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균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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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균형자
작품등록일 :
2012.03.18 19:00
최근연재일 :
2012.03.18 19:00
연재수 :
3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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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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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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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외전 - 아란

DUMMY

콰르릉!


"후우... 짜증나는군."


오늘따라 날씨가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날씨는 후덥지근하지 않나. 거의 언제나 좋은 날씨를 자랑하는 성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매섭게 치는 번개까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데 한몫했다.


"그러게 말이야..."


한 커다란 저택의 앞에서 경비를 서던 경호원도 이 날씨가 싫은지 계속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하긴 그들 입장에서야 밖에 나와서 비를 맞고 서 있어야 하니(우의를 준다고는 하지만)기분이 더욱 나쁠 수밖에 없었다.


콰릉!


"윽!"


경호원은 바로 근처에 떨어진 번개에 몸을 수그렸지만, 옆의 있는 경호원의 바보 같다는 시선만 받을 뿐이었다. 물론 그 시선을 준 경호원도 방금 전에 움찔했었지만 말이다.


덜컹!


그들이 그렇게 투덜거리며 경비를 선 지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이 거센 빗속을 뚫고 한 마차가 달려왔다. 시야가 보이지 않아 어떤 마차인지 확인할 수 없었기에 두 경호원은 긴장했으나, 곧 마차 옆에 새겨진 문양이 들어왔다. 바로 이 저택의 주인이 타고 다니는 마차였던 것이다.


"음?"


"앗!"


그 안에서 가주가 마차에서 내리자 구부정한 자세로 있던 그들은 급하게 허리를 펴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오셨습니까!"


"......"


덜컹!


그 인사를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가주는 그들의 인사를 무시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


"왜 저러시지?"


평소라면 목소리가 작다거나, 자세가 안 좋다거나 하고 따질 텐데 그냥 넘어가자 경호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았다.


쏴아아아...


그들에게는 대답 대신 비가 더욱 세차게 내려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철컹. 철컹.


기사 출신인 가주, 카딘 베네레오스는 언제나 갑옷을 입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발걸음소리는 조용한 저택 안에 퍼졌고, 덕분에 아무런 기별이 없어도 하인들이 뛰쳐나올 수 있었다.


"데닌은?"


"일단 갑옷부터 벗으시는 것이..."


걱정스러운 늙은 집사의 제안에 가주는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데닌은 어디 있는가!"


"......"


집사는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네놈이!"


스릉!


"안됩니다!"


"집사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카딘이 검을 뽑아들자 하인들이 달려들어 카딘의 손을 잡았다. 카딘도 홧김에 검을 뽑아들기는 했지만 집사를 해칠 생각은 없었는지 하인들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서 검이 뽑혀 나왔음에도 집사는 단호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말해라!"


"......"


"말 해!"


퍽!


배를 걷어차인 집사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강철 부츠를 신고 있는 상태인지라 웬만한 둔기에 맞은 충격이었을 텐데,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가, 가주님!"


"그만하십시오! 집사님은 연세가 있으셔서..."


"닥쳐라!"


담담한 집사의 반응에 이윽고 가주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마침내 하인들을 뿌리치고 검을 내려치려 할 때...!


"그만!"


한 어린 하인이 가주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만하세요!"


"케이안!"


집사가 그 소년을 막으려고 했지만, 방금 가주에게 얻어맞았을 때 어딘가 잘못 맞았는지 가슴이 아파서 일어날 수 없었다.


"따라오시죠!"


올해로 13세가 된 소년, 케이안은 앞장서서 지하실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가주는 집사를 한번 노려보고는 케이안의 뒤를 따라갔다.


'케이안... 아무리 가모님이 네 동생을 죽였다고는 하지만...'


"쿨럭!"


"지, 집사님!"


집사는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늙은 몸에 너무 무리했던 것이다.


'그래도...... 가모님이시다...'


풀썩.


"지, 집사님!"


"빨리 신관을 불러와라!"


밖에서 난 난리와는 상관없는 듯, 가주와 케이안은 점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가모님이 하신 짓입니다."


"......"


계단 옆에는 어린 여자아이들의 시체가 버려져 있었다. 아무리 많이 보더라도 10~13세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크으윽...!"


그 끔찍한 광경에 가주는 검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여깁니다."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지, 지하실의 문은 자물쇠조차 잠겨있지 않았다. 살짝 열린 틈으로 느느껴지는 지독한 냄새에 가주는 자신도 모르게 코를 잡을 정도였다. 이제 안내가 끝났는지 케이안은 옆으로 비켜섰고, 가주는 그런 케이안을 바라보고는 문을 밀쳤다.


덜컹!


"이게 무슨......"


가주는 할 말을 잃었다. 불길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자신의 부인을 감싸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이미 30대인 부인의 얼굴이 놀랍게도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어줄 정도로 보였다.


"아아... 여보..."


게다가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검은 연기를 없애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얼굴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기사이면서 준 신관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그는 알 수 있었다. 이 연기가 사악한 어떤 것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이... 이이!"


가주가 검을 들어올렸다.


화악!


"?!"


그러나 그 순간 검은 연기가 가주를 덮쳤고, 가주는 그 연기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에 당황하며 허공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검은 연기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그만! 그만해요! 그는 제 남편이에요!"


그런 가주를 구해준 것은 그의 부인이었다.


"크아아악!!"


검은 연기에 닿은 가주의 얼굴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크아악! 감히!!"


분노한 가주가 검을 들어 가모를 베려 할 때.


"그만! 그만 하십시오 가주님!"


입가에 피를 묻힌 집사가 지하실로 뛰어들었다.


"크아아!"


하지만 얼굴의 고통과 검은 연기에 대한 공포에 빠진 가주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그는 그대로 집사의 말을 무시하며 검을 내려쳤다.


촤악!


"커헉!"


"아버님!"


케이안의 비명이 지하실에 울려 퍼지고, 그제야 가주는 눈을 뜨고 앞을 볼 수 있었다.


"커허억..."


가주의 검을 등에 박은 채 죽어가고 있는 집사를...


"쿨럭... 쿨럭..."


"지, 집사!"


"아버님!"


케이안이 집사에게 달라붙었고, 이제야 정신을 차린 가주도 집사를 부축했지만 이미 집사의 생명은 끝난 것 같았다.


"가, 가주님..."


"집사......"


"가모님은 지금... 아기씨를 배고 계십니다..."


툭.


그 말을 마지막으로 집사의 목이 떨어졌다.


"집사님!"


"이 곳으로 들어가셨다!"


뒤에서 하인들이 놀라며 달려왔지만, 그들은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럴 수가..."


"가, 가주님!"


가주의 검을 박고 죽은 집사를 보며 하인들은 분노와 경악에 찬 눈빛으로 가주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모든 하인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그가 죽은 것이다. 하물며...


'그는 가주를 길러 준 사람이 아닌가!'


"호호... 그 늙은이 결국 죽었군요."


모두의 분위기가 무거운데 오직 한명만이 웃고 있었다.


"데닌..."


가주는 분노한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계속 웃으며 가주에게 안겨들었다.


"여보~ 저 어때요? 훨씬 젊어 보이죠?"


"......"


그 웃음짓는 얼굴을 보며 당장에라도 집사의 등에 박힌 검을 빼내 그녀의 목을 치고 싶었지만, 집사의 죽음과 그녀의 뱃속에 있는 자신의 아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자, 이제 저를..."


확!


가주는 그녀를 거칠게 밀치며 일어났다.


"여봐라! 이 마녀를 탑에 가둬라!"


"가주님...!"


"여보!"


"빨리 뭐하고 있느냐! 이 마녀가 다른 짓을 하기 전에 가두지 않고!"


하인들은 가주의 명령에 그녀를 결박하며 끌고 갔고, 그녀는 끝까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끌려나갔다. 그녀가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자 검은 안개는 어쩔 줄 모르는 듯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흐윽... 아버님..."


케이안은 집사의 시체를 잡고 울부짖고 있었다. 젊음을 되찾겠다는 말에 자신의 딸의 목숨을 가모에게 바쳤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목숨도 가모를 위해...


"......이제는..."


가주는 집사의 시체와 케이안만이 남은 지하실에서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네가 집사다."


"......"


케이안은 분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카야."


가주는 케이안의 이모부, 즉 가모는 집사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외삼촌. 아니 가주님."


케이안은 눈물을 거뒀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배워 온 교육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그래...... 그리고 뱃속의 아이는, 불쌍하지만 없앤......"


“그것은 안 됩니다!”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는 케이안에게 가주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마녀의 아이가 될 것이다. 없애지 않으면 이단심문을 받게 될지도 모른단 말이다.”


“받더라도 제가 받겠습니다. 부디, 아이만은 살려주십시오......”


털썩.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케이안을 보며 가주는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허탈한 듯 웃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자신의 부인과 자신을 키워 준 집사에 대한 충격과 피로가 쌓여 있었고, 또 검은 연기에 당한 상처의 고통이 갑자기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몇 달 뒤. 베네레오스 집안에는 둘째 딸이 태어났다.


"으앙! 으앙!"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어미가 가졌던 마녀의 교환을 가지고 있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외전 - 아란 2



"아....."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성도의 중앙에서 헤매고 있었다.


"큰일났어... 케이안을 잃어버렸어..."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뒤돌아 볼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홀리는 마력의 미모. 베네레오스 가문의 숨겨진 둘째 딸.


지금까지 갇혀 지내던 그녀가 13번째 생일을 맞아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케이안... 케이안..."


힘이 없어 큰 소리로 자신을 안내하던 집사를 부르지도 못하고, 자신 없이 케이안만 부르다가 이곳저곳으로 사람들에게 밀려다니며 그녀는 점점 저택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못 찾겠어...’


이윽고 포기하려 했을 때.


턱.


그녀의 팔목을 잡는 손길이 있었다.


"꺄앗..."


이럴 때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고 들었지만, 몸이 약한 그녀로서는 크게 비명을 질러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고 그저 끌려갈 뿐이었다. 그녀가 끌려가다 시피 골목에 들어갔을 때, 그녀를 끌고 온 사람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너, 아란이지?"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의외로 어렸다. 겨우 열여섯에서 열일곱으로 보이는 소년이었으니까. 검은머리에 검은 눈이 인상적으로, 전체적으로 외모는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평범한 수준의 소년이었다.


"네......"


아란이 기운 없이 대답하자 그는 묘한 표정으로 아란을 바라보았다.


'무... 무서워...'


그는 덮수룩한 검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한번 헝클더니 다시 아란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할래?"


"네?"


"나랑 구경할래? 아니면 그냥 집으로 돌아갈래."


아란은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려다가 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마치, 거절당하면 어쩌지? 라고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


'무슨 일일까?‘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녀가 같이 있어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같이......"


"그래? 좋아."


그는 이제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허락한 이상, 아까처럼 만약을 대비해 도망갈 이유가 없어진 것이었다.


웅성웅성...


"아아..."


그녀는 사람이 잔뜩 몰려있는 거리를 보고는 아까 인파에 휘말린 것이 생각났는지, 안색이 안 좋게 변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그 안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기..."


결국 어쩔 수 없이 아란은 그저 그의 손만 꽉 잡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에 그도 놓치면 더 큰일 날 것 같았으니까.


"윽... 이거 평소에는 없던 사람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찾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강하게 끌어당겨서 한 가게 앞에 섰다.


"여기는..."


"빵가게."


빵가게라고는 하지만 오늘 딱 하루만 연 가게였다. 다른 말로는 노점상이라고도 한다. 조금 오래 된 밀을 사용해서 싼 값에 빵을 만들어 파는 약간 얌체적인 가게였지만, 어차피 먹고 큰 탈은 나지 않으니 상관없게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아저씨! 꿀빵 하나요!"


"조금만 기다려라!"


역시 어린아이들에게 최고 인기 품목은 꿀빵이었다.


"......달콤한 냄새..."


아란의 혼잣말을 그가 들었는지 살짝 웃으며 물었다.


"하나 먹을래?"


그의 물음에 아란은 뺨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꿀빵 두 개요."


"잠깐만..."


가게 주인은 급하게 동전을 정리하고 화덕에서 빵을 꺼냈다. 그리고는 솔로 빵 위에 꿀을 바르고는 그에게 건네주었다.


"윽... 사람들 더 몰려온다. 가자."


그는 한 손에는 꿀빵을, 한 손에는 아란의 손을 잡고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시는 거에요?"


"물의 신전."


그는 그렇게 몇 개의 골목을 지나쳐서 사람이 별로 없는 곳으로 나왔다.


"푸하! 사람들 때문에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란의 손을 놓고 그 손에 꿀빵을 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먹어."


"......"


아란은 그 빵을 보며 약간 곤란해 하고 있었다. 빵에 이렇게 뭔가 묻어있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먹어도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를 바라보는데......


"음... 달다."


그는 이미 크게 한입 베어 물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먹어... 볼까...'


톡.


아란이 살짝 꿀빵을 찢어서 입에 집어넣었다.


"달다..."


"그렇지?"


비록 만든지 조금 되어서 차갑고 퍽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달콤한 꿀의 맛으로 먹을만한 음식이 되어 있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꿀빵을 입에 집어넣으며 물의 신전으로 걸어갔고, 아란도 꿀빵을 든 채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쪼르르르...


물의 신전에는 돌로 만들어진 '분수'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어떻게 한 것인지 계속해서 아래쪽에서 위로 물이 솟아 올라오는 것이었고, 그 신기함에 성도의 명물 중 하나로 꼽히고 있었다. 일반적인 물은 거꾸로 솟아오르지 않으니까.


"여기 앉아."


"네."


하지만 그녀는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고 곤경에 처했다. 약간 더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


차마 그에게 손수건을 깔아달라고 하지 못하는 아란이었다. 단지 난감한 표정으로 빵을 조금씩 뜯어먹을 뿐...


"아, 아. 깜빡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허리에 달린 주머니를 뒤지더니 작은 천조각을 찾았고, 그것을 깔았다.


"됐지? 내가 깜빡했지 뭐야."


"......"


아란은 그제야 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허리에 찬 싸구려 검과 허름한 복장.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딱딱했던 손. 그는 아무래도 떠돌이 검사 같았다.


'하아...'


앉기 싫었지만 이대로 있기도 그랬기에 아란은 그 천조각 위에 앉았다.


"내 이름은 라드야."


"저는... 아란 베네레오스라고..."


"알아. 베네레오스 가문의 둘째 딸. 맞지?"


끄덕.


아란은 왠지 그의 속셈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자신의 가문을 노리고 접근하는 것 같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모를 바보는 아니니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같이 받았기에 그녀는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가문을 노리건, 무엇을 노리건. 그녀에게는 하인들과 케이안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말을 나누는 사람이었으니까.


쪼르르르...


그는 분수에 손을 넣고 장난치고 있었고, 아란은 빵을 다 먹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라드님은... 무슨 일을 하세요?"


"그냥 떠돌이야. 굳이 말하자면..."


라드는 물의 신전을 바라보았다.


"신관 지망생이라고 해야 할까."


"신관... 지망생?"


되묻는 아란에게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검은머리 때문에 안 된데."


"아..."


그녀도 아버지가 준 신관이니 신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검은머리를 신관으로 뽑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바로 윗 언니도 신관이었으니까.


"어둠의 신전이랑 물의 신전이랑 대지의 신전에 들려봤는데... 다 거절하더라고."


"그러...세요?"


드디어 아란은 그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언니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


그리고 그의 속셈을 확실하게 알고 나니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것도 느꼈다. 하지만 이대로 떠나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에 아란은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 라드님은 왜 신관이 되려고 하시는 거죠?"


그 물음에 라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글쎄......"


라드의 시선은 어느새 하늘로 향해 있었다.


"죽은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할까..."


"죽은... 자?"


"그래. 죽은 자."


아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은자라니? 죽은 자의 약속은 모두 무효다. 그것이 사람들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이 아니겠는가? 죽은 자는 곧 없어진 자이니까. 그녀의 의문스러운 눈빛에도 불구하고 라드는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렸다.


"난 죽는게 싫어."


"......누구나 싫어하지 않나요?"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싫어."


"......."


"내가 죽는 것은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죽는게 싫어."


"네...?"


원래 그 반대가 아닌가?


"죽으면... 처음에는 믿기지 않지. 금방이라도 와서 내 머리를 쥐어박을 것 같고,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올 것 같고."


"......"


"그리고 나중에는......"


그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파."


"어디가요...?"


"가슴이, 머리가, 마음이..."


"......"


그는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워야 한다고 하는데, 모두 그렇게 말하는데... 나도 겉으로는 그렇게 하고 있는데... 하지만 내 안에는 모두 남아있어. 죽었어도 남아있다고... 그런데 볼 수는 없어."


아란은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며-


"그게... 싫어. 죽으면 내 가슴에 큰 상처를 새기니까."


그가... 자신이 죽어도 기억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아프세요?"


"머리로는 아프지 않은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지지."


스윽.


그는 거칠게 자신의 눈을 문질렀다.


"쳇.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


아란은 조용히 그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이건...?"


"쓰세요."


'당신이라면... 제가 일찍 가더라도 기억해 주시겠죠?'


그리고... 이 남자를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작가의말

어제부터 2번이나 실수했군요.

10화를 11화로 올리고

오늘은 11화에 12화를 올리고.

지금 다 수정한 상태입니다.

사죄의 대가로......

4부 1편 더 올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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