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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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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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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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카멜레온(Chameleon, 七面蜥蜴)(2)

DUMMY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괴수들의 침공은 격퇴되었고, 아직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거나 죽은 척 하는 괴물들은 경비대와 민병대가 나서서 잔당들을 정리했다.


전쟁의 승리를 이끈 시장은 전신에 묻은 괴수들의 체액들을 닦아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모터사이클은 어디다 내다버리기라도 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가지런한 치열을 드러내고 웃으며 손 흔드는 에드워드 갈란의 모습에 유논은 이번에도 고개만 살짝 까딱였다.

어째 이쪽으로 점점 사람들이 모이는 느낌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이래서야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건 완전히 물 건너갔군.’


“아이고, 형님! 우리 딸애가 신세를 많이 졌다고 들었습니다.”


유논은 살갑게 소리치는 에드워드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꼴사납게 납치나 당한 녀석이······. 거기 무릎 꿇고 있어라.”

“아하하···왜 그러십니까. 솔직히 불가항력이었다고요.”

“불가항력은 개뿔. 한때 전장을 뛰어다니던 녀석이, 시청에 틀어박혀서 행정업무나 보고 있으니 약골이 되어버린 거지. 아빠가 납치당한 딸을 구하는 게 아니라, 딸이 납치당한 아빠를 구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딸아이가 저보다 훨씬 강해진 지 오래인지라······.”


에드워드 갈란은 엉겨 붙은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다고 제가 이 나이에 신체를 단련하겠답시고 형님처럼 온 세상을 떠돌아다닐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나이도 어린 게 말이 많다.”

“에이, 당연히 형님보다야 젊지만···저도 이제 어디 가서 노인네 취급 받는 사람이라고요. 솔직히 형님과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백 살을 더 나이 먹어도 거뜬할 분이시구먼.”


여전히 이십대 초반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마법사의 낯을 뜯어보는 에드워드의 모습에 유논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서, 어떻게 당한 거냐? 제대로 된 싸움의 흔적도 없는 것을 보니, 그 정신 능력자에게 패한 것 같던데.”

“하······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더군요. 집무를 보고 있다 무언가가 발끝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갑자기 정신세계인지 뭔지 하는 곳으로 끌려갔지 뭡니까. 솔직히 그 머리 길고 느끼하게 말하는 정신계 돌연변이 하나만 있었으면 어떻게든 이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다섯 명 전부가 한꺼번에 떼로 달려들더군요. 치사하기 그지없어서 원······. 머릿수 차이로 뭐 해보지도 못하고 탈탈 털렸습디다.”


에드워드 갈란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리 말했다.

유논은 장발 돌연변이-살롱의 능력이 자기 자신만을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침투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그 속에 진입할 수도 있는 능력이었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랐다.


‘아무리 머리카락을 통한 접촉이 있어야만 한다지만, 남의 의식세계에 멋대로 침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희귀한 능력이었는데······. 심지어 여러 명이서 한꺼번에 사용할 수도 있는 쪽으로 변이한 형질을 지닌 돌연변이였을 줄이야.’


이 정도면 그냥 희귀한 정도가 아니라, 거대 세력인 방사능의 아이들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유논은 그가 백치로 만들어 버린 장발 사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 이상의 뒷배를 지닌 돌연변이였을지도 몰랐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또 다른 원한을 만들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군.’


어차피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고, 돌이킬 생각도 없는 일이었다.

전전긍긍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여야 했다.

죽이고 죽는 것이 당연시되는 혼란한 세상, 누구에게나 원한의 업은 쌓여 있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유논은 뇌리 한구석에 장발의 정신계 능력자에 관한 내용을 각인시켜 두었다.

이 존재하는지조차 불확실한 원한관계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거나 전전긍긍할 생각은 없지만, 그와는 별개로 경계는 해야 했다.


그렇게 수천이 넘는 그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들의 목록에 자그마한 메모가 하나 추가되었다.

티도 나지 않을 만큼 미묘한 변화였으나, 훗날 이로 인해 무슨 일이 생긴다면 유논은 곧바로 알아볼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스스로 품은 원한을 잊지 않으며, 스스로가 얽힌 원한도 잊지 않는다.

그는 이 멸망한 세상을 그렇게 살아간다.


유논은 시장이 툴툴대며 내뱉은 말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솔직히 형님도 그 다섯 명이 갑자기 머릿속에 쳐들어와서 기습하면 저처럼 똑같이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일사불란했다니까요.”

“너와 난 다르지. 오히려 그 다섯이 한꺼번에 내 의식세계로 감히 들어왔다면, 일이 훨씬 편해졌겠군.”


한꺼번에 다 싸잡아 버릴 수 있었을 테니.

유논이 무뚝뚝하게 그리 말하자 시장이 야유했다.


“에이······.”

“에이? 내가 누구인지, 뭘 할 수 있는지 아는 놈이 그런 반응을 보여.”

“잘 아니까 더 재수 없어 보이는 겁니다. 사람이 좀 겸손해야지······.”


에드워드의 넉살 좋은 말투에 유논도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한동안 농담을 지껄이던 에드워드 갈란은 일순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그나저나, 곧 자유도시를 떠나실 예정이시라는 게 사실입니까?”


좀 전에 피오네와 무어라 대화를 나누더니, 그때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유논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만간 떠날 거다.”

“한 번 마음먹으면 다시 바꿀 분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어째서입니까? 형님은 이제 완전히 자유도시의 영웅으로서 대접받으실 수 있을 텐데요. 의뢰도 물밀듯이 쏟아져서 마정석도 엄청나게 벌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바로 그것 때문에 떠나는 거다.”


지나치게 큰 주목을 끌었다.

그게 문제였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던 푸른 불로 이루어진 화살들의 비.

하늘에서 쏟아지던 그 괴수들의 죽음을 자유도시의 시민들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물론 그 푸른 불의 비가 유논이 부린 마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유도시 전체를 통틀어 단 네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대마법이 시전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자유도시 갈란에 쏠릴 이목이 한둘이 아니었다.

작게는 죽은 마법을 살리고자 노력하는 옛 마법사들부터, 크게는 지구숭배자들이나 죽지 않은 자들의 군세, 방사능의 아이들까지.

온갖 크고 작은, 넓고 얕은 세력들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몰려들 것이다.

어쩌면 대전쟁 시절 흑색의 마법사에 대해 기억하는 이들까지 찾아올지도 몰랐다.

그러는 와중에 도시에서는 많은 귀찮은 일들이 생길 터였다.

유논은 그것들을 피해갈 생각이었다.

이전의 마법실력을 되찾는다면 모를까, 혼자 힘으로 제대로 된 마법을 부리기도 힘들 만큼 어설픈 지금의 상태로 곧 폭풍의 눈이 될 갈란 시에 머무르는 것은 독이 될 뿐이다.


“갈란 시에서 벌어들일 수 있을 마정석 수입이 확실히 아깝긴 하지만······. 그만큼 너에게서 이번 건 보수로 뜯어내면 되겠지.”


언제나 돈보다는 목숨이 중요하다.

마정석 화폐와 수명이 곧 동일시되는 그라고는 해도 과한 욕심은 금물이었다.

자유도시에서 받을 수 있는 수많은 의뢰들의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안정적인 수입-시장에게서 받아낼 이번 의뢰의 보수에 집중하겠다는 유논의 말에 시장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조금만 깎아주실 수는 없을까요, 형님? 시청 복구비용에다가 장벽 보수비용까지 돈 들어갈 구석이 너무 많은데······.”


그러다 유논의 싸늘한 눈빛에 바로 깨갱했다.


“반쯤은 네가 자초한 일이다. 책임을 져야지. 나는 자유도시를 지켰고, 방사능의 아이들 패밀리의 과반수를 무찔러 주었다. 약속한 이상의 보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얼마나 뜯어내시려고······. 알겠습니다. 아마 얼마를 생각하던, 만족하실 만큼은 지급될 겁니다. 제가 약조하죠. 말씀하신 것처럼, 결국은 제가 자초한 일이니까요.”


방사능의 아이들이 틈틈이 쳐들어올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는 있었다지만, 결국 그 빌미를 준 것은 시장과 정화교회 간의 은밀한 접촉이었다.

자유도시의 시장이 스스로 도시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그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맴돌았다.


“부정父情이란 게 참 신기합디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자식인데······. 알고 나니 그만큼 신경이 쓰일 수가 없더군요. 챙겨주고 싶고, 함께하고 싶고···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졌나 봅니다. 저는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도시의 시장인데 말이죠.”

“하지만 시장이기 이전에 한 여자의 아버지이기도 하지.”


유논은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다.


“아버지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상황이 안 좋았을 뿐이지. 그러다 보니 일어난 불상사였고, 지금이라도 해결되었으니 다행인 거다. 이제부터 네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과거의 일이 아닌, 미래의 일이다.”


진실이야 어찌되었건, 방사능의 아이들은 자유도시를 끝없이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정화교회와 손을 잡은 것이 틀림없으리라고.

이렇듯 방사능의 아이들과 큰 갈등을 빚은 현 상황에서, 자유도시 입장에서는 아예 정화교회의 세력권으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방사능의 아이들과 잘 해결을 보아 계속해서 중립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결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유논이 참견할 수도 없고, 참견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이건 자유도시 내부의 문제였다. 그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현 상황의 핵심을 명확하게 짚어내는 유논의 말에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요.”

“그래. 아무튼, 난 너희 집안의 가정사에 대해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짚고 갈 건 짚고 넘어가야겠지.”


유논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시장을 바라보았다.


“딸을 아끼는 마음은 잘 알겠다만, 감히 나에 대한 정보까지 함부로 알려줘? 네가 납치당하는 수준의 대형사태만 아니었다면, 네 딸은 내 손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사실이었다.

피오네가 유논의 정체에 대해 언급하고 목을 붙잡혔을 때, 유논은 반쯤 그녀를 죽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시장이 실종되었다는 말과 시청에 있을 꼬맹이의 안위 때문에 결국 그녀의 의뢰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피오네 입장에서는 꽤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 지나가듯 알려줬습니다만······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은 하지 말았어야지. 무덤까지 안고 갈 비밀이라고 말했을 텐데.”

“제가 경솔했습니다. 아비가 되니 걱정만 많아져서······. 저 아이가 하도 눈에 밟히다 보니 해선 안 될 말까지 내뱉어 버렸군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너의 그 말실수까지 포함해서 이번 의뢰에 크게 추가금이 붙을 거다. 이것도 그나마 네 딸내미가 입이 무거워 보이니 봐주는 거다.”

“······.”

“대답.”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제는 지나간 일이었다. 그리고 에드워드 갈란은 두 번이나 경고했는데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말귀가 어두운 사람도 아니었다.

만약 세 번째로 말해야 할 지경까지 가게 된다면···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될 일이고.

유논은 그제야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시장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형님도 제가 피오네를 아끼는 것만큼이나 신경 쓰는 아이가 있으신 것 같던데요.”


에드워드 갈란은 능글맞게 말했다.

유논은 그 말에 옆에서 긴 대화에 지쳤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소녀-시드를 바라보았다.

마법과 제국의 씨앗이 될 아이.


“어떤 관계입니까? 설마 딸은 아니겠지요?”

“······.”


유논은 잠시 고민한 끝에 혀끝에 낯설게 달라붙는 그 단어를 내뱉었다.


“제자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자유도시의 시장 에드워드 갈란은 카멜레온 돌연변이-카멜라를 살려두자는 딸 피오네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를 이대로 자유도시에 놔둘 수는 없다는 점만큼은 확실히 했다.


그녀는 도시를 테러한 방사능의 아이들-파이로 패밀리의 일원이었다.

도시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잠입에 특화된 능력을 지닌 그녀가 자유도시를 마음껏 돌아다니도록 놔둘 수 없음은 물론이고, 당장 그녀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도시에 놔두는 것은 좋지 못한 선택이 될 터였다.

분노한 시민과 군중들이 그녀를 때려죽이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따로 숨겨두거나 구속해둘 만한 마땅한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시장 입장에서는 그런 공간적, 자원적 손실을 감당할 이유도 없었다.

결국 에드워드 갈란이 내놓은 답은 그녀를 도시에서 추방한다는 것이었다.


자유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황야까지 그녀를 데리고 가 한동안 생활하는 데 필요한 식료품들만 지급하고 내쫓아 버리는 것.

만약 그녀가 자유도시에서 다시 모습을 보인다면 곧바로 처형당할 것이다.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도시에서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추방 작업은 경비대와 민병대에서 가장 뛰어나고 용감한 장정들을 데리고, 피오네가 감독에 나섰다.

당연한 일이었다. 피오네가 주장했으니, 결국 그녀가 책임을 지고 수행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카멜레온은 지금 황야에 있다.


카멜라는 군데군데 갈라진 제 비늘들을 매만지며 삭막한 땅을 걸었다.


홀몸으로 황야를 지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유도시에서 마냥 잔인한 조치를 취했다고만 볼 수도 없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끝난 직후인지라 주변의 위험한 괴수들은 싹 씨가 말라 황야는 간만에 꽤나 평화로운 상태였다.

게다가 카멜라는 방사능의 아이들 소속 엘리트 계층의 뛰어난 돌연변이다. 웬만한 괴수 정도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실력자였고, 황야를 안전하게 지나는 법 정도는 숙달되어 있었다.

거기에 자유도시 측에서 지급한 식료품도 있으니, 이 정도면 황야를 안전하게 지나칠 최소한의 요건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음식과 물을 아끼며 묵묵히 황야를 걷고 있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확실한 의표 없이, 그저 나아갈 뿐이다.


그런 그녀의 등 뒤에는 장발 사내가 업혀 있었다.

백치가 된 그녀의 동생, 살롱이다.

희멀건 눈빛으로 히죽히죽 웃는 의동생을 어떻게든 짊어지고 나아가는 카멜레온.

그녀는 그 쓸모없고 무거운 짐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쓸모없고 무거울지라도 결국은 그녀의 가족, 패밀리이기 때문이다.

파이로도 죽고 나이트도 죽은 지금, 이제는 그녀가 빅 브라더Big Brother였다.

마지막 남은 한 동생이라도 그녀가 챙겨야만 했다.


그렇게 지치고 힘들지언정 황야 너머의 어딘가로 가려던 순간이었다.

카멜라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경악했다.


‘몬스터 웨이브 탓에 인근에 위험한 괴수들이 없다고.’


그렇다면 눈앞에 보이는 ‘저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카멜레온 특유의 자그마한 동공 사이로 엿보이는 그것은 용의 동체를 닮은 거대한 도마뱀.

시뻘건 비늘을 두른 채, 눈과 입에서 지옥불이 넘실거린다.

모래를 뒤덮은 채 땅속에서 일어나는 거대 괴수의 전신은 오염된 방사성 마력으로 가득했다.


“변종 불꽃 샐러맨더······!”


무더운 때의 황야와 용암지대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재앙.

가장 난폭한 선공형 거대 괴수가 그녀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걸 먹어, 말아?’ 식으로 고민하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도마뱀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불이 거세게 타올랐다.

그 상태로 거대한 도마뱀의 불타는 아가리가 벌려진 채 다가왔고, 카멜라는 얼어붙어 버렸다.

불을 조종하는 파이로나, 저런 거대 괴수와 육탄전을 벌일 수 있는 콜테르가 있었다면 모를까, 지금 전력으로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다.

카멜라가 곧 닥칠 비극을 예감하며 눈을 질끈 감을 때였다.


“오우, 진정하려무나. 이쁜아, 아무래도 그건 먹는 게 아닌 것 같구나.”


이쁜이?

카멜라는 조심스럽게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풍채가 좋은 한 중년인, 특이하게도 부유한 상인의 외양을 하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카멜라를 바라보며 콧수염을 매만졌다.


“흠···야생의 카멜레온을 황야에서 마주치다니, 이런 우연이 다 있나. 공교롭구먼.”


그러고는 그 난폭하기 그지없는 변종 샐러맨더의 턱을 긁어주며 말한다.


“이쁜아. 카멜레온은 도마뱀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라고 봐야 할까? 넌 어떻게 생각하니?”


놀랍게도 중년인이 샐러맨더를 매만지자, 그 거대한 몸을 연료 삼아 타오르는 불길이 제 주인을 알아보기라도 하는 듯 물러섰다.

변종 불꽃 샐러맨더를 애완동물 다루듯 하는 그 모습에 카멜라는 할 말을 잃고 바라보았다.


“도마뱀이 아닌 것 같다고? 하지만 저 파충류 특유의 비늘이나 발달한 시각 기관을 보렴. 발도 딱 벽에 붙어 다니기 좋아 보이는걸!”


그오어어-


샐러맨더가 불타는 혀를 날름대며 뭐라 으르렁대듯 울음소리를 내뱉자, 중년인은 그 또한 맞는 말이라는 듯이 고개를 장황하게 끄덕였다.


“그래, 네 말도 맞구나. 꼬리가 없으면 도마뱀이라고 할 수 없기는 하지······. 하지만 아무래도 본인의 자의식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니? 내가 직접 가서 물어보고 오마.”


그러고는 카멜라에게로 다가온다.

놀라 뒷걸음질 치는 그녀를 붙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실례지만, 혹시 스스로 본인이 도마뱀이라고 생각하는가?”


카멜라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작가의말

실수로 전화 소제목에 (1) 표시를 붙이는 걸 깜빡했네요. 이런 실수를...하필이면 수정도 못하는 때에!!!

예, 막간-카멜레온이 끝났습니다. 원래는 막간이 끝난 뒤에 매애애애애애애우 긴 작가의 말을 쓰는 것이 이 소설의 전통이지만..오늘은 제가 조금 바쁜 일이 있어서 장문의 후기는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아, 그리고 원래는 막간이 끝나면 다음 에피소드의 준비를 위해서 하루 쉬고 돌아오는 것이 전통이지만....

글쎄요. 그냥 내일 정상적으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아직 다음 에피소드 스토리는 아직 구성이 완벽하게 잡혀 있지는 않긴 한데...그래도 요즘 글쓰는 게 참 재미있다 보니 내일도 글을 올리고 싶더군요. 잡설이 길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내일 매애애애애애애우 긴 후기로 돌아올 테니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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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재회(Reunion)(2) +22 20.06.13 2,318 12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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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간-카멜레온(Chameleon, 七面蜥蜴)(2) +28 20.06.11 2,299 127 18쪽
32 막간-카멜레온(Chameleon, 七面蜥蜴)(1) +17 20.06.10 2,339 1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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