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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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0.05.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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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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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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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계속, 여유있게

DUMMY

투신은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죠. 아무리 압도적으로 강하다지만,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작 시작이라는 듯이 성실하게 일하시는 약선님입니다.


이제는 조금 쉬셔도 될 텐데


지금의 약선님은 혼자가 아니니까요. 키잔트헤임에서 선발대가 왔거든요. 단순히 군인들 뿐만이 아니라 여러모로 엉망이 된 이 세계의 환경을 복원할 과학자들에, 정치 체계를 개선을 행정가들도 와 있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이 직접 나서서는 서류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동시에 죽이지 않은 투신을 훌륭하게 부려먹고 있죠. 살려주는 대신 이 세상을 위해서 진짜 제대로 된 일을 하라고요.


이 와중에도 의사로서 긴급 환자의 치료를 하는 건 잊지 않고 계십니다.


분위기가 이러니 저 또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지마...."

"왜요?"


힘든 일은 아닙니다. 그냥 상자 몇 개 들고 옮기는 일이에요. 대충 봉사 활동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약선님의 일행이신 토끼 수인, 레티야 씨가 계속해서 말합니다.


"아니, 누가 봐도 어린아이가 100Kg이 넘어가는 의약품 박스를 들고 움직이면 좀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여기서 저는 폭풍을 흩트리는 자라는 거창한 별명이 있는걸요."


관점을 그렇게 해서 보면 그냥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투기장에 별의별 도전자가 나타났던 이 도시에서 10살짜리 여자아이가 100kg짜리 상자를 드는 건, 아니 더 거창하게 1T짜리 수레를 끌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격투 스포츠 영화 같은 데 보면 단련 같은 거 하잖아요. 그런 느낌이죠.


"그러니까 민간인인, 레티야 언니에게 도와달라고 하지는 않을게요."

"그래! 바로 그게 문제라고요!"


왜-


표정은 덤덤하다만 속으로는 그 가벼운 짜증을 삼킨 제 앞에서 레티야 언니가 축 늘어진 귀를 쫑긋거립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린다고! 아가씨께서는 저렇게 미천한 자신들을 위해서 나서는데, 저기 저 시종은 도대체 뭘 하냐고 말이야! 이제 며칠 뒤면 지구로 돌아갈 텐데 좀 쉬어!"


음, 기분 탓이나 자격지심은 아니겠죠. 레티야 언니가 속해있는 종족은 일정 공간 내의 모든 소리를 잡아낼 수 있다고 하니까요.


그렇기에 남의 시선을 왜 신경 써요?라고 말하려는 찰나, 지구에 있는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 저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 말았습니다.


어른인 이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는 힘든 일이긴 해요.


하지만


"가만히 있으려니 심심한걸요."


하늘을 날면서 몇몇 도시를 둘러보았는데, 이 세상은 진짜로 볼거리가 없습니다. 농담이 아니고 모든 도시의 구조가 똑같아요. 중앙에 투기장 하나에, 4등분으로 나누어진 도시구역.


그럼 고대 로마와 비슷하지 않냐고요?


글쎄요. 제 생각은 아니에요. 로마의 콜로세움은 검투사로도 유명했지만, 다른 문화 시설로도 사용이 되었거든요. 왜, 로마식 우민 및 복지정책을 가리키는 말도 빵과 '서커스'잖아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로마의 문화는 이 세계보다 훨씬 더 화려했을 거예요. 이 세계의 투기장에서 하는 짓이라고는 그저 싸움밖에 없으니까요.


진지하게, 이 세계의 관광은, 어느 도시든지 간에 3일이면 끝난다는 장담을 할 수 있습니다. 돌아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대체 뭘 기념품으로 줘야 하나 고민이 들 정도예요.


이러니 뭔가 일이라도 해야겠다- 그것이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물건으로 가져갈 게 없다면 이야기라도 그나마 건져야 하니 말이죠.


"끄윽... 어린아이가 왜 그렇게 성실한 건데...! 키잔트헤임에서 사람도! 즐길만한 현대 문물도 왔잖아! 21세기 선진국의 평범한 아이처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좀 붙잡고 있으면 안 될까?"

"그러다가 글러먹은 사람을 하나 알아서."


카슈미르의 정령용, S랭크 몬스터가 스마트폰 중독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아무튼


여러모로 자신이 괜히 비교돼서 뿔이 안 토끼 언니를 달래 봅시다.


"다른 게 틀린 건 아니잖아요. 보호자가 봉사단체 직원이고, 학교에서는 봉사활동 동아리에 속해있는 나는 이런 봉사활동을 하는 게 편하고, 새로운 무공을 눈으로 보고, 뭔가 느낀 시우 오빠는 감상이 잊히기 전에 단련을 하려고 하고, 레티야 언니는 언니의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면 되잖아요."

"그니까!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대로라면 왠지 나 혼자 노는 것 같잖아!"


흠흠


나름대로 폐관 수련을 하고 있는 오빠는 뭐하려나.


.

.


크고 멀리 보면 생각했던 대로


작고 좁게 보면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일단 공령의 기초적인 원리는 완벽하게 이해를 했다. 사실, 이론만 놓고 보면 절대로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흔한 무협지에서 해탈하는 것 마냥 추상적인 게 아닌, 나름 과학적인 원리가 깃들어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안다고 실현한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


이론을 바로 실제로 쉽게 만들 수 있었다면, 세상에 시행착오라는 단어는 없었을 것이다.


"스읍"


그런 시행착오를 시우는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시작은 모든 무공을 쓰는 것과 똑같은 과정. 심장이 피를 온몸에 돌게 하듯이, 숨을 들이키며 단전을 중심으로 내공을 온몸에 순환시킨다. 여기까지는 딱히 못할 게 없다. 정말로 기초 중의 기초니까.


금강불괴도 쓰고, 강기도 쓰는데 이걸 못할 리가 없지.


다음 단계는 그렇게 순환시키는 내공을 몸 바깥에 내보내서는 텅 비워버리는 것... 여기서부터 고민의 시작이다.


과연 내공을 어떻게 몸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가. 천천히? 아니면 빠르게?


약선은 1-2초라는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내보냈다. 1-2초가 천천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약선과 비교해보면 코끼리의 앞의 개미 수준인 A랭크 헌터에게도 그건 충분한 시간


이게 과연 약선이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천천히 내보낸 것인지, 아니면 원래 천천히 내보내는 게 맞는 것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이런 무공은 스스로 감을 잡지 않고 조언에 의존하면 더 헤매게 되어있다.


별 수 있는가. 자신이 직접, 빠르게든 천천히든 둘 다 해 봐야지.


그러니 이번에는 빠르게 해 보기로 하는 시우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1-2초의 시간이라면 실전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약선이야 내공이 텅 비어있는 몸으로도 걷어내기를 했다지만, 자신은 그런 기교를 부릴 자신이 없다. 거기다가 마법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


다른 무림인도 비슷하겠지만, 자신이 공령을 쓴다면 내공이 비어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두는 건 필수다.


그렇게 몸 바깥으로 숨을 크게 내뱉으며 대부분의 내공을 다 빼내고-


"후우"


힘을 다시 몸 안으로 끌어 모은다는 생각과 함께 주먹을 앞으로 빠르게 내질렀다.


꽤나 깔끔한 주먹. 주먹이 소리보다 먼저 앞서 나간다- 까지는 아니지만 쉬익 공기를 가르는 것이 꽤나 위협적이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저게 마나를 쓸 수 없는 비적합자의 주먹이라고 믿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무림인이나 무공 사용자가 봐도 저평가할 이유는 없다. 내공 없이도 저런 주먹이 나오는 것은 평상시에 끊임없이 내공이 가해져 육체가 단련되었다는 증거니까.


그러나


절대로 공령의 이치가 담겼다고 볼 수 있는 주먹은 아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도 같은 그 폭발력이 없으니까. 물론 투신을 상대로 그런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었던 건 약선의 실력이 워낙 까마득한 것도 있겠지만...


자신도 나름대로 실력을 쌓고, 벽을 넘은 몸이니 알 수 있다. 이건 그냥 아니다. 그 생각을 하며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하는 시우의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공령으로 나아가는 길은 처음과 같이 막막해도, 그렇다고 지금 자신의 이 단련이 아주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니까.


내공을 깔끔히 비우는 과정에서 순환시키는 속도가 더 빨라졌고, 텅 비어있는 몸에 다시 내공을 체우는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이만하면 아예 공령이라는 개념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할만한 단련이지 않은가. 아무튼 자신은 이 와중에도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진다.


그 생각을 하던 시우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홱 돌렸다.


"기척도 조금 더 예민해진 것 같구나."

"아"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평상시에 약선이 흘리고 있는 기척보다 살짝 더 적다. 아마도 일부로 낮춘 것이겠지. 여러모로 바쁠 텐데 자신까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인가.


살짝 미안해진다.


이런 시우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약선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아냐. 시작은 내가 너한테 공령을 보여줬기 때문... 여전히 책임을 지는 것처럼 보이네. 그러니까, 나는, 음... 무공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아. 나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말이야. 물론 그냥 이야기도 좋아. 네 형을 봐도 알잖아?"

"어, 지금의 약선님보다 무공 실력이 좋은 사람이 있긴 하나요?"


덤덤하게, 겸손이나 그런 것 없이 말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질문을 해 버린 시우였다. 그런 시우의 말에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약선이 답했다.


"음, 머리로 생각하는 쪽이나, 몸으로 움직이는 쪽이나 충분히 있을 수 있지?"


그냥 있다-가 아니라, 머리나 몸으로 굳이 구분을 했다. 그건... 머리와 몸, 비슷한 수준은 있을 수 있어도 둘 다 확실히 앞서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겠지. 하긴 손시훈 수준만 되더라도 감당이 안 되는 괴물이니 그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그러니 괜히 딴지를 거는 대신, 약선의 방금 말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실력이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무공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라. 아직도 더 강해지고 싶다는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자신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도 같이 강해졌으면 좋겠다 하는 욕심까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의사가 된 이유도 짐작이 된다. 주변 사람들이 더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고, 그렇다면 자신이 의사가 돼서 살리면 된다는 단순하지만 무지막지한 결론을 내린 것이리라.


계속해서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그 의지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말이다.


그냥 이야기도 나누는 건 좋아한다고 했으니 그걸 물어보는 게 좋겠지.


"어떻게 뭐든지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거죠?"

"음? 뭐가?"

"단련이라던지, 아니면 의료 활동으로 사람들을 계속해서 구하는 것인지 등등요."

"어..."


살짝 당황하는 약선. 그 당황의 낌새는 '왜 이걸 물어보지?' 하는 예상하지 못한 당황이다. 하지만 그 당황조차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다려준 시우에게 약선이 말했다.


"너와 똑같은 이유야. 지금의 노력이 좁고 작게 보면 당장 변하는 게 없어 보이는 때가 있어. 하지만 넓고 크게 보면 긍정적인 변화가 무언가는 있잖아? 그것을 느끼고 아니까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지. 너도 공령의 습득이란 개념에서 보면 지난 한 달 동안 바뀐 게 없었는데도 여유롭게 이 수련을 이어갈 수 있잖아?"

"그렇군요."

"다만,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지.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이런 쪽으로 해 줄 조언은... 잠깐 쉬는 방법도 배웠으면 좋겠다는 거야. 너희 형처럼"


잠깐 시우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가 된다. 여유를 갖출 수 있을 때 최대한 갖추라는 거겠지. 손시훈이 나름대로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도, 해골 장미와 불곰 대원들과 사적인 친분을 쌓은 것처럼


다만 그와 함께하는 기행을 생각하니... 좋은 의도와 핵심을 아는데도 표정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런 시우에게 쐐기를 박듯이 약선이 말했다.


"물론 세세한 점까지 닮는 건 곤란해. 예를 들면 시를라 틴 캅생트라던가."


지금은 블루베리라고 불리고 있는 그 사람이다.


"하하, 하하-"

"정말이지, 처음에는 참 참한 아가씨였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차라리 예옥 그 녀석과 결혼을 했다면 오히려 제정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진심이 담긴 한탄. 그건 적운흉풍의 한숨이 들리는 듯 한 착각을 시우에게 불러일으킨다.


하긴 며칠 뒤면 그 한숨을 진짜로 듣게 될 테니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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