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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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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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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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DUMMY

아니나 다를까.

아르센이 벨리안느에게 한발짝 다가선 순간, 마치 절벽이 땅에서 솟아나듯 거대한 마력 기운이 그녀의 주변을 성벽처럼 둘러싸는 것이었다.


“벨리안느....”


언제라도 실체화되어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수 있는 그 기운 앞에서 아르센은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 없어, 물러서.”


“이럴 필요 없잖아. 오랜만에 만났으니...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데.”


“도대체... 도대체 왜 찾아 온거야?”


벨리안느는 잠시 짧은 숨을 들여 쉬고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9년... 9년만에 도대체 왜?”


“보고 싶었다...라고 말하면 믿을 수 있겠어?”


그의 말에 벨리안느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으나 곧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넌 인형이야. 목적이 있어야해.... 그런 감정적인 말...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분명히 마법연계 때문에 날 찾아왔겠지. 너도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을 테니까. 그러니.. 더 이상 불필요한 말은 하지 말자.”


한층 더 냉랭한 말투와 주변 모든 마력을 끌어 모을듯한 마력 집중.

그렇게 벨리안느의 공격적인 태도는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고, 때문에 아르센은 한숨과 함께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런 이유도 있어. 하지만..”


“됐어.”


그 말에 벨리안느는 마지막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르센이 마법 연계를 전혀 모르고 있다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 이유만으로 너의 지금 모든 행동들이 설명 가능해.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인형이니까.”


“벨리안느....”


“마법연계에 대한 거라면 네 생각이 맞아. 내가 마법을 쓰지 않으면 너는 물론이고 인형들 전체가 마법을 쓰지 못하겠지.”


그 누구보다 인형을 잘 아는 벨리안느였고, 그런 그녀로부터 탄생한 아르센이었기에 어느새 이야기는 인형끼리 나눌법한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너와 나의 마법연계가 그런 것이었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마저 공유되고 통제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데.”


“연계라니? 애초에 너는 내 능력을 훔쳐 쓴 것뿐이야. 물론 그 훔치는 능력도 내가 가르쳐준것 뿐이고.”


벨리안느가 일부러 큰 목소리로, 그리고 살짝 비꼬는 웃음을 띠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진작에 이 사실을 알아차려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네 소꿉놀이를 진작에 끝낼 수 있었을텐데.”


“소꿉놀이?”


“그래! 실현될 수 없는 네 허상에 나뿐만 아니라 인형들 전체가 놀아나고 있으니 그게 소꿉놀이가 아니고 뭐야?”


“그..말 진심이야?”


“진심이든 아니든 그게 사실이잖아, 아르센. 아니라면 노빌리스크에서 함께 있던 그 인형들.. 그들이 어찌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


아르센은 어쩌다 자신의 의도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대화를 나눌수록 벨리안느가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만은 확실했고, 때문에 그는 저도 모르게 다시금 그녀를 향한 발걸음을 떼게 되었다.


“벨리안느... 유포레아스 공화국으로 가자. 공화국의 목적을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오직 우리들만이 네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명백하잖아.”


“네 소꿉놀이를 위해 또 다시 수많은 희생자들을 만들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혀란 말이야? 지금.. 그걸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우리와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마법연계로 네가 유포레아스 공화국에 걸림돌이 된다면... 난 널 죽여야 해.”


“그럼 뭘 망설여? 죽이면 되잖아.”


일말의 망설임 없이 튀어나온 벨리안느의 말.

그 말의 충격에 아르센은 물론 벨리안느 또한 잠시 침묵해야 했다.


“네가.... 늙어죽던 병으로 죽던 혹은.. 다른 이유로 죽던, 넌 세상을 떠날 것이고, 그때면 우리는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어짜피 일어날 일을 위해 평생 도망치며 살바에 우리와 함께하자. 다시.. 둘이 함께...”


“시끄러워. 더 이상 그런 이야기는 하지마. 난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죽어도!”


벨리안느의 외침은 갑자기 울려퍼진 굉음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굉음과 동시에 눈깜짝할 사이에 시전된 마법으로 그녀의 의도는 명백히 전달되었다.

그렇게 짐승의 손톱과 같은 마법이 코 끝을 스쳐 땅에 길다란 상처를 남기는 것을 목도한 아르센은 그녀가 자신을 죽일 각오로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유포레아스 공화국의 멸망을 바라는거야? 벨로나를 찾아 다니는 것도.. 우리가 마법을 쓸수 없는틈을 타서 쓸어버리기 위함이니?”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아르센이 반대로 그렇게 소리치자, 이번에는 벨리안느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벨리안느... 네가 원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였어? 인형과 인간이 공존하는 그런 사회 아니었어? 물론 우리와 함께한다고 그런 사회가 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네 손으로 우리들을 멸망시키는 것보단 낫잖아.”


어느덧 자신이 설정한 한계 범위까지 다가온 아르센을 묵묵히 내려보며, 벨리안느는 자신이 되돌릴 수 없는 갈림길에 서 있음을 깨닫고는 짧게 숨을 들여쉬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 녹아있는 긴장감.


그 호흡에 예민해진 감각에 더욱 날이섰고, 그렇게 아르센의 몸에 순간적으로 마력이 빠르게 흐르는 것을, 그리하여 그가 신체 향상을 한 채 돌진해 올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 찰나에 내려진 결정.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카니엘의 얼굴.


“끝을 내야 한다면 끝을 내겠어!”


의미 심장한 벨리안느의 외침에 아르센은 마치 주술에 걸린 듯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말았다.

하지만 어떤 마법이 실체화 된 것은 아니었고,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에 의아하던 아르센은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마력 흐름을 감지하고 소름이 돋고 말았다.


벨리안느는 애초에 모았던 무지막지한 마력 흐름을 더욱 가속하여 상식 밖의 마력 흐름을 만들어 냈고, 그렇게 형성된 마력구가 신체 향상 효과마저 흡수했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실 물질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질서마저 무시 한채, 마력구는 주변의 흙과 식물들을 집어삼키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아르센은 어떤 저항마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저 거대한 마력을 근원으로 마법을 구현한다면 현 상황을 타파할 수 있긴했다.


하지만 그 행위는 가득찬 기름통에 불씨를 던지는 것으로, 마력 규모를 생각한다면 이 일대가 초토화되어 두 사람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설마.. 그것이 벨리안느가 바라는 바 인가?


“벨리안느... 이럴려고 내가 찾온게 아냐. 그러니까...”


상황이 극으로 치닿자 아르센은 어떻게해서든 말로서 풀어가고자 했으나, 벨리안느의 표정은 더욱 굳어질 뿐이었다.


“너와의 관계는 9년전 끝났으니 다시는 날 도구로 사용할 생각말고 돌아가! 두 번 말하지 않겠어.”


“도구라니... 그런..”


“그렇다면 왜! 왜.. 지금에서야 나타났냐고.. 왜..”

벨리안느가 소리치다가 말끝을 흐렸다.


“많은 시간이 있었잖아.. 9년이라는.. 정말이지...”


9년간의 절대적 고독.


비록 태어났을 때부터 철저히 고립되었던 벨리안느였지만, 9년 간의 고독은 그런 그녀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혼자 대륙을 떠돌면서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알아? 그 보다도..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 그들의 분노를 혼자 짊어지며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심정이 어땠는지 알아? 그러니.. 아르센.. 제발!”


결국 눈물 한줄기가 벨리안느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렸다.

그렇게 벨리안느의 감정이 흔들리자 그녀의 집중력 또한 일순간 흐트러졌고, 그 틈을 타 아르센은 재빨리 마력구의 범위에서 벗어나 뒤로 물러섰다.


다시금 떨어져 서로를 마주본 두 사람.


“좋아, 벨리안느. 그게 네 뜻이라면..”


벨리안느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마력구의 힘에 의해서 증발하듯 사라진 상태였고, 메말라 버린 그녀의 눈동자에는 오직 분노와 결의만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다시 만나면.. 우린 적이겠지...”


그렇게 이것이 결론이란 것을 깨달은 아르센은 뒤로 한 발짝 더 물러나며 마지막으로 벨리안느와 눈을 맞췄다.


서로를 닮은 갈색눈.

그러나 시간이 멈춰버린 아르센의 것과 달리 벨리안느의 눈동자 속에는 9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고, 결국 두 사람은 그 공백을 채우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럼... 그때까지 안녕히.”


그 말을 끝으로 아르센은 벨리안느를 등졌고, 그 어떤 뒤돌아봄 없이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그렇게 아르센의 모습은 벨리안느의 시야에서 멀어져갔고, 끝내 그녀의 마법 감지 범위 밖으로 사라졌다.

그제서야 벨리안느는 온몸에 주고 있었던 힘을 뺄 수 있었고, 마력 집중에 곤두세웠던 감각들도 누그러뜨릴수 있었다.


“그래.. 이제 된거야.”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한 초원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르센이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힘 없는 발걸음을 어떻게든 이끌어가며 자신이 있을 곳으로 되돌아가려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허물어지듯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토록 바랬던 만남..

9년간 고대했던 만남이 결국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자리였고, 그 사실이 너무나 서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카릿치오스로 가는 길 위에서 벨리안느는 그렇게 한참 동안 서글프게 울었다.


『2권 기다림, 그리고 재회』 끝.


작가의말

드디어 2권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 끝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버프를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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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123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2) 21.04.30 43 0 7쪽
122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21.04.28 41 0 9쪽
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2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4 1 10쪽
11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61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5 1 12쪽
116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1 1 9쪽
115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2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4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6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7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5 2 9쪽
110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4 2 10쪽
109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5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2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7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9 2 7쪽
102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8 2 8쪽
101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5) +1 20.12.02 53 2 11쪽
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99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2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97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4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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