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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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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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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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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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7# 좋아진 세상(1)

DUMMY

114

**

좋아진 세상.

**


2004.12.11.

영하까지 떨어진 온도에 강한 바람으로 출근길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며 인도를 지나가고 있을 때, 그 옆에 있는 공사장 사람들은 육십 년 된 건물을 철거하는 중이었다.

이 층짜리 건물이라서, 이톤 굴착기 한 대가 옥상에 올라가 건물을 부수고 있었다.

마흔여섯 먹은 이강호는 굴착기만 이십 년 동안 몬 베테랑으로 실력자들만이 할 수 있다는 건물 위 철거를 전문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좀처럼 부서지지 않는 벽과 기둥을 보고 감탄했다.

“튼튼하게 지었네. 요즘 건물보다 철근 두께도 두껍고 많아. 하긴 그러니, 다른 건물은 다 철거되고 혼자서 사십 년 버틴 거겠지.”

중얼거리며 구석진 곳 이층 바닥을 제거하는 와중에 이상한 걸 발견하고 황급히 기계를 멈추었다.

“저게 뭐야?”

불법 증축이라고 보기에는 철근이 하나도 없이 이질적인 콘크리트로 마감된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마대 자루가 발견된 것이었다.

그는 건물 아래에서 안전사고에 대비해 굴착기 아랫부분의 기둥들을 살피고 있는 부사수에게 무전기로 메시지를 보냈다.

“김씨~! 저기 이층 외벽에 이상한 게 있는데 확인해 줘!”

-오케이.-

간혹 오래된 건물에서 폭발물이나, 인화성 물질을 건드려서 화재가 일어나는 예도 있어서, 예상치 못한 물건을 발견하면 무조건 확인부터 하는 게 정식 절차 중 하나였고, 당일 안전요원을 맡은 마흔두 살의 김장민이라는 사람이 그가 바라보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어어억!”

굴착기 안에 있는 자신에게도 들릴 정도로 큰 비명과 함께 김씨가 물러나자, 그는 황급히 굴착기에서 내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김씨! 괜찮아! 폭발물이라도 발견한 거야!”

그의 외침에 김장민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들어 마대 자루를 가리켰다.

“저. 저기... 시. 시체가 있어!”

“뭐?!”

놀란 눈으로 변한 그는 미리 옆에 세워둔 사다리를 이용해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자신이 발견한 마대 자루로 달려간 그는 그 안을 보고 얼어붙었다.

“억!”

백골 하나가 퀭하게 뚫린 눈 속에서 지네가 기어 나오는 걸 발견한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

아현동 시신 매장 사건.(2004.12.11.)

피해자 – 김잎새(16) 151cm 43kg(추정). 가출(2000.07.31.) 후, 실종 처리되었다가 사 년 만에 발견되었고, 동생이 그녀가 가지고 나갔다고 말한 소지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가출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서울 마포경찰서. 3층 임시 사무실.

교복을 입고 밝게 웃고 있는 한 여자아이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김선애에게 이명환이 다가왔다.

“피해자 사진 보고 있었어?”

“네.”

“언제까지 존댓말 쓸 거야.”

“죄송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계속 이럴 겁니다. 그게 저와 다른 분들 모두에게 좋아요.”

그녀의 말에 울상을 지은 이명환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래... 알았어. 네 맘대로 해.”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진은 왜 보고 있었어.”

“제 옛날 생각이 나서요.”

그녀의 말에 이명환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김선애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괜찮...은 거지?”

“네. 이젠 이런 사진 봐도 멀쩡하잖아요.”

“음...”

“만약 이때 수호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이 아이도 살았겠죠?”

“아무래도 그랬겠지. 그 녀석이 그런 냄새는 귀신같이 잘 맡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 사건은 해결했을 텐데.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실까요.”

“지금이라도 찾아드리면 되니까. 잘해 보자고.”

“네.”

이명환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안 온 거야?”

“사건 파일 보자마자, 공사 현장에 있던 분들에게 진술받으러 인제로 내려갔어요.”

“인제?! 거긴 왜 가.”

“그곳에 공사를 수주받아서 갔다고 하더라고요. 당분간 서울로 올라오기 힘들다는 말에 바로 그곳으로 가셨어요.”

“진짜, 두 사람 행동력은 못 따라가겠다니까.”

“늦은 만큼, 서둘러야 증거를 더 잡을 거 아녜요.”

“그건 맞는 말이지.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뭐야?”

“팀장님이 저랑 검사님과 함께, 취조실에서 피해자 가족이랑,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사람들의 진술을 받아 놓으라고 하셨어요. 필수 질문 두 개는 무조건 하고 나머지는 감대로 하라고 하셨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그녀가 말하면서 서류 한 장을 넘겼고, 이명환이 그것을 받아 내용을 확인했다.


1. 피해자가 사라진 날 어디서 뭘 하셨습니까?

2. 그리고 그걸 확인해 줄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거야 당연히 물어보는 건데... 그래서 언제부터 하기로 했어?“

”피해자 가족들은 근처에 살고 계셔서 아홉 시에 맞춰 오신다고 했고, 나머지 용의자는 퇴근 시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했어요.“

”극과 극이네.“

”중간 비는 시간에는 박수호 경사님이 국과수에 가서 부검 기록 소견을 다시 한 번 더 받으라고 했으니까, 빠듯할 거예요. 어?“

”왜?“

그녀가 이명환 뒤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김잎새님 어머니 되시죠?“

이명환이 돌아본 곳에는 검은색 패딩을 걸친 주름이 깊은 여인이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다.

”취조실은 저를 따라 오시면-“

그를 스쳐 지나간 그녀가 김선애마저 지나갔고,

”어머니. 어디-“

”취조실 가시는 거예요. 그러니 놔두세요.“

그들 뒤에서 나타난 이십 대 여성의 말에 두 사람은 잡지 못하고 놔두게 된다.

여성 말대로 그녀가 취조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가자, 단발의 검은색 코트 차림의 단아하게 생긴 여성이 이명환에게 다가와서 명함을 내밀었다.


-서울지검 형사부 소속 김꽃잎 검사-


”이명환 검사님 만나서 반갑네요.“

”어이구, 저와 같은 검사님이군요.“

”저 기억 못하시나 봐요?“

”네?“

이명혼의 반문에 그녀가 싱긋 웃었다.

”동긴데.“

”아... 그래...요?“

”삼 등 되어서 판사 할 줄 알았는데, 검사하신 이명환님이 중간 순위이자 나이도 많이 먹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겠죠.“

”에이. 그런 말씀은 굳이-“

”뭐. 지금은 제가 더 좋은 라인을 타고 있지만요.“

그녀의 말에 얼굴이 굳어진 이명환이었고, 그런 그를 보며 다시 한 번 더 싱긋 웃은 그녀가,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는 김선애에게 고개를 돌렸다.

”용의자들은 온다고 했나요?“

”다들 각자 생계가 있어서, 오늘 아니면 내일, 또는 시간이 더 지나야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똑같네요. 그리고 사건 해결도 못 하는 것도 같을 거고요.“

그녀의 말에 김선애의 얼굴이 굳어진다.

”저기 죄송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고 하시면-“

”애초에 경찰이 실종 신고를 그날 받아줬다면 범인이라도 찾았을 거고, 우리 가족들이 종종 공을 노리는 경찰들에 의해 몇 년마다 찾아오는 연례행사처럼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었겠죠.“

김선애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자, 이명환이 두 얼굴 사이에 손을 넣어 휘저었다.

”훠이. 훠이. 같이 범인 잡아넣어야 하는 사람들끼리 싸우면 범죄자들만 좋아하는 겁니다. 비효율적인 행동은 그만들 하고,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양쪽 모두 본연의 신분으로 돌아가 주세요.“

그의 말에 김선애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지만, 김꽃잎은 황당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이 자리에 검사가 아니라 피해자 가족으로 있는 거예요. 피해자 가족이 대처가 미흡했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범인을 찾지 못한 경찰에게 한풀이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런 한풀이도 못 받아주고 발끈하는 경험 없는 여형사가 수사에 참여하고 있으니... 뭐. 이번에도 실패하겠네요.“

그녀의 말에 발끈한 김선애가 입을 벌리려는 순간, 이명환이 굳은 얼굴로 김꽃잎에게 먼저 말했다.

”김꽃잎 검사. 이런 식으로 수사 방해하는 것도 범죄입니다.“

”수사 방해라뇨? 피해자 가족들은 한풀이라도-“

”한풀이 대상이 잘못됐지 않습니까. 잘못 수사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저희는 서장님이 직접 수사를 요청해서 지원 나온 사람들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저희에게 공이 아닌 과가 될 수 있는 사건을 맡자고 주장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김선애 경장입니다.“

”그래서요? 제가 고마워하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그녀의 비꼬는 말투로 내뱉은 질문에, 이명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당신들이 아닌, 제게 화풀이하는 겁니다.“

뒤에서 들려온 중후한 목소리에 세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고, 오십 대의 회색 정장을 입은 남성을 본 이명환과 김선애는 자세를 바로 했다.

”서장님 오셨습니까.“

김선애가 경례하자, 경례를 받아준 서장이 굳은 얼굴의 김꽃잎을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꽃잎아 내가 수사를 제대로 못한 거지, 이분들은 아니잖니.“

그의 말에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사건 담당 형사님이 서장님이셨습니까?“

이명환의 질문에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맡았지만 잡지 못했습니다. 주변에서 빨리 사건 넘기라는 압박에 그만... 제 과오 중 하나지요. 그 이후로 저보다 감이 좋은 형사들에게 맡겨서 해결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실패만 거듭하다가,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맡긴 겁니다. 이제 일 년 뒷면 제 임기도 끝나면서 동시에 은퇴하니... 그 이후로는 아마 다른 형사들은 맡지 않을 거고. 그러니 꽃잎아.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해보자. 응?“

그의 애절한 눈빛을 고개를 옆으로 돌려 피한 김꽃잎이었고, 이명환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원래 잘 아는 사입니까?“

”옆집 살았습니다.“

”아...“

”아무튼 꼭 좀 부탁드립니다.“

서장이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고, 두 사람과 악수를 한 뒤, 김꽃잎 앞에 다가온 서장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 검사. 협조 부탁해.“

하지만.

”들어가 있을게요.“

김꽃잎은 그를 무시하고 취조실로 움직였고, 멋쩍은 미소와 함께 손을 거둔 서장은 두 사람에게 몸을 돌렸다.

”경찰서 내 인력 전부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명을 내렸으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말을 남기고 바로 몸을 돌린 서장이 사라지자,

”서장님이 실패한 사건인 건 몰랐네.“

”그런데, 우리들보고 사건 내밀 때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잖아요.“

”아마 맡을 의지가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었겠지.“

”아무튼 꼭 범인 잡아요.“

”범인 잡아야 하는 건 당연하잖아.“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이번엔 꼭 잡아야겠어요. 잡아서, 검사에게 당당하게 말할 거예요.“

”뭐라고?“

그의 질문에 김선애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사과해 라고요.“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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