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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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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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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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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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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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6# 멧돼지 뺑소니 사건(3)

DUMMY

113.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며 사죄하는 그에게 박수호는 미소를 유지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럴 수 있죠. 왜 그렇게 죄송해해요.”

“네?”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에게서 이명환으로 시선을 옮기며 박수호가 입을 열었다.

“일하다 보면 자기 가족과 관련된 일이 터지는 경우도 있는 법이에요. 안 그래요 검사님?”

박수호의 말에 이명환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수많은 사건을 접하는데, 그럴 수 있죠. 그리고 진짜 접하면 어디 쉽게 입이 열립니까. 특히 자기 어머니 다친 일, 그것도 멧돼지에 부딪힌 일을 가지고 유난 떨면 오히려 같은 동료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리고 이번 살인미수 사건으로 전환된 것도 순식간이었으니, 말할 타이밍은 없었을 겁니다. 그쵸?”

“아... 예. 그렇습니다.”

김장군이 조금은 풀린 얼굴로 대답했고, 박수호는 서류를 보며 말했다.

“제 부사수가 어머니와 대화한 건 아시죠?”

“네. 연락받았습니다.”

“대화해보니까, 생각보다 원한 관계가 복잡하던데, 그것도 알고 계십니까?”

“예... 엄마가 인근에 상가 건물만 다섯 채를 가지고 계십니다. 돈이 많으면 아시다시피 파리가 꼬여서-”

“파리요?”

“사기꾼 말하는 겁니다. 사기꾼.”

그의 말에 박수호는 몸을 뒤로 기대며 말했다

“아... 난 또 갑자기 쫓아내고 대기업 직영점 들인 것 때문에, 원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건물 매입과정에서 사람들 고용해서 건물주 협박해 헐값에 강탈당한 사람이나, 그리고 그분과 결혼했던 전남편들을 얘기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긴, 사람이라면 그들을 파리라고 했으면 인간이 아니지. 제 말이 맞죠?”

박수호의 말에 김장군의 얼굴이 굳어졌다가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런 어머니와 다르게 빚이 많으시다고요.”

“네?”

두 번째로 김장군의 눈이 멍해졌고, 박수호는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주변 동료분들에게 물어보니, 빌린 돈이 천만 원 가까이 넘던데, 세 달 가까이 돈 갚지 않은 것만 절반이 넘고, 그러다가 고소당하면, 당신이 말한 파리처럼 되는 건데, 어머니가 도와주지 않나 봅니다?”

“음...”

입을 다문 그에게, 이명환이 자신의 손톱에 낀 때를 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기록 요청에서 대출 기록까지 받았더니, 오 천 넘게 빚도 있던데, 소문에는 사채까지 쓰셨다고요. 그거 어디다 쓰셨어요?”

계속 입 다물고 있자, 이명환을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계속 말 안 하면, 그 돈 때문에 살인했다고 의심할 겁니다. 그리고 제 의견이 장군님 어머니 귀에 들어갈 겁니다.”

어머니라는 단어에 움찔한 김장군이 굳게 닫혀있던 입을 벌린다.

“협박당했습니다.”

“협박이요?”

“예. 제 아내 알몸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그녀 전 남친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몸 사진 일부를 보니, 제 아내 몸이랑 똑같아서, 원하는 대로 급하게 돈을 빌려서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몇백이었는데, 요즘에는 천 단위로 달라고 해서... 크흑...”

박수호는 초록색으로 변하고 있는 숫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주변에 힘센 분들이 많던데, 그분들은 뭐하고 혼자서 감당하고 있는 거죠?”

“어머니가 알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면 제 아내랑 무조건 이혼시키려 든다고요. 이 사실 절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말하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사나운 눈빛까지 보내는 그를 보며 박수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그렇게까지 부인을 사랑하면, 어머니가 반대해도 이혼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그러면 제 용돈은 물론이고, 이제까지 받은 걸 다 토해내라고 해서요.”

“그러면 토해내면 되잖아요.”

“하지만... 차나, 집이 없으면-”

“없어도 잘만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연차 조금만 더 오르면 차 리스해서 장만하면 되고, 집이야 두 사람 모두 일해서 모으면 언젠가는 자그마한 집 한 채는 사는데, 뭐가 어렵다고 그래요.”

“저는 그러자고 했는데... 제 아내는 그건 안 된다고... 자기 때문에 무너지는 건 싫다고 해서...”

“부인이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그의 대답에 박수호가 무언가는 수첩에 적기 시작했고, 그사이 이명환이 그에게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기엔 범인이 누구 같습니까? 아무래도 오랜 시간 어머니 곁에 있었으니까, 제일 원한을 품은 사람을 알 거 아니에요. 저희 수사를 빨리 도와줘야 이런 난처한 상황도 빨리 끝나는 거니까,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제 생각엔 차인호 경위님입니다.”

그의 대답에, 수첩을 적고 있던 박수호의 고개가 그에게 향했고, 그사이 눈을 번뜩인 이명환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었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죠. 제 친부니까요. 제 귀에 들어갈까 봐 엄마도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의 대답에 두 사람은 동시에 신음을 내뱉었고, 박수호는 검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톡.

톡.

톡.

“친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엄마가 보관하고 있는 사진을 제가 몰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제가 몰래 유전자 검사까지 해서 확인했고, 말하려고까지 했지만, 헤어진 원인이 뭔지 알고는 포기했습니다. 여기 그 유전자 검사 결과서입니다.”

서류를 받은 박수호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원인이 뭐죠?”

“저희 엄마가 바람을 피웠습니다. 부부관계에 제일 큰 신뢰를 깨뜨리는 나쁜 행위고, 어린 시절부터 헤어지는 과정을 봐와서 왜 찾아오지 않았는지 단번에 이해가 가더군요. 그리고 제가 먼저 아는 척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회한이 서린 눈빛으로 변한 그가 김장군이 서글픈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굳이 제가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와 그의 가족에 끼어드는 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이 확 들어서요... 저도 제가 못났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지 못하고, 그렇다고 사랑한다, 미안하다, 등등의 말도 제때 하지도 못하고, 겁은 많아서 스스로 뭔가를 시도해보려고도 안 하고... 제가 유일하게 한 건, 경찰이 되고 싶어서 시험을 친 거 이거 하나뿐입니다. 그마저도... 솔직히 지금은 조금은 회의감도 들어서...”

긴 한숨을 끝으로 그는 입을 다물었고, 박수호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차인호씨가 어째서 피해자를 죽이려 했다고 보십니까?”

박수호의 질문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건... 엄마가 훼방을 놓았거든요.”

“훼방이요?”

“네. 장사 잘하고 있었는데, 그 건물을 사더니, 월세를 확 올려서 쫓아버렸습니다. 두 분은 모르시겠지만, 식당 장사는 자리 옮기면 성공하기가 생각보다 매우 힘듭니다. 괜히 권리금을 받는 게 아니죠. 하지만 그 권리금조차 보장해주지도 않고 내쫓겼으니...”

“찾아가 보니, 장사가 잘 안 되나 봅니다.”

“급하게 옮기다 보니, 단골들인 나이 든 분들이 있는 근처도 아니고, 젊은 사람들이 있는 다른 구 지역으로 옮겨서 장사하는데, 예전 십 분의 일밖에 안 됐습니다.”

“그래서 차인호씨가 공격하지 않았을까 의심했군요.”

“네. 예전에 그와 비슷하게 쫓겨나신 분이 칼을 들고 찾아온 적도 있어서, 아마 차인호씨도 그러지 않을까 의심됩니다.”

“피해자를 구혜주신 분의 말에 따르면 구급차보다 먼저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경찰차도 아니고 경찰 복장 그대로 오셨다던데, 혹시 피해자를 만나셨습니까?”

박수호의 질문에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예. 친부가 저랑 같이 근무를 하는 걸 보고는 당장 경찰을 그만두라고 하다가, 일단 내일 이야기하자며 절로 향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빚 독촉 문자를 받고,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다른 곳에서 볼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 차인호씨에게 전화한 다음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쓰러져계시더군요.”

“그때 스님 외에 다른 사람은 못 보셨습니까?”

고개를 저은 그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멧돼지에게 공격당했다는 말만 하셔서 저는 주변을 돌아보지는 않고, 일단 지혈에만 신경 썼습니다.”

“신고는.”

“저는 스님 말대로 지혈하고, 엄마를 불러서 깨우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막상 급한 상황이 되니까, 가장 기본적인 것도 못했네요. 그분에게 가서 감사 인사를 다시 한 번 더 해야겠습니다.”

“며칠 뒤에 떠나신다고 하니까, 서두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당장 가서 뵈어야겠네요.”

박수호는 서류첩 하나를 접으면서 말했다.

“기본적인 인적사항은 어차피 오기 전에 하셨다고 들었으니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네. 강압적으로 수사한다고 들었는데, 말과 다르게 부드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을 마치고 멀뚱멀뚱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에게 박수호가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

“가보세요.”

“아! 죄송합니다.”

자리에 벌떡 일어난 그는, 쓰러진 의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더니, 어색한 미소와 함께 취조실에서 나갔다.

“제일 유력한 용의자치고는 너무 허술한 거 아니야? 마마보이니 부드럽게 대하되 중요한 질문은 어머니를 걸고넘어지자는 작전대로 너무 술술 풀렸어.”

“네 말대로 미리 이빨까지 준비한 사람치고는 허술한 면이 많아. 하지만, 저것도 가면일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해.”

“당연하지. 그럼 다음은-”

-차인호씨 들어가십니다!-

벌컥.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경찰복 차림의 차인호씨가 굳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박수호는 손으로 의자를 가리킨다.

“앉으시죠.”

“크흠.”

드르륵.

거칠게 의자를 잡아당긴 그가 털썩 주저앉고서 팔짱을 끼었고, 박수호는 그의 머리 위 숫자가 붉은색인 걸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화가 나신 이유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내 부사수가 친자식이라는 말이랑, 내 아내 식당 망친 게 전 부인이라는 사실, 게다가 이렇게 범인 취급까지 당해야 하는데, 지금 화가 안 나겠습니까.”

“피해자이자 전 부인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더군요.”

“그거야 지금 알았으니 그런 거 아닙니까.”

“보통 가게 건물 주인과는 안면이 없을 수 없는데, 그걸 이제 알았다고요? 게다가 친자가 누군지도 알아볼 생각도 안 하셨다는 게 정말 이상합니다.”

“그놈 자식인지, 내 자식인지 어찌 압니까. 그년이 오 년 넘게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오만 정이 싹 다 사라졌습니다. 내 젊은 이십 대에 몸 바쳐서 돈 버는 거 다 도와줬더니만... 그런 년인 줄 알았다면 절대 결혼 안 했을 겁니다.”

“건물에서 쫓겨났을 때-”

“이보세요. 형사 양반. 나도 경찰이요. 순경 출신이니 지구대 근무가 힘들다는 거 알 거 아니요. 허리디스크랑 무릎질환 때문에 지금도 아프지만, 꾹 참고 일하고 있고, 다른 일에는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아셨습니까.”

“일단, 이것부터 보시죠.”

박수호는 김장군에게서 받은 유전자 검사서를 건네주었다.

“당신 아들이라는 결과서입니다.”

“음... 아무리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그도 그건 잘 알고 있더군요. 끼어들 생각도 없고, 앞으로도 당신 가족에 풍파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년과 다르게 잘 크긴 했군.”

짧게 내뱉고는 입을 다문 그에게 박수호는 여전히 붉은 숫자를 흘깃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평소와 너무 다르게 감정적인 거 같은데,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야 우리 가족 가게를 건드린 사람이 그년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그년이 아니라 박복자씨입니다.”

“내가 뭐라 부르든-”

“공식 이름은 박복자씨입니다. 아니면 전 부인이라는 말까지는 허용하겠습니다. 법정에 쓰인다는 건 차인호씨도 아시지 않습니까.”

단호한 박수호의 말에 그는 콧김을 내뿜었지만, 고개를 강하게 옆으로 돌리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할 뿐, 항의하거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박수호는 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진술을 들어보니, 신고가 없는데도, 경찰차를 끌고 올라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뭔지 알아도 되겠습니까?”

“화장실에서 똥 싸고 있다가 비명을 들어서 황급히 뒤처리하고 올라간 겁니다. 그게 뭐. 잘못됐습니까?”

“그렇군요. 도착했을 당시에 두 분은 뭐하고 있었는지는 기억하십니까?”

“등 부분을 압박하길래, 그곳에 가서 도와줬습니다.”

“그때 피해자 얼굴은-”

“등 부분 지혈 때문에 거의 엎드려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봅니까. 구급차에 실릴 때는 구급대원들이 있었고, 울고 있는 부사수 진정시키느라 정신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이 지 엄마라는 소리는 끝까지 안 했잖아.”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는 그를 보다가 박수호가 몸을 일으켰다.

“물 좀 마시겠습니다.”

“크흠.”

그는 구석에 있는 컵과 생수통을 들고 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꿀꺽.

다 마시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명환이 손을 내밀어 컵을 잡으려고 했고, 박수호가 컵을 옆으로 밀고 턱으로 자신이 갔다고 곳을 가리킨다.

“컵은 각자 따로 마시는 게 기본인 거 모르나.”

“치사하게 구네. 알았어. 내가 가져오면 될 거 아니야. 저기 차 경위님도 한잔 콜?”

그의 말에 차인호가 입술을 축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잔 주쇼.”

“색깔은요? 파랑 노랑 빨강이 있는데.”

이명환의 말에 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상관없소.”

“오케이, 그럼 나는 노랑, 저분은 빨강을 줘야지.”

흥얼거리며 이명환이 와서 컵을 내밀었고, 박수호 옆에 있는 생수통에 물을 따라 주었다.

이명환과 차인호까지 물을 마시자, 박수호는 다시 서류를 뒤적였다.

“대출을 받으셨던데, 이건-”

“아내 가게 새로 내는 데 쓴 돈이 조금 들어간 겁니다. 그것도 고금리라고, 친척들이 한두 푼 모아줘서 갚은 지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됐습니까.”

“경위님이 생각하기엔 누가 범인인 거 같습니까?”

“내가 어찌 압니까. 나는 그... 여자랑 헤어진 지 이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 뒤로 보지도 못했다 이 말입니다.”

“흠...”

박수호는 물을 다시 한 번 더 마신 다음 입을 열었다.

“아무리 피해자가 멧돼지가 친 거 같다는 말했지만, 형사 근무도 이 년 정도 하신 분이 저도 간단히 발견한 증거물을 발견하지 못한 건-”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 도봉서 강력팀에 일하는 형사 잘못 아니오! 그자가 멧돼지에 당했다는 말에 득도 없는 사건 하나 걸렸다고 투덜거리더니, 대충합시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담당 형사가 총괄하고 그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아무리 담당 형사가 관할한다고 해도, 애초에 구급차가 떠난 후, 얼마간에 시간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구비된 기초 장비를 착용하고 돌면 되는 건데, 설마 그런 교육도 다 까먹은 신 겁니까?”

“아우~”

자신의 가슴을 친 그가 눈앞에 있는 물을 원샷한 다음 잔을 세가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쾅.

“이보세요. 형사 양반. 구급차를 타고 그 형사가 바로 와서, 그럴 틈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그럼. 그 뒤에는 다른 주민들도 와서 사진 찍어 가기도 하고, 형사도 한 번 더 찾아오기도 해서, 내가 주변을 조사한 사실이 그 형사 귀로 들어가면 나는 완전히 나가리 되는 겁니다. 이제 곧 은퇴할 형사가 정신 못 차리고 후배 밥상 떼어가려고 한다. 이런 소리 듣게 되는 겁니다. 당신들이 하이에나 소리 듣는 것처럼!”

마지막에 두 사람을 비꼬는 말을 내뱉었지만, 이명환과 박수호 모두 웃으면서 그를 바라봤고, 그 모습에 차인호의 손등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그는 슬그머니 잔에서 손을 떼어 자신의 양손을 책상 아래로 내린다.

물끄러미 눈앞에 상대를 바라보던 박수호는 서류첩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인적사항부터 다시 조사해야겠군요. 이름”

“분명 조금 전에-”

“이름.”

그 뒤로 한 시간은 같은 질문을 했고. 그렇게 모든 용의자 진술을 마치게 되었다.


**

**


삼일 뒤.

도봉산 자현암 근처 도로에서 기자들이 경찰과 쇠고랑을 찬 남자들을 찍는 모습을 한 스님 복장을 한 여성이 지켜보고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의 고운 얼굴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는데, 스님 곁으로 박수호가 천천히 다가왔다.

“스님께서 보기엔 좋지 않은 장면 같습니다. 특히 도혜 스님은 이런 번잡함을 저어하지 않습니까.”

“네. 하지만, 그래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고개를 가로저은 스님이 입을 열었다.

“이미 잊었어요.”

“음... 어떤 마음이셨습니까?”

“어떤 마음이라뇨?”

“자신의 어머니를 자살하게 만든 사람이, 자신의 절로 시주하러 왔을 때, 자신의 며느리를 맡겼을 때, 자신의 눈앞에 죽어가고 있을 때. 그때 마음들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거기까지 알아내셨군요.”

“모든 용의자를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게 저희 경찰들입니다. 안 그러면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들어가니까요.”

“저와 정반대의 인생을 사시는 분이시군요. 그 또한-”

“업이라고요?”

“네.”

“그래서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의외로 화보다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음이 아팠다고요?”

“제가 절로 들어가 버리면서 그 뒤로 계속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쫓아냈더라고요. 제가 조금 더 강하게 법적으로 그리고 주변에 그녀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알리는 등의 행동을 했다면 주변을 덜 아프게 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성급하게 들어오는 바람에 그 업을 제대로 씻겨내지 못한 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속세인의 생각이 남아있는 것과 과거를 잊지 못한 저에 대한 부족함이 느껴졌습니다. 아직 수행 부족이겠죠...”

“그래서 더 깊숙한 절로 들어가신다는 거였군요.”

“네. 그리고 범인이 죽이려고 하진 않았을 거예요. 아마 가지고 있던 게 멧돼지 뿔밖에 없어서, 그걸로 공격한 걸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그 뒤로 공격한 흔적이 없으니까요. 단 한 번의 공격에 겁을 먹고 도망갈 정도의 한... 과연 사람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많은 피를 흘렸지 않습니까.”

“우연히 핏줄이 터진 거예요. 그녀가 디스크 환자라서 수술을 했다는 것도 몰랐을 거고, 옷에 속에 척추 라인이 휘어져 있었다는 것도 몰랐겠죠. 피도 빠르게 흘리기보단, 천천히 흘러내렸고요. 디스크가 아니었다면 피해자도 일어나거나 전화를 했을 텐데, 보니까 그녀 전화기도 어디다 놔두고 오셨는지 없었어요. 아마 순간 충격에 의해 마비가 살짝 와서 쓰러져 있었을 겁니다. 그걸 모르는 범인은 그냥 한 대만 툭 치고 무기를 버린 채 도망쳤을 거예요. 그게 공교롭게도 자신이 담배 피운 자리로 날아간 거겠죠. 안 그래요?”

박수호는 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죠?”

“제 뺨을 치고도 남을 정도의 추리라서요.”

그의 말에 도혜 스님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듣는 농담이네요.”

“진심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범인이라고 특정하기는 힘들었을 텐데요.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건...”

말을 흐리며,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도혜 스님의 모습에 그는 싱긋 웃었다.

“다시 환속하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도혜 스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농담도-”

“농담 아닙니다.”

“정말요?”

“네.”

대답하고서 몸을 돌려 자신의 차로 걸어가는 박수호의 뒤를 도혜 스님이 뒤따랐다.

“정말로 안 알려 주시나요?”

“죄송하지만 재판 끝나기 전까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재판 끝나면 알려드릴 테니, 어디 가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편지 보내겠습니다.”

“음... 그럼... 제가 갈 곳이...”


작가의말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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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파일3# 돌고 돌아 제자리(2) +1 19.07.11 474 14 20쪽
102 파일3# 돌고 돌아 제자리(1) +2 19.07.10 475 13 11쪽
101 파일2# 금정산 연쇄 실종사건(4) +5 19.07.09 469 12 24쪽
100 파일2# 금정산 연쇄 실종사건(3) +1 19.07.08 437 12 18쪽
99 파일2# 금정산 연쇄 실종사건(2) +1 19.07.06 459 15 15쪽
98 파일2# 금정산 연쇄 실종사건(1) +1 19.07.05 495 11 13쪽
97 파일1# 전환점(4) +1 19.07.04 474 11 13쪽
96 파일1# 전환점(3) +1 19.07.03 466 13 17쪽
95 파일1# 전환점(2) +1 19.07.02 495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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