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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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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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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
글자수 :
1,493,079

작성
16.06.04 09:44
조회
1,102
추천
16
글자
11쪽

34화-Royal Blood(1)

DUMMY

너무나 무서웠으니까.

너무나 외로웠으니까.

한참을 그렇게 울고, 눈물을 쏟아냈을 때. 그가 찾아왔다. 아인즈. 그의 스승. 비록 아직 그가 가르쳐 준 것은 없었지만 그의 존재 하나만으로 든든했다. 그의 주변에는 늘 어떤 빛이 맴돌고 있었으니까. 그 동질성에 그는 크게 안도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막막한 공간에 자신 혼자 뿐이다.

그것이 너무나 무섭다.

그것이 너무나 두렵다.

다시 혼자가 될까봐.

다시 홀로 외로울까봐.

다시······ 세상에 홀로 내팽겨질까봐.

얼마나 그렇게 울고 있었을까.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봐, 거기! 시끄러워.”


“흑, 히끅!”


“아아, 그러니까 시끄럽다니까.”


무척이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새하얀, 시리아나 게럴트의 그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른, 탈색된 느낌의 백발을 드리운 한명의 여성이다.

눈동자도, 눈썹도, 피부도. 모든 것이 새하얀 모습이었지만 아니마는 그녀의 모든 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누구······ 세요?”


조심스레 묻는 아니마의 말에 여인은 인상을 더욱 찡그렸다.


“아, 뭐야, 뭐. 이번에는 꼬마냐고. 좀 봐주라. 얼마 전에는 별 거지 같은 놈이 내 잠자리를 날려버리더니 이제는 뭔 거지 같은, 하아.”


뭔가를 중얼거리며 빠르게 불평을 내뱉던 여인은 이내 아니마에게 다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니마는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책장이 뒤를 막고 있어 물러날 수 없었다.

결국 아니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왜, 왜 그러세요......”


“흐응.”


아니마의 물음에도 여인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로 그를 살필 뿐이다. 하지만 곧 무언가 발견한 듯 아니마의 손을 잡았다.


“응? 이건······”


그녀가 찾아낸 것은 아니마의 팔목에 새겨져 있는 특이한 모양의 흉터.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니마 그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래된 흉터였다.


“저, 저기요······”


“아, 시끄러! 지금 중요한 생각중이라고!”


“네, 네!”


그녀의 박력에 무언가를 말하려던 아니마는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반응은 관심이 없는 듯 여인은 그저 그의 흉터를 살필 뿐이었다.

구석에 움츠리고 있는 소년과 그의 팔을 붙잡고 있는 여인. 어떤 의미에서는 무척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그것도 잠시. 곧 여인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일어서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래, 그런가. 하기야, 나도 이제 여기서 나갈 때가 되기는 했지.”


무언가 씁쓸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한 묘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여인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아니마와 눈을 마주했다. 그런 그녀의 눈을 아니마가 피하기는 했지만.


“미안, 아까 그건 그냥 짜증이 나서였다고. 딱히 너한테 화가 났다거나 네가 싫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시선을 피하지 말라구. 적어도 우리는 앞으로 평생을 같이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에?”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놀라 아니마가 돌아보자 그녀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


“읍, 읍?”


육체적인 감각만이 아닌 영혼의 밑바닥. 그 근저를 헤집는 그 느낌에 팔다리를 내젓자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녀다.


-어이, 그렇게 몸부림치지 마. 그냥 받아들여. 이건 내가 너에게 하는 맹세의 증거. 너와 나의 평생을 아니, 어쩌면 영원을 이어갈 하나의 맹약.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니마의 시선에 전혀 색다른 모습이 보여졌다. 새하얀, 티끌 하나 없이 아니, 티끌조차 퇴색되어버린 그런 한권의 책. 그것을 본 순간 그는 몸에서 힘을 뺐다.


‘너는······. 그래, 저게 바로 너구나.’


-그래, 나야. 저 모습이야 말로 나의 가장 진실한 모습. 가장 오래된 마서중의 하나. 죽음의 서(Mortis Liber). 그리고 그 본질에 깃든 나의 이름은 이나니스(Inanis). 말해 줘. 나의 반려여. 너의 이름은?


‘아니마······ 아니마 칸투스(Anima Cantus).’


-그래. 아니마 칸투스.


입술에서 느껴지던 감촉은 사라졌지만 영혼의 울림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그녀, 이나니스는 흐릿하게 홍조를 띤 얼굴로 입술을 열었다.


“잘 부탁해. 아니마 칸투스. 나의 반려. 나의 Coniunx.”


“어, 응.”


아니마는 그의 스승의 말대로 가장 그의 영혼을 이끄는 운명의 이끌림과 마주했다.


* * *


“헤에? 뭐야, 뭐야. 인간들의 문명 수준이 이렇게 까지 발전한 건가?”


아니마와 함께 서고를 빠져 나온 이나니스가 아인즈와 게럴트, 시리아를 보고 처음 내뱉은 말이다. 흥미롭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그녀의 눈에는 감탄과 기쁨이 가득했다.


“이것 참.”


그런 그녀를 보고 아인즈는 기가 막힌다는 듯한 감탄을 내뱉었다.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그의 영혼을 두드린 울림. 거기에 비춰지는 본질은 어떤 의미에서 어이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적어도 아니마는 ‘빛의 서’나 ‘생명의 노래’, ‘천상의 축가’ 따위의 성서나 신서를 가지고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는 전혀 다른, 아니마의 빛과는 정 반대에 서 있는 ‘죽음의 서’. 게다가 그 존재 자체에 영이 만들어져 뚜렷한 자아를 구성할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진 마서다.


“이런 수도 있었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의 중얼거림에 동조하며 게럴트는 소파에서 잠을 자는 아니마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서고는 반 영격체로 이루어진 곳. 그곳에 존재하기만 해도 생기를 빼앗기기에 평범한 인간이 쉬이 들어가 살아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 증거로 아니마는 지금 소모한 생명력을 보충하기 위해 가사 상태에 들어간 것이니까.

잠시 아니마를 따뜻하게 바라보던 그는 서재의 마법 구성을 살펴보는 이나니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건 그렇고······ 거기, 음······ 이름이?”


“에? 나? 이나니스. 이나니스라고 해.”


“아, 그런가요.”


건성으로 대답하는 그녀의 태도에도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정확하겠지. 그의 응답에도 씁쓸함이 가득했으니까.

이나니스. 그 이름에 담긴 진의에, 숙명에. 그는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참······ 아름답고, 잔인한 그런 이름이로군요.’


저기서 밝게 움직이는 생기가 가득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는 작게 기원했다. 미래를 보고 거기에 일부 간섭하는 권능을 일부 움직여서까지.


‘저는 제 제자가 슬퍼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부디 그대와 저의 제자의 앞날에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어드리지요.’


그녀의 밝은 모습은 마치 자신의 과거와도 겹쳐 있는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나도 결국 아직 인간이라는 거지.’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온전히 보지 못하고 같은 상처를 가진이에게서 위안과 슬픔을 찾는다는 것이.


“세상은 참 잔혹하고 그 인연의 무심함은 이루 말을 할수 없군.”


그의 작은 중얼거림이 흩어져갔다.


* * *


솔리투도는 멍하니 정원 건너의 서재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보이는 것은 이제는 익숙해진 자신의 양부 아인즈의 모습과 그의 곁을 지키는 게럴트와 시리아의 모습. 그리고 자신과 함께 그에게 거둬진 아니마와 새로이 나타난 의문의 여자.


“무언가 신경 쓰이십니까.”


“글쎄.”


그녀의 곁에는 누구인지 모를 이가 서 있었다. 바이올렛은 조금전 자리를 비운 차. 아마 금방 돌아오지는 않으리라.


“심려가 되시는 부분이라도?”


걱정이 묻어나는 물음에 솔리투도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모습은 아인즈의 앞에서 보이는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그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냥, 누군가, 하고.”


여전히 뚝뚝 끊기는 그녀의 특유의 말버릇. 하지만 그녀 뒤편의 인영은 익숙하다는 듯 그저 고개를 조아릴 따름이다.


“언제까지 이곳에 계실 겁니까?”


“글쎄.”


“하오나 지금은······”


“됐어.”


그의 목소리에 작게 책망이 서려 나오자 솔리투도는 곧 그의 말을 끊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알고 있다. 그녀 자신도 자각하고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렇게, 살면, 좋을까?”


“······”


아무런 감정도 묻어있지 않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 모를까. 그는 그녀를 가장 근처에서 가장 오랫동안 보필한 존재.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알아, 그냥, 어리광.”


힘을 다시 모으면서 기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와는 달리 그녀는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든 기억이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그냥, 그냥, 어리광······”


처음으로 가지게 된 가족이라는 존재는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셨다. 할 수 있다면 어리광을 마음껏 부리고 싶었다. 그에게 매달리고 싶었다. 의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작 자신의 위안 때문에 그를 얽히게 하는 것은 자신의 이기이리라.


“아빠.”


작게 그를 부르며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 * *


“찾았습니다.”


조용하게, 하지만 힘있는 목소리가 어두컴컴한 방안을 가로질렀다.


“무엇을?”


“둘 모두.”


“그런가······”


그의 말에 작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나는 놓쳐버린 먹이이고, 하나는 계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다.


“어딘가.”


그의 물음에 웃는듯한 목소리가 답해왔다.


“먹이는 아드리아, 기둥은 언제나 있던 그곳.”


“흐음······”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둘중 어느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 문득 눈앞에 건방진 태도로 벽에 기대어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우연한 맞닥뜨림. 하지만 그는 아주 쓸모 있고, 또한 흥미로운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은 훌륭한 동업자이기도 하고.


“그대가 기둥을 잡아오도록.”


“헤에? 내가 힘들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잖아?”


“내가 도움을 주지.”


휙, 탁.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간 것을 확인해 보는 남자에게 낮은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부정’의 힘을 가진 것이다. 사용법은 알겠지?”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가 뒤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 시야에 잡혔다.


“물론, 기대하라고.”


“흐음······ 기대하지.”


* * *


15. Royal Blood


1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루멘왕국.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루멘의 왕성은 여전히 1300년 전 세워질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의 문화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오랜 양식들과 예술 작품들. 안의 편의 기능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왕성의 정원을 거닐며 아인즈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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