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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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0.10.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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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2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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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뜨랑제 (10)- 탈각 -4

DUMMY

4. 탈각 -4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퍼붓듯 쏟아져 내리는 열대성 폭우다.


‘투투투-툭’


비트 천정부터 바닥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시끄럽다. 어두컴컴한 비트 안에는 두 사람이 벽에 기댄 채 어스름한 밖을 쳐다보며 각자의 상념에 잠겨있다. 비트 입구는 좌우 양쪽으로 두 개다. 입구 사이 가운데에는 구덩이를 파서 작은 모닥불을 화로처럼 피워놓았다. 두 사람은 양쪽으로 통로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새까만 빗줄기가 먹물처럼 쏟아지는 밖을 쳐다보고 있다.


산은 벌써 이 상태로 한 시간을 생사의 대적을 맞이하듯 밖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이게… 대체 뭐라고 부르는 시츄에이션이냐…”


산이 혼자 중얼거렸다. 길게 담배연기를 밖으로 내뿜으며, 한쪽 손으로는 아직도 배터리가 빠진 채, 꾿꾿하게 메시지신호가 반짝거리는 ‘골 때리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눈길은 여전히 흑암으로 번들거리는 밖을 쳐다보며…


비연은 무릎을 세워 팔로 감싸쥔채 고개만을 살짝 들어 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 뭔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머리 속이 엉클어져서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


“대체 나는 왜 여기에 있는거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끈끈한 거미줄같이 엉킨 시간이 흐른다.


“게임이라… ”


산이 다시 중얼거렸다. 어느새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질겅거리며 씹고 있다. 시선은 밖에 꽃아 놓은 채 고정되어 있고, 마음은 깊숙한 내면 속에 침잠한 상태로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중이다.


‘툭’


꽁초를 아무렇게나 밖으로 던져버렸다. 꽁초는 금새 폭우를 맞아가며 산산이 분해된다. 어둠 속에서 산의 눈빛은 맹수의 그것처럼 빛나고 있다.


“김중위…”


“…”


낮은 목소리였지만, 비연이 고개를 들어 산을 쳐다보고 있다. 그 눈 속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녀의 눈에는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가 눈물로 굴절된 망막을 통해 번진 모습으로 잡힌다.


“어떤 강아지 새끼가 무슨 빌어먹을 장난 짓거리를 하는 건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판단대로 가자. 방법을 찾아 보자구. 꼭 잡힌 벌레 취급 당하는 게 기분이 정말 더럽구만… 아주 엿같아….”


“…”


비연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뇌리에는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이 끊임없이 돌아가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데이터는 턱 없이 부족한데, 정신은 답을 내 놓으라고 보챈다.


비연은 다시 휴대전화의 폴더를 열었다.

어둠 속에서 LCD 백라이트의 측광이 얼굴에서 번진다. 갸름한 얼굴의 실루엣이 환하게 어둠을 밀어내면서 밝게 물들어간다.


“ 발신자 : 닐(Nil)

수신자 : 05-원, 김비연

임 무 : 알핀 1마리 사냥 (화면 참조)

호크 1마리 생포 (화면 참조)

보 상 : 가죽, 이빨, 기름, 깃털 외

징 벌 : 피(被) 사냥

방 법 : 자유선택

시 한 : 24시간

다 음 : 내일 저녁 6시 “


산 역시 다시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발신자 : 널 (Nul)

수신자 : 04-원, 강산

임 무 : 알곤 2마리 이상 사냥 (화면 참조)

보 상 : 가죽, 이빨, 기름 외

징 벌 : 피(被) 사냥

방 법 : 자유선택

시 한 : 24시간

다 음 : 내일 저녁 6시 “



‘다음’ 버튼을 눌렀다. 친절하게도 알곤이라는 동물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것도 동영상이다. 놈은 마치 공룡시대 사냥꾼인 오비랍토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온 유명한 놈이다. 지금 공룡시대로 와 있는가?


그림 옆에는 사냥에 필요한 정보가 떴다.


“친절하게도 한글까지 쓰시다니… 고맙기도 하셔라. 세종대왕께서 좋아하시겠군….18…”

산이 중얼거렸다. 피 냄새가 나는 듯한 비릿한 어조다.


‘- 신장길이: 4미터

- 체고 : 2미터

- 체중 :1톤

- 앞발 길이 : 1.5 미터

- 수직 도약능력 : 3미터

- 수평 도약능력 : 7미터’


“이런 괴물을 두 마리 잡아라 이거지… 입 닥치고 이유조차 묻지 말고… 목숨 걸고…크-크- 무슨 온라인 게임도 아니고… 아 씨바... 장난하냐?”


‘탁’


휴대전화의 폴더를 덮고 산이 작게 중얼거렸다.


비연은 침중한 눈빛으로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대체 누가 보내는 것일까? 발신자 이름이 Nil이고 Nul이라니… 어떻게 메시징이 가능한거지? 근처에 이동전화 기지국이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전원이 없는데도 동작한다는 게 말이 돼? 그런데 지금 되고 있잖아…… Active RFID와 같은 원리인가? 그리고 대체 뭐냐… 이 징그러운 짐승들은… 내일까지 이것들을 잡아서 가죽을 벗기라고?‘


물론 발신자와 통화를 시도했었다. 결과는? 끔찍하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비연은 무심코 다시 발신자 버튼을 만지다가 흠칫 떨며 손을 꼭 감아 쥐었다. 몸서리를 친다. 아까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실제로 다가갔었다. 진짜로 ‘고문’을 당했다는 말이다.


비연이 통화 버튼을 눌렀던 그 순간부터 어떤 '놈'으로 부터 고문은 시작되었다.


‘크-큭-칵-칵-키-키-키-끽-끽’


발신버튼을 누르는 순간 머리 속에서 소리가 울렸다. 그건 진짜 지옥에서 올라온 소리였다.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마구 긁어내는 소리가 백배 정도는 키워진 것 같은 소리다. 그 속에는 빽빽한 비명소리, 차갑고도 으스스한 고함소리가 알맞게 섞여 있었다. 그리고 녹슨 공간을 놋그릇이 긁어가며 텅텅 튕겨가는 듯한 허망한 울림이 뇌리를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요컨대, 단 10초도 맨 정신으로 견디기 어려운 소리였다. 산과 비연은 정말 미친 개처럼 비트 안을 미친 듯이 굴렀다. 딱 1분 동안 울렸는데도 입가에 침이 흘러 거품이 될 정도로 호되게 당했다. 정확하게 1분 뒤 소리는 그쳤다.


손톱으로 바닥을 얼마나 긁었는지 몇 개는 부서져 있었고, 생채기가 손톱 밑으로 파고 들어와 피가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망연한 상태로 두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우리… 살아남아야죠.”


비연이 고개를 돌리며 비장한 눈으로 산을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이 빌어먹을 상태로 그냥 꼴랑 죽을 수는 없잖아? 설령 죽을 때 죽더라도 어떤 개새낀지, 왜 우리가 이 골때리는 세상으로 넘어 왔는지 알고나 죽자고… 싸나이 강산, 이대로는 못 죽는다. 억울해서… 쪽팔려서… 아! 씨바- 생각하니 다시 열 받네…”


산이 밴드를 싸맨 손가락을 만지며 대답했다.


“어쨌든 이 상황은 실제 상황인 것 같다. 내일 보면 알겠지. 이제 놈이 원하는 전투준비를 하자고.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내일 싸우자는데, 군인이 못 싸우겠나? 서로 사냥하는 게임이라고 했으니 걸 맞는 준비를 해 둬야지. 일단 장비부터 챙기고 작전을 짜자. ”


“알겠습니다.”


둘은 일어서서 각자의 군장과 장비를 챙겼다. 뭔지는 모르지만 만약 메시지 대로 진짜 일이 벌어진다면 아마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믿지 않을 이유가 넘쳤지만, 믿어야 할 이유도 그만큼 많았다. 이를 악물고 준비해야 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이건 게임이다. 생존게임…’


산은 자신의 군장에서 다시 K-1 소총과 탄창을 점검했다. 권총집을 오른쪽에 챙겼다. 비연에게 줄까도 생각했지만, 권총 사격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권총은 오히려 짐이다. 우연히 맞추기도 힘들다. 이어 혁대를 끌러 가죽을 위 아래로 누벼가며 대검의 날을 갈았다. 사냥 상대를 고려하여, 낙하산 용 헬멧도 꺼내 놓았다. 레이밴 선글라스도 챙겨뒀다. 선글라스는 낙하산 부대 장교의 로망이다. 순전히 베레모에 코디하여 사진 찍는 위한 용도로 사둔 거지만, 진짜 눈의 보호를 위한 원래 목적에 충실하게 쓰일 줄은 정말 몰랐다.


비연은 K-1 소총과 대검을 챙겼다. 자신이 사냥해야 할 것들은 비교적 작은 체구에 민첩한 것들이다. 하나는 알핀이라는 놈으로 타조 비슷하게 생긴 파충류인 것 같고, 다른 하나는 호크라는 독수리 크기의 새인 것 같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다. 이제 미션을 분석하고, 작전을 짜는 일이 남았다.


“이제 사냥감을 어찌 잡아야 할지 고민해 보도록 하죠.”

비연의 목소리가 비트 안에서 울렸다.


산이 고개를 들어 비연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곳에는 이미 전사의 눈빛으로 바뀐, 아주 다부지고, 지혜로우며... 대단히 아름다운 군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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