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사랑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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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캉
작품등록일 :
2016.08.10 12:15
최근연재일 :
2017.01.22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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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1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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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DUMMY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새 나라당 기자회견실은 취재하러 몰려온 기자들로 꽉 차고 복도에까지 밀려 넘쳤다.

중앙 한가운데에 설치된 카메라 옆에는 마이크를 손에 쥔 채 머리와 얼굴을 가다듬고 있는 M 방송사의 황철순 국장의 모습도 보였다.

기자회견장에 그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퍽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거야 원, 지금 우리가 대통령 선거 취재하는 거야? 아니면 연예인 가십거리를 취재하는 거야?"


주위에 대고 농을 던졌다.


“불륜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 아닙니다. 내로남불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대답에 주위의 기자들이 하하하 웃었다.


“하긴 지금 대통령 선거가 내일모레인데 이태조라는 이름이 인터넷에 도배되고 있어. 국민은 선거보다 이태조에게 더 관심이 있단 말이지.”


이윽고 문이 열리며 고 사범을 선두로 당 부위원장 그리고 김혜숙 대통령 후보가 회견장에 들어섰다.

웅성거리던 실태가 조용해졌다.

고 사범은 회견장을 살펴보면서 자신도 모르고 손을 올려 뺨을 쓰다듬었다. 어제 암자에서 만난 노인네의 정체가 궁금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었지만 땡중 같은 도사의 형형한 눈빛은 강하게 인상을 남았다.

김혜숙 대통령 후보는 진지하면서 당당한 자세로 단상에 섰다.


"친애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의 희망이고 꿈인 대망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저에 관한 기사와 소문이 있어서 여러분들을 오해하게 하고 잘 못된 부분이 있어 사실을 국민 앞에 밝히고자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저 김혜숙과 이태조와의 관계는 새 나라 당 대표자와 당원의 관계일 뿐입니다.

십 년 전 저주 전당대회에서 처음 만났지만, 엊그제 호텔에서 만난 것이 두 번째 만남입니다. 기사에 실린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이상의 관계는 근거 없는 일임을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밝혀두는 바입니다.

진실입니다.

저 김혜숙은 절대 국민 앞에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한 기자가 성질 급하게 다그쳐 물었다.


"그럼 밤에 단둘이서 커피를 마시고 또 변장하고 식당에 간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연설이 끝나고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하여 나간 것이고 마침 그 테이블에 이태조 씨가 함께 있어서 같이 나갔을 뿐입니다."


주위가 조용하자 김대표가 말을 이었다.


"당 대표자가 당원하고 커피 한잔 나누는 일이 결코 큰일이 아니지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제 주변에는 99% 모두 남자들뿐입니다.

이것을 연인 사이라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 남자 모두가 제 연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기자들도 연인에 포함됩니까?”


그의 대꾸에 기자들이 일제히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이때 황철순이 손을 번쩍 들고 나서 지명을 받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하였다.


"그럼, 어제 오후에 이태조 씨와 함께 강원도 암자에 찾아간 것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김혜숙 후보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스쳤다. 가벼운 흔들림을 보였다.

아무도 모르게 갔다 왔는데 저 황철순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실내는 순간 조용해졌다.

모두가 김혜숙을 지켜보고 있다. 이 기자회견은 TV를 통하여 전국으로 그대로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다.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찰나의 순간이 흐르고 김혜숙 후보의 머릿속에는 수십 개의 영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30여 년 만에 커피숍에 앉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이태조가 꽉 쥐었던 팔목에는 아직도 그의 감촉이 남아 있는 듯 아련했다. 송 박사의 파이프 드림에 대해 강의를 하던 이태조의 모습, 축구장에서 땀에 흠뻑 젖은 그의 모습, 그리고 진지한 태도로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똥구멍 대사님!’ 하고 부르던 장난기 어린 그의 행동까지 머릿속에 떠올린 김혜숙 후보는 그만 슬며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슬며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고 실내의 기자들과 당원들은 무슨 일인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는 단지 이태조를 다시 만나보고 싶···."


김 후보는 이 대목에서 말을 멈추었다. 다시 한 호흡을 가다듬고 난 후 말을 이었다.


"단지 이태조 당원을 만나 오해가 발생한 이유를 확인하고 사진 유포 과정을 알고자 했을 뿐입니다."


기자들이 여기저기에서 질문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이상으로 임시 기자회견을 마칩니다."


권 부위원장이 기자들을 향해 소리치고 김 후보는 비서진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


김혜숙은 국민이 자신을 믿어 줄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행동하고 처신한 결과를 국민은 잘 알고 있다. 나는 정직하며 소신껏 일하는 정치인이다. 이런 언론의 모함과 험담에 흔들릴 국민이 아니다. 조그만 스캔들쯤으로 흔들릴 김혜숙이 아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대선이고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줄리아 신이 들어 왔다. 김혜숙 대표를 보며 머뭇거렸다.

마치 무슨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하였다.


"무슨 일이야? 줄리아 왜 그래?"


"후보님, 혹시 ‘대사남’이라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들어 보셨어요?“


"아니, 모르는데, 대사남? 그게 무슨 사이트인데?"


"김 후보님과 이태조 님에 관한 사이트인데 불과 며칠 전에 개설되었어요. 그런데 지금 그 사이트가 인터넷과 SNS를 타고 급격히 퍼지고 있어요. 며칠 만에 가입자가 수십만 명에 이르고 매일 방문자가 백만 명 이상 폭주해서 접속이 어려울 정도예요. 시간 나시면 한번 확인해 보시라고요. 그리고 이태조는 지금 며칠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 있습니다."


“그래? 나중에 한 번 보도록 하지, 그동안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책상에 앉아서 신문들을 살펴보았다.

온통 김혜숙과 이태조에 관한 기사들로 넘쳤다.

다행스러운 것은 동생 김동선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국민의 관심 밖으로 벗어 난 것이다.

최종적으로 유권자들의 지지도 조사 결과가 나와 있는데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지지율 1위이던 김 후보가 3위로 미려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현재 여당인 정민당의 후보가 1위, 막강한 경제력을 업고 새롭게 부상한 신 세력의 후보가 그의 뒤를 바짝 쫓아 2위 그리고 새 나라 당의 김혜숙 후보가 3위로 처져 있다.

그러나 김혜숙 후보는 국민을 굳게 믿고 있다.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이다. 할아버지 김한구 박사 그리고 아버지 김석한에 이은 3대째의 대선 도전이며 지난 30년간 쌓아온 경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 김혜숙은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태조라는 사람을 더 알고 싶기도 하였다.

두 번 만났지만, 이태조는 참 독특한 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남자들로만 둘러싸인 정치계에서 수도 없이 많은 남자를 상대해 왔다. 남자들과 말싸움은 물론 격론을 벌이기도 했고 심지어 국회에서 험한 몸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극좌파의 미치광이로부터 칼에 베이는 테러도 당했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과 교류도 하였다. 유학시절 익힌 다양한 외국어 실력으로 유명인사들과의 친분을 가졌다.

정치적인 안위를 위하여 허위와 가식으로 입신양명을 꿈꾸는 약삭빠른 정치인들 속에서도 굳건하게 지켜오며 수많은 속물들을 상대하여 그런 남자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김혜숙이다.

그런데 이태조는 뭔가 달랐다.

고리타분한 선비이면서도 참신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어리숙하면서도 주관과 사명의식이 확고하였다.

철없는 장난꾸러기 같은 행동이 바보스럽기도 하지만 웃음을 주는 친근함이 있다.

암자에서 내려오는 길에 그가 길가에 있는 꽃을 하나 따서 큰 소리로 말하면서 꽃잎을 하나씩 떼어 내기 시작했다.


"김혜숙 대표님이 당선된다. 안 된다. 된다. 안 된다. 된다······."


"꽃잎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중얼거리는 김 후보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하였다.

마지막 한 잎 남았을 때 공교롭게도 '안 된다'에 걸렸다.

그는 잠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김 후보를 바라보더니 천연덕스럽게 다른 한 손에 숨기고 있던 꽃을 꺼내 들고 계속했다.


"된다, 안 된다, 된다······."


김혜숙 후보는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웃어 젖혔다. 몇 십 년 동안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마음 놓고 웃어 본 적이 없었다.

서울 시내 다 와서 김 후보와 헤어지기 전 버스정류장에 한 아저씨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졸면서 앉아 있었다.

이태조는 천연덕스럽게 그의 곁에 가서 서 있더니 그 아저씨가 고개를 떨어뜨리는 순간 얼른 손을 내밀어 머리를 받는 시늉을 했다.

마치 떨어지는 호박을 받으려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아저씨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면 천연덕스럽게 하늘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다가 다시 끄덕하고 졸면 또 얼른 두 손을 내밀어 받치는 시늉을 반복했다.

이를 지켜보는 김혜숙 후보는 소리 없이 웃음을 참느라고 배가 아팠다.

어쩌면 이렇게 스스럼 없는 남자도 있을까?


문득 줄리아가 말해준 인터넷이 생각났다. 궁금해졌다.


‘대. 사. 남.’ 이라고?


뭐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이기에 그렇게 난리를 치는 걸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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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대통령을 사랑한 남자 (끝) +1 17.01.22 315 1 7쪽
21 황철순의 비밀 17.01.19 317 1 10쪽
20 세기의 결혼식 17.01.16 319 3 8쪽
19 취임식 +1 17.01.11 285 2 9쪽
18 대사남 16.12.14 334 2 8쪽
17 한사대 +1 16.11.12 629 2 10쪽
16 최용호의 취재 16.10.17 343 2 12쪽
» 기자회견 16.10.12 338 5 10쪽
14 고사범 +1 16.10.09 343 5 8쪽
13 사자성어 게임 16.10.02 512 3 12쪽
12 동구몽 대사 16.09.27 455 3 9쪽
11 두 번째 도피 16.09.25 407 3 11쪽
10 특종 폭로 사건 16.09.23 341 4 11쪽
9 콩나물 국밥 16.09.21 655 3 12쪽
8 만남의 밤 +3 16.09.18 449 3 10쪽
7 제보자 16.09.15 454 4 9쪽
6 노교수의 강의 16.09.11 432 3 11쪽
5 목포항 16.09.10 555 1 10쪽
4 대통령 후보 추대식 +1 16.09.09 707 4 10쪽
3 한강 +1 16.09.06 963 5 11쪽
2 방문자 +1 16.09.04 1,190 12 9쪽
1 프롤로그 +4 16.09.04 1,276 9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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