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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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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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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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DUMMY

마음 같아서는 그 역겨운 거리에 전시된 모든 동족들을 해방시키고 싶었던 아르센이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무혼혁명 이후 또다시 목격하게 된 충격적인 장면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이 그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벨리안느가 이 도시 어딘가에 있다.’


마법 연계를 풀기 위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자,

동시에 다시 보고픈 자신의 창조자.


그 극단의 이유 중 무엇 때문이라 말하긴 힘들었지만, 일단 그녀를 만난다는 것만큼 아르센에게 중요한 목표는 없었다.


때문에 자신이 해방시킨 5명만 데리고 서둘러 거리를 떠나게 된 아르센은 남겨진 이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벨리안느를 찾겠노라 다짐했다.


“엘제어. 우리가 고용한 카니엘이란 월영군과 벨리안느가 동행하고 있다는 추측은 너무 억지스러울까?”


그 다짐을 위한 첫단계로, 아르센은 현재까지의 정보를 바탕으로 그녀의 상황을 짐작코자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월영시로 향하던 벨리안느가 월영군이 일으킨 렌소협곡 전투에 휘말린 뒤, 방향을 틀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거잖아. 그리고 때마침 월영군에서 갓 나왔다는 카니엘 또한 이곳에 있는거고.”


“카니엘이 렌소협곡 전투에 참여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하지만 월영시에서 일어난 반란에 대해선 알고 있는 눈치였잖아. 그럼 시간 흐름상 딱 맞는걸? 반란 직후 월영시에서 도망쳐 이곳까지 오는 여정 중에 렌소협곡 전투를 겪은 거지.”


“... 확실히 고려해볼만 가능성이군요. 아까 정보원도 벨로나가 월영시에서 나왔다고 했고, 저희 또한 렌소협곡에서 그녀를 닮은 월영군에 대한 정보를 받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벨로나와 카니엘이 월영시에서 도망쳤고, 그 때문에 벌어진 렌소협곡 전투에 휘말린 벨리안느가 카니엘에게 벨로나 소식을 들은 뒤 동행하고 있다는 가설이 세워지지.”


“동일한 이유로 벨로나 또한 이 곳에 있을 가능성은요?”


“음.. 그랬다면 도시 전체에 소문이 쫙 퍼졌을텐데... 아무튼 벨로나든 카니엘이든 벨리안느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가정하에 찾을 방법을 생각해보자.”


“물론 벨리안느가 여기 있다는 그 정보 자체가 거짓일수도, 그래서 모든 가정이 틀렸을 가능성도 염두해야 할겁니다. 게다가 의장님께서 벌이신 이 일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요.”


5명의 겨울 씨앗.

아니, 이젠 인간의 명령에서 벗어나 아르센의 명령에 따르게 된 가장 기초 단계의 동족들을 바라보며 엘제어가 퉁명스레 말을 끝마쳤다.


“··· 알고 있어.”


그리고 그 말에 대꾸조차 할 수 없었던 아르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 경비가 강화되는 등의 도시측의 눈에 띄는 대응은 없었으나, 어쨌든 이 인원을 모두 데리고 도시를 활보하긴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벨리안느를 찾는다해도 도시 안에서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기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엘제어. 분산해서 이동하자. 너는 두 명을 데리고 북동쪽 성문으로 가서 벨리안느가 도시를 빠져나가는지 확인해. 나는 나머지 인원들과 남동쪽 성문으로 갈테니.”


“벨리안느가 카릿치오스로 갈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르센이 언급한 성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차린 엘제어가 그리 되물었다.


“응. 아까 카니엘이 황급히 떠난걸보니 애초에 도시를 뜰 계획이 있었던 것 같고... 두 사람의 신분 상 다른 도시에는 입성조차 못할테니 갈 곳은 카릿치오스 뿐이겠지. 게다가 우리도 어짜피 도시를 떠나야 하니 성문에서 대기하다 기회를 보도록 하자.”


“만일 발견하지 못하면 어쩌실 겁니까?”


“두 가지 가능성에 대비해야겠지. 벨리안느가 노빌리스크에 계속 머물고 있다는 가능성과 이미 떠났을 가능성.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추가 병력이 필요한 일이니 일단 병력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가야겠지.”


결과야 어떻든 일단 도시를 벗어난다는 판단이었기에 엘제어가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땅거미가 질 무렵, 집합 장소에서 뵙겠습니다.”


칼같이 대답한 직후, 엘제어는 외진 골목으로 이동해 자신과 함께할 두 명의 마법진을 자신의 것과 연동시키는 일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카릿치오스와 가장 가까운 남문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아르센에게 한마디 덫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의장님. 이번에는 부디 목적을 망각치 마시고 계획대로 움직이십시요.”


“걱정마...”


아르센은 그렇게 대답한 뒤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한 엘제어는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


노빌리스크의 남동쪽 성문.


카릿치오스로 직결되는 그 성문은 도시의 상징인 바람의 정령이 드나는 곳이라하여 그 이름을 따와『엔릴의 문』이라 불렸다.

그러나 그 상징과는 무관하게 소수의 탐험자들과 그들을 상대하는 장사꾼들만 드나드는 곳이어서 평소 다른 성문들에 비해 한산한 장소였다.


그러나 인형 거리에서 폭발 사건 생긴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모든 성문에서 없다시피 했던 검문이 강화되자 한산했던 『엔릴의 문』에도 조금씩 체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에 조금 우회하더라도 사람이 적은 곳에서 검문을 통과하겠다는 마음 급한 보부상들이 몰려와 성문 앞은 유래 없는 인파를 이루게 되었다.


그 인파와 마주한 아르센은 우선 긍정적인 면만 생각키로 했다.


그리하여 알몸에 로브만 걸친 동족들을 이끌고 검문을 통과하는 방법은 잠시 접어둔 채, 다른 이들과 똑같이 발이 묶였을 벨리안느를 인파 속에서 찾기 시작했다.


‘벨리안느...’


분명 얼굴을 가리면서 가장 평범한 옷차림을 하고 있을테였고, 그렇다면 카니엘과 함께 있다는 가정하에 그가 입고 있을 월영군복을 찾는 편이 빠를 것이었다.


‘카니엘...’


그렇게 암갈색 계열 옷을 입은 인간들을 눈으로 쫓으며, 동시에 기억속에 뚜렷한 카니엘의 얼굴을 다시 되새겼다.

하지만 그런 그와 자신이 알고 있는 벨리안느가 함께 있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정과 이 방법이 옳은지 의심되는 것이었다.


‘하긴..수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그녀와 헤어진지 9년째.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이 변하는 인간이란 존재를 생각한다면 그녀 또한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와는 멀어졌으리라.


그럼에도 눈앞에서 금발 여자아이가 지나가자, 자연스레 처음 만난 벨리안느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정말 여리디 여린 아이였는데.’


과거 기억과 감정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는 아르센은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고, 여기에 벨리안느와 재회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양뿐인 심장이 맥박치는 착각마저 들었다.


‘시장 풍경을 말해줬을 땐, 그렇게 들떠서는 함박 웃음을 지어줬는데..’


눈동자를 매섭게 굴려 성문 왼편에 자리잡은 무리들의 얼굴을 모두 확인하면서도, 그 과거의 추억에 미소가 살짝 번졌다.


‘우리들이 처한 현실을 말했을 땐 얼마나 울었었는지...’


이어서 눈물 범벅인 그녀의 얼굴을 회상함과 동시에 월영군복 차림의 남자가 성문 앞에서 서성이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으로 재빨리 그를 쫓았다.


‘무혼 혁명을 일으키자는 말에 끄덕이던 작은 얼굴.’


하마터면 사내의 모습이 인파속에서 사라질 뻔하자, 얼른 성문 방향으로 뛰어들어 시야를 확보했고, 그렇게 자신이 찾던 자임 확인했다.


‘혁명이 끝나갈 무렵. 나눴던 마지막 대화..’


간신히 카니엘에게 돌진할 뻔한 것을 참았을 때, 머리 속에서는 벨리안느와의 마지막 순간이 회상되고 있었다.


그와 무관하게 현실속 시간은 끊임없이 흘렀고, 그렇게 아르센은 분홍빛이 감도는 금발 소녀가 두건을 부여잡은 채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날 이용한 거야?’


아르센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그곳에는 자신이 기억하던 과거의 벨리안느 대신 지난 9년간 그녀가 겪었을 일로 낯설어진 존재가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게서 배척되고 버림받은 자의 절대적 고독과 슬픔’


감히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했을 그 길을 향해 도저히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 아르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벨리안느가 카니엘의 손에 이끌려 점차 멀어지자 정신이 번쩍들었고, 그렇게 해방된 피조물이 창조자의 기억 속에서 재탄생 되기 위해 뛰어드려는 그 순간.


누군가 아르센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 끌어내었다.


“찾았다. 인형 자식!”


낯이 익은 자의 얼굴.


아니 뛰어난 기억력의 힘을 빌리자면, 『카르미나 부라나』용병단의 단장이자 자신이 고용했던 미드갈 토드가 검날을 번뜩이며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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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21.05.17 38 0 8쪽
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123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2) 21.04.30 43 0 7쪽
122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21.04.28 41 0 9쪽
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2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119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4 1 10쪽
11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61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5 1 12쪽
»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2 1 9쪽
115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2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4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6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7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5 2 9쪽
110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4 2 10쪽
109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5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2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8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9 2 7쪽
102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8 2 8쪽
101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5) +1 20.12.02 53 2 11쪽
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99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2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97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5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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