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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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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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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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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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DUMMY

도대체 얼마만에 깊은 잠을 자는 것일까?


지난 여정 동안 잠을 못잔 것은 아니었지만 야외에서 숙영하는 것과 실내에서, 그것도 푹신한 침구 위에서 청하는 잠은 확실히 다르긴했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쌓인 여독 탓인지 이자벨은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고, 그렇게 카니엘은 처음으로 그녀보다 일찍 일어나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불을 감싼채 웅크린 모습.

그 때문에 금발의 머리칼은 부채꼴 모양으로 침대에 펼쳐진 채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였고, 마찬가지로 갸르스름한 얼굴 또한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항상 숙이거나 반쯤 가린 얼굴만 봐왔던 탓일까?


그렇게 기회가 주어지자 카니엘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큰 눈망울을 덮은 엷은 눈꺼풀과 그 아래 오똑한 코, 그리고 조그맣고 얇은 입술 그 하나 하나를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옅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그녀가 깨어나려하자 깜짝 놀라며 뒤로 침대 모서리 끝으로 물러났다.


그렇게 벨리안느는 익숙치 않은 개운함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지만 그와 동시에 이곳이 어딘지 몰라 허둥거려야 했다.

당황속에서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던 그녀는 그러다 맞은편 침대에 앉아 있는 카니엘과 눈이 마주쳤고, 그에 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아...”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나 보네.”


“······”


좁은 공간에 단 둘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도 놀랄만큼 무방비스러운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었을까?


이유야 무엇이든 익숙치 않은 이 상황 자체에 부끄러움을 느낀 벨리안느는 반사적으로 이불을 몸쪽으로 끌여들였다. 그리고는 시선을 내려깐 채 어떻게 자신이 이 방에서 잠들게 되었는지 차근차근 되새기기 시작했다.


“왠지 미안하네. 들고 있던 돈이 얼마 없어서.. 아니었음 별도로 방을 잡았을 텐데.”


그랬다.

머쓱해하는 카니엘의 말대로 이른 아침에 노빌리스크에 도착한 두 사람은 미드갈에게 수고비를 지불하자 돈이 부족해졌고, 어쩔 수 없이 한 방에서 함께 머무르기로 한 것이었다.


“아.. 아냐. 어쩔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 비용 지불에 동전 한푼 보탤 수 없었기에 벨리안느는 그렇게 대답하는 것 이외 불평을 일절 가질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피로는 풀렸는데 배고픔은 가시질 않네. 사실 난 배고파서 눈이 떠졌다니까.”


공간의 힘이란.

단지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져있고 그 안에 침대 두개가 놓여있을 뿐인데, 초원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것보다 몇배나 어색한 분위기가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씻을 생각도 못하고 쓰러져 잠들었었네... 그럼 일단 씻고 간단히 식사를 한 이후에 근처를 돌아다니며 벨로나의 행방을 찾아볼까?”


때문에 카니엘은 어떻게든 침묵에 빠지지 않도록 생각나는대로 말을 건넸고, 벨리안느 또한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침묵을 물리치고자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다음 할 일이 정해지자 지체 없이 일어난 카니엘이었으나, 한가지 생각치 못한 사실 하나가 있었다.


단칸방짜리 방에 씻을 공간이 따로 있을리 만무했고, 다만 침대 맞은편 몇 걸음 앞에 칸막이 하나와 그 뒤에 놓여 있을 욕조 하나가 욕실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그럼 누가 먼저..?”


자신이 멍청한 질문을 했다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카니엘은 이자벨의 지목을 받았고, 그녀의 상스러운 말을 들은 듯한 착각 속에 허둥지둥 욕조를 향해 걸어갔다.


몇 걸음만에 칸막이 넘어에 도착한 카니엘은 예상대로 자신의 몸통보다 더 큰 양동이에 물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물을 퍼다 나를 작은 양동이 하나와 배수구와 연결된 좁은 욕조 하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이 열악한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이성 앞에서 칸막이 하나를 두고 씻어야하는 난생처음 겪는 상황 때문인지 의문을 가진 채, 우선 땀에 절은 윈옷을 벗어던진 순간이었다.


“미..미안.. 자.. 잠시만.”


갑작스러운 인기척과 함께 이자벨이 뒤에서 등장했고, 카니엘은 별의 별 망상이 펼쳐지는 것을 애써 자제하며 재빨리 그녀를 등지고 섰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이자벨은 바라본 그는 그녀가 눈을 질끈 감은 채 큰 양동이에 손을 담구고 서있을 뿐이라는 사실에 큰 물음표를 띄우며 한 편으로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낄 때였다.


“됐어.”


의미 불명한 그 짧은 말을 남긴 뒤, 이자벨은 등장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이불을 뒤집어쓴 것인지 침구류 소리가 크게 펄럭이더니, 곧 방안은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어안이 벙벙해진 카니엘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어서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신속히 탈의한 뒤 작은 양동이로 물을 퍼올려 몸에 끼얹었다.


그렇게 물살을 맞이한 그 순간, 카니엘은 이자벨의 좀 전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었다.


근 몇 개월만에 겨울을 품은 찬물이 아닌, 기분 좋을 정도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된 그는 이자벨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그러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던 얼굴과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을 그녀의 지금 모습을 상상하자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


샤워를 끝낸 카니엘은 이자벨이 샤워를 할 동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다릴 생각은 없었기에,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1층에 위치한 여관홀로 내려온 상태였다.


개운하게 묵은 때를 씻어내고, 여벌의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은 상태였기에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고, 여기에 배고픔만 해결된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싶을 정도였다.


때마침 주방에서 달콤한 음식 냄새가 카니엘의 코를 자극했고, 결국 그 냄새와 전투 식량에 죽어버린 줄 았았던 식욕의 합세로 한푼이라도 아껴야할 지갑을 열고만 그였다.


그렇게 카니엘은 우선 탄산수 2잔을 시킨 뒤, 들뜬 마음으로 적당한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차림판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그 결정을 도와줄 이자벨의 인기척이 2층에서 들려오자 고개를 올려다본 그는 왠 낯선 여인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에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이자..벨?”


아니, 다른 사람이라 착각했던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놀랄정도로 많은 것을 변화시킨 이자벨이었다.


밝은 금색을 넘어 선분홍색처럼 보일 정도로 생기 넘치는 머리칼.

그리고 가뜩이나 도드라졌던 하얀 피부는 아예 만월의 달빛처럼 맑고 투명한 빛을 띄고 있어 화사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여기에 헤지고 찢어져 성한 곳이 없던 펑퍼짐한 로브 대신 발목까지 오는 연두색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때문에 알지 못했던 벨리안느의 몸맵시 마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머리... 다듬었네?”


분주하게 시선을 오가느라 뒤늦게 그녀가 상한 머리카락을 어깨 길이에 맞춰 잘라냈다는 것을 깨달은 카니엘은 그렇게 겨우 한마디를 건넸다.


“응.. 혹시 음식을 시켰어?”


정작 본인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그 말에 카니엘은 정신을 차리며 얼른 적당한 가격의 음식을 시켰고,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나름 생각해둔 일정을 재빨리 말하기 시작했다.


“밥 먹은 후에 일단 여기에 있는 여관들에 들러서 벨로나 단장님의 소식을 찾아볼까 해. 애초에 이곳에서 카릿치오스로 갈 채비를 갖출 예정이었으니 하룻밤 정도는 묵으셨겠지.”


“음.. 그리 쉽진 않을거야.. 숙박 손님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 이곳 여관의 암묵적인 규칙이라.”


“정말이야?”


짧은 긍정의 끄덕임.


“역시 방랑자의 도시 노빌리스크 답다고 해야 하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계획 첫 단계부터 막힌 카니엘은 손을 깍지끼며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런 그를 내버려 둔 채, 벨리안느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주변을 힐끗힐끗 둘러보았다.


다행히 밤을 새워 마신듯 구석에 쓰러진 취객 이외 1층 홀은 한적했고, 때문에 정체를 들킬 염려는 없다고 안심할 때, 여관장이 음식을 들고 주방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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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21.05.17 38 0 8쪽
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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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2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119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4 1 10쪽
11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61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5 1 12쪽
116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2 1 9쪽
115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2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4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6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7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6 2 9쪽
110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4 2 10쪽
109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5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2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8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9 2 7쪽
»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9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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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99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2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97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5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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