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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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0.10.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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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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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뜨랑제 (7) - 탈각 -1

DUMMY

1. 탈각 -1


아침햇살이 얼기설기 엮어놓은 여닫이 문의 엷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좁은 비트 안이 밝아지며 사물이 어슴프레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틈입한 햇살사이로 먼지가 휘날리며 춤을 추고 있다.


‘호-‘


비연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미 잠은 깨어있는 상태다. 가늘게 눈을 뜨고 천정을 바라본다. 아마 그녀의 오른쪽 곁에는 어깨가 닿을 듯 한 거리에 ‘그’가 누워있을 것이다. 참 난감하다. 전투복을 그대로 입고 침낭으로 기어들어갔더니 땀이 배었는지 움직일 때 마다 눅눅한 기분에 찜찜하다.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갈아입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비연은 지금 비트 한구석 침낭에 몸을 돌돌 말은 상태로 누워있다. 어제는 워낙 피곤 했던 탓에 뭔가 꺼려하고 걱정하기도 전에 그냥 골아 떨어졌던 것 같다. 이제 깨어나서 정신이 드니 난감한 심정이다.


“깨셨습니까?” 비연이 작게 물었다.


“…”


비연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의 침낭은 이미 비어있었다.



* * *



‘아-‘


대충 잠자리를 수습하고 머리를 대충 다듬어 모자 속으로 집어넣은 뒤 비트 밖으로 나온 비연이 작은 탄성을 터뜨렸다.


바깥은 이미 날이 밝아있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언제 해 놓았는지 꺼진 모닥불 잔열(殘熱) 위에 새총 모양의 양쪽 받침대가 놓여있고, 걸쳐진 막대 가운데에 반합이 걸려있다. 그 속에서 음식이 데워지고 있는 모양이다. 들여다보니 죽을 끓인 것 같다. 가져온 쌀과 분말스프, 건육포를 약간 넣어 한꺼번에 끓였다.


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쌀을 아끼려면 죽이야 말로 가장 적당한 음식이니…


그는 군용 러닝 하나만을 걸친 채, 부지런히 야전삽을 움직여 땅을 파 내려가고 있다. 바로 곁에 위치한 커다란 나무 둥지 밑이다. 아마도 다른 비트를 파고 있는 모양이다. 다가서서 보니 이번에는 제법 크게 만들고 있다.


비연은 그가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일하는데도 군인다운 절도가 있다. 움직일때 마다 잘 다듬어진 조각처럼 강건해 보이는 근육들이 꿈틀거린다. 그 살갗 위로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고, 그 땀이 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비연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기분이 묘하다. 왠지 안심이 된다. 이 묘한 공간에 떨어져 끔찍한 고독을 지워주는 고마운 존재.


“죄송합니다. 제가 늦잠을 잤습니다.”

비연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어- 잘 잤나?” 산이 고개를 들어 땀을 훔치며 반갑게 인사한다.


“비트를 다시 파고 계십니까?”

“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트가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더군. 어제는 급한 마음에 너무 전투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더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서 며칠 주둔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서 제대로 파야겠다고 생각했지. 그건 그렇고 가서 씻고 와라. 곧 식사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들만의 단촐한 아침식사를 가졌다.

아침식사인데도 제법 풍성하다. 전투식량 외에 어제 봐둔 열매도 어느새 따왔는지 식탁 위에 당당하게 올라와있다.


“김중위는 아침 식사를 하는 편인가?”

“사회에 있을 때는 걸렀는데, 군대에 입대한 이후로 가급적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지… 야전에서는 싫어도 항상 든든하게 먹어 두는 게 좋아. 왜 그런지 아나?”

“격한 훈련 때문에 열량 소모가 많아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냐…”

“예?”

“밖에 나와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병이 드는 거야. 병은 곧 전투력의 상실이고, 야전에서는 곧바로 죽음이지. 병은 뭔가 균형이 깨질 때 걸리는 거야. 잘 먹고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치고 병드는 경우는 거의 못 봤어.”


“…”


“든든하게 먹어둬. 다이어트 같은 시시껄렁한 걱정하지 말고…”

“예…”


“그런데… 혹시 여기서 몸이 이상해졌다든지, 뭔가 달라진 게 있나?”

“왜 몸이 이상하세요?”


“직접 볼래?”


산이 오른손으로 군용 수저를 집어 들었다. 텅스텐으로 된 두꺼운 수저다. 산은 수저의 손잡이 끝 부분을 남긴 채 손바닥으로 감아 쥐고 그 끝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밀었다.


“와! 대단하세요.”


비연이 탄성을 질렀다. 그 두꺼운 텅스텐 수저의 끝이 엄지손가락이 밀었던 방향 쪽으로 거의 90도 가까이 휘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이렇게까지 힘이 세지는 않았다는 거지. 어제 작업할 때는 이곳의 나무나 바위가 원래 가벼운가보다하고 단순하게 생각 했었는데, 막상 이렇게 익숙한 물건까지 이렇게 되는 걸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지?”


“그러고 보니, 저도 눈이 갑자기 좋아졌다고 느낍니다. 아주 심한 근시라서 렌즈를 쓰는데, 지금은 렌즈가 없었어도 이상하게 멀리까지 잘 보이거든요.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그뿐인가?”


“저 역시 힘이 세진 것 같다고 느낍니다. 총도 이상하게 가볍고, 군화를 신고 걷는 걸음도 이렇게 가볍다고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억력도 이상하게 좋아진 것 같고…”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

산이 비연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김중위가 어제 이야기한 대로 여기는 우리가 아는 세상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 같다. “


“…”


“오늘 새벽에 일어나 무엇을 했는지 아나?”

“??”


“밤하늘 별자리를 살폈지… 적어도 내가 아는 별자리는 없더군. 그리고 뭘 본 줄 아나?”


“??”


“세상에… 달이 두 개더라고. 우리가 익숙하게 보던 달보다 조금 큰 달하나, 그리고 그 반에 반 정도되는 깨진 달 하나… 이게 믿겨져?”


“세상에! 정말인가요?” 비연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일출 시간을 쟀어. 이 시계로 6시 3분 41초에 해가 올라오더군. 너도 기억해둬라. 내일은 몇 시에 해가 뜨는 지 확인 해 봐야겠어. 여기도 하루가 24시간인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겠습니다.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왜 없겠어?” 산이 빙긋 웃으며 일어섰다..


“따라와 봐. 재미있는 걸 보여줄께”


산은 비트의 오른쪽에 서있는 나무와 앞쪽의 나무 사이의 공간으로 비연을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어제 산이 넝쿨로 가늘게 엮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발목근처 높이로 이어 놓은 장치가 있었다. 일종의 알람 트랩이다. 누가 넘어오다 걸리면 비트 위로 나무가 넘어지게 되어 있었다.


비연은 기가 막혔다. 그리고 창피했다. 자신은 졸음에 무너져 멍청하게 잠을 청하던 그 사이에도 이 사내는 이토록 치밀하게 뭔가를 준비하고 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여기를 봐. 무엇처럼 보이지?”

산이 땅바닥을 가리키며 비연에게 물었다.

땅바닥에는 어제 뿌려놓았는지 모닥불 재가 쌓여있었다. 그런데…


“이건… 아이 발자국처럼 보이는데요?”


비연이 얼굴을 굳힌 채 말했다. 두려운 얼굴로 주변을 다시 둘러본다. 마치 산이 없어질까 두려운 듯 사내의 얼굴을 연신 쳐다보며…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다.


“ 그렇지? 손님이 다녀가셨지… 문제는 트랩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건데… 김중위! 이제 숨을 세 번만 천천히 쉬어볼까?”


“예?”

“그냥해 봐!”


비연은 숨을 깊게 세 번 쉬었다.


“이제, 이 현상에 대해 네가 생각 좀 해 줄래?”


비연이 굳은 표정으로 다시 발자국과 주변을 세밀하게 살폈다. 묘하게도 산의 여유로운 태도와 기묘한 숨쉬기 요청은 그녀의 놀람과 두려움을 순식간에 진압해버렸다.


“ 발자국이 깊지 않은 걸로 봐서 몸무게가 매우 가벼운 생물이군요. 이쪽에서는 비트를 밟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으니, 저 나무 쪽에서 이쪽으로 와야 하는데 이 트랩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결국…”


“결국?”


“나무를 타고 내려왔거나, 하늘에서 날아온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불빛을 보고 왔겠지?”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어쨌든 긴장할 일이 하나 더 생긴 셈이군. 뭔지는 모르겠지만 둘러보고 기척 없이 사라져 버렸으니, 겁이 많거나 신중하다고 봐야 겠고...”


산과 비연은 말을 멈춘 채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유도 모른 채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두 사람이다. 막상 확인에 들어가니 이토록 충격이 크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허탈하다. 아마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로를 확인 해 주고 있는 두 사람은 그 존재로도 자신의 처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쪼르륵-


비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세계, 사랑하는 가족, 친숙한 세계를 한꺼번에 강탈당한 삶이 이제야 충격에서 ‘슬픔’을 발라내고 있다.


‘후-‘


쭈그려 앉아있는 산의 코에서 하얀 담배 연기가 천천히 뿜어져 나온다. 그 연기는 산산이 흩어진채 이 이름도 모를 공간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왔으니, 갈 수 있는 방법도 있을거야… 그치?”


산이 중얼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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