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8,266
추천수 :
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1.01.22 18:45
조회
53
추천
2
글자
10쪽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DUMMY

다음날 아침.


카니엘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힘겹게 들며 창문으로 내리쬐는 햇빛을 맞이했다.


환한 방안을 물끄럼히 바라보던 그는 똑같은 장소임에도 사뭇 다른 분위기 때문에 어젯밤의 대화가 꿈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특히 이자벨이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침대 위에는 마치 아무도 없었다는 듯 말끔히 정리된 상태라 그런 느낌은 더했다.


“이자벨?”


분명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는 여관일 때문에 먼저 나섰을테지만, 그럼에도 혹시나하여 이름을 불러본 카니엘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뿐이었고 그렇게 혼자서 어젯밤의 대화를 복기하려든 찰나, 머리속에 일이란 단어가 맴돌았다.


그때서야 떠오르는 어느 귀족의 경호 임무.

그리고 뒤늦게 그 약속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은 카니엘은 허겁지겁 장비를 챙겨서 방을 나서야했다.


여관을 떠나기 전, 간단히 먹거리를 주문한 카니엘은 바트만과 안부인사를 나누며 이자벨이 페트리언 거리에 위치한 여관일로 나섰다는 말을 듣고서야 살짝 안도할 수 있었다.

어젯밤 대화뿐만 아니라 평소의 행적을 봤을 때, 그녀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른 길을 걷고 싶다면... 지금은 어떤 길을 걷고 있길래?’


단답형의 말버릇.

좋아하는 음식.

말 주변에 비해 풍부한 표정.


지난 몇일 간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잔뜩 생겼음에도 정작 이자벨이 무슨일을 했었는지 무엇 때문에 여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레 알게 될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그렇게 여전히 미궁속에 있음을 깨닫자, 자연스레 카니엘의 머리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 엄청난 신분 차이가 있는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카니엘은 고개를 내저으며, 아침으로 먹고 있던, 블린의 마지막 조각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는 일단 주어진 일에 집중키로하며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유의 도시라 불리는만큼 수많은 종교가 존재하는 노빌리스크에서도 단연 으뜸은 자유와 방랑의 상징인 바람의 정령을 모시는 엔릴교였다.

그리고 약속 장소인 트리니트 광장은 그 엔릴교의 제단이 위치한 곳으로 종탑을 중심축으로 삼각형 모양의 재단 건물이 광장 중앙에 솟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 위치 때문에 엔릴교의 종탑은 트리니트 광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임 장소로 안성 맞춤인지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 인파 속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일행이 있었고, 그들이 이번 일을 의뢰한 귀족과 미드갈임을 알아차린 카니엘이었다.


“여어! 아무리 격한 밤을 보냈다지만 손님을 기다리게하면 쓰나.”


“..아직 늦지는 않았습니다만.”


“말대꾸는... 아무튼 이 지각자를 소개하도록 하지요. 요청하신 바와 같이 월영군 출신의 용병이며, 이름은 카니엘 시닉스라 합니다.”


미드갈의 실없는 소리 이후, 갑자기 그렇게 소개를 시작하자 어떨결에 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맡겨주신 일, 최선을 다해 완수하겠습니다.”


그렇게 용병단 특유의 인사를 한 뒤 고개를 들어올린 카니엘은 이번 일의 의뢰인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미 만나본 적 있는 필리프와 그 뒤에 실의뢰인으로 보이는 당찬 모습의 소년.


의뢰를 하러온 펠리프를 처음 만났을 때 하인이 직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외모에 감탄을 했었으나, 소년의 얼굴은 그 감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완벽에 가까웠다.


티끌 없이 매끈한 피부와 소년과 어른 사이에 있는 듯한 얼굴.


여기에 마치 누군가가 빗은 듯한 섬세한 눈매 속의 갈색 눈동자는 빛을 품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제 만나뵜으니 제 이름은 아실테고.. 여기 이분이 이번 일을 의뢰하신 켈런 베르니 도련님입니다. 도련님께서 여러 도시를 구경 중에 노빌리스크의 유명한 정보 시장을 방문코자 만일을 위해 이번일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소개에 다시 한번 카니엘은 고개를 숙여 켈런이라는 자에게 인사했다. 귀족자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터라 자신이 제대로 격식을 갖춘 것인지 불안했으나, 켈런이라는 자는 그런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클레이 루트가 매일 변경된다고 하던데.... 당신은 오늘 어디에서 열리는지 알고 계신가요?”


캘런이라는 자가 거두절미하고 그렇게 카니엘에게 물었다.


“예.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펠론 거리에서 열릴 겁니다.”


“다행이네요. 볼 일을 보고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거든요.”


“단순히 관광이 목적이신지요? 아니면 어떤 정보를 찾으실 예정입니까? 참고로 정보의 성질에 따라 담당자가 달라서 원하시는 정보를 알려주시면 더 빨리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짧은 시간에 클레이 루트를 제대로 경험한 카니엘이 그렇게 첨언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무언의 의견을 나누는 듯했고, 이내 캘런은 어깨를 으쓱이며 가벼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정도 알아보고 싶네요. 하나는 월연방국에 대한 것. 그리고 사람을 찾는 정보도. 사실 저희는 아주 중요한 사람을 찾아 여행중이어서 후자에 대한 정보력이 뛰어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캘런이 그 말을 마치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온 월연방국 이야기에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던 카니엘은 도저히 인간의 미소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 미소에 살짝 넋을 놓고 말았다.


마치 누군가가 붓으로 정교하게, 섬세하게, 심혈을 기울여서 그린듯한 그런 미소였다.


//////


아르센은 미소를 거둔 뒤, 카니엘이라는 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만일의 대책.


월영시와 벨로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노빌리스크를 방문한 아르센에게 우연히 월영군에서 갓나온 자가 용병일을 한다는 소식을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때문에 돈이 들더라도 클레이 루트에서 큰 소득이 없을 것을 대비해 그를 용병으로 고용한 것이었다.


“그럼 슬슬 출발해 볼까요?”


미드갈이란 자가 그말과 함께 앞장섰고, 그 뒤로 엘제어와 아르센 그리고 후방에서 카니엘이 경계를 하며 거리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도시에서 인간의 호위를 받게된 이 모순적 상황에 웃음을 터트릴뻔한 아르센이었지만, 이내 자신의 목적을 떠올리곤 그것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카니엘이라고 했지요?”


“예.”


“당신은 왜 월영군에서 나오게 되었나요? 듣자하니 군에서 나온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사정이 조금 있었습니다.”


“흐음... 비밀이라는 건 가요? 그렇다면 이것만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어디 출신인지?”


아르센의 집요한 질문에 카니엘은 귀찮다는 듯이 답했다.


“월영시의 월영군이었습니다.”


카니엘의 대답에 아르센은 절로 떠오르는 미소를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그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엘제어와 눈빛을 교환했고, 이내 의심을 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얻을 방법을 강구했다.


“아.... 월영시였구나. 그래서 군을 나오게 된 거군요.”


“두 사실간에 큰 연관 관계는 없습니다만.”


“어? 세간에 월영시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요. 아닌가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은 카니엘은 침묵해야 했고, 그 틈을 비집고 미드갈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이고. 도련님께서 저희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해주셨네요.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 노빌리스크에서 어떤 소문이 퍼졌다는 것은 한가지 정보가 팔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조금 의아하실 수 있겠지만, 정보란게 실체가 없다보니 파는 입장에선 보안 유지가 생명인지라 정보가 팔렸을 경우 그와 비슷한 가짜 소문을 시장에 풀어버리는게 정석이지요.”


“다들 진실을 말하게 되면 상품가치가 없어져서 인가요?”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 그렇다면 소문이 퍼진 후 같은 정보를 매입 하려는 자는 그 진실 여부를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어느 정도 클레이 루트가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확인 차 물어본 엘제어였다.


“역순으로 소문을 타고 최초 유포자, 즉 그 정보를 판 거래인을 찾으셔야 합니다. 사실 이곳에서는 소문을 퍼트릴 자들도 다 정해져 있거든요. 그래야 장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 그래서 그 소문을 퍼트릴 자가 아니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소문 또한 확인해줄 수 없다는거네요?”


“예. 이 친구가 이곳에 다시는 발을 붙이지 않겠다는 각오가 없는 한, 그렇습니다.”


“흐음.. 재밌는 구조네요. 하지만 어쨌든 지금 퍼진 월영시에 대한 소문 중 가장 사실에 가깝게 알고 있는건 여기 카니엘 아니에요?”


실제로 정보 상인들로부터 사실 확인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 중에는 상당한 돈을 지불하겠다라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돈을 위해서‘사제들과 불화에 벨로나가 반란을 시도했다’ ‘그 반란이 결국 성공했다’ 혹은 ‘실패하여 벨로나가 죽었다’따위의 벨로나의 명예가 걸린 소문을 긍정 또는 부정코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글쎄요.. 이제 클레이 루트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카니엘은 더 이상 추궁을 하기 민망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는 건물들 사이로 그림자진 길목을 향해 앞질러 나아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깊은 상흔의 잔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5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21.05.17 38 0 8쪽
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123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2) 21.04.30 43 0 7쪽
122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21.04.28 41 0 9쪽
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2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119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3 1 10쪽
11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61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5 1 12쪽
116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1 1 9쪽
115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2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4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6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6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5 2 9쪽
»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4 2 10쪽
109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5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2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7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9 2 7쪽
102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8 2 8쪽
101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5) +1 20.12.02 53 2 11쪽
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99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2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97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4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