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망한 서버의 망한 길드의 망한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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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검[飛劒]
작품등록일 :
2013.03.05 14:00
최근연재일 :
2013.04.0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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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0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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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DUMMY

그렇게 조금은 별난 하루가 끝나고, 강희성은 위드 리스 온라인에 접속했다.

[위드 리스(With Ris), 정령과 함께하는 새로운 현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몇백 번이고 본 문구를 가벼운 기분으로 읽어 넘기며 로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모든 유저에게 리스(Ris)라는 요정 형태의 작은 NPC를 붙여놓는 이 게임을, 강희성은 꽤나 좋아했다. 리스의 인공지능이 썩 괜찮은 편이기도 했고, 커스터마이징 기능도 마음에 들었으니까.

잠시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자니, 가상현실 특유의 이질감이 사라지며 게임 캐릭터와 자신이 완전히 동화가 되어 자연스러워졌다.

[‘카르휘’님께서 로그인 하셨습니다.]

로딩이 끝나기가 무섭게 길드 채팅에 글이 와르르 올라왔다.

-형! 하요!

-오 칼 형 이제 왔어요? ㅋㅋ

-ㅇㅋㅇㅋ 휘도 왔으니 좀 있다 루닉스 일퀘(일일 퀘스트) 가면 되겠네.

-아 카르 형 마침 잘 오셨음. 무형 정수 다 팔렸어요. 대금 좀 받아 가세요.

위드 리스 온라인은 기본적으로 가상현실이라 육성 대화를 지원했지만, 길드 채팅이나 파티 채팅의 경우는 편의성을 위해 시야 한 쪽에 일반 온라인 게임처럼 로그창을 마련해 두었다. 설정을 길드 탭으로 놓은 뒤 말을 하면 음성 인식으로 문자가 입력, 전송되는 방식이다. 물론 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화면에 가상 키보드를 띄워 이전과 같이 타이핑을 하는 방법으로도 채팅할 수가 있었다.

“정신 없구만…….”

한꺼번에 들어오는 이런저런 요청들을 전부 해결하고 인사도 받아주고 나니, 그제야 누군가가 친구 신청을 했다는 알람이 눈에 들어왔다.

‘르…… 뭐시기, 김예빈인가?’

알람 메세지를 누르자 ‘[레드페어리] 서버의 [르웨델(LV87, 힐러)] 님께서 친구 신청을 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걸 본 강희성은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레, 레드 페어리? 여자애가 이런 험한 데서 게임을 한다고?”

위드 리스 온라인은 보통 무작위 PK를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단 하나의 서버만이 예외적으로 모든 필드에서 무작위 PK를 허용했는데, 그게 바로 레드 페어리 서버였다. 그곳은 한 번 이전을 하거나 생성을 하면 다른 서버로 갈 수도 없는 구조인데다, 초대형 길드가 거의 모든 필드를 독식하고 있는 판국이라 일명 ‘망섭’으로 불리는, 무저갱과도 같은 서버였다.

혹시나 아무것도 모르고 잘못 생성한 게 아닐까 싶어 메세지를 다시 보자, 레벨 87이라는 문구가 들어왔다.

“허, 허허허…….”

위드 리스 온라인의 만렙은 150이다. 87이라면 썩 높은 레벨은 아니다. 허나 하루에도 열댓 번씩 뒤통수에 칼이 꽂히는 자유 PK서버에서 87까지 키운다는 건 아는 사람이 있거나 컨트롤이 매우 좋은 편이 아니라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솔로 플레이가 지독하게 힘든 힐러라는 건…….

“이미 아는 사람이 많은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강희성은 친구 신청을 승낙했다. 마침 접속 중이었는지 메신저에 파란 불이 뜨며 채팅 문구가 떠올랐다.

-우와, 선배 저격수네요! 여긴 저격수가 별로 없는데.

-아무래도 거긴 상시 PK서버니까. 저격수 같은 건 키우기 힘들겠지.

강희성은 레벨 92의 저격수였다. 사람 키만 한 장궁을 들고 멀리서 꾸준히 일반 공격 위주의 딜링을 하는 것이 파티 플레이에서의 그의 역할이었다. 긴 사거리와 높은 데미지, 관통력을 자랑하지만 공격 속도나 기동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PK에는 취약한 직업군이었다.

-그보다 너 대단하다. 여자애가 PK서버에서 게임하기 쉽지 않을 텐데…….

-에이. 생각보단 할 만해요. 선배도 이리로 넘어오실래요?

진담인지 장난인지 모를 말이었지만 강희성은 순간 활을 쏘기도 전에 다른 캐릭터에게 썰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장거리 지원형이라는 특성상 근거리 1:1 상황에서 쓸 만한 기술이 거의 없는 그의 입장에서 PK서버는 생각만 해도 악몽이었다.

-장난이라도 무서운데 그 말? 저격수가 PK서버 혼자 가 봐야 죽기 바쁠 거 너도 알잖아.

-히히히. 그래도 오시면 제가 지원 많이 해 드릴 텐데.

-됐네, 됐어. 난 평화주의자니까 여기서 놀 거다.

그렇게 대화를 일축한 강희성은 다시 길드 채팅으로 주의를 돌렸다. 얼른 사냥을 가자고 채근하는 길드원들의 대화가 보였다.

‘이런 사냥광들 같으니…….’

그렇게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었다.

-미안, 잠시 친추(친구 추가) 온 사람이랑 얘기하느라.

-거래에요?

보통 빠르게 거래하기 위해서 서로 간에 친구 추가를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냐. 학교 후밴데 내가 위드리스 하는 거 알고 친추했더라고.

-으엑? 후배?

-헐. 어떻게 알았대요?

-맙소사! 우리 칼 형이 무려 학교 후배를 꼬드겨서 악마의 구렁텅이로!!

순식간에 로그가 우르르 올라갔다. 도대체가 이 미친 듯한 하이 텐션은 감당이 안 된다.

-악마의 구렁텅이는 또 무슨 헛소리냐!! 내가 카페에서 얘기하는 걸 들었대.

그렇게 논란 아닌 논란을 잠재우는가 싶었지만,

-형. 그 사람 여자에요?

-오오 여자!

“아이고오오…….”

깜빡 잊었다. 그가 있는 길드 ‘빌리지’는 물론이고 위드 리스 온라인 전체가 남자 투성이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한 번 떡밥이 던져지니 다들 사흘 굶은 물고기처럼 반응하기 시작했다.

-노노. 야 여기 맨날 꼬박꼬박 오는 애들치고 여자랑 썸 타는 애들 못 봤다.

-ㅋㅋㅋㅋㅋㅋㅋ 그건 맞는 말인데 ㅋㅋㅋㅋ

-아 메타스 횽 너무 슬프잖아요!! ㅋㅋㅋㅋㅋㅋ

-훗. 원래 현실은 잔인한 법이다 짜식들아.

-그래서 결론은 여자? 남자?

-남자다에 100만 골드 건다. 콜?

-오! 그럼 전 여자다에……

왁자지껄했다. 강희성은 동질감과 한심함을 동시에 느끼며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물 위에 돌을 튕기듯 말했다.

-메타스 형, 100만 골드 내놓으시죠! 여잡니다.

그 말이 전송된 순간, 길드 채팅에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이 찾아왔다. 강희성은 게임기 너머에서 벙쪄 있을 길드원들을 상상하며 피식 웃었다. 말이야 이렇게들 하지만 다들 순진한 20대 초중반의 남자들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길드 채팅은 물 밑으로 침몰……

-여자래!! 여자!!

-헐 여자래!!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으악 내 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도 안 돼!! 나도 없는 여자를 카르휘가!! 크흐흑!

-으아아아아 위드 리스 하는 여자라니!! 이건 꿈이야아아아아아아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어나서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가엾은 중생들의 절규가 채팅 로그를 요란하게 뒤덮어 갔다.

기실, 강희성 또한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여자애가 같은 게임 하는 거 알았다는 정도로 친하게 말을 걸고, 친구 추가까지 하다니. 으레 게임이 취미인 남자들이 그렇듯 여자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그였기에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는 광란으로 뒤덮여 가는 길드 채팅을 잠재우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뭐, 애인도 아닌데 그만들 하고 사냥이나 가자! 루닉스 가자며?

-크흑! 가진 자의 저 여유를 보라!

-……일퀘 깨기 싫지?

-아이고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헤헤헤, 어서 가시지요 칼느님.

저격수는 PVP에 상당히 불리한 직업군이었지만, 그만큼 사냥, 특히 대 보스전에서는 상당히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저격수가 참여하지 않으면 클리어 난이도가 확 올라가는 몇몇 던전이 존재했는데, 보상이 괜찮은데다 일일 퀘스트라 하루에 한 번은 꼭 가게 되는 90레벨 던전인 ‘루닉스 아레아’도 그러했다.

상황을 정리하고 같이 갈 사람을 몇 명 추려낸 강희성도 장비 점검을 시작했다. 수리는 어제 접속을 끊기 전에 미리 해 뒀으니 물약만 보충해서 출발하면 될 듯 싶었다.

이동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길드 채팅란에 또 한 마디가 올라왔다.

-형, 근데 그 여자 예뻐요?

강희성은 그 말에 멈칫하고 김예빈의 얼굴을 떠올렸다. 분명 갸름한 얼굴에 크고 빛나는 눈, 오똑한 코가 예쁜 외모긴 했지만 솔직하게 말했다가는 더 귀찮아질 것이리라.

-니보단 예쁘니 신경 끄시지?

그렇게 말하며 강희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같은 서버가 아닌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었다.


작가의말

 

초성체를 쓴 것은 실제 채팅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

가볍게 가볍게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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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2) +12 13.03.25 3,260 20 10쪽
17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7 13.03.23 3,711 17 11쪽
16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7) +9 13.03.22 3,580 17 13쪽
15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6) +11 13.03.21 3,552 23 10쪽
14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5) +10 13.03.20 3,544 13 9쪽
13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4) +6 13.03.19 3,583 15 10쪽
12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3) +13 13.03.18 3,630 19 13쪽
11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2) +8 13.03.16 3,756 17 11쪽
10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10 13.03.15 3,970 19 9쪽
9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4) +8 13.03.14 3,800 18 11쪽
8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3) +13 13.03.13 3,975 12 13쪽
7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2) +11 13.03.12 4,059 16 10쪽
6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8 13.03.11 4,042 13 12쪽
5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4) +5 13.03.09 4,218 13 12쪽
4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3) +8 13.03.08 4,189 14 8쪽
3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2) +12 13.03.07 4,562 18 7쪽
»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4 13.03.05 4,955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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