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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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최근연재일 :
2016.04.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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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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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2

DUMMY

1년이 지났다. 아니, 한 달일까. 혹은 10년일지도 모르지. 공랑은 오래전부터 시간감각을 잃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발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철창 앞으로 달려가 애타게 말했다.

“누구시오.......”

그가 비틀린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누구 있소.......”

얼마 만에 하는 말인가.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정말 누구라도 좋으니 내 말을 들어주시오. 그냥 가지 마시오.......”

목이 메말라 허깨비가 내는 소리 같았다.

“제발 가지 마시오.......”

발소리를 들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홀로 한참을 신음하고서야 공랑은 정신을 차렸다.

환청이 분명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다 듣고 있을 텐데.


공랑은, 정말 어디인지 모를 곳에 감금되었다.

안은 철창으로 막힌 한쪽 벽을 제하면, 사방이 돌벽이었다. 제법 넓기는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천장에 시간마다 음식이 나오는 구멍이 있었고, 바닥에 용변을 해결할 작은 구멍이 있었다. 옆면에서는 천장의 구멍으로 몸을 씻기 살짝 아쉬운 물이 계속 흐르며 용변구멍으로 나갔다. 그 외에는 어떠한 가구도 없었다.

아마 마교의 지하 감옥일 것이다. 그를 가둔 여인이 사악한 마인이었기에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인이긴 하나 그녀 역시 한 가문의 문주이니, 잘은 몰라도 마교 밖의 비밀스러운 곳일지도 몰랐다. 그 외에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나 깊은 곳일지, 그가 그 곳을 나갈 수는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몸이 정상이었다면, 그리고 자신의 검이 있었다면 혹 돌벽을 뚫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악한 마인들은 그의 무공을 거의 다 폐해버렸다. 비급을 빼내야 하기에 영영 병신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래서는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다. 시험 삼아 내공을 모아 보았던 그는 바로 절망했다.

도구라고 해 보아야 손톱과 주먹뿐, 옥 안에는 돌멩이조차 없었다. 어차피 허약한 몸으로 벽에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런 곳이 매일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음식은 때를 맞추어 천장에서 계속해서 떨어졌고, 이상하게 따스한 물도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그를 고문하는 것도 없었고, 그에게 협박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차라리 환경이 더 가혹했다면 모를까, 공랑은 그게 더 미칠 지경이었다.

“사람대접하는 꼴을 보아하니 처녀귀신보다도 못하군!”

듣고 있다. 분명히 듣고 있다. 그가 비급을 털어 놓을 마음이 생기면 바로 달려올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분명히 그 악녀가 직접 듣고 있다. 그게 공랑의 확신이었다.

공랑은 조금 전 자신도 모르게 한 호소를 덮어버리고 싶었다.

“처녀귀신에게 미안하오. 그 꼴로 시집이나 가겠소? 얼굴에 철판을 깔았소? 첫날밤에 신랑이 무서워서 도망이나 안 가면 다행 아니오?”

공랑은 스스로 풀이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외치려했다.

그러나, 그만두고 말았다.

분명히 이성은 누군가 듣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옥 안은 그것이 공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적막했다. 소리치면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 뿐. 그나마도 환청 같아서 공랑은 귀를 막아야했다. 이 상황에 미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극히 두려웠던 까닭이다.

매일 매일 달라질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음식도 무미건조한 경단 비슷한 것에 불과했고 물의 온도도 일정했다. 달라질 것은 머리길이와 손톱, 그의 신체. 그리고 점차 늘어나는 악취뿐이었다.


그는 자주 자살을 시도했었다.

혀를 깨물고, 동맥을 물어뜯어 보았으나 그럴 때마다 정신을 잃곤 했다. 아주 잠깐 따끔한 것이 마비효과를 가진 침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확인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잃고 나면 몸이 다시 멀쩡해진 상태로 그곳에 돌아와 있었다.

듣는 것뿐만 아니라 눈으로 감시하는 사람까지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그런 자극이나마 감사해 자주 자해를 시도하려고도 해 보았지만 이내 알아챘는지, 그런 짓을 할 때마다 그들은 공랑을 약에 절여 놓았다. 무슨 약인지는 몰라도 장기간 온몸이 마비되는 되신 정신만은 또렷해지는 약이었다. 그것은 더욱 참기 어려웠기에 그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보다도, 날이 갈수록 부끄러웠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사실을 안다면 아버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미 돌아가셨으니 당연히 아실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짓도 아실 것이다.

꼴사납다.

‘나는 태공가의 문주다.’

그는 애써 그 생각을 되뇌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극천법의 계승자이며, 태공가의 적손이다. 누구도 나를 굴복시키지 못한다. 가문이 멸문 당했을지언정 정신만은 잃지 않는다.’


그 때, 정말로 확실한 발소리가 들렸다.

환청이 아니었다. 공랑은 하던 생각을 멈추고 즉시 귀를 기울였다. 또박, 또박. 분명히 사람이 내는 소리였다.

“누구시오?”

공랑은 위엄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아무리 봐줘도 늙은이 같았다.

“대답 하시오. 대답을.......”

체면이 구겨지는 것 같았지만,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다. 보아하니 말은 해주지 않을 것 같았지만 공랑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안도될 수가 없었다.

“감시하러 온 것이오?”

그가 말했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했을 텐데.”

짐짓 떠보듯 한 말이었으나 상대방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공랑이 포기하려 할 때쯤, 어딘가에 걸터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에게도 익숙한 현악기의 음색.

그건, 금의 일종인 것 같았다. 청각마저 흐려져 확신은 없었지만 아주 좋은 금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좋은 금으로 정말 어설픈 연주를 한다는 것이었다. 괜히 어려운 곡을 뽑는데, 수준이 너무 맞지 않아 오히려 귀에 거슬리는 음색이 들렸다.

그러나 그 순간 그에게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천상의 음색이었다. 오랜 시간 소리라고는 오직 자신의 말소리밖에 듣지 못했던 그에게는 잦은 실수조차 고귀한 변화로 들렸다. 엉성함조차 아름답게 느껴지고 툭툭 끊어지는 음은 안타까움까지 느껴졌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리기 시작했다.

몇 년인지 모를 시간동안 처음 들어본 연주였다. 곧 연주가 멈추었지만, 그는 한동안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곡에서 어떤 감정이나 기교를 느낀 것이 아니었다. 피폐해진 그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는 그저 음악이라는 것 자체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곡이 끝나자 그가 간신히 말했다.

“조금만 더.......”

몸을 팔아서라도 연주를 더 듣고 싶었다. 그러나 매정하게 일어서는 소리만이 들렸다. 단 한곡, 한 곡만 더 들려준다면 비급이고 뭐고 다 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가지 마시오!”

그가 쇠창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제발.......누구든 간에.......가지 마시오. 제발........”

그러나 발소리는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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