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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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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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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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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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1

DUMMY

몸이 산악의 일부가 된 듯 발걸음은 일반인 주법을 넘어선다,


웬만한 경사는 평지처럼 걷고 내리막 속보는 오락실의 펌프 댄스곡을 밟는 듯하다. 일반인과 달리 군인의 산타기는 일단 속도다. 군인이 빠르게 이동하는 이유는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최단시간으로 줄여 빨리 도착하고 빨리 복귀하고 빨리 자려고 하기 때문이다.


게릴라 속보는 특히 하산길에서 두드러진다. 게릴라로 변모한 이 군인들이 하산길에서 걷는 속도를 보면 무척 빠르며 죽죽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상체가 안 흔들리며 내려가기에 그렇다. 자세히 묘사하면, 가파른 지형에서 밑을 보고 몸이 사선으로 약간 누운 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발이 다다다닥 디디며 빠르게 내려간다. 저러다 어디 발목이라도 삐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거다.


그러나 그건 효과적인 법칙을 몸으로 익힌 것이다. 일단 오르기나 내려가기에서 눈으로 밟기 편한 곳이 보여도, 다리 각도가 너무 벌어지거나 허벅지가 과도한 힘을 쓰게 될 경우, 반드시 중간에 점을 찍고 1보가 아닌 2보로 나눈다. 그러므로 다섯 보 정도 되는 가파른 곳도 7-8보에 나눠 잦은걸음으로 통과한다. 그래야 체력소모가 덜하다. '

각도가 넓거나 조금 높은 곳을 억지로 디뎌 올라가면서 몸이 ‘끄응~~!’ 하면 체력소모가 순간 커진다. 체력소모의 급격함은 어느 한 순간의 끄응!에서 시작되어 가속화된다. 체력소모 레벨이 꾸준해야 오래 버틴다. 아무리 빨리 걷더라도, 걷다가 돌들이 많은 가파른 곳을 만나 첫 발을 딛기 전에, 훈련으로 인해 형성된 빠른 눈이 벌써 1보에서 4보까지 디딜 곳을 후후훅 찾고, 눈이 빠르게 보므로 발이 다다다닥 금방 진행한다.


여단 별로 산악구보 지형이 있는 여단이 있고 아닌 여단도 있지만, 산악구보를 자주 하다보면 뛰면서도 디딜 곳이 빠르게 눈에 들어오고, 특정한 자세로 통과해야 하는 곳도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 거기서 발전하면 짧은 거리 지형을 보고 몸자세와 발 자세가 금방 떠오른다. 떠오른 몸에 발 밟을 곳을 파악하면 거긴 땀 하나 흘릴 필요가 없다. 빠르게 달리는 가파른 산악구보를 많이 하면 디디는 곳 스캔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총을 각개로 걸치면 단독군장 행군에 편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군장을 계속 지던 사람에게, 양손을 흔들며 가는 것은 중심이 애매하다. 총을 (주로) 오른쪽 어깨에 메고 산을 타면, 일단 힘이 쏠린 오른쪽 어깨와 총으로 인해 거기 하나의 중심점이 생긴다. 그 중심점은 특히 하산할 때 앞으로 훅 쏠리지 않을 안정적인 자세를 만들어준다.


완전군장 행군으로 산을 타면 군장에 중심이 있어 - 힘은 들지만 - 거의 안 넘어진다. 저 고개를 넘으려면 허벅지가 얼마나 불탈까... 허벅지만 타버려라 생각하고 다른 곳에 힘이 안 들어가야 체력이 유지된다. 그런 버릇은 왜 생겼을까? 오늘 밤에 산(능선) 몇 개를 넘어야 하는지 세어 봤자 헛일이기에 항상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어떨 때는 너무 조심하다 보니 땀 한 방울 안 났는데 저 멀리 부대가 보인다. 폭음으로 새벽 발기를 격리조치한다.


아무리 그래도 특히 밤에,

산악에서 급속행군을 하다보면 발을 잘못 디뎌 발목이 접히는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이것도 경험으로 대처법이 몸에 익는다. 접힐 수는 있으나 그 다음 대처가 중요하다. 자주 겪다 보니, 접히는 순간이 오면 딱 느낌이 오고, 그때 반대편 발에 중심을 옮기며 접히는 발이 완전히 접히는 행동을 끝내지 못하도록 한다.


잦은걸음으로 이동하면 이렇게 발 삐는 것도 방지한다. 잦은 발은 하나의 발걸음에 큰 하중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접찔려 내려가는 발을 무의식적으로 순간 똥 밟은 발 들듯이 들어 부상을 방지한다. 아주 빠르게 중심 이동이 가능하다. 정말 빠르게 일어나고 대처하는 스킬로, 모두 경험이다. 발을 좀 삐어봐야 그때부터 스킬이 나온다.

그리고, 자주 다니다 보니 밤눈 좋아진다.


불필요한 체중 빠지고, 체력단련으로 단단했던 근육들이 축소되고 먹을 것도 부실하지만, 같은 길을 여러 번 오르고 내리면 점차 땀이 안 난다. 심리적인 것도 크다. 처음 가는 길은 신경 쓸 것이 많아 피로하다. 만약 다녔던 익숙한 길을 갈 때는 정말 지나쳤나 싶을 정도로 휙휙 순간 지나가며, 뭔가 이상한 기운이 있으면 금방 느낀다.


문중사가 그런 기운을 처음 느낀 날은, 북한군이 작정하고 이동로 하나를 택해 기다린 날이다. 북한군도 가벼운 몸으로 산 잘 탄다. 그러나 거기 있던 부대도 실전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딴 식으로 야간매복 해서 남한 괴뢰를 잡을 수 있다고 착각했다.


일단 산중 이동 속도가 그들에게 남한 괴뢰들은 엄청나게 빨랐다. 북한군은 빠르게 나타난 적을 언제 쏴야하는지 주저하다가 거의 다 통과하는 즈음 발포했고, 남한 괴뢰들은 순간 뛰기 시작하면서 괴뢰 후미가 자동으로 살벌하게 갈기고 튀었다.


지휘하는 북조선 장교가 당황한 것 같았고, 미숙한 북한군들은 자동으로 갈기는 소리에 겁을 먹었고, 생각보다 빠르게 응사하는 것에도 놀랐으며, 더욱이, 빠른 응사 총알이 자기들 근처에 가깝게 날아오는 것에도 놀랐다.


그러나 올라가던 남한 괴뢰 특수전사령부 00여단 2대대 5지역대 인원들은, 매복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걸 당하고, 곧바로 사격하고 나서 껏해야 한 5분 뛰고 다시 속보로 전환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컴컴한 산을 향해 행군을 지속했다.


‘이 산에서 이 컴컴한 밤에 우릴 따라와? 따라와 봐. 칠흑 같은 산속에서, 뛰다가 딱 한번 돌아서 너희들 면상에 갈겨주면 정신 똑바로 들 거다.’


그게 어떤 건지는 문하사도 입대 1년 뒤에 알았다. 사실 (가끔 재입대자들도 있기는 하나) 처음 접한 군대고 처음 하는 것들이고 그것이 일상화되자 자신들이 어떻게 하는지 객관적으로 못 느낀다. 문중사가 하사 시절, 점프하고 발목을 삐어, 삔 것이 심해 부대 근처에 택시타고 가서 기다렸다 합류하라는 지역대장 지시를 받았다.


당시 대대 전체가 의무대 차량 하나만 두고 대대장까지 행군했는데, 지역대들이 조금씩 다른 루트로 행군함에 따라 의무대 차량을 불러 문하사를 태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행군은 80km 정도로, 점프 후에 완전군장 행군 정말 빠르게 걷는다. 아니, 이 부대에서는 단독군장으로 걷는 것을 행군으로 칭하지도 않는다. ‘행군’은 완전군장 행군을 뜻하고, 단독군장 행군은 그냥


‘저기 갔다 왔다.... 정찰 갔다 왔다..’


‘조금 걸었다.’ 정도로 표현한다. 군장을 하도 지고 걷다 보니 단독군장으로 걸으면 차라리 군장 맨 만 못하다. 걷는 중심에 습관적으로 군장이 포함되어 있어, 단독군장으로 오래 걸으면 족쇄 풀린 노예처럼 중심이...


하여간 이상하다. 단독군장에 뭐 무거운 거라도 들어야 좀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아니 그냥 군장 메고 걷는 게 편하다. 장거리 행군하다 군장 벗으면 중심이 휘휘 흔들리면서 허리가 놀아나고, 그래서 단독군장으로 걸으면 거의 뛰는 속도로 속보한다.


다친 문하사는 새벽에 지역대 본진이 다가오는 것을 예감하고, 부대 앞산을 넘어가는 후면에서 쉬다가 군장 꾸려 합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라, 산길에 갑자기 지역대 1열 종대가 나타났다. 문하사는 당황했다.


깔았던 판초 침낭을 정리해서 군장을 결속해야 하는데, 50명이 넘는 지역대가 자신을 통과하는데 1분 30초도 안 걸렸다. 그렇게 빠르게 걷는지 정말 문하사 자신도 몰랐다. 그 똑같은 코스 행군은 문하사도 해 본 적 있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렇게 속보로 걷는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이다.


모두가 ‘아무 생각이 없는’ 그저 본능에 충실한 눈. 겉으로 보기에 정말 차가웠다. 지역대장에게 나 여기 있고 합류한다 몸을 보였지만, 지역대장은 0.3초나 될까 정말 무서울 정도 차가운 눈빛으로 아무 반응 없이 쑥 지나갔고, 문하사 팀장과 담당관은 그래도 아는 척이라도 하며 0.3초가 0.7초 정도 길어졌으나, 역시 칼바람 바람 일으키며 휙 지나간다.


문하사는 군장을 급히 결속해 따라가는데, 이미 지역대는 작은 산 정상을 넘어서 무섭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 문하사는 공포까지 느꼈다. 사람들은 얼음처럼 차갑고 자기를 버리고 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원들은 다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북한 땅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이 편할 것 같지만, 앞서 기술한 낙오자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냉대가 오기 때문이다.


지역대원들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 못 걸어서 쉰다고 나무라지도 그런 표정을 짓지도 않는다. 다만, 함께 하지 못하는 자에게 관심이 사라져 버린다.


훈련 때 은거지에 잔류로 남으면 참 따뜻하게 대하며 출발하고 - 무섭게 차가워져 돌아와 나타난다. 그 무관심 정말 차갑다.


일편 생각하면 생사를 넘나드는 침투와 도주가 이어지고, 동료들이 쓰러지고 죽음을 맞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산을 탄다. 전장이 자신에게 냉정한데 더 무엇을 바라랴. 이 부대는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낙오자 취급한다.


뭔가 먹어도 금방 소화되고 돌아서면 배고프다. 밥상 들고 마음껏 퍼먹으면서 걸어도 소화불량은 일어나지 않는다. 게릴라는 굶주림이 일상이다. 굶어본 자는 안다. 하산해서 보급조달 하다가 급하게 먹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아가리가 찢어져라 급하게 속으로 밀어 넣어도 체하지 않는다.


오랜 불만족에 시달린 위장은 첫 음식물 조각이 넘어오자마자 즉각 완전히 분해해버리고, 다음 넘어오는 음식물이 정체될 시간이 없다. 마른 사람이 생각보다 엄청 먹는 걸 부대원들은 이해한다. 그리고 식탐이 생긴다. 그 식탐은 음식의 종류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먹을 기회가 됐을 때 엄청나게 쑤셔 넣는 바로 그 중상. 먹는 것은 본능이다.


여기 입대한 사람들에게 까다로운 입맛은 불필요하다. 힘들고 배고프면 뭐든 다 먹는다. 뱀 개구리? 굶어봐라. 당신도 당신의 아내도 자식들도 다 맛나게 먹게 되어 있다. 인간 본능은 대부분 별다르지 않다.


뱀 개구리가 아니라도 지역대원들은 산에서 먹을 것은 죄다 취득해 가용한다. 조국 땅의 훈련에서도 노루나 멧돼지를 잡아먹은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곳은 실탄도 있고 잡아먹고 싶지만 이미 자연은 자생력을 잃고 먹이사슬은 끊어졌다.


훈련 때 풍성했던 조국 산하의 여름과 가을 산이 너무나도 그립다. 수목 풍부하고 물 맛 죽여주고 먹을 것도 많았다. 북한은 달이나 화성 표면에 온 것처럼 모든 것이 헐벗고 열악하다. 굶주린 사람이 잔인해지는 거 시간문제다. 극도의 허기와 본능의 궁핍에서 나오는 살기에서 공자는 없다. 생각을 완성하기도 전에 몸이 빠르게 움직인다. 대원들은 어떤 동물이던 덩치 큰 놈 하나가 잡히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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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83 Latour
    작성일
    20.11.01 01:30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20 조휘준
    작성일
    20.11.01 07:03
    No. 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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