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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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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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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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26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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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5. 징집 (8)

DUMMY

“어떠십니까?”

비오스는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내가 볼 때도 충분히 성사될 가능성이 농후한 거래 같아 보였다. 그러나 볼마르그 공작은 일체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젓고 단호하게 말했다.

“비오스, 말해두지만 내 후계자도 전쟁터에 있다. 나 역시 사사로운 일보다는 대륙연합의 질서를 존중하는데 네 주군은 질서를 어지럽힐 작정인가?”

“쥬비님이 자칫 잘못되시기라도 한다면 연합의 질서 따위야 문제될 게 아니겠지요.”

비오스의 말 저변에 깔려있는 경고를 읽어 낸 볼마르그 공작은 무서운 얼굴로 쏘아붙였다.

“미쳤군. 고작 계집아이 하나 때문에 동맹을 파기하고 연합과 다툴 생각인가? 좋겠군. 인간이 다 죽어 없어지고 자카이야는 엠펠로니아의 속국이 될 테니.”

“저도 주군도 그런 상황은 원치 않습니다. 방금 하셨던 말. 다시 돌려드리지요. 대륙연합의, 대륙 자체의 질서를 위해 자카이야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라스탄트의 공작은 그 질서를 어지럽힐 작정이십니까?”

거짓이다. 천의결의 효용 탓에 나는 비오스의 말이 절반 이상 허장성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로 위협적이고 진실로 들리는 말이라 나는 저 사내가 다시금 두려워졌다. 그리고 만약 내가 저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린다면 저자는 내 말 때문에 오히려 정말로 전쟁을 치를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혼돈의 사도인 내가 개입해봐야 좋은 꼴을 못 본다는 건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어쩔 수 없군.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지켜야만 할 것이 있다. 그렇다면 협상을 하도록 하지.”

볼마르그 공작이 무인이자 일국의 공작답게 능숙하게 화제를 전환해서 협상을 이끌어낸다. 사실 능숙하다기보다는 조금 막무가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볼마르그 공작이 가진 위엄이 그것을 아주 잘 포장해서 별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은, 오히려 당연한 수순으로만 여겨진다.

“길게 말할 것도 없지. 너희는 저 소녀의 안전을 원하고 있다. 그런 사정을 고려해서 쥬비 아탄샤를 전선 최후방으로 배치하도록 하지.”

“최후방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벨스터 공국의 영역이다. 기껏해야 도적떼나 하급 몬스터 따위가 설치는 곳이니 엠펠로니아 접경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 그리고 호위로 내 딸을 붙여주도록 하지.”

날로 먹으려는 거군. 투입지점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고 토리나는 애초에 같은 분대가 아니던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사실 볼마르그 공작이 손해를 보는 건 없다. 아무리 무인이라 해도 결국 그는 일국의 공작이었다. 내심 감탄하며 나는 비오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정치라고 해야 할까, 꽤 늘었군요.”

“네 덕분이겠지.”

볼마르그 공작은 못마땅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한편 비오스가 눈짓하자 두 사내가 멍하니 앉아 있는 쥬비를 일으켜 볼마르그 공작 앞으로 데려간다. 토리나가 재빨리 쥬비를 향해 달려가고, 비오스는 그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당신의 후계자와 쥬비님이 애초에 함께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벨스터에 간다는 것도 말입니다. 이런 걸로 생색을 내실 줄이야, 몰랐다면 속아 넘어갈 뻔 했군요.”

알고 있었나? 그런데 왜 쥬비는 넘겨준 거지? 볼마르그 공작이 태연히 비오스의 말을 받아쳤다.

“네 제안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재전(再戰)을 돕기 위해 네 주군을 위시한 자카이야의 유력한 귀족들이 지원을 보낸다는 결정이 있었다고 들었다. 아마 너는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한 사절단으로서 온 것일 테고.”

무서운 작자들이군. 서로 속고 속이는 와중에 그걸 간파하고 함께 받아들인 건가? 이게 과연 천재들의 영역이라는 것이군. 천의결이 없었다면, 그리고 비오스의 말이 없었다면 꿈에도 몰랐을 사실들이다. 빌어먹을. 저들은 무위로나 머리로나 저렇게 까마득한 위치에 있는데 나는 내공을 잃고 여기서 주춤하는 게 전부라니.

“안타깝지만 반만 맞았습니다. 전 단순히 사절단으로 온 게 아닙니다. 이 전쟁에 손을 보태기 위해 파견된 거지요.”

비오스는 안대 위를 슬쩍 문지르고는 말했다. 안대 안에 있는 뭔가가 다시금 약동한다. 나는 검으로 향하는 손을 억지로 뜯어말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공연히 일을 만들지 마라. 나란 놈은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휘둘리기만 할 테냐?

“그건 그렇고.... 저 소년은 당신하고 아는 사이입니까?”

“전혀.”

볼마르그 공작은 내게 한번 시선을 주었다가 그대로 일축했다. 어쩐지 기분이 나빴지만 그게 사실인 만큼 어쩔 도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잠시 빌려가도록 하지요. 제 움직임. 모래바람의 맥을 끊을 수 있는 소년이라니. 놀랍지 않습니까?”

볼마르그 공작의 눈이 이채를 발한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비오스의 시선을 외면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시선을 받는 순간 모든 것이 들통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문인지 비오스는 더욱 내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난처하군. 어떤 변명을 대야 비오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저기, 그건 안 되는데요?”

토리나가 대뜸 고개를 저으면서 비오스와 내 사이를 가로막는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1별동분대 분대장, 토리나 볼마르그입니다. 외인이 사사로이 분대원을 데려가는 건 제가 용납할 수 없어요.”

“잠깐이면 될 텐데요.”

“우와, 그럼 나중에 누가 쥬비를 잠깐 빌려달라고 해도 빌려줘도 되는 건가요?”

토리나의 당돌한 도발에 비오스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나 곧 표정을 바꾸어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섰다.

“볼마르그 공작. 아니, 러스티 볼마르그. 두 아들의 죽음은 나로서도 안타깝게 여기지만 볼마르그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잘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실수도 말이지요.”

“할 말이 다 떨어졌으면 가라.”

볼마르그 공작은 실수라 칭한 무언가에 노골적인 불쾌함을 드러내고는 그 역시 그 자리를 떠나려 한다. 두 사내와 함께 떠나가는 비오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토리나가 볼마르그 공작에게 달려가려다 나와 쥬비를 바라보고는 그 자리에서 외친다.

“아빠, 오늘 밥 맛있었어요! 다음에 또 같이 먹어요!!”

볼마르그 공작은 일언반구 대답이 없었지만 그가 잠깐 멈칫하는 것만으로도 토리나는 충분히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런가. 토리나와 볼마르그 공작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우릴 발견한 거였군. 우연이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칼을 휘두른 탓에 큰 소란이 일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비오스 자히넵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에휴, 모두들 고생했어. 그래도 마지막 날 추억으로는 꽤 쓸만한 추억 아닐까?”

토리나는 비오스가 튕겨내서 웬 과일가게 벽에 박힌 창을 뽑아내며 말했다. 박살난 과일에서 흘러나온 과즙과 흙먼지가 뒤엉켜 은백색 창은 형편없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토리나는 이리저리 창을 살피면서 옷소매로 창을 닦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쥬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약간 멍한 상태로 묵묵히 서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돌아가자. 그런데 쥬비 너 괜찮은 거 맞아?”

“아까 괜찮다고 했잖아.”

쥬비는 퉁명스럽게 대꾸했고 토리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되물었다.

“그런 것 치고는 표정이 좀 어두워서. 혹시 아까 아빠랑 자히넵 장군님이 다툴 때....”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밝아야만 되는 줄 알아? 어두운 게 본성인 사람도 있다고!!”

냅다 소리를 지르고 쥬비는 휙 돌아서서는 그대로 어디론가 달려 나간다. 비오스와 볼마르그 공작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쥬비의 속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토리나는 멀어져가는 쥬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창을 옆구리에 낀 채 중얼거렸다.

“내가 말실수 했나?”

“아닐걸.”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1. 쓰던 걸 마무리해서 올립니다. 오래간만에 하루에 두 편을 올리네요. 공부를 해야 하는데 영 손에 안 잡히니 소설이나 주구장창 쓰는 것 같습니다.


2. 지적이나 궁금증은 얼마든지 응하고 있습니다. 리플이나 쪽지 둘 다 환영하고 있어요. 기본방침이지만 가끔씩 강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다시 언급합니다.


3. 다음 챕터는 비교적 전투 위주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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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6. 볼마르그의 창은 꺾이지 않는다. (1) +2 13.05.30 4,558 57 13쪽
» 5. 징집 (8) +4 13.05.26 4,241 62 8쪽
43 5. 징집 (7) +2 13.05.25 3,530 55 10쪽
42 5. 징집 (6) +1 13.05.22 3,869 1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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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5. 징집 (3) +5 13.05.08 4,262 6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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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4. 한계 (8) +3 13.04.10 4,339 7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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