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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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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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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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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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또 다른 단서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한번 와본 곳이었고 기억을 대신해주는 기계가 있기에 그의 안내 한번 받지 않고 차는 담장 옆에 섰다. 그 순간 멈췄던 시간이 흐르듯 인나 부친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다.


“인나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나도 모르겠네.... 간섭 받는 것을 무척 싫어하던 아이고, 조언도 하지 않을 것이네. 이제 다시 차분해졌으니 스스로 결론을 내리겠지. 그동안은 자네 곁에 가려하지 않을 것이네. 문제가 생기면 혼자 해결하려드는 버릇이 있었지....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려 들 테니. 으음, 며칠 후에 해외연수 예정되었다고 들었네. 들었나?”


“...아직 못 들었습니다.”


“말하지 않았군.... 갈등했겠지.”


말없이 가려했을까. 그 정도로 깊이 알게 되진 못했구나, 그는 자각했다.


“지금은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되네. 들었는지 모르겠군.”


그가 슬쩍 보았지만 정면을 향한 인나부친의 시선은 그를 향하지 않았다. 고집스럽지만 온화해보이고, 여유 넘치는 표정에 어울리지 않는 그늘이 보였다. 그 모습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큰 회사의 사장님이라는 것보다는 부정이 넘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그는 생각해보았다.


“난 한국인이지만 유교적인 사상으로만 아이들을 얽매이지는 않았네. 교육은 아내에게 맡긴 셈이지. 그걸 후회하지는 않아. 심성은 모두 바르니까. 큰 녀석이 로맨스를 꿈꾸고 현실과의 괴리에 고민하는 것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 신데렐라라도 착한 며느리면 데리고 와줬으면 좋겠는데, 녀석은 자신이 온달이 되고 싶어 하지.... 그래봐야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고집부리지 않고 다가설 것이지만... 내가 그랬지. 녀석은 날 많이 닮았어.”


외모도 닮았다 생각하며 그도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둘째가 결혼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하다는 것도 알지. 한때 빠졌던 종교 때문인지.... 여려서 상처를 자주 받아서인지 속내가 셋 중에 가장 깊지. 너무 깊어서 들여다보기 힘들어... 둘 다 내가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내는 막내에 대한 것만 빼고 내게 다 말해준다네.”


그는 가정사를 꺼내는 가장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아내와 내가 어떻게 만났는지 아는가?”

“유학하며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는군... 나와는 너무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었지. 겉모습은 한국인인데, 내면은 외국인이었지. 말도 안 통하고.... 내가 그땐 더 보수적이라 아내가 다른 남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못 마땅했네. 알고 보니 게이였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 되더군.”


한때 미워하고 경계하던 그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찾아가 울어주던 사이가 되었다는 말에 그는 어색함을 느꼈다.


“좋은 친구였는데... 내 햇살....”


그는 가족도 모를 것 같은 부인을 부르는 호칭을 듣고 모른척하려면 차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이 좋을까 아주 잠시 생각했다. 인나 부친이 부끄러워했다면 그는 그 선택지를 잡았을 것이다.


“그녀와 나는 안 맞는다 생각해서 포기했었네.”

“그, 그랬었군요....”

“음, 돌아와서 아버지 일을 돕는데 연락이 오더군. 생각지도 못했지. 화내며 먼저 헤어지자 말한 것은 그녀였으니까. 첫 이메일을 지금도 기억하네. 한글을 전혀 읽지도 못하던 여자였는데.... 보고 싶다는 말을 가득 써서 보냈더군. 고집 부려서 미안하다고, 다 맞춰줄 테니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고.... 그 편지 받고 바로 날아갔지.”


인나의 추진력도 유전이었구나, 그는 생각했다.


“공항에서 만나 그날 첫애가 생겼어.”


‘허으...’


듣기 거북했지만 그는 인내했다.


“이상하군. 이런 말 아무렇지 않게 나오다니. 사람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군. 그런 척 하는 이들은 있지만 진짜 그러기란 쉽지 않은 법이지.”

“아...아닙니다.”


눈치 보며 살아왔기에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버릇이 있는 그였다. 그렇게 보여줄 뿐이었지만, 오늘은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으음... 그날 참 열정적이었지. 그리 어리지도 않았는데....”


민망한 소리를 다시 할 줄 몰랐기에 그는 급히 다른 생각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필 인나와 지낸 밤이 떠올라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몽롱해지는 그 감각들은 여전했다.


“그렇게 애가 생기고 아버지에게 졸라서 미국에서 일을 하며 살았지. 아이가 조금 크면 돌아간다고 말했었네. 나도 몰랐네. 셋이나 낳을 줄은..... 사실은 넷이네.”


‘아?’


“죽었어. 인나 오빠가 둘이 될 수 있었는데... 너무 슬퍼서 다시는 갖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생겨버렸지. 그래서일까 막내를 애지중지 길렀어. 다시 한국에 올 생각도 없던 나였는데, 딸이 한국 보내달라고 고집을 부리니 보내줬지. 그리고 못 참고 곧 따라왔지. 반항기였던 것인지도 몰라... 왜 쫓아왔느냐고 화를 내더군. 고등학교 졸업하더니 또 미국으로 가버리더군. 쫓아갈까하다 그냥 뒀지. 갔다면... 달라졌을까. 아내가 내게 미안해하는 부분이네. 그때, 첫째가 위험한 일을 한다고 차에 빠져 있고, 둘째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라 곁에 있어주고 싶어 했지. 막내는 외가에서 잘 돌본다고 날 설득했었고.”


바라지 않던 이야기들이다. 헤어질지도 모를 사람의 가족사였다. 인나가 자신과 떨어져 지내면 자신에게 향한 마음이 사그라질 것이라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이라고. 그런 사람이기에 가족사를 알아야하는지 그는 고민되었다.


“....나도 왜 이런 말들을 하는지 잘 모르겠군. 마나를 보고 셋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짐작을 했었네. 혹시.... 말해줄 수 있나.”


“...죄송합니다.”


“간단히 라도.”


간절한 눈빛이 부담스러워 그는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뒤쪽에 서는 차 한 대가 보였다.


‘그 운전자다.’


도주하듯 후진했던 운전자가 보였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 보일 때, 그의 입이 열렸다.


“안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 그렇군. 들어가세.”


그는 집의 대문으로 다가서며 뒤를 살폈다. 운전자와 그의 눈이 그 순간 마주쳤다. 그는 가만히 운전자를 주시하며 대문을 열었다.


“잠시 들어가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왜 그러나?”

“차가 밀려날까 싶어서 뭐라도 받치고 오려고 합니다.”

“그래? 음... 알았네.”


차를 세운 위치는 경사가 거의 없는 평지다. 눈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상황인가 싶으며 인나부친이 안으로 들어갔다. 만약 집돌이가 뛰어와 대문 안에 서 있지 않았다면, 그와 함께 움직였을 것이다.


“집돌아! 잘 있었어? 우구! 날 알아보는구나?”


‘저 놈은 날 빼고는 다 반기는군.’


그는 대문을 닫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아직 차에 있는 운전자를 향해 걸어갔다. 운전자도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도망갈 것이라 여긴 운전자가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펴는 모습을 보았다. 그도 긴장하며 만약을 대비했다.


“왜요?”


상대가 말을 건 순간 그가 멈춰 섰다.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아이, 씨팔...”


거친 욕설과 함께 운전자가 눈에 힘을 줬다. 그도 눈에 힘을 주며 핸드폰을 들었다.


“아아! 알았다고. 아, 미안합니다.”

“...예?”

“미안하다고요. 정말 몰랐다고요. 사람이 사는 곳인지 알았으면 내가 미쳤다고 쓰레기 버렸겠습니까.”


‘쓰레기...?’


“아아... 그쪽이군.”


703-2번지 2층에 사는 쓰레기의 주인이었다.


“예, 친절하게 영수증하고 연관성 짙은 쓰레기 가져다주신 그 집에 삽니다. 정말 그렇게까지 하나 싶다가... 생각해보니 황당했겠더군요... 죄송합니다.”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왜 욕으로 시작했을까 싶을 때, 그가 말했다.


“신고하실 겁니까.”

“신고...”


그걸 걱정한 것이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그랬을 겁니다. 영수증도 있으니.”

“...그럼.”

“전 어젠가... 갑자기 후진하시기에 다른 이유가 있는지 물으려고 온 것입니다.”

“아... 그땐 당황해서... 혹시 따지러 오나 싶어서... 지금도....”

“그랬군요.”


‘단서가 아니었군.’


실망감이 들어 그는 몸을 돌리려 했다.


“혹시...”

“예.”

“제가... 운전 일을 하는데, 동종인가 싶어서요. 최근에 비싼 차들이 그 집 옆에 자주 보이네요. 저거... 벤....맞죠?”


고개를 돌려보고서야 그는 인나부친과 함께 타고 온 차를 인식했다.


“모양 보니 2세대인 것 같고. 못해도 5억은 할 텐데.”


‘5억...’


차에 흠집을 내진 않았을까, 그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저도 모시던 회장님이 보유하고 계셔서 한번 몰아 봤는데, 좋더군요. 저 내부에 사용된 소가죽이 특별히 방목해서 키우고, 상처나 모기 물린 자국까지 없어야 한다더군요.”

“허...그렇군요.”

“모르시는구나. 저 차에 씌인 가죽만 16마리 분량이라고 합니다.”


소 16마리의 부피가 차량보다 크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운전 일을 하지만 차에 대해 해박하지 않던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일 합니다. 저도.”

“역시, 그럼 반납?”


수리를 맡긴 고급차량을 고객에게 직접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도 괜찮은 일이라는 말에 지원하려다 문제 생기면 덮어 쓴다는 말을 듣고 포기한 일이다.


“...예.”

“어쩐지. 전엔 에이식스 보이더니. 그건 칠세대인가요? 팔 세대는 아직 안 나왔다고 들었는데.”

“아, 예...”


길게 말하기 싫어 짧게 답했지만 남자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쪽 일. 돈 많이 준다더니... 괜찮은가요?”

“제법 주(겠)지만... 사고 나면 제가 책임질 경우가 생겨서...”


자신도 잘 모르지만 내뱉은 말을 되돌릴 생각이 없어 들은 정보를 전했다.


“그 소문 사실이구나. 개새끼들이네...”

“예... 그렇죠.”


말이 길어질 것 같아 그는 몸을 움츠렸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외투도 없이 운동복만 걸치고 병원에 갔었고, 인나부친의 차를 얻어 타고 돌아왔다. 차림새와 기온에 맞는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죄송합니다. 말이 길어졌군요. 동종업계에 근무하시는 분이라.”


‘그런 점을 내세워 내가 신고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겠지.’


“신고는 안하겠습니다. 또 버리시거나 그러지는 않겠죠?”


바라는 것이 무언지 짐작하고 그가 말했다. 남자와의 대화가 그리 유쾌하지 않았고 정말 춥기도 했으니까.


“허! 당연하죠. 완전 쪽팔리고... 미안하기도... 아참! 돈 드려야지.”


남자가 준 만원은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었다. 종량제 봉투값과 미안함 등이 담겨 있다. 많지 않은 금액이라 그는 받기로 했다.


“아직도 버리는 사람이 있어서, 이건 봉투 값으로 쓰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제는.”


가려는데 남자가 또 물었다.


“그런데 여기 주차하는 것은...”


‘아는군.’


이 골목의 주민은 그밖에 없다. 그가 신고하면 주차된 차들을 견인해갈 수 있다.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하겠지만, 재촉하면 가능한 일이다. 운전 일을 해서 그런 점을 아는 것인지, 조사해 본 것인지 의심이 가는 상황이다. 뻔히 보이는 수작이지만 어렵게 사는 이들이 들어와 사는 곳임을 알고, 사과도 받았기에 그는 남자를 안심시키는 말을 해주었다.


“집 앞도 아닌데요, 뭐. 경사 심해서 아무나 주차하기도 힘든 곳이고.”

“그...렇죠?”


남자는 반문했다. 의도가 담긴 그 말투에 그는 자신이 주차문제에 관여할 수 있음을 모르는 것이라 남자가 짐작했다 여겼다. 지금 못 박아둬야 나중에 시비가 생기지 않을 것 같지만 그는 넘어가기로 했다. 정말 몸이 떨려왔으니까.


“그런데 일이 자주 없나 보군요.”

“예?”


돌아가려는데 자꾸 말을 걸어 그는 짜증이 났다.


“아... 이주인가 삼주 전쯤에 벤츠 한대 서 있는 거 봤는데, 그 후에는 안보이다 요즘... 며칠 전부터 아우디 보이고... 오늘은 벤틀리라. 일이 많지 않으신가 보군요. 제가 차에 관심이 많아서요. 그런데 굳이 댁으로 차를 가져오는 이유는 장거리이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연속으로... 하긴 번호를 확인하지 않았으니 다른 차를 이송하시는지도 모르겠군요. 허허, 그런데 이런 곳에 세웠다가 누가 긁기라도...”


‘이, 삼주 전!’


떠드는 남자의 말을 그는 귀담아 들을 수 없었다.


“아, 블랙박스 다 있을 테니 걱정 없으려나. 하긴, 누가 저런 차를 건드리겠어요. 미친놈 아니고서는...”

“담 옆에요?”

“예?”

“벤츠 보신 날이요.”

“아아! 예, 이클래스던가? 그리 비싼 차는 아니지만 벤츠라서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요샌 엠블럼만 붙이면 다 외제차 되는지 아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런 차는 보면 알죠?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걸...보셨구나.”


그는 본 적 없다. 주차된 차는 가끔 보지만 차량 전체가 담 아래 선 경우는 오랫동안 본 적이 없었다. 죽은 이를 맞이한 날, 담장 밑에 주차된 차량은 그가 예상한 시나리오 속에 등장하는 도구였다. 그 목격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침착해지려 애쓰며 억지 미소까지 지었다.


“그때 제가 몰고 온 것이...뭐였더라.”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을 짓자 남자가 말했다.


“320시리즈죠?”

“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날 퇴근하고 오는 길에 슈퍼카... 부가티였나? 페라리? 그런 차도 보이고... 갑자기 땅값이 오르기라도 했나 싶었네요. 그래도 뭐 그 시리즈 중고로 사면 우리처지에도 못 살 것도 없겠죠. 혹시 구입하셨나요?”

“예, 아..아뇨. 그 차도...”

“반납이구나. 난 또... 비싸지도 않은데 괜히 폼 잡으려고 이송서비스 받았나 보군요. 겉멋만 든 사람들이....”


‘그 차다!’


남자는 국밥집 앞에서 그가 본 차도 보았다. 귀찮고 짜증나는 이웃이 그의 눈에 선하고 친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하... 땅값이 오르겠어요? 누가 살겠어요.... 이런 곳에.”


“그렇죠. 저희도 귀한 전세가 나왔다기에 덥석 계약했었죠. 이런 곳인지도 모르고.... 싸서 들어왔지만 이건 뭐... 오르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마누라도 불안해하더라고요. 그런 차들 보인다고.”


‘목격자가 많구나...’


희소성 높은 화려한 차다. 당연히 목격자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차를 몰고 다니며 범행을 일으켰을까 싶었다.


“그런데 부가티인지 페라리인지 그런 비싼 차가 이 곳에 왔었어요?”


“못 보셨구나? 가만... 제가 사장님 모셔다 드리고 차 바꿔 타고 퇴근한 시간이 여덟시 정도고... 여기 도착한 시간이 아홉시였나? 오는 길에 뭐 좀 사느라 열시 정도였겠네... 열시쯤에 내려서 집에 갔다가...”


‘열시에 집 담장 옆에 벤츠한대가 서 있었다...’


“.....그 차는 담배사려고 나왔을 때 편의점 앞에서 본 것 같네요. 시동 켠 채 서 있기에 참... 소리부터 다르죠. 자주 보셔서 아시겠지만 위화감 심하죠. 이런 동네에서 그런 차를 보니, 언제 저런 차 타보나 싶었네요. 편의점 들어갔더니 역시나 금수저 셋이서 타고 온 것 같더군요. 평생 벌어도 못 살 차를 나보다 어린 것들이 타고 다니니....”


세상이 어쩌고, 정부가 어쩌고 하는 말들을 흘려들으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들을 것이 없다 판단되자 그는 다시 몸을 비볐다.


“어휴, 추워.”

“아이고, 점퍼도 안 입고.”


‘당신 때문이잖아!’


단서를 준 사람이라 그는 미소 지었다.


“집이 앞이라...”

“그렇죠? 어서 들어가세요.”

“하하, 예.... 그럼 다음에 또 봐요. 동종업계니 정보도 공유하고.”

“예, 좋은 자리 있으면 알려 드리죠. 저 하는 일도 괜찮은 보스 만나면 꿀입니다.”

“전 보통 대리운전 나가고, 가끔 저런 일 맡거든요.”

“아, 대리. 나도 한동안 했었는데.... 아, 또 말이 길어지겠다. 여기 이거 드세요. 골프장에서 받은 건데 아직 따뜻하네요.”


온기가 남은 캔커피를 덤으로 받고 그는 남자와 헤어졌다. 집에 인나 부친이 기다리고 있음을 잊은 채 그는 남자에게 들은 정보를 조합하며 걸었다.


‘금수저 셋. 그들과는 상관없다는 것일까.... 우연히 비싼 차가 방문했던 것인가. 그 눈은 분명 벤츠에 들어가는 부품은... 아니야. 별난 사람이라 그런 치장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럼 벤츠가 범인인가.’


만약 슈퍼카에 흠이 있었다면 차에 관심이 많은 남자가 말했을 것임을 그는 예상할 수 있었다.


-헤드라이트 깨진 채 다니는 꼴이 그런 놈들 인성을 보여주는 거죠. 돈이면 다 된다는...


이런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말은 없었고, 슈퍼카의 엔진소리나 외형에 부러움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 불평등에 대한 원망만 남자는 말했었다.


‘역시, 슈퍼카쪽은 아닌 것 같다. 사고를 낸 차가 슈퍼카라고 해도, 국밥집에서 본 것은 아니야. 벤츠 320시리즈라고 했지... 그것부터 알아봐야겠군.’


*


“이제 오나? 추운데 밖에서 뭐 했나?”


“죄송합니다. 동네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가간 그는 인나부친 곁에 있던 집돌이에게 손을 뻗었지만, 언제나처럼 집돌이는 그를 피했다.


“이 녀석.”

“하하... 주인을 싫어하는군.”

“주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음... 잘 모르겠지만, 존중하지 않는 느낌은 아니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안으로 들어간 그는 서둘러 인나의 물건들을 챙겼다.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그는 미소를 지었다. 집안 곳곳, 어느새 인나의 물건이 가득했다. 저돌적인 성격을 숨기고 살았다가 이번에 표출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그는 사건에 대한 생각을 애써 눌렀다.


“앞으로 어쩔 생각인가.”

“물류 배송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지금보다는 안정적인 일이기도 하고... 페이가 높다고 들었습니다.”

“그런가... 내가 소개해 줄 수도 있는데.”

“인나씨가 리스트를 보여주더군요. 현실적으로 제가 지원서를 낼 곳이 없다고 알려줬습니다.”

“가능한 일들이었네.”


진지한 표정을 보고 조금 지나 이해한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알겠네.”


말이 없자 그는 상대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토요일에 인나씨 직장에 찾아갔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렇게 이틀간의 일을 간추려 설명했다. 어떻게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었는지는 다르게 말했다.


“아침에 제게 알려주더군요.”

“....그랬나.”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만... 그전부터 인나씨의 성급함이 어디서 오는지 고민하던 터라, 속이 시원해지기도 했습니다.”

“흐음.”


표정을 살피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관계를 정리하던 중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 같아 제가 제안했습니다. 무엇보다.... 저에 대한 마음... 생각이 올바른지 인나씨도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의심하는가.”

“...예. 아니... 모릅니다. 객관적으로 절 돌아보지 않아도 너무 다른 삶을 살았으니까요.”

“자신이 없는가.”

“그건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인나씨는 마치... 꿈처럼... 대형 트럭이 돌진하듯 다가왔기에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트럭이라니.”


가볍게 웃다 이내 표정이 굳은 인나부친이 그를 가만히 보다 말했다.


“내 딸이지만... 이번 일은... 자네와의 일은 놀랍긴 했네. 차분한 아이였으니.”


그는 그 평가에 동조하지 않았다. 아직 인나에 대해 평가할 단계가 아니라 여겼다.


“멀어진다면 어쩔 것인가.”


그도 알고 싶은 답이었다.


“.....그때 가서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전 아직... 이 집을 제 집이라고 여기지도 못하던 사람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는데 상을 치루고, 일년 정도 갈등했습니다. 상속세를 내서 이 집을 소유해야하는지... 평가금액이 높아 상속세도 높았으니까요. 제가 모은 돈을 거의 다 내야 했기에....”


“아아... 그래야 했겠지. 젊은데 대단하군.”


그가 상당한 금액을 모았다는 것을 인나의 친부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도 자신이 대견했었기에 부정하지 않고 꺼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아버지의 흔적이 가득한 곳에 들어와 일 년이 지났지만.... 사실은 그런 흔적이 제 기억이 되는 것이 못 마땅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집에 오지 않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돌아올 장소... 그런 것도 없이 살아선지 낯설기만 했습니다.... 저 녀석이 오기 전까지의 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집돌이가 앉은 곳을 향해 인나부친이 손을 내밀었다. 집돌이는 조금 전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유기견이었다지.”

“예... 문제가 있어 안락사 대상이라고 하더군요. 동정심 때문인지.... 누군가를 보살필 수 있는지 검증도 되지 않은 제가 생물을 돌볼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앞섰습니다.”

“으음... 생물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드는군. 그래야지. 부모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네. 생소한 일이지. 아는 지식이 많아도 그건 산지식이 아니기에 겪기 전까진 모르겠더군. 전문가란 사람들의 설명서를 보며 잘해보려다 곧 포기했었네. 직접 보고 경험하며 느껴야 하는 것이었지. 같아 보이지만 세밀하게 다르고... 셋 모두 개성이 뚜렷했지. 난 회사를 성장시키고, 유지하는 것보다 아이들 셋을 키운 것이 더 어려웠다 생각하네.”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그런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인나의 짐을 들었다.


“난 자네가 싫지 않네.”

“그건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말해주지. 자네를 이용하려고 했네. 인나의 그런 점...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네....보니 눈치 챈 것 같네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인나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네. 강요는 하지 않을 것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일 것이다. 그도 다시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다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네. 만약 인나가 그럴 수 있다면 난 더 좋은 사람... 미안하네만...”

“아닙니다. 저도 절 알고 있습니다.”

“다른 것에서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네. 난 어렵게 살더라도 멀리 내다보는 사람이 인나의 곁에 있었으면 좋겠네. 자넨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후우, 섣불리 사람을 평하면 안 되는 것을.... 아비라 이러는 것이라 여겨주게. 누가 와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아주면 좋겠군.”

“그리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언제 술 한 잔 하지. 빈 말이 아니라 자네와는 더 대화하고 싶어지네. 내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점도 그렇고.”


그건 이별을 예견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다. 머물다 가는 손님들에게는 가식이라도 웃어줄 수 있는 그였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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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참치 2 +2 20.05.24 20 5 26쪽
30 참치 1 +2 20.05.24 20 5 19쪽
29 변태라서 나쁘지 않아 2 20.05.23 23 4 21쪽
28 변태라서 나쁘지 않아 1 20.05.23 23 4 15쪽
27 주차장 2 +4 20.05.22 28 6 18쪽
26 주차장 1 20.05.22 20 4 25쪽
25 만세형 20.05.21 22 5 23쪽
24 관2 20.05.21 22 5 29쪽
23 관1 +2 20.05.20 26 6 21쪽
» 또 다른 단서 +3 20.05.20 31 9 23쪽
21 국밥집 2 20.05.19 29 6 25쪽
20 국밥집 1 20.05.19 32 5 21쪽
19 행복은 아프지 않다 3 20.05.18 29 7 16쪽
18 행복은 아프지 않다 2 20.05.18 24 5 14쪽
17 행복은 아프지 않다 20.05.17 26 3 17쪽
16 외출에는 신발이 필요하다 20.05.17 35 4 14쪽
15 호박이 찾아준 다서 20.05.16 34 5 19쪽
14 굴러온 복덩이를 걷어차는 방법 20.05.16 39 8 19쪽
13 급발진 2 20.05.15 40 9 26쪽
12 급발진 1 20.05.15 46 6 19쪽
11 오래된 집 20.05.14 53 6 20쪽
10 그들의 일탈 20.05.14 48 4 15쪽
9 수상한 여인 +2 20.05.13 56 7 15쪽
8 유품 20.05.13 51 5 21쪽
7 증거물 20.05.12 56 4 18쪽
6 유서는 반송처가 필요하다 20.05.12 72 7 20쪽
5 떠나기 위한 준비 20.05.11 95 7 17쪽
4 다락과 세혼 +1 20.05.11 111 8 22쪽
3 공존 +1 20.05.11 131 1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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