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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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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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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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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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6. 볼마르그의 창은 꺾이지 않는다. (3)

DUMMY

“네 그러시군요. 정말로 죄송해요. 저희가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무려 라스탄트라는 강국의 공작이 될 사람이었지만 토리나는 마치 말단 자경대원이라도 된 양 연신 사과를 건넸다. 그녀의 신분을 모르는 게 분명한 사내는 연신 욕을 퍼부으며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프란츠가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신도 버릴 사람이군요. 왜 저렇게 비합리적으로 사람을 욕하는 걸까요?”

“다 그럴만하니까 그렇겠지.”

토리나는 이해심 넘치는 말과 함께 수첩에 그 사내가 욕설 반, 설명 반으로 알려 준 피해사실을 적어 넣었다. 이번에는 그나마 조금 사악한 짓을 하긴 했군. 무려 이 근방의 생활을 보장하는 수원인 우물을 부수어버린 것이다.

황무지에서 물이 없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 덕에 우물을 관리하던 사내는 사악한 마법사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한껏 욕은 먹은 뒤였고, 그 욕은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척 봐도 간밤에 술에 찌들어 있었음이 분명한 악취가 났지만 그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듯 토리나를 몰아붙일 뿐이었다. 설령 토리나가 평범한 귀족의 자제였다 해도 당장 사내를 두들겨 패도 이상할 게 없을 지경이었지만, 토리나는 그녀다운 쾌활함으로 불쾌한 일은 벌써 잊은 모양이다.

“자자, 그럼 먼저 움직이자. 다른 학도병이 오기 전까지 우리가 치울 수 있는 만큼은 치워두자고.”

우물터는 잡석을 다듬어 만든 석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치 거인이 마구 짓밟은 것처럼 석실은 형편없이 부서져 있다. 사실 우리가 이걸 복구할 책임은 없건만, 토리나는 굳이 책임감을 가지고 우물터를 정리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단한 의무감이군.

“아아, 고작 이런 일을 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석실의 바닥을 구성하던 무지막지한 크기의 바위를 바라보며 쥬비가 투덜거렸다. 토리나는 창을 지렛대 삼아 솔선수범해서 바위를 하나둘 치워내며 말했다.

“끄응.... 그건 아니야. 마법사의 목적을 알아내는 대로 퇴거조치를 감행할 거니가 조금만 참아.”

악동이 할 짓은 다 골라서 하는 마법사는 대체 무슨 목적일까? 특히 우물을 부순 건 어떤 의도에서였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냥 태생적으로 사악한 걸까? 그렇게 우물가가 서서히 정리되고, 마침내 우물을 반쯤 파고든 거대한 바위가 겉으로 드러났다. 토리나는 창을 바위틈에 박아 넣고 숨을 가다듬고 요란한 기합과 함께 힘을 주었다. 볼마르그 공작이 보면 기겁하겠군. 저 창은 후계자의 징표 같던데.

“크아, 이거 진짜 무겁다. 도군, 여기 좀 도와주지 않을래? 어째 마나를 써도 안 움직이네.”

“제가 도와드릴게요!”

황제의 비석과도 같이 엄청나게 큰 바위를 치우다 힘에 부친 토리나가 도움을 청한다. 이에 프란츠가 소매를 걷어 눈 덮힌 나뭇가지 같은 하얗고 가느다란 팔을 훤히 드러내고 일에 달려들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중에 힘을 쓰기 시작한 프란츠가 지쳐 나가떨어지고 토리나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역시 도군 네가 나서는 게 좋지 않을까?”

“저, 전 아직.....”

프란츠가 기를 쓰고 일어나서 바위 간의 틈을 파고든 창대에 달라붙는다. 그러나 프란츠는 아예 창대에 걸린 모습이라 별로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무거우면 마나를 써도 안 움직이는 거지? 저 정도 크기라면 움직일 만도 할 텐데.

“잠깐만 나와 봐.”

나는 대뜸 탈진한 프란츠를 제치고 바위에 박힌 창대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찬찬히 바위를 살펴본다. 자연스레 천의결이 발동되어 나는 어떻게 해야 바위를 움직일 수 있는지 직감했다. 그리고 뽑아 든 창을 그 지점으로 꽂아 넣고 가볍게 힘을 가헀다.

“어, 어라? 움직인다!”

“애초에 위치를 잘못 잡았어. 겉으로 보기에는 무게중심이...”

이런, 쥬비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나는 말끝을 흐리면서 창을 토리나에게 건네주었다. 쥬비는 또 날 의심하고 있는 걸까?

“이 정도 치워놨으면 되겠다. 나머지는 다른 학도병들이랑 같이 하자.”

“휴우, 고생 했어요 모두. 기도를 올릴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프란츠는 그렇게 말하고는 두 손을 모아 눈을 감고 기도문을 읊는다. 그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내려와 프란츠에게 깃드는 게 보인다. 프란츠를 그 기운이 깃든 손으로 모두의 머리를 하나씩 짚으면서 기도를 이어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피로감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마나나 내공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스스로 육체가 피로를 해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전부네요. 도움이 안 돼서 죄송해요.”

“아냐, 정말 고마워. 내가 고집을 부려서 모두들 고생했는데 덕분에 살았어.“

프란츠와 토리나가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웃음꽃을 피우는 와중에도 나는 우물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바위를 치우고 나서 우물터에서 이질적인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 보아라.

천의결에 억눌린 혼돈에게서 비틀리듯 빠져나온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린다. 혼돈을 금제하던 천의결을 조금 느슨히 하자 혼돈의 의사가 뚜렷하게 전달된다.

- 이는 바로 네가 취할 힘의 흔적이다. 이 힘을 취하는 순간 너는 잃어버린 힘을 되찾고 그 이상의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내가 벨스터에 오고 또한 이 임무에 투입된 건 혼돈의 의사였던 것 같다. 젠장, 웃기지 마라. 다시 그런 힘을 취할 성 싶더냐.

- 힘을 갈구하지 않았는가? 그 힘은 바로 근처에 있다. 너는 곧 힘을 얻는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힘을 갈구한 건 내가 과거의 노력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아무 노력도 없이 힘을 얻는 게 과연 과거의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실패한 게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그럴 턱이 없지.

- 명심해라. 너는 피할 수 없다. 너는 기필코 힘을 얻게 된다.

마음대로 지껄여라. 설령 내가 피할 수 없더라도 나는 그 힘을 쓰지 않을 것이다.

“도군, 괜찮은 거야?”

쥬비가 무뚝뚝한 얼굴로 제법 그럴듯한 염려를 해 준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혼돈의 의사를 막아버렸다. 그래, 이런 논쟁 자체가 무의미한 거였어. 어차피 혼돈이란 건 불쾌한 헛소리나 지껄이는 존재다.


새로이 합류한 학도병들은 저녁이 되자 모두 마을 내 자경단 숙소에 모였다. 자경단은 전쟁에 불려갔는지 두서넛만 모습을 보일 뿐 텅텅 비어 있었다.

그나저나 이 숫자는 보니, 벨스터에서 놀고먹던 학도병의 절반이 이 임무에 파견된 모양이군. 숙소 한가운데 공터에 모두 모여 있으니 자연히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러나 철없이 잡담을 늘어놓는 가운데서도 분대장들은 그들끼리 모여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과연 분대장들인가.

조금 신경을 기울여 그 내용을 알아보니 사악한 마법사의 목적을 추론하는 중인 것 같았다.

“으음... 아무리 봐도 공통점이 없지 않나요?”

토리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연신 수첩을 넘겨본다. 확실히 아무런 접점도 없는 짓을 일삼기는 했지. 가축의 피를 빼가는 건 둘째 치고 우물이나 화장실은 왜 부순 걸까?

“토리나 님. 역시 그 마법사는 금단마법을 위해 무덤을 파헤치고 피를 구해간 것 같습니다.”

한 분대장이 그렇게 말하자 다른 분대장이 반박한다.

“그럼 우물하고 화장실은 왜 부순 건지, 그리고 그 외의 기행은 도저히 설명이 안 되지 않습니까?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목적이 여러 개일지도 모르죠. 흑마법을 익히는 것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다면 말이 됩니다.”

“그럼 그 목적은 뭡니까? 그걸 확신하지 못한다면 흑마법을 맹신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흑마법설을 주장한 분대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주장을 논파한 분대장은 토리나에게 공손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토리나 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모두는 당신의 의견에 따를 겁니다만, 최소한 흑마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과연 공작의 딸이라는 거군. 나름대로 귀한 집 자제들인 것 같은데 모두 토리나의 말에 따르기로 한 모양이다. 토리나는 그런 게 조금 부담스러운지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으음, 일단 목적을 밝혀내는 건 일단 보류하겠어요. 내일부터 수원을 복구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하니 그 일이 끝나는 대로 사악한 마법사를 계속해서 추적하도록 하죠. 목적을 모르는 이상 추적이 어렵겠지만 모두 힘내주세요.”

목적은 도저히 알 수 없다. 심지어 천의결마저도 그것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마법사의 행동이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 사건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알고 있다. 나는 아마 혼돈의 뜻에 따라 어떤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저들은 아무리 궁리해봐야 내가 가지고 있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이 말을 전해줄 생각이 없다. 전해준다 한들 믿지도 않겠지만.

“히야, 끝났다.”

“회의는 어떻게 됐나요?”

프란츠가 토리나 몫으로 남겨둔 딱딱한 말린 빵을 건네며 물었다. 토리나는 물끄러미 말린 빵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날름 그것을 집어먹는다.

“일단 그 마법사의 목적을 추측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어. 그보다 또 우물을 부수기 전에 미리 학도병들이 가서 우물을 지키로 있어야 해. 그래서 지금 당장 짐을 싸야 해. 이 마을에는 한 분대만 남아 있을 거야.”

“뭐야, 설마 우리가 떠나는 쪽은 아니겠지?”

쥬비가 다른 사람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언성을 높여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토리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쥬비를 어떻게 타이를지 고민하는 눈치다.

안 된다. 여길 떠나서는 안 돼. 천의결의 직감에 따르면 이곳은 분명 중요한 지점이다. 마법사는 다시 이곳으로 온다.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여기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분명 혼돈과 관련이 있다. 혼돈의 의지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으니 직접 막아보는 수밖에 없다.

“토리나. 다른 학도병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가 여기 머무는 게 낫지 않을까?”

“어째서?”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에 당황했는지 토리나는 눈에 띄게 당황해서는 되묻는다. 나는 적당히 머리를 굴려서 변명거리를 만들어서 지껄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다른 학도병은 별로 한 게 없잖아. 우물을 고친 것도 우리가 거의 다 해놨고. 우리는 비교적 덜 부담스러운 임무를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은 안 했지만 솔직히 조금 피곤해서.”

“그런가? 다들 그래?”

토리나가 다른 두 사람을 향해 묻는다. 그러자 쥬비가 적극적으로 찬동하며 말한다.

“어차피 마법사의 목적을 파악하기도 해야 한다며. 머리 쓰는 건 우리가 맡고 다른 일은 저 사람들한테 넘기자. 볼마르그 가문의 일원이라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누나 편한 대로 하세요.”

프란츠는 평소처럼 별다른 의사를 내비치지 않는다. 토리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분대장들을 다시 모이게 하더니 뭔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너, 뭔가 눈치 챈 거지?”

쥬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이런, 단순히 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저런 생각 때문에 찬동한 거였군. 그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족하다. 어차피 의심을 품고 있는 건 매한가지일 테고 결국 그녀도 내가 혼돈의 사도라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좋아. 정보를 전부 받아왔어. 저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너희한테도 미안해. 너무 내 좋을 대로만 생각했나봐.”

토리나는 그녀의 뜻이 꺾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고 활기찬 모습이다. 정말 그녀가 볼마르그 공작의 딸이라는 게 사실일까? 한 핏줄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쾌활한 모습이다.

학도병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바로 다른 마을로 출발할 예정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 반면 우리 넷은 아직도 깨어 있었다. 약초를 넣어 피운 모닥불이 열심히 벌레를 쫓아내는 가운데 우리는 그 옆에 앉아서 열심히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황무지는 밤에는 꽤 쌀쌀하네요.”

프란츠가 옷깃을 여미며 중얼거렸다. 이에 아예 모포까지 두르고 있는 쥬비가 말했다.

“습기가 없어서 그래. 참고로 자카이야는 더 심해서 낮에는 미친 듯이 덥고 밤에는 얼음이 얼 정도로 춥지.”

“아, 그래서 모포를 준비하신 거였군요.”

한편 나는 수첩을 들여다보는 척 하면서 우물터가 있는 방향으로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 곧 마법사가 나타난다는 예감이 든다. 아니, 아예 이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학도병이 몰려 있기에 기회를 엿볼 뿐.

새벽이 되어 우리를 제외한 학도병들이 자리를 뜨고 프란츠와 쥬비는 꾸벅꾸벅 졸다가 잠들어 버렸다. 그들에게 모포를 덮어 준 토리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정말로 피곤했나봐. 괜히 돌아다녔다간 몸살이라도 났겠어.”

“그러려나?”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것도 잠시, 토리나는 끝없이 말을 걸어왔고 곤두선 정신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기세를 죽였다.

“그렇잖아. 그런데 쥬비는 왜 수련을 안 하는 걸까?”

“글세.”

“쥬비랑도 같이 수련을 해 볼까? 전에 봤지? 막 괴롭혀주니까 화내면서 달려드는 거. 엄청 빨랐잖아.”

“잠깐.”

왔다. 나는 수첩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비룡검에 손을 가져댔다. 그리고는 발소리를 죽여 가며 달빛도 들지 않는 음지로 몸을 감추고 우물터로 접근해갔다.

“무슨 일이야?”

토리나가 잔뜩 긴장해서는 어느새 창을 들고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나는 마구 날뛰기 시작하는 심장소리를 가라앉히려 숨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마법사가 왔어.”

“어? 그걸 어떻게....”

토리나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갑자기 우물터 옆 공터에서 새까만 뭔가가 솟아오른다. 두더지처럼 솟아오른 그것은 그림자만 봐서는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좀 더 접근하자.”

토리나는 어느새 진지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몸을 숨겨가며 우물터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고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은밀히 움직였다.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자 그 존재의 혼잣말이 선명히 들려온다.

“크으으, 기껏 수맥의 상처를 막아놨는데 벌써 고쳐버리다니. 빌어먹을 벨스터 촌놈들.”

달빛을 받아 기괴한 음영이 진 흉측한 얼굴에, 그에 어울리는 갈라진 목소리는 사악한 마법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마법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붉은 가루를 한 움큼 집어 들고는 그것을 우물 주위에 세운 석실에 뿌리고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정말로 흑마법이었나 봐.”

토리나가 귀엣말로 이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녀도 내심 흑마법 따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저건 문외한인 내가 봐도 흑마법사가 분명했다.

“그리하여, 무너지리라.”

주문이 끝나자 놀랍게도 갑자기 돌을 쌓아 만든 석실이 균형을 잃고 푹 주저앉는다. 그 덕에 우물이 다시 막혔다. 복구하느냐고 고생 좀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군.

“이봐!”

그때 토리나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마법사에게 달려든다. 제길, 무슨 생각이야? 토리나는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창을 겨누며 쏘아붙였다.

“기껏 고쳐놨더니 무슨 짓이야? 이 사악한 마법사가!”

“흥, 무지몽매한 벨스터 놈들이 뭘 안다고. 네놈들에게 설명 따위를 해 봤자.... 그런데 넌 벨스터 놈이 아니군.”

한껏 건방을 떨던 마법사가 음침하게 돌변해서 경계를 품는다. 정확히는 토리나의 창을 향해 엄청난 적의를 품은 것 같다.

“성스러운 은으로 만든 창. 볼마르그 가문인가? 볼마르그에 계집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그럼 이제부터 알아두라고. 볼마르그의 창, 토리나 볼마르그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기소개나 하고 있는 거냐? 나는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이 잠룡보를 밟아가며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내공이 없는 탓에 그 속도가 너무 느려, 기습은 한순간에 발각되고 말았다.

마법사는 기겁하며 반사적으로 깡마른 손을 내민다. 그러자 검붉은 막이 형성되며 비룡검이 힘없이 튕겨져 나온다. 마법인가? 천의결을 운용하자 저 마법의 빈틈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공이 있다면 깨볼만하겠지만 내공이 없어서 문제군.

“크윽! 비겁한 놈들. 볼마르그의 종자들이 이렇게 비겁하게 나오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냥 미친놈이군. 나는 비룡검을 곧추세우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난 볼마르그의 검사가 아니라 하찮은 평민이라 그딴 건 모른다.”

“호오, 그렇다면 네놈이 구멍이로구나.”

마법사가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품속에서 이상한 잡동사니를 꺼내 집어던진다. 뼛조각인가? 그때 토리나가 기겁하면서 날 밀쳐서 힘없이 날아드는 뼛조각에서 멀리 떨어트린다. 그리고는 창으로 그 뼈를 쳐내고는 외쳤다.

“익스플로시브 본(Explosive Bone). 당신, 네크로멘서군요.”

“그렇다. 볼마르그의 종자들에게 몰살당한 원한. 꿈에도 잊을 수 없으리라. 죽어라앗!!”

마법사. 아니, 이제 네크로멘서라 불러야 할까? 그는 재차 뼛조각 수십 개를 흩뿌린다. 토리나가 창으로 단번에 세 개의 뼛조각을 쳐내고는 외쳤다.

“닿으면 폭발할거야! 무조건 피해야 돼!!”

그래서 날 밀쳐낸 건가? 과연 먼저 땅에 닿은 뼛조각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하기 시작한다. 저런 걸 정면으로 맞았다가는 즉사할 것이 분명하다. 굳이 객기를 부리는 대신 나는 잠룡보로 뼛조각의 폭발범위에서 벗어나 역공을 가했다.

“크큭, 멍청한 칼잡이 놈.”

그런데 그 순간 땅속에서 거대한 팔이 솟아나 내 상체를 거세게 움켜쥔다. 호흡이 끊기며 뼈가 으스러지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격렬한 통증이 몰려온다.

“크아아!!”

거대한 팔을 시작으로 땅 속에서 거구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썩은 냄새와 흙내가 뒤섞였지만 저건 분명 오거다. 대체 오거가 왜 땅속에서 나온단 말인가?

“크흐흐, 저 놈을 살리고 싶으면 날 보내줘야 할 거다.”

어느새 네크로멘서에게 근접한 토리나를 향해 네크로멘서는 자신만만하게 나를 가리킨다. 빌어먹을. 내가 방해물이 되다니. 나를 내버려두고 네크로멘서를 처치하라 외치려 했지만, 속에서 핏물이 올라와 도저히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가 없다. 나는 피를 왈칵 토해내고는 기침을 연발하는 게 고작이었다.

“......일단은 살려주겠어요. 도군을 놔 줘요.”

“물론이지.”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오거는 섬뜩하고 구역질나는 소리를 내면서 나를 집어던진다. 붕 뜨는 감각과 더불어 속이 뒤집어진다. 허공에서 피를 토해내며 나는 보잘것없는 모양을 과시하면서 무너져 내린 석실 앞에 처박혔다.

“도군!”

토리나가 네크로멘서를 내버려두고 내게 달려온다. 제기랄! 채 어떻게 할 틈도 없이 나는 완전히 방해거리가 되버렸다. 격한 통증을 타고 터무니없는 분노가 몰려온다. 내가 왜 이딴 처지가 된 거지? 대체 왜?

“크하하핫, 날 막을 생각을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 어린 볼마르그야.”

오거의 거체가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다. 토리나는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고 네크로멘서는 스스로 이상한 빛을 발하며 조금씩 어둠에 녹아들고 있었다. 도망치게 해서는 안 돼. 도망치게 해서는.....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슬슬 시험기간이군요. 잘해야 한 편을 쓰고 1주 이상 휴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소설에서 주인공은 결코 순순히 강해지지 않습니다. 먼치킨은 커녕 한방감이죠.

이쯤에서 스포일러를 조금 해 봅니다.  주인공은 분명 바뀝니다. 1권 분량에 해당하는 ‘한계’ 챕터까지가 멘탈붕괴라면 2권 분량에서는 멘탈변화가 주제입니다. 좋든 나쁘든, 어떤 방향으로든 주인공은 바뀝니다. 그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안 들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애초에 구상한 내용이 그렇습니다. 사실 쉽게 강해지는 게 사기 아닌가요?


뒷내용을 말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거려 조금 썰을 풀어 봤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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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5. 징집 (1) +4 13.04.26 5,111 142 9쪽
36 4. 한계 (11) +4 13.04.15 4,769 84 17쪽
35 4. 한계 (10) 13.04.15 4,247 68 11쪽
34 4. 한계 (9) +5 13.04.12 4,474 78 18쪽
33 4. 한계 (8) +3 13.04.10 4,338 73 14쪽
32 4. 한계 (7) +4 13.04.10 4,568 80 13쪽
31 4. 한계 (6) +9 13.04.01 4,922 89 14쪽
30 4. 한계 (5) +6 13.04.01 4,688 88 12쪽
29 4. 한계 (4) +3 13.03.27 4,348 100 11쪽
28 4. 한계 (3) +1 13.03.27 4,677 96 16쪽
27 4. 한계 (2) +4 13.03.23 4,985 98 19쪽
26 4. 한계 (1) +3 13.03.18 4,906 105 9쪽
25 3. 매칭 (12) +4 13.03.14 6,380 94 20쪽
24 3. 매칭 (11) +8 13.03.08 6,473 212 9쪽
23 3. 매칭 (10) +4 13.02.27 4,988 108 15쪽
22 3. 매칭 (9) +3 13.02.18 5,215 1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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