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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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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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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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DUMMY

드높은 하늘을 결승선으로 치솟은 침엽수들과 이에 질세라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다양한 나무들.

수백년에 걸친 그 경주에 지쳐 쓰러진 나무 기둥은 수풀과 이끼들의 밑거름이 되었고, 그 푸른 운동장에는 각종 곤충들이 긴 다리를 뻗으며 목적 없는 발걸음을 뗐다.


그러다 길을 벗어난 곤충들은 새들의 먹이가 되어 하늘로 비상했고, 그렇게 온 숲에 식전 인사말을 지저귀던 새들 또한 맹금류의 날개짓에 울음을 뚝 그친곤 했다.


이렇듯 수만 종의 생명들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카릿치오스.


최북단 레이카네스 산맥과 중부 필멸지를 이어 판앤냐드 대륙에서 사람의 발길이 가장 닿지 않는 장소인 이곳은 그럼에도 경이로운 자연 환경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끊이질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관심에 비해 카릿치오스에 대한 연구는 부족했고, 때문에 학자들조차 고대의 마력 혹은 마법 따위로 이곳 환경을 설명해야 할 정도로 아직 많은 곳이 베일에 쌓여 있었다.


“그러니까 역사 이전의 존재들이 건 마법 때문이란 주장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 한 생물에게 그토록 오래 지속되는 마법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신체향상 마법만 생각해도 감이 잡히잖아?”


그 원인이 무엇이든 카릿치오스의 자연 풍경은 여행자의 발걸음과 마음을 들뜨게했고, 그래서인지 벨리안느 또한 머리 위의 새들처럼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보다 카릿치오스의 풍부한 마력이 생명체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설명이 옳다고 할까? 물론 마력 그 자체가 현실 물질에 영향을 주진 못하지만, 노출 시간이 길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


숨결을 적당히 적시는 습도와 풍성한 나뭇잎에 여과된 따뜻하고 밝은 햇빛.


이 완벽한 환경에 평소 침묵하던 벨리안느마저 입을 열었으니 여정을 떠나기 최상의 조건이라 할 수 있었으나, 한자기 부족한 것이 있었다.


“아무튼 굳이 비유하면 마력은 천연비료 그 자체인 것이고 마법은 인공비료인 셈이지. 그러니 일회성의 인공 비료는 장기적인 영향을...”


그 길을 함께하는 동행자, 카니엘의 침묵.


역시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일까?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환경이었음에도 그 어떤 반응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카니엘의 뒷모습에 벨리안느는 목이 울컥 메이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건가..’

노빌리스크에서 도망쳐 여정을 시작한지 일주일째.

그 동안 카니엘은 여러 번 아르센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으나, 그 때마다 벨리안느는 침묵을 했고, 결국 카니엘이 입을 닫아버리는 지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때문에 어찌보면 벨리안느가 이 침묵을 깨트릴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었지만, 그 열쇠로 열어버린 문 뒤에는 파멸만 있을거란 생각에 쉽사리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수 없는 그녀였다.


“카니엘... 우리 좀 쉬다가자.”

그렇게 이 침묵이 계속 될거라 생각하자 숨이 턱막힌 벨리안느는 그렇게 부탁했다.


“벨로나 단장님과 벌어진 거리를 생각하면 지체할 시간이 없어.”


그러나 평소라면 흔쾌이 승낙했을 카니엘이 그 작은 부탁마저 차갑게 거절하자 벨리안느의 눈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는 것이었다.


“우앗!”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렇게 흐려진 시야가 하나의 작은 사건을 만들었다.

계곡 위에 걸터 있던 꽤 큰 바위를 건너던 중, 덮혀있는 이끼를 제대로 보지 못한 그녀가 미끌어진 것이었다.


자칫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높이에서 떨어진 벨리안느는 그 찰나의 순간 작은 기폭 마법을 시전해 낙폭을 줄였다.

때문에 받은 충격 자체는 크지 않았으나 마법으로 몸이 뒤집히는 바람에 신체 전면부가 계곡물에 빠지고 말았다.


‘...꼴사납네..’


아직 겨울의 마지막을 간직한 계곡물의 차가움보다 부끄러움이 밀려왔고, 이런 추태 아닌 추태를 보인 스스로가 너무 싫어졌다.

동시에 이토록 바보 같은 자신을 버리고 카니엘이 가던 길을 가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단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러자 가슴이 철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벨리안느의 기우였다.


“이자벨! 괜찮아?”


어느새 쏜살같이 내려온 카니엘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계곡물을 헤치며 다가왔고, 그런 그의 얼굴을 본 벨리안느는 크게 안심하며 동시에 이유 모를 눈물을 쏟았다.


“카니엘...”

그를 절대 놓치기 싫었다.

이기적인 마음이었지만 아르센과의 관계를 끝내버린 벨리안느였기에 카니엘과의 관계는 더욱더 망치기 싫었다.


하지만 자신의 원죄는 카니엘과의 사이를 점차 벌려 놓는 듯했고, 그렇게 멀어지는 것이 너무나 무서워진 벨리안느였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고..”


벨리안느는 모든 것을 내팽겨치고 다가온 카니엘을 껴안았다.


“나한테.. 내가 솔직히 말하지 않아서 많이 실망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아직은 솔직히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자신의 원죄가 비집고 올 틈이 없도록 강하게 끌어안은 벨리안느였다.

때문에 그녀의 옷에서 베여나오는 계곡물의 차가움과 살결의 따뜻함 그리고 살결 아래 떨려오는 맥박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던 카니엘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줄 수 있겠어? 이렇게 눈 앞에 사람이 있는데.. 혼자 있는 것처럼..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은 정말이지 더 이상은...”


절대 고독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벨리안느.

다른 사람에게 의지 해본적 없이 홀로 잘 버텨왔음에도 지금 왜 이렇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또한 무엇 때문에 카니엘에게 이토록 매달리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자벨...”


그렇게 당사자도 이해 못할 돌발 행동 앞에서 카니엘 또한 큰 당혹감을 느낌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벨리안느에 대해서 실망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과 별개로 스스로도 유치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태도로 그녀를 대했기 때문이었다.


“너에게 상처 줄 행동을 했다면, 미안해.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너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느끼니까 그렇게 행동을 한 것 같아.”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카니엘.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아니 그 훨씬 이전에 용기가 생긴다면 모든 것을 말해 줄게.”


벨리안느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카니엘은 그녀의 말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만 말해 줄래, 이자벨?”


“...뭔..데?”


“나와 보내는 이 시간... 이 시간은 진실 되게 보내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다른 목적이 있어 나를 속이고 연기하는 것은 아니지?”


카니엘의 말에 벨리안느는 그의 목 뒤로 감은 팔을 풀고선 얼굴을 마주했다.


“아냐, 아냐, 아냐. 연기라니.. 나 그런거 할 줄 몰라. 그리고 내가 왜 너를 속여. 아무튼....”


눈을 동그랗게 뜬채 고개마저 세차게 흔들며 극렬히 부정하는 이자벨.

그런 모습을 바라본 카니엘은 어쩐 일인지 웃음이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와 사뭇 다른 그녀의 모습, 정말로 어린 아이와 같은 그런 행동에 거짓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 알았어. 정말로 언제가 네 입으로 사실을 말해주길 바랄게. 사실 네 정체가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을 진실되게 보내고 있으면 되는 거지만.”


카니엘이 그렇게 말하며, 벨리안느의 두 뺨에 흘러내린 젖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 행동과 좀 전의 말에 벨리안느는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미소를 지었고, 카니엘 또한 그에 화답하여 함께 웃어 주었다.


“아까 쉬어가자고 했지? 그럼 잠시 쉬다가 출발하자.”


“아니. 지금 출발해도 돼. 이제 하나도 안 힘들어.”


좀전의 말까지 흘려듣지 않고 신경써준 것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벨리안느는 그렇게 쾌활하게 대답했으나, 이상하게 카니엘은 뭔가 머뭇거리는 눈치였다.


“...음.. 그래도 옷은 갈아입고 가야 하지 않을까?”


그제서야 벨리안느는 자신이 완전히 젖은 채 카니엘 앞에 서있다는 것을, 더군다나 카릿치오스에 진입하며 갈아입은 얇은 윗옷이 몸에 착달라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 가면서 말리면 돼. 대신!..다 마를 동안 앞만 보고 가줘..”


“.. 알았어.”


벨리안느는 가슴쪽에 들러붙는 셔츠를 손가락으로 집어들어 굴곡이 생기지 않도록 애쓰며 발걸음을 옮겼고, 그녀가 움직이자 잠시 쉬려던 카니엘 또한 여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노빌리스크를 떠난지 일주일째.

그리고 카릿치오스로 들어온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지만, 그 두사람의 여정은 새롭게 첫날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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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21.05.17 38 0 8쪽
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123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2) 21.04.30 44 0 7쪽
»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21.04.28 42 0 9쪽
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2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119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4 1 10쪽
11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61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5 1 12쪽
116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2 1 9쪽
115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2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4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6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7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6 2 9쪽
110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4 2 10쪽
109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5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2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8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9 2 7쪽
102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9 2 8쪽
101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5) +1 20.12.02 53 2 11쪽
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99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2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97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5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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