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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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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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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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42)

DUMMY

격발할 시간이 없었다. 벨린은 급한 대로 총신을 휘둘렀다. 그의 총신이 목을 겨누던 총검을 쳐냈다. 머스킷트리스는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녀는 거리를 두지 않았고, 갈색머리 총사의 가슴을 겨누고 연달아 총검으로 찌르려고 들었다.

벨린의 총에는 총검이 달려 있지 않았다. 그는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저었다. 짐승의 이빨과도 같은 날카로움이 부족했다. 짐승과 짐승끼리 싸운다면 그것은 필시 큰 약점이 될 터였다.

그가 총을 안젤라에게 집어 던졌다. 갑작스러운 투척공격에 빌랜드 머스킷트리스가 주춤하는 사이, 벨린이 허리춤에서 사브레검을 뽑았다.

안젤라가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이번에는 벨린의 사브레가 그녀의 목을 겨눴다.

안젤라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땀을 흘리며 싸우고 싶은 거야, 자기?”

벨린이 눈을 깜빡였다. 안젤라가 흥 하고 치기를 부리면서 자신의 총에서 총검을 분리했다. 그런 다음 다른 한 손으로 허리춤에 찬 총검을 단검으로 내리찍듯 움켜쥐었다.

두 남녀가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며 숨을 돌렸다. 양손에 총검을 쥔 안젤라가 약점을 찾는 듯이 벨린을 쏘아보았다. 벨린은 가르드 자세로 왼손을 뒷짐 진 채 사브레를 겨누고 있었다. 그의 검끝이 가벼이 원을 그렸다.

그가 말했다.

“마법은 나한테 통하지 않아. 만약 네가 마법을 부릴 생각이라면 큰 댓가를 치러야 할 걸.”

“자기가 마법사의 피를 물려받은 건 잘 알지.”

안젤라가 사악한 어조로 응수했다.

“그런데 이를 어째, 자기의 그 검은 내 총검보다 한없이 무뎌 보이는 걸.”

“일부러 갈지 않았지. 안젤라.”

벨린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딘 검으로 난자해야 더 심한 고통을 느낄 테니까.”

그 말이 도발이었다. 안젤라가 날카롭게 기합을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붉은 코트차림의 그녀가 오른손 총검으로 사브레를 막고 왼손 총검으로 깊숙이 찌르려고 들었다. 그러나 벨린이 한발 빨랐다. 그가 뒤로 물러나서는 검을 휘두르면서 앞으로 치고 나아갔다.

벨린은 그녀를 벽 쪽으로 몰 속셈이었다. 구석에 있던 벨린에게 안젤라가 점차 밀려났다. 그녀의 공격이 아무리 재빠르고 날카롭다 해도, 노련한 벨린의 검술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안젤라가 총검을 교차하여 벨린의 사브레를 공중에서 막았다.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두 사람의 검이 미세하게 떨리면서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안젤라가 말했다.

“그날 이후로 꿈속에서 네가 나타나지 않은 적이 없어. 벨린 데 란테.”

“그날의 일을 후회하나?”

벨린이 냉랑하게 물었다. 안젤라가 대꾸했다.

“아니. 다만 언젠가 자기를 다시 만나기를 학수고대해 왔지.”

“그래서.”

벨린이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나를 만나면 하고 싶은 게 뭐였지?”

안젤라가 앙칼지게 내뱉었다.

“자기를 죽이는 거지. 자기는 나한테 몽마에 불과해. 유령은 놔두면 놔둘수록 해가 될 뿐이고.”

“더러운 년!”

벨린이 외쳤다. 안젤라는 그 순간을 빈틈으로 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순식간에 검을 물리고 뒤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총검을 비수처럼 집어던졌다.

총검이 그의 어깨에 꽂혔다. 벨린이 이를 악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안젤라가 기대했던 대로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바닥에 착지한 안젤라에게 소리 없이 달려들었다. 안젤라가 나머지 검으로 벨린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지만 그가 핏발 선 눈으로 허를 찔렀다. 미처 피하기도 전에, 검자루를 쥔 그의 주먹이 안젤라의 뺨을 갈겼다.

머스킷트리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가 삼각모가 벗겨진 채 피가 흐르는 입술을 손으로 만졌다. 벨린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총검이 어깨에 박혀 피가 흐르는데도 그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벨린이 안젤라의 멱살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어마어마한 분노에 의해 생긴 공허함 외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너를 바로 죽이지는 않을 테다, 안젤라 노스트윈드.”

벨린이 공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거다. 네 배신으로 죽어나간 동료들과 너 때문에 상처 입은 마음에 대한 대가를 차근차근 치르게 해 줄 거야. 너 때문에 죽어나간 그 유령들이 지금까지 인도했던 방식대로, 너를 150가지 방법으로 죽일 테다! 이 일이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봐, 겁쟁이!”

멱살 잡힌 안젤라가 악을 썼다. 갈색머리 총사의 눈에서 이성이 사라져갔다. 그가 사브레검을 집어 던지고 안젤라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서서히 조여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복수의 새벽을 알리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듯, 천천히.

목이 졸리는 사이, 안젤라는 한 손에 쥐고 있던 총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벨린에게 짓눌린 그녀가 총검을 직각으로 세운 채 천천히 그의 배를 찔렀다. 그러나 벨린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죽음의 공포가 점차 이 기고만장한 머스킷트리스에게도 드리워져가던 그 찰나였다.

갑자기 포성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멀리서 들려오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일어난 포성이었다. 공기를 가르는 포탄의 굉음과 함께, 포탄 한발이 먼지를 일으키며 도로를 포장하던 돌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포탄은 공중으로 튕겨 올랐고, 벨린이 그녀를 목 졸라 죽이기 위해 열중하던 그 옆의 건물과 충돌하여 산산조각 났다.

폭발이 일어났다. 두 남녀의 몸이 작렬한 포탄의 충격의 의해 튕겨났다. 불가항적인 충격파에 의해, 사방이 먼지로 뒤덮이면서 그들이 한바탕 바닥에 뒹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포성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연기 때문에 앞이 분간이 가지 않는 상황, 공황상태에 빠진 벨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에멜무지로 숙적을 찾아 바닥으로 팔을 저었다. 허나 안젤라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와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한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뛰기 시작했다.

“안젤라!”

얼굴이 반쯤 피로 물든 벨린이 외쳤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곧 또 다른 함성과 포성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포 임페라도 데 글로리아!’

그가 서 있는 양쪽에서 구름에 가려진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군대였다. 깃발을 든 기수들이 앞장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먼지가 걷히면서 푸른 십자가가 그려진 헌병군 깃발이 펄럭였다.

그 깃발을 확인하자마자 벨린은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 정신이 혼미했다. 가슴과 배에 꽂혀 있는 안젤라의 총검이 극심한 출혈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겠지. 그는 이렇게 생각을 쥐어짜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근처에 그의 사브레검이 팽개쳐져 있었다. 그는 검을 줍고 방향을 잡아 뛰었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헌병군과 동방회사군 간의 전투에 휘말린다면 치명상을 입은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었다.

그가 거리를 벗어나 어두운 골목으로 숨자마자 콩 볶는 듯한 일제사격의 총성이 귓전을 때렸다.

그는 벽에 몸을 기댔다. 그의 뺨에서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어깨와 배에서 찌릿한 통증이 이어졌지만, 육체적 아픔 때문에 눈물이 흐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빌어먹을!”

그가 주먹으로 벽을 치며 천천히 바닥으로 허물어져 앉았다. 그리고는 몸에 총검이 박힌 그대로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아스틴 궁전의 성벽을 앞에 두고 올리버는 레드코트들의 대열을 재정비했다. 어디선가 소화기의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가까운 곳에서 반란군인 동방회사군과 진압군인 히스파니아 헌병군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는 보고가 뒤를 이었다.

“대열을 유지하라! 사방을 경계하되 명령을 내릴 때까지는 발포하지 마라!”

올리버가 검을 뽑아 든 채로 명령했다. 아직 광장에는 많은 동방회사군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올리버는 다른 이유 때문에 불안했다. 불패를 자랑하던 그의 상관, 안젤라 노스트윈드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사! 저기를 보십시오!”

전방을 경계하던 레드코트가 남쪽을 가리켰다. 그들처럼 레드코트를 입은 자가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안젤라!”

올리버가 뛰어나왔다. 안젤라가 오고 있었다. 쓰고 있던 삼각모는 없이 갈색머리칼만 바람에 흩날렸고 입가에는 피를 흘렸으며 아무런 무장도 하고 있지 않았다.

올리버가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녀가 손을 저었다.

올리버가 소리쳤다.

“안젤라,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를 처치했습니까?”

“아니, 그는 죽지 않았어. 내 손으로 숨을 끊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어.”

올리버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다시 부축했다. 안젤라가 마지못해 그에게 어깨를 걸친 채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다음에는 반드시 죽일 거야.”

그녀가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말했다.

“놈의 복수심을 조금이라도 억누르려면 약점을 잡을 수밖에 없겠군.”


---


너를 150가지 방법으로 죽일 테다는 세익스피어의 비극에 나오는 말이지요. 나름대로 존경하는 뜻에서 집어넣었답니다.


다음주 쯤에 강원도로 여행을 갑니다. 설악산과, 동해바다를 보고 올 생각이랍니다. 연재는 걱정마시길... 혹시나 강원도쪽에 사는 독자분을 만난다면 좋을 텐데요.. 제가 서울토박이라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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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709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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