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GT 스타즈 (1)
승아가 자신의 인기를 체감한 것은 방송 출연 다음날 경기에서부터였다. 다음날 경기는 GT 스타즈와 있었다. 승아는 팀경기와 6경기에 출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대기실에서 내일의 경기를 준비하려는데, 상대팀인 GT 스타즈의 정창환과 이종현이 XK 마르스의 대기실로 찾아왔다.
창환과 친분이 있는 원재는 창환을 반갑게 맞이... 해 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전략을 대기실에서 연습하면서 경기를 준비하는데 상대팀의 선수가 자신의 대기실로 찾아오는 것을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원재는 바로 창환에게 소리를 지르며 들어오는 창환을 몸으로 막아섰다.
“야. 정창환! 어딜 들어와! 다들 모니터 꺼! 창환이 이 자식이, 너 우리팀 빌드 연습하는거 훔쳐 볼려고 왔냐?”
“아, 미안. 게임 끝나고는 사적으로 보기 힘들 것 같아서. 우리 감독이 좀 지랄이 풍년이거든.”
“뭔 빌드를 사적으로 봐!”
“아니 빌드 말고...진짜 빌드 아냐!”
머쓱하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긁으면서 한손으로는 손을 내저으며 절대 정탐을 위해 온 것이 아님을 창환은 몸 전체로 주장했다.
“그래. 여긴 왜 왔냐?”
“그래요. 정창환 선수. 여기는 저희 XK 대기실 인데요.”
“그게... 윤승아 선수 보려고요. 감독님.”
말을 마친 창환은 대기실 한쪽의 의자에 앉아 곰인형을 껴안고 있는 승아를 쳐다보았다.
‘나?’
승아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회귀 전에는 자신이 쳐다보기도 힘들던 위치에 있던 게이머들이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괴물종족인 정창환. 창환은 서원재와 함께 꽤 오랜 시간을 우주전쟁 게임을 한 게이머였었다. 지금은 다같이 시작하는 시기이지만. 우주전쟁 게임을 관둔 뒤로 예능인으로 각종 공중파 방송에 나오는 정창환은 천재적인 머리와 괜찮은 외모를 가졌지만, 키가 170으로 예능인 치고는 좀 작은 키였고, 발음 또한 혀가 짧아 예능에서 많이 웃음을 주는 예능인이 되었었다. 지금은 제법 괜찮게 생긴 얼굴로 조용히 앉아서 게임만을 하기에 팬들이 그의 발음, 딕션이 좋지 않음을 잘 알지는 못했다.
기계적인 물량과 파워로 몰아붙이는 이종현은 기계종족의 유저였다. 이 당시에는 아직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 못하고 정창환과 다른 몇몇이 팀을 이끌고 있었지만, 정창환의 뒤를 이어 GT 스타즈를 먹여 살리는 대표 게이머로서 실력을 각성하는 게이머가 이종현이었다.
회귀전에 STS시절에는 이들과 제대로 된 경기를 해보지 못했다. 서원재나 이종현은 너무도 잘하는 게이머라서 이길수 없었고, 정창환도 군대를 가게 되어 거의 실력이 퇴물에 가깝게 된 때에도 이벤트 경기를 같이 했었지만 그때에도 승아는 정창환에게 0:2로 너무도 쉽게 진 적이 있었다.
나름 실력이 떨어진 사람과 여제인 승아를 붙여서 게임이 되는 매치를 만드려는 주최측의 의도대로 매치가 붙어졌지만, 이벤트 경기임에도 남녀간의 실력차만을 보여준 채로 창환에게 압도적으로 밀린 채 경기를 끝내서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이들에게 역시나 하는 실망만을 안겨주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에는 인간종족으로 괴물종족의 정창환을 상대해야 했었지만, 지금은 같은 괴물 종족으로 정창환을 상대하게 될 것이었다. 오늘의 승아의 상대는 정창환이었다. 6경기. 같은 종족이면 더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이제는 창환을 이길 자신이 승아에게는 있었다.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기에.
‘그런데 왜 날 찾아왔지?’
창환은 승아의 눈길을 받고는 대답했다.
“그게.. 네가 누군지 보려고.”
“??”
“아니.. 어제 모닝가등 봤어. 넌 우리 프로게이머들의 대변자이며 아이콘이었어! 크흙...”
짧은 혀로 역시 파괴적인 딕션을 뽐내는 창환은 스스로 한 말에 감격해서 승아의 어깨에 손을 짚어갔지만 잽사게 피한 승아에 의해 손이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그저 그냥 감격해서 짚은 것이었지만 마치 승아를 강제로 움켜쥐고자 하는 모션이 보여지자 사방에서 눈초리가 쏟아졌다.
“뭐하는거냐. 정창환. 우리 프로리그의 여신이신 윤승아님께.”
“아니, 종현아. 이게.. 난 그냥 어깨를...”
“어깨를 짚으려 했단 말이냐!! 내가 네 어깨를 짚어주마!”
“크억!”
같이 온 종현이 승아를 여신이라고 부르면서 승아에게 관심을 보이던 창환을 잡아 끌고 나갔다. 덕분에 창환은 승아에게 대화를 별로 나누지 못하고 강제로 방을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들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종현에게 잡혀 끌려가는 창환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XK 마르스 팀원들에게는 종현의 넓은 등짝만이 대기실 문 밖으로 보였다. 등짝이 넓은 이종현다웠다.
둘이 만담만 하고 자신들끼리 퇴장하며 사라지자 남은 XK의 팀원들은 잠시 정지상태가 되었지만 곧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뭐야? 창환형 왜 온거야?”
“뻔하잖냐. 승아 한번 보러 온 거지.”
“왜? 6세트 대전 상대라서?”
“아니.. 어제 모닝가든..”
“아.. 하긴 나도 같은 팀인게 자랑스럽더라.”
“역시 승아..”
“지금 게이머들 중에서 승아 싫어하는 사람 없을걸?”
팀원들은 창환과 종현이 왜 왔는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모두의 관심을 끄는 승아라고 생각하면서 대기실 문을 닫고 오늘 경기를 준비했다.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주장인 원재가 다시 환기했다.
“자자. 오늘 경기 알다시피 방금 온 정창환이 있는 GT 스타즈다. 지난 포스트시즌 결승전에서 큰 활약을 한 정창환이 있는 그 팀이야. 지난 시즌 1위라고. 오늘 우리가 충분히 이긴다는 자만심은 버려라. 지금 우리가 1위라는 자만심도 버려. 지난 시즌 우승팀이다.”
“예!”
“자. 1세트, 종원이, 나가서 침착하게 이기고 와!”
“네! 형!”
원재는 방심은 없다는 듯 강하게 종원에게 말하면서도 오늘은 가볍게 이길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GT의 감독이 최준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 자는 아무리 잘하는 자도 엔트리에 잘 올리지 않는 최준 감독. 대표적으로 감독파가 아닌 선수로는 방금 온 정창환과 이종현이 있었다.
다른 선수들도 물론 잘하는 선수들이 많지만, 우주전쟁은 승아정도가 되지 않으면 사실 그 실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그 차이가 점차 벌어지고 있기는 했다. 개개인의 노력과 성실성. 그리고 재능이 체계적인 관리를 따라가느냐, 아니면 현재에 안주해서 퇴보하느냐의 차이였다.
GT의 1~4세트에 나오는 선수들은 그런 면에서 연습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재능만을 믿고 감독과 좋은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아부하면서 지내는 팀원들이었다. 감독에게 아부를 하면 할수록 숙소 생활이 편해지고, 게이머 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감독과 친한 한 선수는 외출이 계속 자유였고, 심지어 숙소에 여자친구를 데려오는 것도 허용되었다. 그런 분위기에 선수들의 텐션이 올라가서인지 지난 정규시즌은 1위로 마감했었다.
반면 정창환과 이종현은 체질상 감독의 불합리한 지시에 잘 따르지 않았다. 한번만 굽혀주면 될 터인데 그러지 않는 성격들이었다. 덕분에 둘은 연습실에 있어도 컴퓨터 앞에 앉지 못하는 징계를 받는 등 어제도 오늘 경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을 전혀 하지 못했다.
덕분에 창환은 지난 시즌 리그에서 잘 나가다 후반기에 아예 경기에 나오지도 못했고, 나온 경기에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물론 승자연전 방식의 포스트 시즌과 같은 경기에는 최준 감독도 정창환의 실력을 알기에 연습시간을 주고 기용을 해서 1위를 해냈었다.
감독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런 극과 극의 불합리가 있는 것이 GT 스타즈의 팀이었다.
원재는 이런 불합리에 대해 정창환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XK 마르스로 오라고 권해보았지만 이미 5년 계약이라는 장기 계약을 한 뒤였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안타까운 것이고, 오늘 경기는 덕분에 연습을 제대로 안한 정창환과, 자기잘난 맛에 연습을 대충 하고 게이머로서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GT스타즈를 상대하게 될 것이기에 긴장하라고 팀원들에게 주의를 준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XK마르스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GT의 날라리들이야 우리가 이길수 있지. 그따위 마음가짐으로 프로게이머를 어떻게 하겠다고... 반면 우리 애들은.. 성실하지.’
원재는 클랜 시절부터 같이 했던 팀원들을 흐뭇하게 둘러보다가 승아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잘 크고 있는 여동생을 보는 듯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진정한 천재가 있다면 승아일지도 몰랐다. 손도 빠르고, 전략도 완벽하다. 상대예측, 맵예측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 연습을 안해도 완벽하다. 단지 GT의 날라리들처럼 놀아서 연습을 안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오래 연습하기 힘든 체력적, 사회적 이유들이 있을 뿐. 학업을 포기하고 올인한 대부분의 중고생 나이대의 선수들과는 달리 학업과 병행하고 있다. 이제 중2가 되는 어린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마인드는 어떠한가? 물어볼 것도 없었다. 어제 모닝가든 방송에서 약간 성깔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지기는 했지만 프로게이머로서 보자면 마인드는 완벽했다. 오히려 자신이 배워야 할 점들이 많을 정도였다.
그때 원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원재형.”
“응?”
“형이랑 승아 나갈 차례에요.”
“무슨 소리야? 승아랑 난 3세트야. 팀전.”
“네. 그러니까요. 짐 2세트 끝났어요.”
“뭐?”
혼자 팀원들과 승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벌써 2세트가 끝났다.
“종원이랑 호진이는?”
“다 이겼어요. 2:0입니다.”
“벌써? 좋아. 잘했어들. 승아! 가자!”
“네에~”
원재는 곰인형과 대화를 하던 승아를 현실 세계로 다시 소환해서 다시 대회장으로 나아갔다. 3세트 팀전, 가볍게 이겨줄 생각이었다. 천재적인 승아, 노력하는 자신과 팀원들이 있는한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과 다를 것이었다. XK 마르스의 연승행진은 아직 진행중이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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