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코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새글

알백서
그림/삽화
NOVA
작품등록일 :
2024.09.16 19:35
최근연재일 :
2024.09.23 00:1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538
추천수 :
16
글자수 :
78,895

작성
24.09.19 15:00
조회
17
추천
0
글자
12쪽

7. 머큐어의 숲 3

DUMMY

7. 머큐어의 숲 3


벽이 열리자 눈 앞에 푸른 이끼와 작은 식물로 뒤덮인 공동(空洞)이 나타났다. 지하라 하늘은 보이지 않았지만 곳곳에 박혀 있는 빛나는 광석이 마치 해가 드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공동 중앙에는 성이 있었는데 외벽과 내부 전부 이끼로 덮여 있었다. 그 모습은 경이롭고 성스러운 기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이끼를 밟으며 성 앞에 도착했다. 성문 앞에는 창을 든 두명의 문지기들이 서 있었다. 문지기들은 깅코와 둔차르가 더 이상 다가오는 걸 막아섰다.


“둔차르. 옆에 있는 건 누군가?”

“몰라. 숲에서 마망에게 당할 뻔한 걸 구해줬다. 깨끗한 자는 숲 안에 있는 이상 죽일 수 없으니 관례대로 보고하려는 것이고.”


문지기들 중 하나가 깅코를 위 아래로 훑었다. 그의 시선이 피와 땀 범벅이 된 누더기 옷을 멈추더니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


“마망에게 죽게 내버려뒀으면 될 걸, 괜한 선의를 베풀었군. 딱 봐도 깨끗한 자는 아닌 것 같은데.”

“글쎄, 그건 랑나들이 결정할 문제이지 않나. 애초 머큐어 숲에 외지인이 들어 온 것도 비정상적인 일이니 경위를 알아봐야해.”

“······그래도 어떤 위협이 될지 모르는 외지인을 성에 들일 수는 없네. 허가가 있어야 해.”

“그렇다면 가서 랑나를 데리고 오게. 성 문 앞에서 기다리도록 하지.”


둔차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깅코를 보며 표정을 구겼던 문지기가 성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문지기가 깅코에게 다가오더니 식물 줄기를 엮어 만든 수갑을 꺼냈다.

반항하면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에, 순순히 두 팔을 내밀었다. 수갑을 차자 식물 줄기가 억세게 그의 손목을 조여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갔던 문지기가 품이 낙낙한 흰 옷을 입은 할머니와 함께 나왔다. 할머니는 수정구가 달린 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과 걸음걸이에는 인자함이 배어 있어 저절로 공손해질 것만 같았다.


“검문에 이상이 없으면 문을 열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주저 없이 쏴라!”


문지기가 외치자, 이끼로 덮인 성탑과 망루에서 몸을 숨겼던 병사들이 나타나 깅코를 향해 총포를 겨눴다.

가까이 있던 문지기가 수갑을 찬 깅코의 몸을 더듬으며 수색했다.


“이건 뭐지?” 문지기가 깅코의 주머니 안에서 세르만드의 차원석을 꺼냈다.

“레릭이잖아. 이봐, 어째서 레릭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았지?” 둔차르가 옆에서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말할 타이밍을 주지 않았잖아요. 자세한 건 마망에게서 벗어나서 얘기하자면서요.”


둔차르는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지.”

“꼬마, 설명해라. 이건 무슨 레릭이냐.” 문지기가 레릭을 들고 물었다.

“저도 잘 몰라요.”


깅코가 성 밖에서 지금까지 있던 일을 간추려서 이야기했다. 회색 로브가 이 차원석을 쓰기 위해 마을 사람 전부를 몰살한 것과, 자신까지 마지막 제물로 쓰려고 심장을 찌른 일을.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이 눈을 떠보니 숲 안이었다고 했다.


“나에게 한 번 줘보게.”

“여기 있습니다. 이스바 랑나님.” 문지기가 이스바 랑나의 손에 차원석을 건넸다.


그녀는 세르만드의 차원석을 손에 쥐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더니 다시 인자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깅코에게 물었다.


“얘야, 이 돌을 만졌을 때 뭔가 머릿속에 나타나지 않았느냐?”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레릭이나 마도구를 만지면 보통 그 기능이 머릿속에 입력이 된단다. ···아무래도 이 레릭은 사용자에게 귀속 되는 것 같구나. 나에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그녀는 차원석 중간 검붉은색이 일렁이는 걸 보다 수갑을 찬 깅코의 손에 올려 주었다.


“뭐가 보이는지 알려 주겠느냐?”

“처음 보이는 건 세르만드의 불꽃이고, 나머지는···”


이스바 랑나를 포함한 주변 모두가 일순간 눈을 크게 뜨고 깅코를 바라봤다.


“세르만드···방금 세르만드라고 했느냐?”

“어···네, 세르만드의 불꽃 다섯 개, 융의 결정과 바르후의 피가 담긴 성배를 모으라는 것 같은데요···.”


“머큐어이시여···드디어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것입니까.”


이스바 랑나가 지팡이를 살짝 휘두르자, 깅코의 손을 감싼 수갑이 풀리고 이끼가 되어 땅에 떨어졌다.


“문을 열거라.”


문지기가 즉시 성문을 열었고 둔차르와 깅코는 이스바 랑나를 따라 성문을 통과했다.

성안으로 들어서자 성의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깅코를 보기 위해 나와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이끼를 녹여 염색한 것 같은 녹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 모두 둔차르와 비슷하게 컸고···비슷하게 동글동글하며···비슷하게 귀엽게 생겼다. 깅코는 자신을 올려다 보는 이들에게 목례를 하며 걸었다.


“나 외지인은 처음 봐!”

“인간이잖아! 바깥 인간들은 모두 저렇게 큰 것인가?”

“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어. 죄인으로 끌려 온 거 아냐?”

“마망에게 당할 뻔 했다 던데!”


저들끼리 수군대며 깅코를 뒤따라 왔다.


“아, 다들 들어가셔. 뭐 볼 게 있다고 나와서 이럽니까!” 둔차르가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윽박질렀다.

“둔차르! 나이도 어린 것이 예의는 밥 말아 먹었나? 아이스 블라스트 한 방 맞아볼텨?”

“나이 많이 먹어서 좋겠수다. 한 번 쏴 봐요. 저 밑에 광석 캐러 가고 싶으면.”

“내가 거길 왜 가! 너나 가라.”


이스바 랑나가 인자한 표정으로 한 번 뒤돌아 보자 티격태격하던 사람들이 합죽이가 되었다. 마법을 쓴 건가? 성의 광장을 지나 궁전 현관에 당도하자 구경 온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셋만 남았다.


“둔차르, 이 아이를 이층 서쪽 날개에 있는 방에 데려가 씻을 수 있도록 하게. 입을 옷도 주고. 하루가 끝나기 전에 랑파에게 보여야겠다.”

“네, 이스바 랑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자세였던 둔차르가 저렇게 깍듯한 태도인 걸 보니 지위가 높은 사람이 틀림 없었다. 아까도 뒤 돌아 본 걸로 사람들 조용히 시킨 것도 그렇고. 하긴 아우라부터 달라 보이긴 한다.


이스바 랑나는 그대로 계단을 올라갔고 둘은 궁전의 서쪽 날개로 향했다. 궁전 내부도 이끼로 뒤덮여 있을 줄 알았는데, 말끔한 대리석 바닥과 벽돌이 제대로 보였다.


“저기 둔차르씨. 이스바 랑나는 높은 분인 거죠?”

“그래. 머큐어 숲의 랑나이니 랑파 다음으로 높은 분이지.”

“랑나가 이름이 아니었나요?”

“랑나는 직분이야. 랑파는 이 성을 다스리는 왕을 가리킨다. 이스바 같은 랑나들은 그 아래 성에서 일어나는 업무를 총괄하지. 그 다음은 나와 모든 주민들을 이르는 랑사가 있다.”

“그러면 왜 둔차르 랑사라고 부르지 않는 건가요?

“귀찮으니까. 랑파, 랑나외에는 붙이지 않아.”


하긴, 서민에게 누구누구 서민이라 부르지 않으니 수긍이 됐다.

하루가 끝나기 전 랑파를 만나야 한다고 했으니, 이곳의 왕을 만나는 건가.

왕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긴장할 법도 했지만, 깅코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왕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귀엽게 생겼을까?’였다.


궁전의 서쪽 날개에 도착한 둘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 이층에 도착했다. 이층에는 총 여섯 개의 방이 있었는데, 둔차르는 그 중 복도 끝에 있는 방 문을 열었다.


“이 안에서 잠시 기다려라. 갈아 입을 옷을 가지고 오마.”


방은 별 다른 꾸밈 없이 소박했다. 자그마한 침대와 선반, 그리고 욕조가 있었다. 그리고 오면서 봤던 익숙한 광석이 어두운 방안을 은은하게 비췄다.

아까 둔차르가 주민 한 명과 말씨름 하던 것이 생각났다. 노역형을 받으면 이 빛을 내는 광석을 캐러 가는 것 같았다. 공동과 이곳 전체를 다 비출만한 양을 캐려면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할텐데.


꼬르륵-


배에서 허기 진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에추카 마을에서부터 아무 것도 먹질 못했다. 멜리사가 주기로 했던 빵과 우유가 떠올랐다. 마른 빵이라도 먹었어야 하는데 그냥 두고 온 것이 후회됐다. 먹을 걸 생각하니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둔차르는 성 안 랑사들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녹색 옷, 잘 개어진 수건과 비누를 가지고 왔다.


“여기 있다. 씻는 건 저기 욕조에서 씻으면 되고, 수도꼭지 왼쪽 틀면 따듯한 물, 오른쪽은 찬물. 다 씻으면 이걸로 갈아 입어.”

“고마워요. 그런데 혹시, 밥도 주나요? 배가 너무 고파서···.”


둔차르는 살짝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씻고 나면 궁전 안에 상주하는 랑사들과 함께 먹을 거니까 좀 참아.”

“네. 씻고 여기서 기다리면 되나요?”

“그래. 씻고 쉬고 있으면 데리러 오겠다. 아, 물 아껴 써라.”


둔차르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고, 깅코는 욕조 물을 틀고 누더기 옷을 벗었다. 더는 입을 수 없을 것 같아 버리고 싶었지만 쓰레기통이 없어 욕조 맞은 편 바닥에 두었다.


고동색의 욕조는 숲의 나무를 파서 만든 것 같았고, 물이 나오는 호스 마저 넓은 식물 줄기로 되어있었다. 따듯한 물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식물 줄기를 타고 욕조로 흐르기 시작했다.


“하···. 살 것 같아.”


따듯한 물이 머리를 적시며 내려가자, 기분 좋은 현기증에 몸이 기우뚱했다. 저절로 깊은 한숨이 나오고 긴장이 풀렸다. 맘 같아서는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몸을 좀 담그고 싶었지만, 물 아껴 쓰라는 말에 깅코는 서둘러 머리부터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샤워하듯 마무리했다.


샤워를 마친 깅코는 둔차르가 가지고 온 녹색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다행히 일반적으로 보였다. 매트리스는 나름 푹신했는데, 뭔가 마른 이끼 냄새가 났다. 사이즈는 깅코의 키에 딱 맞았다. 정자세로 누우면 발이 침대 끝단에 닿을 정도였지만 그리 불편하진 않았다.


깅코는 천장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있던 일을 정리해보려 했다. 모든 일이 정신 없이 몰아친 터라 제대로 소화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인자로 지목 되어 끌려 간 아버지부터, 마을 사람들의 죽음, 회색 로브,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이 깨어난 이 숲에서 겪은 일들까지 전부. 그는 머릿속으로 되뇌며 레릭을 꺼내 들었다.


세르만드의 차원석 [감정 완료/미활성]


[세르만드가 장례 의식을 위해 만든 차원석. 차원을 넘나 들 수 있다. 이 레릭은 훼손되었기 때문에 제물은 매회 사용시 무작위로 변경된다. 생물이 제물 조건 경우 특별한 사용법이 적용 된다.]


(세르만드의 불꽃 0/5)

(융의 결정 0/1)

(바르후의 피가 담긴 성배 0/1)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들의 중심이 되는 게 바로 ‘레릭’이다. 세르만드라는 자가 만든 차원석. 머릿속에 띄워진 글귀 중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장례 의식을 위해 만든 차원석이나 훼손 되었다,’

‘생물이 제물 조건일 경우 특별한 사용법이 적용된다.’


차원석은 제물로 인간을 원했다. 깅코가 아버지의 외투 속에서 레릭을 발견 했을 때 지금처럼 메세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에게 귀속되어 있지 않아서, 혹은 반으로 쪼개져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 건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깅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잘 부탁드립니다. 24.09.19 62 0 -
15 15. 날지 못하는 요정 5 NEW 4시간 전 5 0 12쪽
14 14. 날지 못하는 요정 4 NEW 9시간 전 6 0 12쪽
13 13. 날지 못하는 요정 3 NEW 9시간 전 6 0 12쪽
12 12. 날지 못하는 요정 2 24.09.21 6 0 11쪽
11 11. 날지 못하는 요정 24.09.21 4 0 11쪽
10 10. 머큐어의 숲 6 24.09.19 27 1 13쪽
9 9. 머큐어의 숲 5 24.09.19 15 0 11쪽
8 8. 머큐어의 숲 4 24.09.19 18 0 12쪽
» 7. 머큐어의 숲 3 24.09.19 18 0 12쪽
6 6. 머큐어의 숲 2 24.09.19 25 1 11쪽
5 5. 머큐어의 숲 24.09.19 32 1 11쪽
4 4.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 24.09.19 33 3 11쪽
3 3.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4.09.19 41 3 11쪽
2 2. 살인자의 아들 2 24.09.19 52 4 11쪽
1 1. 살인자의 아들 24.09.19 215 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