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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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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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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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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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징집 (1)

DUMMY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올랐다. 기숙사에서부터 한달음에 폰테일 저택까지 온 탓에 완전히 지쳐있는 상태에서 제법 가파른 언덕을 뛰어가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결코 당연한 일은 아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온 모든 내공을 잃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신체능력은 떨어졌고 그렇기에 고작 이런 낮은 언덕을 뛰어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이다. 나는 화를 가라앉히려 더욱 빠르게 언덕을 올랐다. 지치면 화를 낼 기력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몸이 지칠지언정 나는 절망적인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공은 사라졌지만 나는 한때 경지에 올랐던 이다. 정신은 이따위 싸구려 역경에 굴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 정신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진실을 나불거렸다.

나는 예정된 운명대로 혼돈의 힘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나는 그걸 용납지 않았고 혼돈은 그것을 다시 빼앗아 갔다. 그걸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막상 힘을 잃자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전세를 뒤엎고 상황을 좌지우지하던 그 막강한 힘에 대한 막연한 갈망에 마음은 다시 울긋불긋하게 얼룩졌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강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강해졌던 과거의 영광을 동경했던 것이다.

마치 과거의 영광을 반추하는 망국의 왕처럼 나는 불쾌한 과거를 떠올리며 정상을 목전에 두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가부좌를 취하고 단내 나는 숨을 골랐다. 소렌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나약해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다는 유치한 이유에서였다. 내공은 없었지만 그동안 단련해 온 덕에 호흡은 제법 빠르게 안정되었고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소렌은 우수에 찬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검을 집어던졌던 그 벼랑에서는 어느덧 태양이 주홍빛으로 물든 채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렌의 깨끗한 금발이 주홍색 빛줄기에 닿아 묘한 색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렌이 입을 꾹 다물고 코로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고는 말했다.

“아직 몸이 낫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불러서 정말 미안해.”

몸이 낫지 않아서가 아니야. 이제야 평범한 상태로 돌아온 것 뿐이지. 애초에 나는 너와 비견될 인간이 아니었어. 가타부타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 은연중에 답답한 마음을 담아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미안할 것 없어. 약속은 약속이니까.”

소렌과 다시 대결하기로 한 날이 바로 오늘이다. 소렌은 두말하지 않고 검을 뽑아들었다. 스톰브링어다. 과연 난 저 폭풍을 한순간만이라도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떨쳐내려 나는 힘차게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소렌이 보기에는 충분히 느릿느릿한 선공을 가했다.

역시나 소렌은 어렵지 않게 내 검을 받아낸다. 왜 굳이 피한 다음 반격하지 않고 검을 받아주었을까? 소렌이 담담한 얼굴로 다른 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주인의 분위기와는 달리 검에 들어찬 잠력은 말도 못할 정도로 대단했다. 나는 간신히 그 검을 막아냈고 천의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대체 뭘 하는 거야? 전력을 다해!”

천의결을 통해 그녀의 검로를 읽은 나는 역정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단조롭기 그지없는 검로다. 스톰브링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단조롭고 초보적인 검. 이걸 막는데도 이렇게 힘이 든단 말인가. 벌써 몸이 축 늘어지는 것 같은데 그녀는 실력의 일푼도 꺼내지 않았다는 건가. 나는 악을 쓰면서 거칠게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내 상태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스톰브링어를 보여 봐! 날 모욕할 생각 하지 말라고!!”

소렌은 그 말을 듣고 재차 검을 곧추세웠다. 그리고는.....


“아.”

유난히 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다. 긴장 때문에 통 잠을 자지 못한 탓에 열차 안에서 간신이 잠에 들었던 것이다. 아직 창밖으로 로베른의 수도가 보이는 걸 봐선 얼마 자지 못한 것 같다.

다시 펼쳐진 대결에서 나는 소렌에게 졌다. 그때의 일을 꿈에서 다시 겪으니 다시 소렌의 그 무자비한 강력함이 떠오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를 박살내는 그 모습이. 그녀의 재능과 능력은 터무니없이 높아서 나는 급기야 그녀가 두려워졌다. 지금도 악몽 아닌 악몽을 꾸면서 온몸이 식은땀 투성이가 되었다. 빌어먹을. 내가 왜 이런 꼴이 된 걸까?

나는, 그리고 하이스쿨의 학생들은 모두 학도병으로서 징집되었다. 그날 수많은 귀족 자제를 비롯하여 호비나와 렌서스 후작이 죽었다. 그리고 엠펠로니아의 사절단 역시 수없이 죽었다.이로 인해 엠펠로니아와 대륙연합의 관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흉흉해졌고 결국 치열한 전면전이 다시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대륙연합의 한 축이이었던 렌서스 후작이 후계자와 함께 죽어버린 탓에 렌서스 후작가는 아예 분열되어버렸고, 그 때문에 엠펠로니아의 선공에 몇몇 소국이 멸망당하는 와중에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렌서스 후작가의 역할이 컸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사정이 급박해지자 로베른을 위시한 수많은 강국들은 한 사람의 병사로서 학생들까지 동원하는, 이른바 학도병 제도까지 만들어 마나와 진검을 주어 전장에 내세웠다.

물론 반발은 있었다. 하지만 학도병이 비교적 후방에 배치될 거라는 점. 그리고 반발을 표출하고 징집을 무마할 자격이 되는 도련님과 아가씨는 전부 성산에서 몰살당한 탓에 남은 반발은 그저 작은 소요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학도병 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지금 이 열차만 해도 진검을 살짝 뽑아보면서 몸을 떨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거의 다 평민이거나 자질이 부족한 하급 귀족의 자제들인 그들이 과연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런다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

나는 비룡검객이 주고 간 비룡검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랬다. 사실 비룡검객은 칠칠맞게 검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바로 내공을 잃은 채 전쟁터에 끌려가는 내게 비룡검을 주었기 때문에 검을 갖고 있지 않던 것이다. 아마 단순한 선물로서가 아니라 전쟁터에서 하루라도 더 숨을 쉬라는 의미에서 준 것이겠지. 그에게는 더없는 은혜를 입은 셈이다.

비룡검객은 비룡검을 주면서 몇 가지 소식을 전해왔다. 첫 번째로 폰테일 공작이 갑자기 실종되어 소렌이 그 대신 전쟁터에 투입된다는 것. 그것도 학도병처럼 미지근한 후방에 가는 게 아니라 진짜 전투가 벌어지는 엠펠로니아 접경으로 투입된다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비룡검객이 그녀를 돕기 위해 소렌과 함께 떠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야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좋아하는 그에게,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모르긴 해도 소렌은 잘 해낼 것이다. 소렌은 겨우 몬스터 따위에게 목숨을 잃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렌이 비명횡사하리라는 걱정은 없다. 그러나 나는 다른 쪽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소렌은..... 이제 다신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갔지.”

아무리 노력해도 이제 나는 소렌을 마주할 수 없다. 단지 그녀와 내가 다른 전선에 배치된다는 사실이나 실력의 격차가 문제는 아니었다. 내공을 잃은 지금, 내가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무척 희박하다. 그리고 설령 팔다리 한쪽을 잃고 살아남는다고 해서 소렌을 넘어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비정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살아있어야 하는 걸까? 목표를 잃은 채 나는 혼돈이란 것에 구속되어 있다. 내가 하는 모든 짓이 이 세상을 혼란으로 빠트리는 짓이라면, 어쩌면 내가 징집되는 것 자체가 학도병 전체를 죽음으로 더 빨리 몰아넣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죽은 사람들에게 사과라도 할 작정이신가?”

비룡검으로 바닥을 쿵 찍으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법 큰 소리가 났지만 아무도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이미 저들은 전쟁과 죽음에 대한 감정으로 머리가 마비되어 자기 외의 일은 어지간해선 인식하지도 못하는 거겠지.

그런데 바로 그때, 열차의 창문 수십 개가 동시에 박살나며 새까만 뭔가가 쏘아지듯 열차에 난입했다. 천의결은 운용하기도 전에 스스로 움직이며 말한다. 저것은 몬스터다. 즉, 적이다. 이에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원래 공지만 올리려고 했는데 공지를 삭제했다가 올릴 때 공지를 연재글로 올려서  업데이트 목록에 제 글이 뜨더군요.

의도치는 않았지만 그 때문에 조회수가 조금 변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낚시를 한 셈이니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우선 한 편을 올립니다.

더불어 이번 이야기부터가 2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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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5. 징집 (3) +5 13.05.08 4,261 6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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