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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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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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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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2)

DUMMY

소드마스터SwordMaster.

명실상부 지상 최강의 살아있는 대인전對人戰 병기들을 지칭하는 단어.

멸망 이후 대부분의 기사와 검사들은 과거 마력으로 발휘했던 초인적인 육체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기사들의 정점, 검의 끝을 본 존재들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마스터들도 그들의 전유물이었던 넘쳐나는 마력과 오러 블레이드를 잃은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그들의 육신만은 그대로였다.


환상세계의 모든 검의 주인들은 경지에 오르고 나면 신체의 재구성(Body Reform, 換骨奪胎)을 겪는다.

전신 모든 근육, 뼈, 피와 살, 근섬유 조직 하나하나가.

그 모든 것들이 세포 단계에서부터 재조립되어 전부 마스터가 펼치는 검술과 검로에 최적화되는 것이다.


더 이상 마력을 쓰지 못해도, 그들의 몸은 이미 검과 하나다身劍合一.

그런고로 소드마스터들은 핵이 떨어지고 나서도 이전의 권위와 무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이제는 단 두 명밖에 남지 않은, 지극히 멸종에 가까운 검술의 경지이기는 했으나······.


그 단 둘밖에 남지 않은 마스터들 중 하나가 지금 이 순간 가려던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논은 마력회로의 모든 에너지를 안력에 몰아넣으며 날아가는 총알을 바라보았다.

소리보다도 빠르게 공간을 찢으며 나아가는 총탄이 사내의 미간에 틀어박히려던 순간이었다.


사내는 손을 들어올렸다.

귀찮게 구는 모기나 날파리를 가볍게 쳐내듯이, 손등을 비틀며 움직인다.


유논은 그의 손이 마탄을 부드럽게 흘려내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튕겨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도탄된 총알이 하늘다리의 바닥에 들어가 박혔다.


“······.”


유논은 마침내 눈을 뜬 사내를 말없이 마주보았다.

만약 저 자리에 앉아 있던 것이 그, 유논이었다면?

손으로 마력 총탄을 튕겨낼 수 있었을 것인가?


‘손에 검이 쥐어져 있다면······시도할 수는 있겠군. 열 번 시도하면 네다섯 번은 성공할 법한 확률로.’


그리고 애초에 그는 그런 불확실한 확률의 가능성에 일을 맡기지 않는다.

결국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유논은 그러한 기예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도 맨손으로 해낸 뒤 이쪽을 무심히 바라보는 사내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단순히 감았던 눈을 떴을 뿐인데도, 금방이라도 검에 베일 것만 같은 환각이 전신을 엄습했다.


이것이 그저 뛰어날 뿐인 검객과 소드마스터의 차이다.

마스터의 손은 그 자체로 검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초음속의 마탄을 흘려낼 수 있다.

유논은 그러지 못한다.

그는 결국 마법사이지, 소드마스터가 아니기에···.


마법사는 단정 지었다.


‘마스터, 파빌리안 스트라우스가 맞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라······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칼솜씨가 더 늘었군.’


확신할 수 있었다.

15년 전, 대전쟁 시절의 제국군 마스터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지구군 저격수들의 총알을 저리 깔끔하게 흘려내지는 못했었다.


이미 모든 검사들의 정점에 올랐으면서, 핵이 떨어진 뒤의 지난 세월동안 마력을 잃었음에도 한층 더 성장한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의 섭정 노릇을 하는 동안에도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유논은 막다른 길에 몰린 것만 같은 기분을 받았다.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원근감을 무시하고 코앞까지 짓쳐드는 마스터의 아우라가 그의 영육靈肉을 압박하고 있었다.


유논은 입을 열었다.


제국의 가장 오래되고 위대한 망령, 일평생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 살아온 카라얀의 수호자.

새로운 태양을 얻기 위해 이 자리까지 찾아온 제국제일검.

제국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바칠 수 있을 그런 사내.

그 날카롭게 벼려낸, 차가운 검신을 보는 듯한 두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파빌리안.”


그가 대답한다.


“유논.”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두 친우가, 서로 상반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자리에서 마주쳤다.

하늘다리에서.


유논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여기까지는 웬일이지? 제국주의자들의 섭정공이 독기의 골짜기까지 행차하실 줄이야. 이거 귀하신 분을 만나 뵈었군.”

“당연히, 황녀 전하를 모셔가기 위해서 왔다. 네가 데려간 그분을.”

“그래. 응당 그래야겠지. 그 열다섯짜리 꼬맹이를 데려가, 반신불수 황제 폐하랑 강제로 교접시켜서 기어코 새로운 제국의 씨앗을 보아야겠지.”


비아냥대는 어투에도 사내는 일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대답할 뿐이다.


“열다섯인가? 회임懷妊하기에는 딱 적당한 나이이군. 잘 되었어.”

“······.”

“물론. 카라얀 제국은 응당 그럴 것이다. 그것이 제국에 있어 필요한 일이라면, 그리 할 것이다.”


그렇다.

저것이 제국주의자들의 수장이다.

멸망한 제국의 복원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초인楚人.

핵전쟁과 옛 카라얀 제국이 낳은 시대의 괴물.

그게 소드마스터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다.


유논은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그래. 그 문제는 제쳐두고. 상당히 빨리 왔더군? 이쪽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달튼의 애송이가 너와 협상을 해보겠다고 자처하더군.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다고?”

“내가 아는 한, 지구에서 온 검은 머리의 마법사가 자기의 뜻을 굽히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

“그래서 ‘조금’ 빨리 달려서 일찍부터 하늘다리의 끝에 도착해 있었지. 이곳이 동쪽을 지나는 가장 빠른 길이니까. 위에서 보는 풍경이 좋더군.”


순수한 육신의 다릿심만으로 오토바이보다 빠르게 목적지까지 도착해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던 사내.

파빌리안 스트라우스가 물었다.


“이번에도 그럴 건가?”


갈색 머리의 사내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나를 앞에 두고서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을 건가?”


수천 가지의 칼날들이 온몸 피부를 저미는 듯한 오싹한 영감이 척수를 찔러왔다.

목을, 가슴을, 미간을, 허리를, 사타구니를.

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급소들을 가상의 검 끝이 겨눠오고 있었다.


유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거 아쉽군······. 아까운 제국의 인재가 또 죽어나가겠어.”


그는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금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지. 다시금 제국의, 태양의 품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는 건가? 너라면 훌륭한 제국의 가신이 될 수 있을 터.”


유논은 태연하게 답했다.


“이대로 꼬맹이를 놔두고 돌아가겠다면, 생각은 해 보지.”

“무엇 때문에 황녀 전하를 그리도 아끼나···네게 옛날을 생각나게 해 주는 대체재 역할이라도 하는 건가?”

“······.”

“뭐, 되었다. 어차피 오늘 이후로는 전부 의미 없어질 터이니. 아, 그리고······.”


제국의 악마는 말을 이었다.


“네가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 시간을 끌려고 했음은 이미 알고 있다.”


유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랬다. 진즉에 소드마스터가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피오네에게 시드를 데리고 도망치라는 수신호를 보낸 지 오래였다.

그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여태껏 계속 불필요한 대화를 이어나갔던 것이고.


실제로도 그 덕분에 피오네와 시드는 이미 시야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꽤나 멀리까지 떨어져 있었다.

솔직히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소드마스터의 기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이런 잡스러운 짓거리를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대단한 성과를 노린다기보다는, 일말의 변수라도 만들 것을 노리고 시도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면, 왜 반응하지 않았던 것일까.

왜 그들을 진즉에 쫓아가지 않았던 것인가.


유논은 직감적으로 정답을 알아내고 말았다.


“···다리를 막아 놓았나?”

“일백의 황실 기사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으로 하늘다리의 입구를 봉쇄해 놓았지.”


그에게는 일말의 변수조차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하늘다리의 출구는 소드마스터 파빌리안 스트라우스가, 입구는 그의 황실 기사단이.

제국의 태양을 심을 씨앗이 결코 도망칠 수 없도록 다리 전체를 제국의 영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두 다리로 달려서 여기까지 왔지만, 나의 기사단에게는 내가 출발하기 훨씬 전부터 미리 명령을 전해 놓았었다.”

“······.”

“전부 은신술과 기마술에 능한 검술의 대가들이지. 닷새 전에는 이미 전원이 말을 타고 도착했을 거다. 너희 일행이 하늘다리에 진입하고 난 이후 곧바로 입구에 진을 치기 시작했을 테고.”

“철저하군.”

“카라얀의 신혈을 모시는 일인데, 한 치의 오차라도 존재해서는 아니 되겠지.”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허리춤의 벨트의 검집에서부터 붉은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롱소드를 꺼내들었다.

용의 숨결로 제련했다 알려진 환상세계 제일의 명검.

황실 기사단장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장검, 태양수호자太陽守護者를 겨누며 말한다.


“그리고······마지막 남은 변수. 태양을 수호하는 데 있어서 아주 조금의 오차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가능성.”


그게 바로 너다.


그는 그리 말하며 몸을 날렸다.

검과 한 몸이 된 육신이 지척까지 다가와 태양수호자를 휘두른다.

다른 것도 아닌, 마스터의 참격이다.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것은 바보들이나 할 짓이었다.

유논은 다급히 몸을 피하려 했으나, 곧게 뻗은 장검이 뱀처럼 휘며 심장을 노리고 짓쳐들어왔다.


“검을 들어라, 마법사.”

“······.”

“들지 않겠다면 강제로 들게 해 주지.”

“······!”


유논은 심장을 찌르고, 뒤이어 목을 갈라내는 검의 선을 보았다.

본능적으로 반응해 은색 장검을 꺼내들었다.


캉-!


이름 없는 지팡이와 태양수호자가 부딪히며 불똥을 튀겼다.

소드마스터는 그대로 평온한 낯으로 서 있었으며, 마법사는 불안정한 자세로 검격을 막아내느라 몸을 굽힌 채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서 있었다.


유논은 이를 악물었다.

전력의 차이는 여실하다.

검으로 소드마스터를 이길 수는 없었다. 명백한 사실이었다.

차라리 계란으로 바위를 치거나 차포 떼고 장기를 두는 편이 승산이 있을 터였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


피오네는 전직 정화교 이단심문관들의 수장이요, 대단한 실력을 지닌 돌연변이였지만 결국 그녀 개인의 무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가뜩이나 대對 돌연변이 전투에 특화된 능력을 지닌 그녀가 일백에 달하는 기사들을 홀로 돌파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것은 명백히 피오네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피오네와 시드는 하늘다리의 입구를 통해 도망칠 수 없다.

입구가 원천 봉쇄되었으니, 출구에서라도 어떻게든 상황을 뒤집어야만 했다.


“······.”


어느 새인가부터,

하늘이 검게 물들어있었다.

유논은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는 먹물의 소나기를 맞으며 은빛 롱소드를 꼬나쥐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래. 덤벼 봐라.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겠다면, 네가 옳았음을 증명해 봐라. 피와 철을 통해서.”


저기 저 검투 직전의 유열에 가득 차 냉소하고 있는 제국주의자를.


저 소드마스터를 뚫어내야만 했다.


"이게 네 마지막 기회가 될 터이니-"


모든 검사들의 정점에 오른 사내를, 마법이 아닌 검으로.


“이 황실 기사단장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를, 태양수호자를 베어 봐라.”


유논은 제국제일검帝國第一劍을 향해 달려들었다.


작가의말

이번에도 역시 제가 모르고 있던 사이에,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투가 발매되었다는군요..크흡..

언젠간..할 수 있겠죠???

+후원해주신 우간다우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매번 여러분들의 후원금 덕분에 풍족한 생활을 즐기고...있지는 못합니다. 정산기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선뜻 후원해 주시는 마음만으로도 정신이 너무 풍족해지네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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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검과 마법(Sword & Socery)(1)(연출 수정 완료) +27 20.06.22 1,854 85 9쪽
41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3) +20 20.06.21 1,844 95 12쪽
»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다(2) +22 20.06.19 1,905 10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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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재회(Reunion)(4) +17 20.06.16 2,104 1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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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재회(Reunion)(2) +22 20.06.13 2,319 12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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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막간-카멜레온(Chameleon, 七面蜥蜴)(2) +28 20.06.11 2,299 127 18쪽
32 막간-카멜레온(Chameleon, 七面蜥蜴)(1) +17 20.06.10 2,339 110 13쪽
31 이름에는 힘이 있다(3) +54 20.06.09 2,439 147 20쪽
30 이름에는 힘이 있다(2) +18 20.06.08 2,371 119 13쪽
29 이름에는 힘이 있다(1) +20 20.06.07 2,406 12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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