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았나?
한편 강호가 가카니로 가는 동안 방 안에서 홍차를 마시고 있던 치카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봄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는군요.
"왜 그래? 힘든 일이라도 있어? 요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애매하다 싶어서요."
"뭐가 애매한데?"
"전쟁 결과 말이에요.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라니. 제가 예상했던 상황 중 최악의 상황이에요. 이래서는 결혼할 상대를 고를 수가 없잖아요."
"그래? 그럼 우리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면 되지 않아? 다른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나름 전력은 충분하잖아."
"그러기도 애매한 상황이거든요. 뭔가 부족해요. 제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정말로 곤란하다는 듯이 말하는 치카의 모습에 봄아는 무심코 웃어버렸답니다.
그러자 치카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어보는군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건가요?"
"아니, 치카도 그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구나 싶어서 말이야. 계획이 완벽하게 어긋나 버린 거야?"
봄아가 장난스럽게 쳐다보자 치카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답니다.
"... 맞아요. 완벽하게 실패했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정적인 한수가 모자라네요. 저도 결국 단순한 꼬맹이였던 걸까요? 아버지를 뛰어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완벽한 가족을 만들고 싶었는데.'
"내가 미안해. 삐지지 마."
봄아가 재밌다는 듯이 치카의 볼을 쿡쿡 찌르고 있자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병사 한 명이 들어오는군요.
"실례하겠습니다."
"실례할 거면 돌아가."
"네?! 네, 죄송합니다."
"봄아, 괴롭히지 하세요. 무슨 일이죠?"
"성문에 있던 경비병이 수상한 녀석들을 발견했습니다. 이름은 새화랑 베타라고 하는데 치카님을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병사의 말에 치카는 홍차를 마시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답니다.
'베타라면 매치네에 있던 휴머노이드를 말하는 건가요? 새화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만나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다면 평범한 일은 아니겠지요. 상대의 목적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만나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데려오세요."
"알겠습니다."
병사가 나가자 봄아는 뚱한 얼굴로 입을 여는군요.
"괜찮은 거야? 타이밍이 미묘한데. 암살자일지도 몰라."
"상관없어요. 만약 암살자라고 해도 봄아랑 미성이 있으니까요."
치카의 대답에 봄아는 주위를 둘러봤답니다.
그러자 장식물처럼 서있는 미성의 모습이 보이는군요.
"그러고 보니 미성이 있었지."
"설마 몰랐던 건가요? 언제나 제 옆에 있었는데."
치카가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자 봄아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답니다.
"미성이 있으니 든든하네. 류드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언제까지 키미랑 단아를 찾을 생각인 건지. 슬슬 포기하는 게 좋지 않아?"
"노골적... 아니요. 됐습니다."
치카가 실망한 표정으로 홍차를 마시자 봄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군요.
"내가 미안해. 화 풀어."
"화 안 났어요."
봄아가 삐진 치카를 달래고 있자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병사들이 강호랑 베타를 데려왔답니다.
치카는 강호를 보더니 표정을 바로잡으며 병사들에게 말하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밖에서 대기하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위험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병사들이 나가자 치카는 홍차를 따르며 말했답니다.
"가만히 서있지 말고 앉으세요."
두 명이 자리에 앉자 치카는 강호를 쳐다보는군요.
"몰랐어요. 언제 이름이 새화로 바뀐 건가요?"
"최근에 바꿨어요."
"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시간이 없으니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저는 네 나라를 지배할 겁니다. 그리고 이미 아루로랑 인전터는 저에게 항복했습니다. 이제 가카니랑 기얼크만 항복하면 제 계획이 완성됩니다. 협력해주시겠습니까?"
강호의 말에 치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답니다.
"헤에... 그러니까 당신에게 복종하라는 말인가요?"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요. 역시 어린 나이에 가카니를 다스리는 황제답군요."
"제가 이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하하하,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걸요?"
"어머, 자신만만하시군요. 그런 태도도 싫진 않지만 정말 중요한 걸 한 가지 잊고 계시네요. 여기는 호랑이 뱃속이랍니다."
치카의 말이 끝나자 미성이랑 봄아는 무기를 뽑으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두 명을 노려보는군요.
하지만 강호랑 베타는 미성과 봄아의 행동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답니다.
강호가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자 치카는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여는군요.
"상당히 느긋하시네요. 최강의 검이라고 불렸던 미성과 봄아 그리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을 물리치고 탈출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신기, 부탁할게."
"알았어."
베타가 총을 발사하자 순식간에 치카의 옆에 있던 창문이 깨져버렸네요.
창문이 박살 나자 치카랑 봄아는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답니다.
'빨라.'
"우와, 혼자 치트키 쓰고 있네."
총성 소리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안으로 들어왔지만 강호는 태연한 표정을 입을 여는군요.
"치카님! 무사하십니까?"
"굉장하죠? 저는 충분히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치카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불가능할 것 같나요? 정 못 믿겠으면 목숨을 판돈 삼아 도박이라도 해볼까요? 저는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다에 걸겠습니다."
강호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자 치카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답니다.
"꺄하하하!"
"응?"
"치카?"
한참을 웃던 치카는 상쾌한 얼굴로 대답하는군요.
"좋아요. 항복하겠습니다."
"에? 진짜로?"
봄아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치카를 바라보고 있자 강호가 홍차를 마시며 웃었답니다.
"현명한 판단입니다. 시간을 잡아먹지 않아서 좋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시간도 없으니 바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시간은 금이니까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시간이 없군요. 아직 기얼크가 남아있거든요.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그런가요. 아쉽네요."
"아, 혹시 여유가 있다면 제 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약해진 벌레들을 짓밟는 간단한 일입니다만."
"그러죠. 이동요새를 움직여야 하니 방에서 기다려 주실래요?"
"알겠습니다."
"아, 새화."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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