곳을 나갈 방법은 없어. 내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대로일 거야.>

“긴 세월을 기다린 요정님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저는 그럼 어떻게 해요···?”

<미안하지만,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거야. 네가 자력으로 다시 되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건 무리에요. 산소가 모자라요..그리고 저는 막힌 벽을 뚫을 만큼 강하지 않아요.”


깅코는 뒷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는 칼을 두손으로 꽉 쥐고 결계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결계 막을 찔렀다.


“윽!” 깅코는 칼을 쥔 채로 튕겨져 나갔다. 보석들 깔린 바닥에 나뒹굴어진 몸에 고통이 박혔다.

<소용없어. 레릭의 조건은 절대적이야. 조건을 달성하기 전에는 파괴가 불가능해.>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잖아요!”

<내 후손과 함께 왔다 하지 않았어? 그들이 부탁했다면 구하러 오겠지.>

“로랑족이 구하러 온다 해도, 이 보석이 없으면 막힌 길이 열리지 않을 텐데 무슨 수로 여기를 찾겠어요? 애초에 벨휴어라는 요정은 당신을 왜 동굴에 가둔 건데요? 동화책에서 그는 당신이 찾은 돌을 뺏은 배신자로 묘사 된다구요. ”

<벨휴어···그는 내 연인이었어. 벨휴어가 나를 배신 할 리 없어. 그 동화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엉터리야! 그가 나를 이곳에 가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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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날지 못하는 요정 3 NEW 9시간 전 6 0 12쪽
12 12. 날지 못하는 요정 2 24.09.21 5 0 11쪽
11 11. 날지 못하는 요정 24.09.21 4 0 11쪽
10 10. 머큐어의 숲 6 24.09.19 27 1 13쪽
9 9. 머큐어의 숲 5 24.09.19 15 0 11쪽
8 8. 머큐어의 숲 4 24.09.19 18 0 12쪽
7 7. 머큐어의 숲 3 24.09.19 17 0 12쪽
6 6. 머큐어의 숲 2 24.09.19 25 1 11쪽
5 5. 머큐어의 숲 24.09.19 32 1 11쪽
4 4.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 24.09.19 32 3 11쪽
3 3.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4.09.19 41 3 11쪽
2 2. 살인자의 아들 2 24.09.19 52 4 11쪽
1 1. 살인자의 아들 24.09.19 21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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