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사랑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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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캉
작품등록일 :
2016.08.10 12:15
최근연재일 :
2017.01.22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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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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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교수의 강의

DUMMY

검은색 리무진의 뒷좌석에 깊숙이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긴 김 후보를 깨운 것은 벨 소리였다.

서류가방 속에 있는 휴대전화의 벨이 울린 것이다.

이 전화는 개인 전화로 이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그녀는 전화를 꺼내 번호를 확인하고 나서야 받았다.


“네, 큰아버지 저예요.”


“네, 그래요.”


“요즘 건강은 어떠하세요?”


“속상하지만 잘 될 거예요. 큰아버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에? 이 시간에 저희 집에 오신다고요?”


“너무 늦은 시간인데···.”


“아무리 그렇지만···, 그럼 나오시지 마세요. 제가 큰아버님댁으로 갈게요.”


"지금 집으로 가고 있던 참이었는데, 조금만 돌아가면 되니까, 그냥 집에 계세요. 제가 그리로 지금 갈게요.”


휴대전화를 집어넣은 그녀는 시계를 봤다.

밤 10시,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이 늦은 시간에 만나자고 하시는 걸까?

큰아버지 김석우 박사의 요청이라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이제는 연로하셔서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일 텐데···. 하긴 요즘 선거기간 중이라 자주 찾아뵙지 못했으니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박 기사, 상도동 큰아버님댁으로 가세요.”


“내 알았습니다. 대표님.”


차는 방향을 돌려 상도동 시내를 향하여 달렸다.


***


“교수님은 서재에 계십니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김 대표에게 가정부 아줌마가 이 층을 가리키며 안내했다.

서재의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책상 앞에는 머리가 하얀 노교수가 앉아 있었다.

80의 고령이라 거동이 약간 불편하였지만, 항상 꼿꼿하고 의연한 자세를 지키는 노학자이다.


“큰아버님 저 왔어요.”


“그래. 우리 대표님, 아니 대통령 후보님, 어서 오시게.”


노학자는 일어서서 김 후보의 어깨를 포근히 감쌌다.


“요즘 수고가 많지. 내가 나서서 도와야 하는데 나는 이제 늙어서 힘도 없어.

이젠 퇴물이야. 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게지.”


“아니 큰아버님답지 않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도 정정하신데 많으시잖아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운명에 순응해야 하는 법이야.”


“그래 건강하세요? 요즘 바빠서 안부 전화도 못 드렸는데 죄송합니다.”


둘은 옆에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정면의 벽에는 할아버지와 김 후보의 아버지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한잔할까?”


김 후보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네 오늘은 한잔해야겠어요.”


둘은 위스키 한잔씩을 따라 잔을 부딪쳤다.


“건배!”


“승리를 위하여!”


잔을 내려놓고 김 후보가 먼저 말했다.


“그런데 큰아버님 급한 용무가 있으시다고···, 뭐예요?”


노교수는 대답 대신 김 후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이, 뭐예요? 큰아버지.”


김 후보는 궁금하다는 듯이 어린양을 내며 채근했다.


“혹시 가까이 지내는 남자는 없냐?”


노교수는 김 후보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순간 김 후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남자라니요?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이세요?”


“결혼할 남자가 있느냐 말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기에 그대로 큰아버지의 눈동자를 응시하였다.


“풋 하하, 호호호.”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참 내, 큰아버지 때문에 내가 오랜만에 다 웃어보네요. 농담 그만하시고 정말로 무슨 일이에요? “


노교수는 눈동자를 김 후보에게 고정시킨 채 꼼짝 않고 진지하게 눈길을 김 후보의 주고 있었다.

너무나도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에 김 후보는 웃음을 멈추고 정색을 했다.

노교수는 천천히 일어나서 벽의 사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사진 앞에 섰다.


“너의 할아버지는 대통령 선거 유세 중 무뢰한의 총격에 암살당하셨다.

대통령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이셨지 그게 불행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너의 아버지 또한 대망을 포부를 지니고 계셨으나 불의의 사고로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 대한민국의 비극이고 불행한 일이다.

너의 아버지는 네가 정계에 발을 디디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여자로서 행복한 가정을 꾸며 평범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지.

하지만 너는 너의 선택으로 오늘날 여기까지 왔다.

참으로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그 누구보다도 네가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또 한편으로는 네 아버지의 뜻대로 결혼해서 행복한 여자가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큰아버님, 진짜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노교수는 진지한 태도 그대로 서 있었다.


“아버지의 유언이고 늙은 큰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생각해다오.”


(미쳤어요? 큰아버지! 제 나이가 몇인데 무슨 결혼을)

이 말은 김 후보의 혓바닥 위에서 맴돌기만 하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큰아버지의 워낙 진지하고 곧은 자세에 눌려버린 것이다.


“큰아버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만, 지금은 중요한 선거 유세 중이고 그동안 한 번도 결혼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고 또 대한민국 이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기로 각오한 몸입니다.”


“그러겠지.”


노교수는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거가 끝난 후에나 다시 생각해 볼게요. 큰아버님.”


큰아버님이 나이가 드신 만큼 아마도 후손을 생각하고 계신 것이라고 여겨져 실망하게 해 드릴 수 없어서 김 후보는 한마디 덧붙였다.


“요즘 선거 상황은 네 동생 문제로 시끄럽게 하던데 힘들겠구나. 네가?”


“네 그래요, 별 큰 문제도 아닌데 매스컴에서 워낙 떠들어 대서 좀 곤란을 겪고 있을 뿐이에요. 하지만 곧 나아 질 것입니다. 그나저나 동선이가 고생을 하지 않나 걱정되네요. 곤욕을 치르고 있을 텐데 어떻게 도울 방법도 없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 아는 사람으로부터 소식 들었다. 감옥에서 대우를 잘 받고 있다니 고생은 안 할 것이다. 다만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다.”


“내일 새 나라당 위원회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새로운 방향으로 대적 해 나갈 예정입니다.”


“무슨 좋은 대책이나 방법이 있는 거냐?”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결혼하라는 거야.”


“네에?”


총명한 그녀였지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큰아버지가 노인성 치매라도 걸리신 걸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제 결혼하고 대통령 선거하고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건가요?”


“이게 다 운명이라는 거다. 운명···.”


큰아버지는 계속 알 수 없는 말씀만 하셨다.

노교수는 그의 마지막 강의를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그의 조카 김혜숙 대통령 후보를 위한 강의는 무려 한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강의가 끝난 후 한마디 대꾸 없이 조용히 듣고 있던 김 대표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둘 사이에 한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한잔 더할까?”


노교수는 술잔을 따라 건넸다.

그리고 서랍에서 두툼한 갈색의 봉투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예요?”


“그 사람의 신상명세서이다. 집에 갖고 가서 한번 보아라, 이제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려 있다. 너는 현명하니까 바른 판단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


갈색 봉투에는 파란색의 대한민국 정보부 직인이 찍혀 있었다.


"정보부 서류네요, 어떻게 이런 것을?"


"나는 50년을 교직에 있었다. 내 제자들이 대한민국의 곳곳에 널려 있다. 전국 각 지역에 학교 기관 회사 군인···. 없는 곳이 없지."



***


김혜숙 대표의 집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침대 위에 갈색 봉투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큰아버지의 마지막 강의내용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혜숙아! 이 큰아버지의 말을 잘 들어 보아라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김혜숙 대통령 후보의 가장 큰 결점은 바로 여자라는 점이며 또한 독신녀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5000년을 이어온 유교적 사상이 잠재하여 있다.

여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하기란 전통적인 거부감이 있다.

더구나 유권자의 70%는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가정을 가진 일반 국민은 독신여자가 자기들의 가정문제를 지켜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독신녀는 여자기숙사 사감 같은 인상과 편견을 갖고 있다.

그래서 결혼을 해야 한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 표를 획득하게 될 것이고 가정을 가진 일반 사람들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특히 여자로서는 더욱 그렇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대통령 후보의 모습은 이 세상의 모든 여자에게 공감과 연정을 불러일으키고 존경 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이 투표장에 달려 나올 것이다.

지금 동생문제로 시끄러운 매스컴을 한방에 수그려뜨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결혼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 발표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자연히 네 동생 문제는 매스컴에서 힘을 잃고 사라지게 된다.

둘째, 중산층과 서민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부유층은 안정을 원한다. 정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아무리 회유해도 네 편에 서지 않는다.

네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그들이 투표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문제는 네가 만약 결혼대상으로 기득권층이 아닌 서민층의 보통 남자를 선택한다며 간단히 해결된다.

보통 시민들의 열렬한 지원을 받고 그들의 표를 얻을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투표의 참여율은 70%에도 못 미친다.

그는 서민들이 그동안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탓이다 .

그들은 먹고살기에 바쁘고 정치에 별 관심도 없으므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면 선거에서의 승리는 시간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동서의 화합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정세는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두 개의 큰 강물이 있다.

바로 지역적 갈등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로 구분된 깊은 골이 있다.

김혜숙 후보는 경상도이다. 경상도 표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라도 표는 20%에도 못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결혼대상으로 전라도 남자를 선택할 때 40% 이상 지지율을 얻을 것이다.

선거 기간이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큰아버지로서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이제 너의 뜻에 모든 것이 달렸다.

이 봉투에는 내가 추천하는 남자의 신상명세가 들어 있다.

위 세 가지 조건에 아주 딱 맞는 남자이다.

꼭 결혼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한번 만나 보아라.

큰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라고 생각해다오.


늦은 밤, 교수의 강의는 여기까지였다.


김혜숙 대통령 후보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여자에게 향해 나직하게 소리쳤다.


“세상에 미쳤다!

천하의 김혜숙이가 이 나이에 연애하고 결혼을 한다?

어림도 없는 일, 전 세계가 미쳐서 뒤집힐 일이다”


김 후보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봉투를 집어 들었다


'이 김혜숙이가 나이도 두 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고? 직업은 노동자에다 딸까지 있는 이혼남에게?

나 김혜숙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다. 이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김혜숙 후보는 갈색 봉투를 책상 옆 쓰레기 통속에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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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자성어 게임 16.10.02 511 3 12쪽
12 동구몽 대사 16.09.27 454 3 9쪽
11 두 번째 도피 16.09.25 406 3 11쪽
10 특종 폭로 사건 16.09.23 339 4 11쪽
9 콩나물 국밥 16.09.21 655 3 12쪽
8 만남의 밤 +3 16.09.18 447 3 10쪽
7 제보자 16.09.15 453 4 9쪽
» 노교수의 강의 16.09.11 432 3 11쪽
5 목포항 16.09.10 554 1 10쪽
4 대통령 후보 추대식 +1 16.09.09 706 4 10쪽
3 한강 +1 16.09.06 962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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