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 운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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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인h
작품등록일 :
2018.11.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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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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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 운명록을 얻다.

강호




DUMMY

“......?”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란 표정으로 신오진이 눈을 떴다.

“누구시오?”

그러나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지금 환... 환청도 듣는 거야? 미치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탈하게 허공을 올려다보던 신오진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응?”

그의 시선이 문제의 느낌표가 있던 곳에 멈추었다.

‘... 바뀌었잖아?’

허공에 떠 있던 은은히 빛나던 느낌표. 그것은 하늘에 여러 글자가 둥실둥실 떠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다시 보니 조금 전 그에게 들려왔던 그 음성이 그대로 글로 허공에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운명록 사용 방식과 요령에 관한 간단한 설명입니다. 설명을 들으실 거면 예를 거부하실 거면 아니오를 생각해주십시오.-


신오진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운명록? 그건 또 뭐야. 아니 그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그 개새끼들에게 머리 맞은 게 제대로 잘못된 거 같은데 이거? 하아 미치겠네.’

육두문자가 막 쏟아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은 신오진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후, 혼란한 머릿속을 차분히 정리하려 애쓰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내가 미친 거 같아. 확실히 내가 미친 거 맞는 거 같긴 한데...’

사람이 다급해지면 욕부터 나온다고, 그는 중얼중얼 계속 욕을 내뱉으며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저거... 만일 예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헛것을 보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그에게 저 내용에 대한 호기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허황되고 터무니없어 보이는 말이라도, 적지 않은 사람이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을 가지곤 한다.

이율배반적인 생각이지만,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본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신오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고, 헛것을 보고 있으니 자신이 미친 거라고 믿고 온갖 욕을 중얼거리는 상황임에도,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저 문구와 그 내용 자체에 조금씩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 호기심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예.

신오진은 자신의 행동에 놀라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미친, 내가 지금 뭐 하는...’

그러나 그는 그런 생각이나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그 순간, 허공에 새겨진 글자가 다른 문구로 스르륵 바뀌는 것이 아닌가!

“헉?”

신오진은 입을 헤 벌린 채, 허공의 글귀를 읽어 내려갔다.


-운명록의 사용자로 선택받으신 걸 환영합니다. 이 신묘한 이적(異蹟)은 선택받은 자의 운명에 개입해, 선택받은 자가 원하는 운명으로 인도합니다. 사용자여, 당신이 원하는 운명은 무엇입니까?-


신오진은 같은 문구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내가 원하는 운명?’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오진은 일시 와 닿지 않았다.

‘꿈 같은 걸 말하는 건가?’

아마도 지금보다 전에 누군가 비슷한 물음을 물어보면, 그는 웃으면서 돈 많이 벌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같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게 정말 내 꿈이었을까?’

돈 많이 벌어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는 지금처럼 살고 싶지도 않았다.

미래의 희망도 없이, 그저 주정뱅이들에 시달리며 온갖 모멸을 견디며 하루하루 점소이 노릇하며 살아가는 그런 삶에 그는 지금 심한 염증을 느꼈다.

신오진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지금 이 순간... 그저 가슴 깊숙이 묻어두고 외면하던 한 마디가 퍼뜩 떠오르는 건, 그저 우연일까?

한번 사는 인생, 멋지고 화끈하게 사는 거야!

이미 죽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이름 모를 낭인 무사가 호기롭게 외쳤던 그 한마디.

현실의 잔혹함에 애써 잊었던 그 꿈이 어느새 슬그머니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신오진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했다.

‘허허... 이게 무슨...’

그 낭인이 허무하게 죽은 걸 본 이후로, 뇌리에서 깨끗이 지웠다고 생각한 열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운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왜 하필 지금 그 생각이 난단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신오진은 그 이유를 이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죽음에 가까이 갔던 그 경험. 그것이 문제였다.

꿈이었으면 했지만, 꿈이 아니었던 그 살벌한 체험.

글자 그대로 죽었다 살아난 그 사건이 신오진 그의 마음 어딘가를 뒤흔들어버렸다.

그 사건은 그에게 사람은 죽으면 끝이라는 것을, 삶은 한 번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우쳐주었다.

‘그 삶을 이대로 점소이 노릇하면서 계속 보낸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따지고 보면 이미 죽었을 수도 있는 목숨이다.

어떻게 살았으니, 그 한 번의 삶을 정말 뜻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그는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매우 이기적인 감정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본심이기도 했다.

신오진은 자신이 그 경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다.

‘하아...’

그런 자신이 믿어지지 않아 신오진은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야 했다.

‘내가 정말 미친 거 맞나 보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강도들에게 죽을 뻔한 일을 되새겨보았다.

‘큭...!’

그때의 기억을 되새겨보자, 신오진은 갑자기 당시 자신의 모습에 무척 부끄럽고 화가 났다.

그 당시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다.

일단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온 정신을 빼앗겨 그때는 부끄러움이나 분노 같은 걸 떠올릴 여유도 없었다.

그런 감정은 그때를 되돌아보는 지금에야 비로소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저 겁에 질려 비참하게 도망치던 기억, 칼을 든 흉한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던 그 기억, 그저 아등바등 살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하는 생각에서 끓어오르는 설명하기 어려운 좌절과 분노.

저항도 못 해 보고 비굴하게 바닥을 벅벅 기며 도망치려 애써야 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신오진은 수치심과 분노, 무력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대로 이렇게 평생 점소이 노릇이나 하다가 죽기는 싫다!’

그렇게 생각하자 뭔가 가슴 밑바닥부터 답답함이 느껴졌다.

무시 받고 괄시받기 일쑤인 것이 점소이의 일. 그동안 쌓여온 설움이 그가 느끼는 감정과 어우러져 울컥 북받쳐 신오진은 눈물을 주르륵 흘려야 했다,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신오진은 잠시 후, 눈물을 닦고 이를 앙다물었다.

‘울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우선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해.’

그를 죽이려 했던 괴한들이 하던 말을 미루어 보면, 누군가 그를 죽이라 사주한 것일 가능성이 컸다.

이런 상황이니 한목숨 건지려면 당장에라도 도망치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대체 왜?’

다시 생각해봐도 도무지 짚이는 것이 없었다.

누군가와 척진 것도 없고, 살수를 고용해서 죽이려 할 정도의 일을 저지른 적도 없었다.

‘사람을 착각한 걸지도 몰라. 씨발. 미치겠네.’

혹시라도 그런 거라면 더 미칠 노릇이었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신오진 그를 이미 죽인 다음에야 사람을 착각한 사실을 알게 될 것 아닌가.

문제는 그런다고, 어이쿠 엄한 사람을 죽였네... 이걸 어떻게 책임지지? 이런 식으로 나올까?

그럴 리가 없었다. 누구의 사주인지, 실행범인 괴한들이 누구인지 몰라도 점소이 하나 죽인 걸 큰 실수 했다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 이전에 죽은 목숨을 되살릴 수도 없을 테고, 그 사실을 크게 상관하지도 않을 테지.’

자신의 목숨이 그렇게 하찮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오진의 가슴 깊은 곳을 부글부글 끓게 했다.

“이게 다 내가 힘이 없어서 그래.”

부지불식간에 그 분노가 형태가 되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렇게 생각하자 새삼 무력감과 더불어 강한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 말은 잔인하게도 지금 신오진의 처지와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했다.

‘망할...!’

칼을 들고 사냥감을 잡듯 다가오던 괴한을 보며, 살기 위해 개처럼 바닥을 기며 도망치려 애쓰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는 재차 심한 굴욕감을 느꼈다.

‘거기서 죽을 순 없었어. 내가 그렇게 죽으면 가족들은...’

그렇게 스스로의 행동에 명분을 세워봐도, 굴욕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점소이로서 수많은 손님들에게 굽신거리는 동안, 먹고 살기 위해 애써 누르고 외면하던 자존심의 한 조각.

그것이 그를 괴롭게 했다.

신오진은 재차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강해지고 싶다. 당당하게 활보할 수 있게. 이제 더는 점소이 따위를 하며 살고 싶지 않아.’

그리고 그것은 숨길 수 없는 신오진 그의 진심이었다.

동시에 그것에 반응이라도 하듯, 그가 잠시 잊고 있던 허공에 끈 글자가 새로운 글자로 바뀌기 시작했다.


-운명록이 사용자가 원하는 운명을 인지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새로운 문구가 다시 나타났다.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기 전에, 운명록 사용자의 상태를 조정합니다. 원하는 상태로 조정하세요.-


신오진은 그때 그가 잠시 잊고 있던 예의 허공의 글자들을 다시 인지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글귀들을 읽은 후,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상태를 조정? 이게 뭔 소리야?”

그리고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재차 기묘한 글귀와 숫자들이 허공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운명록 사용자 상태창.

-성명: 신오진.

연령: 20세

종족: 인간 남성

신분: 점소이

격(格): 4

체질 5, 오성 6, 매력 8, 기감 5, 운 5, 안목 6, 여분치. 10-


‘이건 뭐지?’

적힌 문구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신오진은 잠시 멈칫해야 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적힌 숫자들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숫자가 아니었다.

‘아마 저게... 아랍백(阿拉伯) 숫자라는 거지?’

서역으로 멀리 다니는 상인들을 통해 시중에 알음알음 퍼진 방식으로, 신오진도 점소이 노릇을 하면서 가끔 볼 기회가 있어 그나마 그럭저럭 익숙한 숫자였다.

적힌 문구도 숫자도 의미가 바로 와 닿지 않았지만, 신오진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그 문구와 숫자를 반복해서 살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어느새 그는 이 괴이한 현상에 빠져 들어가 조금 전까지 느끼던 감정이나 걱정들조차 잊었다.

‘운명록 사용자 상태창이라...?’

허공에 적힌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신오진은 신중했다.

점소이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계약서 비슷한 것을 볼 때는 글자 하나, 점 하나도 허투루 봐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점소이 생활을 십오 년이나 하며 모은 돈으로 작은 객잔을 차린다던 선배 점소이 종구가 계약서를 잘못 써서 그간 모았던 돈을 다 날린 일을 그는 직접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찌 감히 문구의 의미를 궁리하는 일에 소홀하겠는가!

신오진은 저 문구들에 혹시 다른 의미는 없을지 궁리하며, 그 문구와 숫자를 신중하게 살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도울 설명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바로 그 순간, 누군가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허공에 새로운 문구들이 스르륵 나타나기 시작했다.





운명록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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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현실은 잔혹하다 +13 18.11.12 17,777 10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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