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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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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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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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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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쪽

해의 그림자 106

DUMMY

"내의원 침의 김유현과 김만직은 자전의 숙환을 치료하여 과인의 우환을 덜어주었다. 그 공로를 인정하여 김유현은 종4품 고양군수로, 김만직은 종5품 양천현령에 명한다."


편전에서 내려진 뜻밖의 교지에 신료들은 멍하니 서로를 멀뚱거렸다. 갑자기 헛것이 들리는 모양이었다. 현종 때도 간혹 의관을 수령에 명하는 일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왕이 즉위 3년만에 느닷없이 의관 김유현을 수령에 명하니 그저 날벼락 같았다.


"전하, 두 의원은 이조에서 삼망(3인의 후보를 뽑아올리는 명부)에 올린 인물이 아니옵니다. 비록 약을 의논한 작은 공로가 있긴 하오나, 어찌 과분한 목민牧民의 소임을 내리시어 보답하려 하시옵니까?"

"목민? 목민이란 글자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배우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업을 가진 의관들인 만큼 목민의 뜻을 펼치기엔 더 합당할지도 모르지."

"하오나 전하...무지한 저들이 어찌 율령律令(법률과 행정)의 일을 알겠나이까."


권대운의 눈짓을 받은 사간들이 황급히 아뢰었다. 아무래도 달갑지 않았다. 바늘구멍 같은 벼슬자리를, 문관도 아닌 의관들이 넘보다니. 서인들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개나 소나 벼슬을 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먹물도 들어있지 않은 의관들이 한낱 사람 고치는 재주로 왕의 환심을 사서 수령을 맡다니. 그들은 부글부글 끓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아뢰고 또 아뢰었다. 하지만 숙종은 시큰둥히 되물었다.


"문관들은 처음부터 미리 율령을 배워서 수령노릇을 하던가?"

"네? 그건..."


숙종은 움찔해서 잠시 할 말을 잃은 신료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대면했다.


"과거시험으로 율령을 보던가? 송사가 생기면 수령들이 뭘 알아서 처결을 하여 중앙에 올리던가? 그저 아전들이 조사한 보고를 받아 구색만 갖춘다던데. 그럴 바엔 차라리 의관이 수령을 맡아서 고을을 다스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율령은 몰라도 인명 귀한 줄은 알 것이니."

"..."


말문이 막히고도 신료들은 계속해서 반대했다.


"전하, 감당하기 힘든 말씀 거두어주시옵소서."

"천한 중인에게 수령을 맡기심은 부당하시옵니다."

"문자도 모르는 자들이옵니다. 거두어주시옵소서."


숙종은 성가신 얼굴로 귀밑을 문질렀다. 어차피 과거로 뽑는 인재들은 고작 유학과 예학을 알고, 문학을 아는 이들이었다. 3년간 겪어보니 굳이 양반이나 문관이 아니어도, 의관이 고을을 다스리는 정도는 무리가 아닐 것도 같았다. 살인사건이 나면, 저들이 부검을 직접하는 것도 아니고, 현장을 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전들이 보고하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따라서 읊거나 적거나 하는 정도였다. 의술을 아는 자들이 무지해봤자 얼마나 무지하고, 천해봤자 얼마나 천할까.


하지만 신료들의 반대는 몇날며칠 계속되었다. 그저 숙종이 편전 어좌에 앉기만 하면 득달같이 쌓이는 상소에 간언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저들은 숙종 자신을 너무도 모른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것이라면, 져줄 자신도 아니었다. 오히려 저들이 지쳐떨어지길 기다릴 뿐.


"아무래도 전하께서 의관들에게 너무 후한 것 같으이."

"왕실의 안위를 맡겨야 하니 어쩌겠나."

"그래도 그렇지, 중인을 수령에 앉히다뇨. 전하께서 우리 사대부를 너무 우습게 보시는 게지요."


불만 어린 음색으로 신료들끼리 수근대어봤자 결판이 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을 빤히 쳐다보는 왕의 눈길에 어깨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남인들은 숙종의 눈길에서, 자신들의 무능에 대한 의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나마 왕이 인정하는 이가 허적인데, 그 허적은 처경 사건 이후로 반년이 넘도록 걸핏하면 병을 핑계대고 사직을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두문불출하는 참이었다.


왕이 이미 교지를 내린 줄도 모르고, 김유현은 밤새 인달방에서 허적 부자의 몸뚱아리와 씨름하는 참이었다. 최성임과 함께 교대로 허적의 집을 찾아 병을 치료하다 보니 애꿎게도 그 아들놈 허견까지 제 아비 옆에 떡하니 드러누워선 두통이 심하니 봐달라, 요통이 심하니 봐달라..보채는 바람에 마지못해 족삼리혈에 침을, 허리에 뜸을 떠주고 침구를 정리하는 참이었다.


무려 영의정의 아들이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니 김유현으로선 출세의 동아줄을 잡은 셈이었다. 하지만 허견이란 놈이 워낙 포악해서 조금만 수틀리면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일수였다. 게다가 수시로 궐내 사정을 탐문하기까지 하니 괴로웠다.


"오늘은 궐내 두루 평안합니까?"

"뭐..그냥저냥.."

"그...공주애기씨는 강녕하신지..."


좋은 얼굴로 묻다가도 언제 돌변해서 자신에게 주먹질에 발길질을 해댈 지 모르는 위인이었다. 자신보다 나이도 몇살 어리고, 품계도 낮은데도, 영의정의 서자라는 신분 하나 믿고 폭력을 휘두르니 대책이 없었다. 김유현은 움찔해서 돌아앉아서는 계속해서 침구를 정리했다.


"..."

"거 말 좀 해보시라니깐. 강녕하시냐고요."


허견의 음성이 험악해지자, 김유현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강녕하시지요."

"허면 중전마마께오서도 강녕하신지..."

"그건 왜..."

"듣자 하니 부중침 사건이라던가..."


허견의 입에서 나온 부중침 세글자에 김유현은 침을 침통에 꽂다 말고 손가락이 꿈틀했다. 궐내의 사정이 어쩌다 허견에게 전해졌을까.


"부중침 사건은 또 어찌 알고..."

"벌써 궐안에서 궁녀들이 입방아를 찧는다지요. 주상께서 한낮에 부맥, 중맥, 침맥...이러면서 좌우를 물리치고 중궁전과 합방을 하였다더라...주상께서 중전마마만 쳐다보신다더라...뭐 이런 얘기..."

"..."

"그 부중침 기술 좀 나한테두 가르쳐주시우. 우리 마누라한테 한번 써보게."

"..."


김유현은 두눈을 정신없이 깜빡였다. 부중침 사건이 궐담을 넘어 세간에 전해지다니. 왕과 왕비의 금슬이 너무 좋아도 탈이었다. 이토록 민망하고 황송한 음담패설이 나돌다간 괜히 자신까지 엮여 단매에 맞아죽을 노릇인 것을.


"부, 부중침이라니! 누, 누가 그런 걸 떠들고 다닌단 말이오!"

"글쎄...술자리에서 나와서 누가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최어의가 아니면 김어의겠지요."

"난 아니오!"

"최어의도 자기는 아니라던데?"

"..."


능글맞게 떠보는 허견의 음성에 김유현은 입안이 바짝 타들어갔다. 기억 자체가 없다. 여기저기서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긴 하였으니, 어의들끼리 술 마실 때였는지, 아니면 허적의 병을 치료하고 돌아가는 길에 목이나 축이고 가라고 허견이 건네주는 술을 한잔두잔 넙죽넙죽 얻어마실 때였는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았다. 자신이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아니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대체 어쩌다 허적의 집에 왕의 심부름을 와서 코가 꿰인 건지.


"혹시나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주상께서 우리 아버지 상세를 물으시면 여전히 중풍이 심해서 꼼짝도 못하는 겁니다."


김유현은 허견이 우격다짐처럼 하는 말에 입맛이 썼다. 허적이 처경의 일로 쓰러진 지가 벌써 반년도 훌쩍 넘었다. 처경의 일로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며 몸져 눕더니만, 무사히 처경의 옥사를 넘기고선 또 진주사陳奏使라 하여 청에 주청할 일이 있을 때 보내는 사신으로 뽑히자마자, 중풍이 왔다면서 몸져 누워버렸다. 꾀병도 하루이틀이지, 처음에는 왕이 가장 믿던 백광현을 보내던 왕도 이제는 김만직, 최성임, 김유현 자신 순으로 어의를 바꾸어버렸다. 이미 왕도 허적이 칭병을 한다는 걸 눈치챈지도 반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저리 속보이는 연기를 하는 건지.


"거 진주사들이 돌아올 때도 되었는데...아픈 척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닌가?"

"어허! 우리 아버지는 진주사로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중풍 후유증이 도지신 거래도! 그리고 어차피 원래 복창군이 가기로 되어 있던 것을 우리 아버지로 바꾸니깐 청나라도 그 시비를 걸었던 거고! 그러니까 원래대로 복창군이 간 거잖아!"


허견이 발끈하여 두눈을 부랴리며 두손에 주먹을 쥐는 모습에 김유현은 움찔하여 주눅이 들고 말았다.


"아, 알았소."

"알긴 뭘 알아. 얼굴에 딱 써있는데. 험험. 어디까지나 우리 아버진 처경이놈 때문에 충격 잡수셔서 중풍이 오신 거고, 지금은 그 후유증으로 아픈 거요. 그게 사실이니, 전하께서 혹여 물어보시면 사실대로 말하시오."

"..."

"그리고 앞으로 종종 부탁 좀 합시다. 이 아우 체끼가 있을 땐 침 좀 놔주시고. 궐안에 재미난 얘기가 있으면 좀 물어다 주시고."

"..."


김유현은 피곤이 여러겹 내려앉은 눈두덩을 문지르며 인달방 허적의 집을 나섰다. 정말이지 진절머리 나서 이제는 인달방으로는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았다. 서인들이 김만직과 줄을 대니, 남인들은 어거지로 김유현 자신에게 줄을 댔다. 아니, 코를 꿰어버렸다. 치사하고 더러웠다. 그냥 편안하고 조용히 살고 싶었다. 한 석달만이라도 도성을 떠나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관직에, 그것도 내의원에 매인 몸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 정말로 병가라도 내서 확 도망가야 하나..."


그렇게 김유현은 느른하게 투덜대며 또 터덜대며 아침햇볕을 쬐며 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궐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신료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았다. 심지어는 입에서 나오는 말도 거칠었다.


"어디 잡놈이!"


분명히 잡놈이라 했다. 김유현은 그 두마디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란 것을 직감했다. 존귀하신 양반네들 눈에는 의관이나 역관, 일관 같은 이들은 그저 하나같이 '잡놈'일 뿐이었다. 세상에 오직 자신들만 귀한 줄 아는 이들이었다. 사실 문관들 머리에 든 거나, 의관들 머리에 든 거나 시꺼멓긴 마찬가지인데, 누구는 귀하고 누구는 천하고, 누구는 깨끗하고 누구는 잡스럽고. 하지만 욱하는 마음에 대들고 싶어도 신분의 벽이란 품계의 벽보다 단단한 법이어서, 이내 다른 관리들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들 터였다. 사실, 김유현은 술김에 백광현한테 이렇게 떠들어댄 부린 적도 있었다.


- 저놈들도 한번 바꿔서 일 해보라지! 우리 의관들은 지금 당장 고을 수령을 하라 해도 저놈들보다 잘할 수 있거덩! 지들이 뭘 안다고 수령을 해! 살인사건 나면 부검은 커녕 현장조사도 못하고선 그저 오작인과 아전들이 써다바치는 문서만 대충 따라써서 중앙에 올려보내는 따라지들이!


속으로 치를 떨면서도 겉으로는 헤실헤실 눈웃음을 치며 지나치려는 김유현에게 마침 지나던 청단령의 관리 하나가 비아냥거렸다.


"참으로 좋으시겠소이다.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을 수령자릴 꿰어차셨으니."

"뭐요?"

"저런, 못 들으셨소? 벌써 그 일로 조정이 발칵 뒤집혔는데. 축하하오. 뭐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서도."

"..."


뜻모를 말을 건네고 거친 걸음으로 지나가는 주서의 뒷모습에 김유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마. 분명히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었는데도 모르겠다. 수령이라니. 김유현은 내의원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당장 백광현을 만나야 했다.


"축하하네. 김침의. 자네가 고양군수가 되었으이."


내의원 침의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동료 침의들이 김유현을 보고 움찔하더니 묘한 웃음으로 김유현을 맞았다. 방금 전까지 김유현의 이름이 화제거리였는지, 일제히 다른 침의들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뼉까지 치며 맞이했다.


"축하하이."

"감축드립니다."

"한턱 내셔야지요, 고양군수 나으리."

"..."


김유현은 귀를 의심하며 백광현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렸다. 구석에서 백광현이 어울리지 않게 표지가 한자로 된 지도책을 읽어보다 김유현을 발견하곤 슬그머니 책속에 얼굴을 묻는 참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

"백영감님!"

"응? 나 불렀는가?"

"그럼 여기에 백씨성을 가진 영감님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히히...축하하이."


눈가와 콧잔등에 온통 주름이 잡히도록 어설프게 웃는 백광현을 보고 김유현의 눈동자에선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자신보다 일곱살이나 많은 백광현은 마흔을 넘어서더니 근래에는 눈가가 더욱 주름이 깊어졌다. 평소엔 호형호제하면서도 이럴 때는 참 대책없이 늙어보였다. 그래도 한결 어른스럽고 듬직스러운 느낌이 싫진 않았다.


처음에 허적과 허견부자에게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자신에게 쓴 충고도 거침없이 할 때는 참으로 밉살스러웠는데, 이제 보니 다 자신을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내가 뭐 한게 있나. 잘 다녀오시게."


백광현이 김유현의 어깨를 부드럽게 툭툭 치며 감싸안았다. 내의원 의관들, 특히 침의청 의관들은 오직 앞만 보고 외길인생만 걸어갈 수는 없었다. 백광현 자신만 해도 죽은 백헌 이경석의 천거로 침의청에 들어왔다. 저마다 누군가의 천거로 침의청에 들어와서 또다른 누군가와 인연을 맺어가며, 그렇게 왕족과 관료의 후원을 등에 입고 의관생활을 하다보니, 이래저래 휘둘리거나 할 때도 많았다. 마침 왕이 의관들과 관리들의 사이를 좀 떨어뜨려놓을 겸, 또한 중인들도 문관들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할 겸, 의관들도 지방수령에 앉힐 생각을 하였기에 우연히 맞아떨어진 일이었다.


"자자, 어디 고양이 어디에 있는지나 한번 볼까?"


백광현은 자신이 보던 지도책을 떡하니 서탁 위에 펼쳐두었다. 편찬한지 얼마되지 않아 먹물냄새와 안료냄새가 코끝을 기분좋게 찔렀다. 백광현이 경기도京畿道 삼목십부三牧十府라고 노란 안료로 표시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어 확인하고는 고양의 위치를 찾아보며 그들은 싱글벙글 웃음지었다.



"전하, 의관 김유현과 김만직을 동반인 수령직에 제수하심은 합당치 못하시옵니다."

"삼망에도 없는 인물을 전하의 중비中批(왕이 특별히 임명하는 것)로 수령에 앉히심은, 조정의 체계를 어지럽히는 처사이시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숙종과 신료들의 신경전은 몇날며칠동안 계속 이어졌다. 신료들은 동반東班(문관)의 영역을 자신들이 천류 내지는 잡류라고 치부하는 의관들이 침범한 것을 용납하질 못하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간언하는데도 왕은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숙종은 미간을 찡그린 채로 눈길을 돌려 문쪽을 쳐다보았다. 바둑판처럼 격자로 짜여진 문창살에 팽팽하게 바른 문창지가 바람결엔지 미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진주사들이 당도할 때가 되었는데."

"예?"


숙종이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권대운은 두눈을 깜빡였다. 지금 자신들은 진지하고 심각하게 수령은 동반의 영역임을 설파하는 참이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인가를 알 수가 없어 엎드린 채로 슬그머니 왕의 눈치를 살피니, 뜻밖에도 왕은 차분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여러산성을 수축한 것이 청을 침략하기 위함이 아니라, 만에 하나 청국의 반란군이 우리를 침략할 때에 대비하기 위함이란 것을, 진주사들이 잘 해명하고 돌아오는 길이니 내 그들에게 무슨 상을 줘야 할지 고민하는 참이오."

"..."


권대운이 어쩐지 가슴속이 뜨끔하여 어깨를 움츠렸다. 진주사는 복창군 이정이 대표가 되어 사신단을 꾸렸는데, 그 일행은 남인들의 자금맥인 장현은 물론, 권대운 자신의 사촌동생 권대제까지 끼여 있었다. 그 진주사들에게 상을 줘야 한다니까 괜히 긴장이 되는 참이었다.


마침 왕이 진주사 석자를 언급하고 나니 느낌 탓인지 바닥이 은은하게 진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신단이 한번 떠날 때는 최소 4백명에서 6백명까지 대인원이 꾸려지다 보니, 말과 수레도 많이 동원되어 한번 오고 갈 때마다 거리가 진동했다. 그런데 벌써 그 진동을 느끼다니, 확실히 왕이 성격이 많이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서, 진주사로 갔던 복창군 이정과 권대제, 장현 등이 편전에 당도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진주사였다. 연말에 동지사를 보냈더니 청국에서 동지사 일행의 짐을 수색하여 지도를 찾아내곤 온갖 트집을 잡았었다. 북한산성, 황룡산성, 대흥산성 등은 왜 수축한 것이냐, 지도는 왜 또 제작한 것이냐 등등..그래서 청국의 의심을 풀기 위해 부랴부랴 진주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원래는 복창군이 정사로 정해졌었다가 영의정 허적으로 바꾼 일이 바로 청국 내부로 새어나가, 청국이 더욱 험악하게 굴었다. 왕자가 오기로 해놓고선 재상으로 바꾼 연유가 무엇이냐, 자기들이 반란 때문에 내정이 어려워지니 우습게 여긴 것이냐..어떻게 내부의 일이 속속들이 청국으로 흘러들어가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마침 허적마저 중풍의 후유증을 자처하고 몸져누운 덕분에 복창군이 원래대로 사신단을 이끌고 청에 가야 했다. 그중 워낙 청에 인맥이 넓고 두터운 장현이 청국의 실력자를 겨우 구슬려서 청국과 화해하고 돌아왔다.


"반란군 오삼계는 현재 장사부에 있고, 청국 조정도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요주 등지를 막고 지키고 있는데,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하옵니다. 북경은 백성들이 아무런 동요가 없사오나, 역관 장현이 빼돌린 장계들을 보니 각 관청마다 재정이 심히 열악하옵니다. 또한 듣건대 청나라 사람들이 모두 남쪽 반란군을 진압하느라 도성을 비워서, 한나라 사람들만 남아 지키고 있다 하옵니다. 나라 안이 텅텅 비어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복창군 이정이 아뢰는 말이었다. 청국이 중앙이 텅텅 비었다...지금이 바로 청국을 칠 때라는 것을 돌려 말하는 참이었다. 정말일까. 숙종 자신도 청국을 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을지문덕의 제사를 중요하게 취급할 정도로, 숙종도 고구려 옛땅을 수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나라 안이 텅텅 비었다는 말이 어쩐지 나방을 유혹하는 불꽃의 손짓처럼 느껴졌다. 꼿꼿이 앉아있던 숙종의 등줄기가 꿈틀했다. 그러자 엎드려서 용안을 차마 마주하지 못한 채로 왕의 손끝, 발끝을 예의주시하던 권대재가 설명을 보태었다.


"예 전하. 청국의 기강은 그저 무뢰한 산도적들과 똑같았습니다. 황제는 호위들을 거느리고 태액지에서 함께 목욕하고 수영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합니다. 또한 주색에 빠져서 정사를 팽개치고 말이나 타고 다니면서 유람을 다니므로, 사람들은 누가 황제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아무도 황제의 잘못을 간하는 자가 없어서, 조정도 기강이 문란하기 짝이 없다 합니다. 황제 또한 청나라 글만 알 뿐 문자를 읽을 줄을 몰라서 모든 문서와 문건들을 등한시하여, 무슨 일인지 살피지도 않는다고 하옵니다. 이런데 어떻게 오랫동안 천하를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남방의 사정은 모르긴 해도, 저들 청나라가 오래가진 못할 것입니다."


잠시 흔들렸던 숙종의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 재정이 부실하다는 복창군의 말은 잠시나마 숙종의 가슴 속에 웅크린 북벌의지를 자극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권대재의 말은 오히려 그 북벌의지를 짓누르고, 숙종의 온몸에 휘도는 핏줄들을 차갑게 식혀버렸다.


청황제, 현엽玄曄(강희제)이 문자를 모른다고? 문서들을 거들떠도 안본다고?


숙종의 머릿속은 이내 진주사로 복창군 이정에서 영의정 허적으로 바뀐 일이며, 성곽들을 수축한 일들, 심지어는 지도를 제작한 일들까지 낱낱이 청국 조정으로 새어나간 일이 떠올랐다. 만약 동지사 일행에게서 지도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누가 몰래 청국 조정에 바친 것이라면, 청국에서 빼돌린 장계 자체가 가짜라면, 또한 청황제가 문자를 모르고 문서를 도외시한다는 보고마저 가짜라면...


숙종의 눈길이 복창군과 권대재의 어깨너머로, 그들 뒤에 말없이 엎드린 장현의 등줄기에 못박혔다. 장현은 보나마나 복창군과 한패였다. 아무리 자신이 궐안에 틀어박혀 바깥세상 돌아가는 내막을 모른다고 해도, 그정도는 잘 알았다. 장현이 남인들의 자금줄이라는 것을. 게다가 청국 사정에 제일 밝아 매번 청나라로 사행을 다녀오는 인물이니만큼, 저 장현을 틀어쥐면 남인들의 검은 속내도 좀더 투명하게 엿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장현을 끌어들이기란 녹록치가 않았다.


"청황제가 문자를 모른다는 것이 확실한가?"

"예? 무, 물론이옵니다. 역관들이 탐지한 바로는 청황제가 너무도 무지하고 무도하여 청국 관료들이 황제는 안중에도 없다고 하옵니다. 또한 여기...역관 장현이 빼돌린 청국 기밀문서이옵니다."


권대재는 갑작스런 숙종의 물음에 움찔 놀라 고개를 들었다가는 이내 조아리며 답하였다. 복창군이 얼른 뒤의 서장관에게 손짓했다. 숙종은 서장관이 도승지에게 건넨 청국 지방장계 하나를 살피고는 눈길을 들어, 다시금 장현을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그래, 수고들 많았다. 이만들 물러가서 여독을 풀라. 또한 청국의 불신을 미봉한 공으로 진주사 전원 가자加資(품계를 올려줌)토록 하라. 또한 특별히 장현은 2품계를 더하라."

"예? 그리 되면 저 장현은..."


권대운이 흠칫 놀라서 등뒤의 장현을 쳐다보았다. 장현도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다가 권대운과 눈길이 마주쳤다.


"전하, 저 장현은 1품계만 올려도 종1품 숭록대부이옵니다. 문관도 아닌 역관으로선 이미 종1품이 한계라 더는 올릴 수가 없사옵니다."

"허면 장현의 아들을 대신 품계를 올려주라."

"전하, 이는..."


산너머 산이었다. 의관 김유현과 김만직을 문관에 앉히는 일을 천부당만부당이라고 반대했더니, 왕은 이제 역관 장현을 종1품 숭록대부에 앉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 아들까지 품계를 더하라 명하였다. 권대운은 자신의 사촌동생을 같이 물고 늘어져서라도 장현을 주저앉혀야 했다. 아무리 자신들 남인의 자금줄이라 해도, 천한 중인이 너무 높은 나무에 오르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전하, 공도 없는 자들에게 가자하는 것은 상벌을 신중하게 하는 도리가 아니옵니다. 권대재는 물론 장현의 아들에게 내리신 가자의 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거두어주시옵소서!"

"쿨럭! 쿨럭! 과인이 몸이 미령하니 이만 조회를 파하노라."


숙종은 마른 기침을 해대면서 힘겹게 어좌에서 일어섰다.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장현을 수중에 넣어야 한다. 그가 빼돌린 문서의 진위를 파악해야 한다. 남인들이 주장하는 북벌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확실히 나랏일이란 무엇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일개 의관 한둘을 수령에 앉히는 것조차도, 공을 세운 역관을 상을 주는 것조차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럴 때는 그저 자신의 비에게로 돌아가서 그 안온한 살내음에 파묻혀서 자신의 가랑거리는 숨결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최석정을 비롯해서 복창군 일행이 살며시 운을 띄운 북벌의 일을 논해야 했다. 정말로 북벌이 가능하긴 한 건지, 이상하게도 뒷골이 당기는 듯한 이 불안의 실체도 확인해야 했다. 그는 한질이 심해 백광현을 불러오라 두광에게 이르면서 의미심장하게 걱정 운운했다.


"과인이 기침이 심하여 걱정이 크다고 일러라."

"예?"


얼핏 걱정이란 말이 꺽정으로 들렸다. 두광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걱정? 꺽정? 그 문맥을 되짚어보던 두광은 눈밑이 경련하며 입맛을 쓰게 다셨다. 왕이 어의를 부를 때면 곧잘 사관이나 승지가 배석한다. 지금 왕은 은밀하게 꺽정이 최석정을 배석시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거짓보고일 수도 있습니다."


백광현과 함께 불려온 최석정 또한 곧이 곧대로 믿지 못했다. 청국이 내란으로 재정이 궁핍해진 것까지는 믿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청황제가 주지육림에 빠져서 문건조차 살피지 않고 정사를 손놓았다니. 아예 문자조차 모른다니, 아무래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얘기였다. 지금 복창군 일파는 왕을 안심시켜 전쟁을 부추기려는 것 같았다.


"거짓보고?"

"예 전하. 우리 조선이 해마다 청에 사신단을 보낼 때면 일관들도 더러 보내어 역법기술을 몰래 배워오게 합니다. 관상감 송영감이 얼핏 신에게 해준 얘기로는 청황제는 엄청난 책벌레라 했습니다. 심지어는 환관 양광선과 선교사 탕약망(아담샬)에게 직접 역법과 산술을 배운데다 흠천감 남회인(페르비스트)에게 기하와 회회어를 배우는 중이라 합니다."

"하!"


숙종은 말문이 턱 막혔다. 주지육림에 빠져서는 온천이나 다니면서 놀기 바쁘다던 강희제가, 실제로는 역법과 산술, 기하를 배울 정도로 엄청난 책벌레라고? 만주어 밖에 모르고 한자도 모르는 그 강희제가 실상은 회회어까지 습득하는 중이라고?


"단순히 청국에 대한 보복의지로 그러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지는 차근차근 시간을 두고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절대 내색하셔서는 아니되옵니다."

"잘 알았소."


숙종은 백광현에게 침을 맞다 말고 주먹을 불끈쥐며 답하다간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 바늘끝이 유난히도 팔다리의 혈맥을 찌르는 고통에 놀라 인상을 썼다. 백광현이 화들짝 놀랐다가는 이내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전하께선 국정능력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쩔 땐 너무 예민해서 일을 틀어버리시고, 또 어쩔 땐 너무 명민해서 끈기가 부족하시니...게다가 조회를 파한 다음엔 측근만 따로 불러서 총애하시고...게다가 수령을 신중하게 가리라고 거듭거듭 전조를 신칙해 놓고도 중비로 특별히 제수하기까지 하니..이는 임금의 덕이 닦아지느냐 마느냐의 일인데, 참으로 성의가 점점 게을러지십니다."


빈청에서 신료들이 머리를 맞대고 상소문을 미리 꾸미는 참이었다. 오정창이 붓을 들고 써내려가는 가운데 그 좌우로 바짝 붙어서서 지켜보던 권대운이 핀잔을 주었다.


"이보게. 그리 직설적으로 쓰면 어떡하나. 좀더 공손하게, 완곡하게 써야할 것 아닌가."


신하된 도리로 감히 왕에게 국정능력 운운하는 것은 크나큰 결례였다. 심지어는 대역죄로도 직결될 수 있을 만큼 민감한 발언이었다. 왕의 체모를 최대한 살리면서 간언을 올려야 했다.


그렇게 남인들이 상소문을 궁리하는 마당에, 홍우원과 이원정이 웬 책들을 한더미를 품에 안아들고 들어섰다. 무거운 서책들을 직접 안아들고 오느라 고생하여 낯빛이 좋지 않은 건지 홍우원과 이원정은 낯빛이 유독 검은데다 안면도 온통 일그러져 있었다.


"웬 책인가?"


권대운이 묻는 말에 홍우원과 이원정은 벌레씹은 얼굴로 서탁 위에 열한권의 책들을 아무렇게나 올려두었다. 그 바람에 책들이 와르르 무너져서 신료들의 발치로까지 나뒹굴었다. 오정창이 붓을 벼루위에 내려두고 발밑의 책을 집어드니, 겉표지엔 송강별집 권칠이라 적혀 있었다.


"송강별집? 이건 정철의 작품집인 모양인데? 새로 발간했나 보지?"

"보면 모르십니까? 저 송시열이가 귀양지인 장기에서 팔자좋게 제자들을 규합해서 편찬한 송강의 유고집입니다. 금방 발간해서 먹물 냄새가 폴폴 나지요."


홍우원의 말에 남인들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송시열?"

"그 노친네가 귀양지에서 아주 팔자가 늘어졌구만. 뭘 편찬해?"

"이게 정말...송시열이 편찬한 거라고?"

"예, 송시열이 그 제자 이선이놈을 움직여서 편찬한 거라지요."

"허어...감히 왕실의 대역죄인 주제에, 책을 발간해?"

"그렇대두요. 거기 별집 1권을 보시면 더 기막힌 게 있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홍우원은 차마 입에도 담기 싫은 듯이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돌리고 손가락으로 서탁 위를 가리켰다. 권대운은 홍우원의 행동이 이상하여 고개를 갸웃하며 서탁 위로 팔을 뻗었다. 서탁 위에서 홍우원이 가리킨대로 송강별집 1권을 찾아 권대운이 펼쳐들자 홍우원이 한마디 덧붙였다.


"거기, 거기 뒤에 추록유사 말입니다. 김만중이 쓴 송강선생정문청공松江先生鄭文淸公 운운..한 부분을 읽어보시지요."

"김만중? 그자도 참여했단 말인가? 허! 김만중이라! 천리 밖에서도 김만중한테까지 손을 뻗치다니! 대단하이! 대단하이!"

"아 읽어나 보시라니까요!"


홍우원이 버럭 성질을 내자 권대운은 그런 홍우원을 힐끔 흘겨보곤 한문으로 적힌 글을 읽어내려갔다.


- 문청공 정송강 선생의 관동별곡과 전후사미인가는 우리 동방의 이소離騷(굴원의 대표적인 서정시)다. 그런데 그 노래를 우리는 문자文子(한자)로 담아내지 못하고, 오직 음악하는 무리들이 입으로 전수하거나, 간혹 국서國書(언문)로 써서 전할 뿐이다.


"국서? 국서라면 언문을 말하는 건가? 아니 누구 마음대로 언문을 국서라는 게야..."

"계속 읽어보기나 하시지요."


홍우원이 제 팔을 주무르며 하는 말에, 권대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 말하는 본새가 그게 뭔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옵고, 그 아래, 김만중이 써놓은 글귀가 중요하다 이 말입니다."

"거 참..."


권대운은 다시 한번 홍우원을 노려보곤 계속해서 읽어내려갔다.


- 사람의 마음에서 입밖으로 나오면 말이 되고, 말에 가락을 얹으면 시가와 문부가 된다. 사방의 언어가 달라서, 말에 능한자가 저마다 자국의 언어로 가락을 만든다면, 자국의 언어로 천지를 동하고, 귀신과 통하리니, 이는 중화中華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권대운의 눈밑이 꿈틀거렸다. 글이 점점 요상해지는 것만 같았다. 서인이고 남인이고 할 것 없이 모든 사대부들이 중국의 한자만 문자文子로 떠받드는 마당에, 문자 축에도 못드는 언문을 김만중은 국서로 칭하면서 심지어는 중국과는 독자적인 언어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꼴이었다.


책을 읽어내려가는 권대운의 눈길이 더욱 분주해졌다.


- 지금 우리나라 시문은 자국의 말을 버리고 타국의 말을 흉내내는데, 설령 십분 비슷하다 치더라도, 이는 그저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내는 꼴일 뿐. 그러나 여항의 나무꾼과 물긷는 아낙들이 모여 부르는 노래는 설령 비루하다 해도, 학사대부의 시부와 그 참됨과 거짓됨을 논할 수가 없다.


"아니 이게...뭣이라? 앵무지인언? 앵무지인언? 이런 미친 놈을 봤나!"


권대운은 두눈이 부릅떠진 채로 눈밑이 부르르 경련했다. 앵무지인언이라니. 사대부가 중국말로 시가와 문부를 짓는 것이 고작 앵무새의 말과 똑같다니? 그는 기가 차서 다시금 앵무지인언鸚鵡之人言이란 글귀를 쳐다보았다. 그 밑으로도 학사대부, 즉 사대부들이 한자로 쓴 시부가 여항의 물긷는 아낙과 나무꾼이 우리말로 부르는 노래와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문구마저 있었다.


작가의말

1. 숙종에 대한 평전 및 평론은 가리지 않고 읽는 편입니다. 그중 1674~1677년 청국이 패망 조짐이 보일 때 청으로 진격하지 않은 일로 숙종을 비난하는 글이 종종 눈에 띄긴 합니다. 조선이 영토를 수복할 마지막 기회였다고도 하는데, 평론가들이 근거로 삼은 실록의 기록 아랫부분은 강희제에 대한 남인들의 보고가 이해되질 않습니다.

 

강희제는 1668년엔가 당시 아담샬 등이 신하들에게 역법을 설명하는 장면을 신하들이 한명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격분해서 스스로 역법과 산술, 기하학, 심지어는 라틴어까지 익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 강희제를 한자도 모르고 문서도 안 읽고 신료들에게 다 맡겨버리는 미개인 취급하며, 북벌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숙종은 응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숙종도 슬슬 천문과 음악에 관심을 기울일 때니 역관들보다는 관상감쪽 경로로 강희제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거라는 상상을 보태어 다루었습니다.

 

2.  숙종 치세에 훈민정음에 애착을 보인 사람이 서너명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그중 김만중은 1677년에 송강별집을 편찬하며 제언소후로 앵무지인언을 말하면서 국서 운운한 전력이 있고, 나중에 그 글을 다시 서포만필에 수록하여 언문의 중요성을 피력했습니다. 나머지 1인도 곧 행동을 개시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1+1은 2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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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3.06.11 18:05
    No. 1

    작가님의 건강과 무사평안을 기원합니다.
    조만간 비밀이 밝혀질 것 같은데 쓰러지심 안됩니다 __);
    송강별집은 또 어디서 찾아야 하나 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3.06.11 18:15
    No. 2

    아니 딱히 비밀이랄 것까진...; 송강별집 추록유사는 서포만필에서 똑같이 다루었으니 서포만필을 찾아보시면 됩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5 사자버거
    작성일
    13.06.11 18:37
    No. 3

    다시 떠오르는 송시열이군요...

    북벌이야기가 나오면 항상두가지가 아쉽던데요
    첫째는 신라의 통일 이고
    둘째는 효종의 죽음 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뚱뚱한멸치
    작성일
    13.06.11 19:04
    No. 4

    중국에 대한 사대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의 위정자들이...

    즐겁게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일화환
    작성일
    13.06.12 00:07
    No. 5

    송시열도 들으면 뒷목 잡을 얘긴데 어쩌다가 저게 저기 실려있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수훈
    작성일
    13.06.12 03:06
    No. 6

    오늘도 잘 보고 잡니다. 늘건강 조심^^
    누가 나올지도 기대되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jk******
    작성일
    13.06.12 06:44
    No. 7

    한바탕 소란이 일겠네요. 사대부들에게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연관된 일이니, 들고 일어나겠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박군주
    작성일
    13.06.12 14:00
    No. 8

    잘 보고 갑니다. 건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3.06.12 20:06
    No. 9

    사자버거님, 실제로 효종은 알려진 것보다는 천문 및 서양기술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효종-현종의 단명이 아쉽지요. 뚱뚱한멸치님, 중국에 대한 사대가 엄청나긴 했겠지만 그래도 독자적인 시선도 더러 찾을 수도 있었지요. 전 그걸 찾는 재미로 숙종시대를 씁니다. ^^; 일화환님, 그러게 송시열도 뒷목잡을 일인데 어떻게 송강별집에 실렸을까요. 수훈님, 고맙습니다. 개인적으로 뉴페이스는 이제 쓰고 싶지 않...-_ㅠ jk046069님, 전 세종이 처음 훈민정음 반포할 때보다 저때가 더 시끄럽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박군주님, 처음 뵙네요.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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