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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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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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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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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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2

DUMMY

문중사와 최하사는 발걸음이 가볍다.


모처럼 콜레스테롤을 섭취했더니 힘도 나지만 몸이 약간 무거워진 느낌도 든다. 보통 정찰조면 3인조가 기본이나 이제 병력이 충분하지 않다. 그래도 혼자 나가는 것은 아무리 훈련된 대원이라도 위험하다. 자신도 모르게 오판할 가능성도 있고, 죽음보다 더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로잡히는 것이다.


아무리 심문 대처훈련을 받았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이 예상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받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누구나 위험하다. 아무리 엘리트 부대라도 잡혀서 심문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통과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런 구차하고 또한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처하느니 지역대원들은 포로 대신 죽음을 택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포로를 택할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을 누가 아나.


그래서 병력이 모자라도 2인 이상 내보내는 것은 생사 갈림의 순간이 왔을 때, 결코 포로가 되지 않도록 서로 ‘방지’하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칼로 쑤시고 눈을 파고 혀를 자르는 고문 속에서 지역대 정보를 불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고문을 IS도 아닌데 할 거라고?


지구상에 잔인한 민족은 없다. 잔인한 상황이 있을 뿐이며,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당신이라고 잔인한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6.25 때 북한군은 안 잔인했나? 포로를 죽이고 성기를 잘라 입에 물린 것은 베트남전에서 처음 나타난 게 아니라 한국전에도 그 비슷한 것과 더 잔인한 것이 있었다. 특히 포항 게릴라 소탕작전에 나섰던 미 해병대 글을 읽어보라. 낙오되고 포위된 적은 더욱 잔인하게 변할 위험이 높다.


5지역대원들은 안다. 저 산 밑에서 지독히도 자신들을 잡아 조지고 싶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러나 지역대장 엄명은 물론, 말하지 않아도 대원들 수칙 딱 하나는 준수했다. 민간인은 살상하지 않는다. 나를 신고해 부대가 위험해지는 경우가 아니면 일부러 공격하지 않는다. 북한군만 공격한다. 대신 냉정하게. 두려움에 떨도록. 순간 마주하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해준다. 노인 여성 아이는 자기 목숨이 경각에 치달아도 손을 댈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문화 속에서 성장한 세대가 군대로 들어왔다. 선천적으로 냉혈한 같은 놈이 나타날 수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민간인은 목적 대상이 아니다.


같이 걷고 있는 문중사와 최하사도, 냉정하게 말해 위험의 순간, 사로잡힐 가능성이 진짜 현실화되면 서로를 쏴서 정보누수와 구차한 고통당하는 걸 방지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 일이 실제로 3주 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쓰라린 경험으로 결국 은거지를 두 번이나 이동했다.


문중사와 최하사는 잠시 쉬려고 일대를 관측한다. 이동로도 중요하지만 쉬는 곳 관측도 중요하다. 항상 저 멀리 산에서, 저 능선에서, 저 나무들에서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본다는 가정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떤 구역에서는 주간에도 야간정숙보행처럼 행동해야 한다. 누군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의심 없이 휴식하는 것은 먹이를 던져주는 것과 같다. 심지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그늘로 들어가 휴식하다가, 1분 뒤에 그림자 속에서 위치를 바꾸는 중대도 있다. 경험과 압박이 늘어나면 그렇게 세밀해진다.


산중에 있으면 소소한 많은 전술들이 알아서 발전한다. 모든 지형에는 순간 피아 안 보이는 장소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 그 안 보이는 곳에서 순간 경로를 변경한다. 뒤도 항상 감시한다. 기분이 이상하면 작은 언덕이나 능선을 오를 때, 정상을 넘어서는 순간 잽싸게 좌우 수풀로 은폐해 올라오는 것이 없나 잠시 기다려보고, 지형이 꺾일 때도 그런다. 대열이 길면 후미 경계조가 그걸 하지만 몇 명이 갈 때도 그렇게 한다.


그늘 속으로 들어간 둘은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서로 등지고 다른 방향을 눈으로 경계하며 대화한다.


“연기, 그늘 밖으로 뿜어.”

“네. 문중삼.”

“담배 다 떨어져 가네.”

“담배 때문에 사람 죽이겠어요.”

“그래도 오늘 좀 힘 나지?”

“네, 고기 먹어서요. 허허.”


전날, 드디어 K-7 사수가 한 건 했다. 노루 비슷한 것을 잡은 것이다. 그리 크지는 않았고 등이 사람 허벅지 중간은 오는 아주 작지도 않은 놈이었다. 그런데 막상 잡고 보니, 그런 걸 정리해 본 사람이 없었다. 특수전학교 생존 강의에서 닭이나 뭐 그런 거는 해보지만 네 발 달린 생물은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모두의 눈이... 가장 촌구석 강원도 아스팔트 도로 없는 곳에서 성장한 한 하사를 지목했으나 녀석이 그랬다.


“저도 마트 다녀요. 왜 이래요 시팔.”


그러자 다시 눈은 지역대 본부팀 한원사에게 돌아갔다.


“야이 새끼들아 나 절 다니는 거 모르냐?”

그러자 지역대장 ‘늙은대위’ 박대위가 웃었다.

“게릴라 상태 심각하구만.”


그러나 결국, 방법은 한원사에게서 나왔다.


“야. 나 이거 안 해봤는데, 옛날에 훈련 나가서 민간인 가축 도살을 취미로 삼고 다니셨던 선임하사에게 방법은 누차 들었어. 그러니까 내가 방법은 말해주니 존나 들어봐. 일단 피를 빼야 돼. 굳기 전에 빨리 빼야 돼. 저건 일단 다리를 위로 높은 데 매달아야 돼. 안 되면 경사면에 거꾸로 엎어지게 해놓고... 피가 어떻게 해야 가장 잘 빠지냐! 멱을 따야 돼. 인간이나 동물이나 머리가 중요하기에 대가리로 피를 많이 뻠핑해. 인간이 대가리 뻠핑 가장 센 동물이고. 매달기 힘들면 그냥 대가리를 확 잘라버리던가. 하여간 피를 존나 빼. 최대한."


"그 다음은 네 발모가지를 잘라. 발이 제일 더러워 병균도 많고 딱딱해서 먹을 게 없어. 거긴 끓여 먹는 대상이야. 거기서도 피가 좀 뽑힐 거야. 그 다음은 대검으로 모가지 식도에서 후장까지 배때지를 1자로 쭈욱 갈라. 내장은 식도부터 항문까지다. 그건 들어내면 돼. 뼈나 살에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니까 쉬울 거야. 내장 먹고 싶은 놈 있냐?..."


"이 놈들 아주 기갈이 들렸구나. 뭐 이렇게 많아! 하여간 내 생각에는 내장도 구어 먹어. 더러운 거 니들 위장에 들어간다. 소 생간 밝히는 녀석들 조심해. 하여간 계속 절차를 달리면 말야, 껍집을 벗겨야 돼. 껍질까지 먹을 거면 털을 태우든가 칼로 다 마스나우시 해야 돼. 그 다음 먹기 좋게 자르면 돼. 지금 가을이라도 하루 이틀 정리 안 하고 통으로 놔두면 구더기 생겨. 그러니까 굽기 좋게 일단 존나 잘라서 굽고, 습기 마를 정도로 구워서 말려 육포처럼 먹던가. 일단 빨리 소모해야 돼."


"우리가 지금 열여덟 명이니까 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먹는 것도 쉽지 않을 거다. 소금이 없잖아. 자, 설명 다했다. 어려워? 논리적으로 존나 쉬운 거야. 지역대에서 최고 냉혈한 문주환 중사 니가 칼춤을 춰봐.”


“원사님, 안 해본 거 맞아요?”


그렇게 오랜만에 해----먹었다. 장발에 수염에 몸부터 군복까지 모두 때로 찌든 사람들의 사육제 같은 축제. 입과 손에 기름이 질질 흐르고. 오랜만에 웃음도 보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고기는 몸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설사한 사람도 많다. 그래도 또 먹었다. 먹다 보면 몸도 적응되겠지. 힘을 내야 뭘 한다. 그런.


“냄새는 좀 났지만, 어, 대단했죠.”

“내가 잡지 않았냐. 응? 칼로...”

"전에 칼을 좀 써보신 것 같습니다."

"왜?"

"칼 잡을 때 표정이나 눈빛이 좀... 다릅니다."

"나 그냥 평범한 범생이야. 왕따도 좀 당했고."


문중사는 인상이 좀 험악하다. 별로 주고받은 것도 없는데 눈이 누굴 죽일 듯 불타는 눈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빛이 ‘굉장히’라는 어구가 만족스럽지 않을 정도로 눈매가 무척 매섭고 살아 움직이는 매의 발톱을 연상시킨다,


체구가 180 이상으로 크다. 작고 무서운 사람들을 많이 있지만 크고 무서운 사람은 드문 편이다. 어떻게 성장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기에 내력을 잘 모르며, 묻기도 힘들다. 무슨 말을 걸면 항상 그 비수 같은 눈으로 정면 응시하는데, 고참들도 얘는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어떤 맘에 안 드는 짓을 했으면 고참들이 다구리를 놔서 아예 바닥에 깔아버렸겠지만, 말도 잘 듣고 예의도 바르고 어디 흠 잡을 데가 없으니, 그저 여러 모로 쓸 만한 놈이 하나 있다 정도로 생각한다.


서로 등을 돌려 반대편을 주시하면서 담배연기를 뿜고, 소소한 잡담을 나누는 두 사람. 어쩌면 개전 이후 가장 행복하여 여유로운 시간인지도 몰랐다...


지역대는 평양 라인을 넘어서면서 무서운 대공화기 사격을 받았고, 일정 지역에서 잠잠한가 싶으면, 연락이 되었는지 또 올라오고 기관총까지 올라온다. 최고 대공경계 속으로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어느 상공이었는지 모르나 총알이 수송기를 뚫고 들어와 탄두 파편들이 기내에 날았고, 미군 로드마스터는 심각한 표정으로 마이크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우리 지역대 점프마스터를 잡고 고함치기 시작했다. 모두 불안했다. 우리들만의 루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루머가 사실인지는 모른다. 미군 수송기 타고 전시에 점프할 때, 만약 수송기가 위험에 처했을 때, 기수를 최대한 높이면서 45도 이상 각도로 상승하고, 후미 문을 개방해 생명줄을 걸지 않은 병력을 털어버린다는 루머. 털어지는 병력이 사는 길은 알아서 예비낙하산 펴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우리 수송기 맞아서 위험하니까, 빠른 기동을 위해서 너희들을 턴다. 알아서 예비산 펴서 살아라. 고도는 높여줄게. 그런.


그 엄청난 중량으로 온 몸을 감싼 강하자가 팔로 어디 잡아 버틴다는 건 분명 어렵다고 모두 생각했다. 몸이 건장해서 한 80kg 강하자라고 하면, 주낙하산 15, 예비낙하산 8, 군장 40, 산악복과 총과 기타 합해서 10. 팔로 버텨야 하는 중량은 150kg 정도가 된다. 거기에 항공기 속도로 인한 원심력이나 뭐 비슷한 것이 가해지면 더 무거워질 것이다.


죽으란 소리다. 그 미쉘린 타이어 마스코트 같은 몸으로 떨어지며 스핀 먹으면 할로처럼 낙하산 몸에 감긴다. 주낙하산은 생명줄 때문에 1자로 나가면서 펴지지만 예비낙하산은 그렇게 가지런하게 펴지지 않는다. 빨리 펴려면 양손으로 캐노피를 잡아 특공무술 단전호흡 4번처럼 앞으로 던지라고 되어 있다.


결국 지역대 점프마스터가 본부팀 정작장교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김중위 GPS 찍어!”


곧바로 김중위는 소형 GPS를 꺼내 찍고는, 작계 상 목표를 기점으로 응답했다.


“대략, 목표 DZ에서 35km 남쪽!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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