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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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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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3.06.02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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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6. 볼마르그의 창은 꺾이지 않는다. (2)

DUMMY

“아쉽게 됐네. 특이한 능력을 가진데다가 자히넵의 혈족이라면 자카이야에서 한자리 꿰찰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쥬비는 갑자기 말을 머뭇거리고는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천의결이 아니라도 그녀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나는 굳이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내게서 이질감을 느낀 이상 가까이 해서 좋을 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토리나와의 대련도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다. 쥬비에게 쓸데없는 의심을 사는 것도 그렇고, 토리나가 점점 더 강해지는 걸 보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았다.

토리나가 하루가 다르게 강해져도 나는 아무런 변화도 갖지 못한다. 검의(心)나 초식(體)만으로는 결코 고수가 될 수 없다. 그에 걸맞는 내공가 갖춰져야 진정 한 사람의 무인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돈의 주구로 전락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만큼, 나는 더욱 약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목표를 잃어버리고 빈껍데기처럼 살게 됐지만, 나는 이것 역시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지간히도 구제불능이군. 어쩌면 애초에 나는 노력 따위와는 거리가 먼 걸지도 모른다.


벨스터의 더위 때문에 실감되지는 않지만,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새 가을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우리가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엠펠로니아 접경지역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전쟁을 실감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건 별동분대에 속하지 못한 운 나쁜 학도병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정확히 말해서 그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직시하기 전에 죽어나간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쥬비는 연신 더위와 벌레 떼에 투덜대고 있었고, 그나마 프란츠가 가끔씩 전쟁이 끝나도록 기도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리고 가장 어른스럽게 행동할 것 같던 토리나는 의외로 별다른 변화 없이 계속해서 수련에 매진할 뿐이었다. 아니지, 어쩌면 저게 가장 현명한 일이다. 뒷전에서 그들을 위하는 척 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은 없으니까.


토리나는 내가 아무리 거절해도 끊임없이 대련을 청했고, 결국 나는 쥬비가 잠든 틈에 토리나의 청을 수락했다. 그러나 쥬비가 있든 없든 역시 곤욕이다.

토리나의 실력은 소렌처럼 무지막지하지 않아서 천의결을 통하면 얼마튼지 최상의 파훼법이 보인다. 그러나 천의결이 가리키는 검로를 따르기 위해서는 내공이 필수불가결하다. 범인(凡人)을 초월한 힘과 집중력. 그리고 순발력으로 검을 휘두르지 않으면 결코 따를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검의에 의존해서 내 감각에만 의존해서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토리나는 내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실제로 대련의 승자는 거의 나였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 안 남았다. 토리나는 점점 내 검에 능숙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토리나는 마나를 쓰지 않으면서도 나를 넘어설 것이다.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나는 약간 뒤틀린 심사를 감추면서 무뚝뚝하게 되물었다. 토리나는 호쾌하게 창을 휘둘러 사방을 점하면서 말했다.

“아, 그렇구나. 분대장들한테만 전파된 내용이라 아직 모르겠구나.”

토리나는 연달아 창을 뻗어낸다. 묵직한 일격이지만 그뿐이군. 비룡출조로 시작된 검로는 검영연파와 검명비산이 뒤섞인 모습으로 나아갔다. 이를테면 일격의 위력을 여러 개로 나누어 강과 쾌를 합한 것이다.

사실 이건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상승의 경지였지만 천의결의 힘을 빌면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내공이 없으니 검의를 쓰는 일이 익숙해지는 것 같군.

“지금 전선에서 가장 유명한 학도병이 누군지 알아?”

만약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다면 단연코 그 학도병을 에럴드나 볼마르그 형제라 말할 수 있겠다. 아니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으니 아예 말이 안 되는 가정이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습관처럼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예의상 물음을 던졌다.

“누군데?”

“소렌 폰테일. 롤랜드 폰테일 공작을 대행하는 불세출의 여걸이라고 소문이 자자해.”

소렌의 이름을 듣자 아주 짧은 순간, 그러나 여러 번 지면서 독이 바싹 올라 있는 토리나에게는 충분히 크게 검로가 흐트러진다.

그 틈을 치고 올라온 토리나가 눈을 빛내며 일격을 가한다. 나는 미처 그 공격을 막지 못하고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야 말았다. 토리나는 간만에 거둔 승리에 신이 나서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소렌 양은 학도병이 아니지만 같은 또래이니만큼 사기진작 차원에서 소렌 양의 위업을 널리 퍼트리라고 명령이 내려왔어. 아, 그리고 보니 소렌 양은 로베른 출신인데 아는 사이야?”

“몇 번 검을 섞어봤지.”

무심코 그렇게 말하자 토리나가 깜작 놀라서 입을 쩍 벌린다. 그리고는 어째서인지 노골적으로 호들갑을 떨면서 내게 바싹 붙어온다. 별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토리나의 땀 냄새가 물씬한 가운데, 그녀에게서는 묘한 생기가 느껴진다. 나는 그 발랄함 때문에 비참한 처지에 있는 내 자신에게 더욱 화가 치밀었다.

“정말이야? 그래서 누가 이겼어?”

“당연히 내가 졌어.”

사실 대련 이전에 마음가짐에서부터 지고 있었지. 이를 알 리 없는 토리나는 열심히 내 얼굴에 금칠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대단하네. 나도 겨뤄보려고 친한 척 해봤는데 실력이 너무 떨어진다고 무시만 당했거든. 그런데 넌 겨뤄보기까지 하다니. 정말 부러워.”

은연중에 나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나를 치켜세우는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에서 나를 위로하는 이는 없었다. 나 자신조차도 나를 위로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위할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 아니다. 얼굴이 너무 화끈거릴 뿐이다. 대련으로 달군 몸보다 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다.

“에휴, 난 이제 아예 소렌하고는 상대도 안 되겠네. 너는 어때?”

“나도 뭐.....”

내공이 있을 때도 버거웠는데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소렌이 명성을 떨친다는 말을 들으니 이젠 정말로 소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는 게 실감된다. 과거에 그녀와 비등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추억을 곱씹는 취미가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토리나 누나!”

그때 나무집에서 프란츠가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부른다. 햇빛이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군. 움직이는 것도 안 좋아하는 것 같고.

“무슨 일이야?”

“명령전달 때문에 벨스터 군영에서 전달병이 와 있어요. 와 보셔야 될 것 같아요.”

설마 소렌의 위업을 널리 퍼트리라는 명령을 전달병까지 써서 전하려는 건 아니겠지? 사실이라면 주저 없이 벨스터 공왕을 욕해주리라.


전달병으로 온 이는 우리와 같은 학도병이었다. 단, 벨스터 출신이라 벨스터에서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학도병이라는 점이 우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 때문인지 전달병은 그늘에서 마음 편히 쉬고 있던 쥬비와 프란츠를 고깝게 응시하고 있었고, 토리나가 들어서자 근육 때문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군복을 대충 정돈하고 토리나에게 경례를 건넨다.

“제1별동분대 분대장, 토리나 볼마르그 맞으십니까? 벨스터 공국에서 임무가 하달되었습니다.”

“그렇군요.”

토리나는 약간 긴장한 기색으로 전달병이 건네는 명령서를 받아들었다. 전달병이 나가고 나서 토리나는 명령서를 펴서 천천히 읽어나갔다.

“현 시간부로 별동분대는 벨스터 국내 치안유지에 투입된대. 그 첫번째 임무는 사악한 마법사를 쫓아내는 거라는데?”

“사악한 마법사라니, 동화책도 아니고 명령서 쓴 사람은 대체 몇 살이래?”

쥬비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나무집에서 쉬면서도 투덜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는 임무에 투입 된다는 것이 꽤 불만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재빨리 짐을 싸기 시작하는 걸 보면 도무지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다.

“사악한 마법사에 대한 정보 같은 건 없나요?”

“피해 규모가 있긴 한데.....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 음, 첫 피해는 황무지 근방의 마을들에서 발생했대. 약 50여건 정도.”

“정말요? 50건이나 발생한 거면 꽤 위험한 게 아닐까요?”

프란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러나 토리나는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명령서를 건네주며 말했다.

“읽어봐. 50건이라고 해도 인명피해는 아니고, 가축의 피를 빼간다든지 식료품을 도둑질 해가는 하찮은 사건들이야. 이런 건 원래는 벨스터 자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전쟁 때문에 치안유지병력까지 차출되는 바람에 우리가 나서는 거겠지.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으음... 그나저나 정말 사악하긴 하군요. 화장실에 윈드 블래스트를 날리고 도망쳐서 온 집안을 오물로 엉망으로 만들다니 이 더운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가는....”

프란츠가 소름이 돋은 듯 팔을 쓸어내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입가에 실소를 머금는다. 명령서상으로는 분명 일개 정신이상자의 소행인 것 같지만 나는 왠지 불안했다. 명령서의 내용을 듣는 순간 내 안 깊숙이 잠들어 있던 혼돈의 기운이 요동치며 천의결이 불길한 예감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인지는 모르지만 이것도 혼돈의 의지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모두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쌀 때, 나 홀로 어두운 표정으로 명령서를 뚫어져라 읽고 있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아메리카노와 함께 카페에서 쓴 글입니다. 요즘은 카페에서 넷북도 빌려주더군요. 워드프로세서가 없어서 메모장에 쓴 글이라 요상한 곳에 공백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적 혹은 발견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그저께는 제가 쓴 소설을 죽 읽어 보았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쁜 법이라던데 제가 쓴 글은 스스로 읽어도 꽤 괜찮은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제 안에서만 그럴 뿐 실제 인기는 평균 이하겠지만요. 취향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제가 뒷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요. 하여튼 자기가 쓴 글을 읽고 자기가 그럭저럭 만족하는 건 꽤 멋진 일 같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급자족이네요.


ps 추가 : 공지의 인물평가에 참여 부탁드립니다. 특히 누가 누군지 헷갈릴 정도로 몰개성한 인물상은 가장 부정적으로 여기는지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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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74 아침기상
    작성일
    13.06.02 10:29
    No. 1

    제 생각엔 이게 연재량이 좀 되던가 아니면 홍보 열심히 하시는게 나을거같은데요. 유명 작가분들 인삼님같은 경우 알려져있으니까 작가의 다른작품이 홍보없이 알리죠. 한두번쯤 베스트 3위안에 들으셔야 조회량이 늘겁니다. 조아라도 그렇고 문피아도 그렇고 독자들은 3위안은 한번쯤 들어가보고 75밖은 그냥 넘겨 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온화한인상
    작성일
    13.06.05 21:40
    No. 2

    네, 잘보고 갑니다 ㅇㅂㅇ 오늘도 좋은글! 내일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벌꿀돼지
    작성일
    18.06.21 22:11
    No. 3

    좋은데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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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6. 볼마르그의 창은 꺾이지 않는다. (7) +6 13.07.08 3,283 56 16쪽
50 6. 볼마르그의 창은 꺾이지 않는다. (6) +4 13.07.07 3,565 57 15쪽
49 6. 볼마르그의 창은 꺾이지 않는다. (5) +2 13.06.27 2,968 56 14쪽
48 6. 볼마르그의 창은 꺾이지 않는다. (4) +1 13.06.11 3,772 53 10쪽
47 6. 볼마르그의 창은 꺾이지 않는다. (3) +5 13.06.06 4,266 59 20쪽
» 6. 볼마르그의 창은 꺾이지 않는다. (2) +3 13.06.02 3,819 57 10쪽
45 6. 볼마르그의 창은 꺾이지 않는다. (1) +2 13.05.30 4,557 57 13쪽
44 5. 징집 (8) +4 13.05.26 4,240 62 8쪽
43 5. 징집 (7) +2 13.05.25 3,530 5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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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5. 징집 (5) +7 13.05.19 3,969 59 9쪽
40 5. 징집 (4) +3 13.05.12 3,890 62 13쪽
39 5. 징집 (3) +5 13.05.08 4,261 65 12쪽
38 5. 징집 (2) +6 13.04.29 4,226 82 11쪽
37 5. 징집 (1) +4 13.04.26 5,111 14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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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4. 한계 (9) +5 13.04.12 4,474 78 18쪽
33 4. 한계 (8) +3 13.04.10 4,338 7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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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4. 한계 (5) +6 13.04.01 4,688 88 12쪽
29 4. 한계 (4) +3 13.03.27 4,348 10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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