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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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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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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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에필로그 II - 이른 기상

DUMMY

태양. 지구. 잎사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놀랍다.

왜, 이, 나라는 것이 이렇게 좋지?

내가 나를 이렇게 좋아했나?


생각이 저 하얀 점,

태양으로 영점이 잡힌다.


갑자기 까먹을지 모르니

단자를 [사격]으로.


”차라리 손이나 팔이 잘렸으면,“


이제는 꿈처럼 기억되는,

어떤 여자가 보고 싶다.


손짓 한 번만 해줘.




이른 기상



용기.

가벼운 용기.

큰 것은 쉼 없이 팍팍 버티고 지나가는데,

가벼운 용기가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인간은 약하다.

그래서 믿을만한 배우자가 필요하다?


몸과 맘이 무겁다. 가벼운 용기가 필요한데, 가벼운 것은 매일 하는 것이라 지겨워서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힘들다기보다 하기 싫어서. 귀찮아서, 반복이 끔찍해서다. 지겨움의 국가대표들은 반복되는 것들이지. 추위, 더위, 비바람, 설산, 물 구하기, 취사와 식사, 야전 설거지, 노숙. 짐을 꾸렸다 풀었다 반복. 걷기.


처음에는 ‘인간이 이딴 짓을 매일 하다니’ 충격이었고, 적응하면 편해지지만, 더 가면 지겨워질 때가 온다. 너무 많이 한다.


다시,

세상이 눈을 뜬 건지

이미 돌아가는 세상에 눈을 뜬 건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건 확실한데 인과가 없이 덩그러니...


어제와 오늘이 연결 안 된다. 밤은 지나가고 오늘의 현실이 온 것은 확실하나, 어제 일이 꿈 같다. 낮에는 쓰러지고 밤에만 움직이기 때문에 더 인과가 없다. 눈에 뵈는 것이 없고 정신만 심화한다. 정신은 현재 생각인데 내용 부질없다.


어딜 빨리 가긴 하는데 어둠밖에 안 보여. 다리는 걷는데 거기서 거기 제자리 같다. 걷기 시작하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고, 지속하면 정신이 육신의 고통으로 항의를 받고, 마지막에는 생각에 쓸 에너지조차 없어진다.


즉, 아무 생각 없이 가는 거다.


마지막 즈음에는 뼈 마디마디 근육 조각조각이 군벌처럼 저마다 반항한다. 어깨, 발, 짐 때문에 오그라든 것 같은 가슴. 어제는 양말이 말라 발에서 툭 떨어졌다.


기절한 듯 곤하게 자고 나니 역시 어제가 비현실적. 어제를 잘라내듯 뻐근하게 잤다.

어제는 지나갔지. 오늘 일어날 날이 중요하지! 오늘. 오늘은 또 얼마나 가려나.


‘근데 젠장, 행군 출발이 오늘인가 내일인가, 기억이 안 나네. 오늘 쉬나? 오늘이 은거인가 이동인가 모르겠어. 답은 있는데 기억까지 수상해져. 요일 날짜 몰라. 봐도 그게 그거야. 달력의 빨간 숫자와 주말이 아무 쓸모 없으니까. 근데 오늘따라 왜 이리 기억이 멍하지? 사람이 매일 태어난다는 말에 한 표 던진다.’


문제는 항상 오늘,

‘오늘 뭐 뭐지? 뭐였지? 아, 일단...’


생각보다 앞서 빠른 손!

용기의 전류가 손가락 끝까지 스며,

사내치곤 옹졸한 용기로 플라스틱 지퍼를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내린다.


“어흐...”


상체 전면 피부에게 마주하는 공기가 달라지고, 썰렁~~~하다.

지퍼가 중간에 정지하고 몸을 고쳐 움직인다.


‘아 시려. 어디 갔지?’


목이 허전. 손이 집 나간 목도리를 침낭 안에서 뒤져 당겨 목에 돌리고, 군복 단추와 야전상의 지퍼를 끝까지 여민다. 그래도 열은 났는지 자다가 풀었다.


침낭의 온기는 만족하고 따스하다. 바깥과 온도 차 크다. 나가고 싶지 않으나 나가야 한다. 이런 조그만 것들을 무시하면 들어가서 결산? 대상이다. 위대하신 분들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며 이유 모를 결산 누적분을 선사한다.


옆의 중사님 두 분.

돌덩어리다. 잘 자는 것도 전투력이다?

한 분은 잔뜩 꼰 고무줄 풀리는 소리가 난다.


귀.

저 바깥 잎사귀가 상상되는 바람 소리,


코.

공기 냄새에 더해 축축한 흙냄새.


일상도 정찰을 필요로 한다.

감각은 인적을 찾는다. 나는 1번이어야 한다.


‘내가 처음인가? 처음이지?’


적막, 내가 찾는 인적의 모닥불 소리도 냄새도 없다. 베개로 쓴 수통에서 고개를 세워 출입구를 보니 덮개 사이로 가느다란 빛, 빛이 가느다란 고드름처럼 떨어진다. 풀로 충분히 위장했는데 밤에 만들어서 그런가, 빛이 듬성듬성 새네.


‘완전한 아침 조명은 아닌데? 몇 신데 빛이 저러지?’


푹, 벽에서 조악한 흙덩어리가 떨어진다.


‘말번이 담당관이었나?’


야전 취침은 누구라도 불침번이 이어져야 한다. 적당히 했다가 인사담당관이나 지역대장에게 걸리면 좆된다. 덜 피곤한 날이면 둘이 올라오곤 한다. 산에 오래 있다 보면 인적이 올라오는 느낌, 공기가 달라짐까지 체감한다. 조용해서 그런가 산에선 청각 예민해진다.


오늘은 당신들도 피곤해서 목이 무겁겠지. 당신들도 걸었으니까. 입에서 나올 욕을 지휘관이란 품위로 참는 표정을 지난밤 어둠 속에서 봤다.


그래도 올라오면 올라오지? 야전 경계 실패란 이유로 발광하는 상사를 본 적 있다. 건수 잡았다 이거였지... 한겨울 추억도 있다. 그런 행동 없었던 지역대장이 새벽에 일어나 올라왔다가 파탄 난 어느 중대 불침번을 목격, 불침번이 시체 상태였다.


‘느그들 자리는 느그들이 깨야지? 목욕탕 만들어 봐.’


장면을 목도한 골프장이 중대를 기상시켜 계곡물에 입수시켰다. 야삽으로 깨고 입수한 물 옆으로 두꺼운 얼음과 쌓인 눈.


[전쟁이면 너희는 몰살이야!]


어젯밤 우리 팀이 넷으로 나눠 비트 파고 땅속으로 들어가자 순번이 불투명해졌다. 중대장은 안 봐도, 비트별로 불침번 서라 했다. 팀 불침번이 아니라고?


‘중대장 비트에 CCTV 설치해야겠는걸?’


비트로 분산되었는데 따로 불침번? 서넛이 하룻밤 불침번을? 차라리 비트들 중간에 모닥불을 피우고 정식 불침번을 지정하던지. 이런 개같이 짜잘한 걸 사회 친구들에게 말할 수도 없지만, 중요한 거 맞지. 불침번이 영면한 군대는 전멸 상황 맞지. 소령 원-상사 말마따나.


‘내가 초번 좀 끌어줄게.’ 중대장도 자청하는 팀도 있지만, 중대장 전입 짬밥이 1년 이상 차면 빼주는 팀도 있다. 담당관은 대체로 서나, 당연히 초번 아니면 말번. 원칙은 비트 자리 중간 지점에 나와서 서야 한다. 이것이 여간 귀찮다. 지금(오늘)은 지역대장이 ‘전술 상황으로 한다.’ 선언했기에 불 못 피운다. 밤에 불침번 모닥불 피우지 말란 거였다. 한 시간에 한 명씩 두메산골에서 얼어 죽으라고?


‘중대장들 표정 왜 그래. 내가 아니라 대대 지시라고!’


불침번 서기에 밖은 오실오실하다. 모닥불을 피우는 불침번과 아닌 것은 천지 차이다. 졸병 하사가 다음 불침번 깨울 때 심각하다. 모닥불이 있으면 요람을 흔드는 손에도 중사가 모닥불에 몸을 쬘 재미라도 있다.


11명이 한 시간씩 뿜빠이 해서 서는 것보다 너무 부담. 비트마다 불침번을 서라고? 그럼, 1인당 두세 시간이다. 해도 짧아져 밤이 길다. 겨울의 야전은 항상 밤이며 - 종종 빛이 옛일곱 시간 나타났다가 없어진다. 주인공은 컴컴함이다. 이 부대는 가뜩이나 낮에 자고 밤에 다니기에 더 그렇다. 전술 때문에 겨울에 행군 부담이 적다. 행군 중 해 뜨면 전술 실패다.


우리 비트는 더 격렬하게 파서 군장과 장구를 안으로 들였다. 움직이기도 힘들게 안이 꽉 찼다. 반나절 파자 다른 비트는 눈치를 본다. 그만 파고 시마이 해서 반 비트로 전환하지? 반 비트로 가면 작대기 10개 잘라서 비스듬히 세워 막으면 작업 끝!


‘얼마나 잔다고 이렇게 파나?’


대대에서 감독 나온다는 말 때문이다.


어쨌거나 어젯밤, 비트 왕고는 선언했다.


“걍, 쳐 자. 장비 들였잖아. 언 넘이 비트별로 돌아다니며 확인하냐! 여기가 북한이냐? 대대본부가 야밤에 와서 비트를 찾는다고? 골프장이나 행보가 비트 파는 자리 확인하고 갔냐? 교리에 충실하게 입구 위장 잘하고 쳐, 자. 까는 소리 하고 있네. 올라오면 쏴버릴라. 점검하는 놈도 지들 편할 때 하는 거라고. 알간? 하루 휴식한 뒤에만 조심해.”


중사 2번이 거드신다. “짬밥 먹다 보면 오늘쯤 올라오겠구나, 감이 온다. 말대로 걍 자. 손목시계 알람 되냐? 기상만 조금 빨리하면 밤은 아무도 모른다.”


“손목시계 알람 켜지 마. 달콤한 아침에 시끄러. 동무는 요해?”


“옙. 접수.”


누가 뭐 훔쳐 갈 수 없고, 들짐승이 괴롭힐 염려도 없다. (멧돼지가 친히 이 구덩이 안으로 돌진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보다는 멧돼지 대가리가 비트 입구에 끼어 막히는 상황이 더 불안. 하지만 들짐승 IQ 너무 격하하는 거 아니냐? 대가리 처박고 ‘영구 없다~~~!’ 잡아먹은 꿩이 생각나네.)


취침 동안 팀장이 돌아다니며 불침번 서나 점검할 염려 없다. 지프차 타고 돌아다닐 다른 부대 중대장이나 가능한 소리. 신임 중대장의 과도한 군율은 체력단련과 행군으로 잡는다. 아무리 대대가 야밤에 비트 확인하러 다녀? 저 아래 대대 CP에서 이 어두운 산중을 타고 올라와 개별 중대까지 찾아? 지역대 날밤 새란 소리지.


“와도 새벽에 온다. 하늘가 파르스름해질 때.”


“제가 자정까지만 촛불 켜고 청음 하다 자겠습니다.”


“그러려무나.”


생각보다 따뜻하다. 겨울 땅속은 지상에 노출된 텐트보다 세 배는 따뜻하다. 삽질 깊이 세 뼘 내려가면 상온 1도씩 올라간다.


“단결. 취침하십쇼.”


“어이! 적당히 단디 해라.”


겨울 비트 안의 촛불, 충격적으로 따뜻하다. 군장에 초를 지고 온 내가 자랑스럽다.


아무리 그래도 침낭 안보다는 춥다.

마지막 자세 취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 두리번...


어둠 속에 홀로 주시하는 노란 촛불,

어느 틈에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초는 꺼졌다. 나는 안 껐다. 누가 껐는지 모른다. 초가 녹은 정도를 보니 누가 중간에 껐다. 난 아니다. 조용필께서 말씀하신다,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내가 코를 골았나? 초 때문에 내부 온도가 높아져서 흙이 무너져내릴까 걱정 들던 즈음... 잠들었다. 잠에 들면서도 아차 싶었다. 이거,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그때 자정을 넘지 않았어, 아직 자정을 충분히 넘지 않았어,,, 그러다 순간 정신을 잃었다.


밤새 이름 모를 산중을 걸어와 낮 동안 비트 파고 위장했다. 그렇게 흙이 많이 나올 줄 몰랐다. 충분히 편안한 공간을 파고 싶었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가정하고 시작했지만, 딱 누울 자리 나오자 고참님은 ‘됐다 고마 시마이! 집 짓냐? 우리가 겨울잠 자냐 씨벌.’


그래도 과중한 비트였다. 텐트 쳐서 몇 시간 자고 일어나 해 저물 때까지 팠다. 무슨 홍보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누가 훈련 나와서 보지도 않는데 이렇게 파나. 현재 다른 지역대에 붙은 사령부 통제관 때문이다. 심드렁한 표정의 사자 마크 눈이 칼 된다. 전술행동 평가라서 통제관 붙은 지역대는 반 죽었을 거다. 그 지역대는 비트 팔 때 경계까지 총 들고 서야 하고 흙 처리도 교범대로 해야 한다. 대대는 혹시 모르니 다른 지역대에도 전술적으로 제대로 하라고 엄명. 도착해서 모닥불 쌔려 밥해 먹는 재미가 생략되었다. 김 모락모락 나는 반합 밥과 전투식량은 다르다. 쌀밥의 氣가 다르다. 불 피워 해 먹는 밥이 열량은 전투식량보다 떨어져도 사람 기력에 좋다.


오늘. 정신 차려. 지금부터 오늘이다.


‘어 씨발.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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